영월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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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16.

영월 장릉(세계유산 · 사적 제196호)

단종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만에 승하하니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란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단종3) 세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세조3) 단군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여름철 장마에 잠길 우려가 있어 객사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영월 유배 4개월만인 음력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의 일기로 승하하였다

1516년(중종11) 장릉은 비로서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698년(숙종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비

 

 

 

 

단종역사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으로

단종이 잠들어 있는 세계유산 조선왕릉 영월 장릉(사적 제196호) 내에 위치하고 있다

 

 

 

 

배견정(拜鵑亭)

장릉 남쪽에 자리잡은 아담한 정자다

 

 

 

 

박충원 낙촌비각(朴忠元 駱村碑閣)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73년에 세운 것이다

중종 11년 노산묘를 찾으라는 어명에 의하여 찾아 치제하였으나

그 후 방치되었던 묘를 중종 36년(1541) 영월군수로 부임한 박충원의 현몽에 의해

봉축하고 전물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문경공낙촌밀양박충원선생기적비

(文景公駱村密陽朴忠元先生紀蹟碑)

 

 

 

 

장릉(莊陵)

상설은 추봉된 정릉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을 설하지 않았고

양식은 간단하게 작은 후릉(厚陵)석물의 것을 따랐다

따라서 장릉의 석물은 숙종 · 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석물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며

명릉(숙종 능) 이래 만들어지는 4각옥형의 장명등은 장릉에서 그 첫선을 보이며

망주석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가 없다

*

엄홍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그의 선산에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엄홍도는 1833년(순조33)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1876년(고종13) 충의공 시호를 받았다

 

 

 

 

영천 · 정자각

장릉에서 내려다봤다

 

 

 

 

정령송(精靈松)

강원도 영월 장릉 앞에는 사릉에서 가져다 심은 소나무 「정령송(精靈松)」이 있다

이 정령송은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절하고 슬픈 사연으로 인해

두 영혼을 합치자는 뜻으로 옮겨 심은 소나무다

한 때 장릉과 사릉을 한 곳으로 합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방자치단체 간의 이해가 엇갈려 무산되었다

 

 

 

 

 

장릉의 유래비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배식단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 조사, 환자군노

여인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제향을 올리는 제단이다

 

 

 

 

홍살문

왼쪽은 신이 다니는 신도, 오른쪽 길이 왕이 다니는 어도(御道)다

 

 

 

 

수라간 · 정자각 · 단종비각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한 능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 왕릉의 구조와 다른 점이 많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는

일반적으로 일자형으로 조성되는데 반해 장릉은 'ㄱ'자형으로 꺾여 있다

 

 

 

 

느릅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2m · 나무 둘레 3.9m · 수령 370년 · 지정일자 2003. 11. 15

 

 

 

 

장판옥(藏版屋)

이 건물은 정조 15년(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것이다

 

 

 

 

수복실(守僕室)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영조 9년(1733)에 세운 것이다

 

 

 

 

단종비각(端宗碑閣)

영조 9년(1733)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조선국단종대왕장릉(朝鮮國 端宗大王莊陵)

앞면에 음각되어 있는 글이다

 

 

 

 

조선국단종대왕장릉(朝鮮國 端宗大王莊陵)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정자각(丁字閣)

숙종 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 시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丁)자 모양으로 건립된 제전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이라한다

 

 

 

 

정자각 내부

 

 

 

 

수라간(水剌間)

수라는 원래 몽고어로서 탕미(湯味)를 뜻하며

수라를 짓는 주방을 의미한다

 

 

 

 

영천(靈泉)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 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영천(靈泉)

제정(祭井)과 빗돌

 

 

 

 

제정(祭井)

한식 제사 때 사용하는 우물인데

1791년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경이 조성하였다

*

깊이 1.5미터의 안을 들여다보니 물이 있다

 

 

 

 

영천(靈泉) 빗돌

 

 

 

 

단종비각 · 수복실 · 장판옥

 

 

 

 

정자각

위로 장릉 무인석이 보인다

 

 

 

 

정자각

 

 

 

 

엄흥도 정여각(嚴興道 旌閭閣)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홍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그의 선산에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엄홍도는 1833년(순조33)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1876년(고종13) 충의공 시호를 받았다

 

 

 

 

엄흥도 비각(嚴興道 碑閣)

 

 

 

 

재실(齋室)

건립연대는 숙종 25년(1699)이고, 1932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 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 기구를 보관해 오던 곳이다

1997~98년 재실 지붕 및 배수로를 보수 정비하였다

 

 

 

 

재실 향나무

 

 

 

 

행랑채

 

 

 

 

행랑채

 

 

 

 

안채

 

 

 

 

참봉 빗돌

화단에 있다

 

 

 

 

참봉 정공수(參奉鄭公壽) 빗돌

땅에 묻혀 글자가 안 보인다

 

 

 

 

재실 대문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96km, 소요시간 1시간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