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운현궁~교육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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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5. 21.

탑골공원 · 운현궁 · 교육박물관 걷기다

 

 

송해길

종로구 낙원상가 주변으로 국민MC 송해의 이름을 딴 〈송해길〉이 지정돼 있다

종로문화원은 종로구 수표로 1.44㎞ 가운데 종로 2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 구간을 송해길로 이름 붙였다

2016년 5월 23일 도로명 주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송해의 공식 명예도로로 지정되었다

이곳에 송해길로 이름 붙여진 이유는 송해가 낙원상가를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국일관

 

 

 

 

경시서 터(京市署址) 빗돌

조선시대 물가를 조정하는 상거래를 감독하던 