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유적지 다산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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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4. 30.

다산유적지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자 차 문화 부흥을 이끈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로

다산기념관 · 문화관 · 문도사(사당) · 여유당(생가) · 묘소 · 동상 등이 있다

어려서부터 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다산은 16세에 서학(천주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요직에서 물러나거나 유배되는 아픔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산의 긴 유배 생활은 그의 방대한 저작이 탄생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되어준다 

 

 

다산문화관 · 다산기념관

목민심서 · 경세유표 · 흠흠신서 등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와 다산의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산기념관

 

 

 

 

다산 정약용(1762~1836), 조선의 과학기술을 일으키다

 

 

 

 

다산 정약용

민족의 스승 마현에서 태어나다

 

 

 

 

거중기(擧重器)

1792년(정조 16) 다산 정약용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로 높이는 4.4m, 너비는 1.7m이다

'기기도설'을 연구한 다산 정약용이 골차로 거중기를 만들어 수원성을 쌓는 사업을 지휘하면서 직접 만든 것으로

이 기계를 써서 건설 경비를 4만 냥이나 절약하였고

거중기를 이용하여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하였으며

다산 선생의 과학사상과 앞선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서적 전시

 

 

 

 

다산년보(茶山年譜 · 19세기)

정약용 선생의 일대기를 정리한 것으로 정약용 선생의 큰 손자인 정대림이 기술하였다

이 책에는 할아버지의 일생을 연도순으로 기록하고 있어 정약용 선생의 일대기를 알 수 있다

이 연보를 기초로 1921년 5대손 정규영 선생에 의하여 사암연보(俟菴年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암(俟菴)은 다산의 호이다

 

 

 

 

다산 정약용 연대기

 

 

 

 

정약용의 가계, 학통

 

 

 

 

정약용 유배의 길

 

 

 

 

유배인 정약용이 머문 곳 · 유배인 정약용 업적

 

 

 

 

보은산방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5년 겨울부터 1806년 가을까지 머물며 만덕사지 · 대동산교고 등을 찬술한 곳이다

 

 

 

 

사의재(四宜齋)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겨울부터 1805년까지 머물며 아학편훈의 · 제경 등을 찬술한 곳이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11년 동안 목민심서 · 경세유표 · 흠흠신서 등을 저술했다

 

 

 

 

경세유표(經世遺表 · 1817)

경세(經世)란 낡은 제도를 새롭게 해서 나라를 운영한다는 뜻이며

유표(遺表)란 늙은 신하가 임금에게 유언처럼 남기면서 올리는 글이다

이 책은 주례(周禮)의 이념을 바탕으로 조선의 현실을 새롭게 개혁하기 위해 저술한 국가개혁론으로

관직체제의 전면 개편, 신분과 지역 차별 없이 골고루 인재 등용, 토지제도 개혁, 조세제도

지방 행정조직 재편 등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 · 1818)

수령으로써 수행해야 할 일들을 이(吏) · 호(戶) · 예(禮) · 병(兵) · 형(刑) · 공(工) 등 육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전체 12부 중에서 앞뒤로 부임과 해임에 관한 2개부와 수령의 몸가짐에 관한 4개부가 있어

지방관의 자세와 역활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당시 현행법을 전제로 하는 행정의 개혁방안이다

 

 

 

 

흠흠신서(欽欽新書 · 1819)

흠흠(欽欽)이란 중국의 서경에 나오는 글로 죄인을 다스리는데 있어

신중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형법에 관한 개혁서이다

관리들이 법률에 밝지 못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여 형사사건을 바르게 판결하지 못하는 걸 보고

중국과 조선의 살인사건에 관한 판례집과 문서작성, 문장기법 등 형법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저술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생각을 듣다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조선후기에 사용되던 각종 용어와 문자의 잘못된 용례를 바로잡고자 집필된 저서이다

1819년(순조 19)에 그 당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와 문자 450여 가지에 대하여

각종 문헌과 시문에 근거하여 어원을 밝히고 설명을 더하여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다

*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는 한백겸 이래 추구되어온 우리나라 영토와 역대 국가, 수도의 위치 문제에 대한

기존 지리서의 오류를 시정하고 강역의 문제를 정리하여 조선의 정통성을 바로 잡아 보려는 목적에서 쓴 책이다

 

 

 

 

다산 정약용, 생각을 읽다

여유가 생긴 뒤에 남을 구제하려 한다면 결코 남을 구제할 날이 없을 것이다

 

 

 

 

이산창수첩(二山唱酬帖 · 18세기) · 수종시유첩(水鍾詩遊帖 · 1830년)

이산창수첩은 문산 이재의(文山 李載毅)와 정약용이 1814년 강진 만덕사에서 만나

학문적 토론을 하고 그때 주고받은 시를 모아 엮은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게 된 감회와 강진의 풍광에 대한 정감을 표출하였다

*

수종시유첩은 1830년 가을, 정학연 · 학유 형제와 초의 의순 등 정약용의 제자들이

수종사를 유람하면서 주고받은 담론과 시를 기록한 기행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정약용과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 박보영, 이만용의 서문과 홍현주가 그린 그림이 있어

당시의 운길산, 수종사의 겨울 정경과 함께 유람 정황을 사실적으로 알 수 있다

정약용이 만년에 여러 학인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여성화시(輿聖華詩)

1813년에 정약용이 이성화에게 준 친필시로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상적인 은거지의 삶을 읊은 시로 다산의 상심낙사(賞心樂事)가 잘 드러나 있다

상심낙사는 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길이란 뜻으로

소동파의 마음으로 감상하는 16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의 상심십육사(賞心十六事)에서 비롯되었다

다산은 상심낙사의 운치를 가진 곳으로 자신의 고향집이 있는 초전과 서종을 꼽았다

"고향의 내 옛 집은 비록 재물은 넉넉지 않으나

천연으로 이루어진 산수의 운치만큼은 마음으로 감상하고 즐길만한 곳"이라 여겼다

 

 

 

 

송이익위논남북학술설(送李翊衛論南北學術說 · 19세기) · 정약용 편지(정약용 · 19세기)

송이익위논남부학술설은 1822년 10월 회갑을 지낸 다산이 퇴계의 후손인 이인행에게 보낸 편지로

영남의 학풍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

정약용 편지는 정약용이 약암 이재의에게 보낸 편지다

이재의는 다산과 교류가 깊었던 노론의 학자이다

이 편지에서 정약용이 목민심서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된 일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정약용 자신이 쓰는 이 편지까지도 또한 남이 볼까 두렵다고 하였다

해배된 후에도 매우 조심스럽게 세상을 살았음을 짐작케 한다

다시는 목민심서의 한 글자 반 구절도 남의 눈에 띄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약용의 저술 중 목민심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 유배를 즐기다

 

 

 

 

글씨로 읽는 정약용

 

 

 

 

현친유묵(賢親遺墨)의 발문

강진 유배시절 다산 제자인 윤문거(尹文擧)가 퇴계 이황 · 미수 허목 · 고산 윤선도의 유묵(遺墨)과

그의 선조인 행당공 윤복 이하 7세손에 이르는 조상들의 친필 척독(尺牘 · 편지)을 모은 것으로

다산은 제자의 요청으로 발문을 썼다

 

 

 

 

천우기행권(穿牛紀行卷)

다산은 순조 20년(1820) 3월, 춘천 여행과 순조 23년(1823) 4월, 2차 여행 때 각각 천우기행권 시집과 산행일기를 남겨 춘천이 낙랑의 남부도위가 있던 곳이고, 고조선의 한가운데를 흘렀다는 열수는 곧 한강이라고 단정하였다

 

 

 

 

상심낙사(賞心樂事)

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길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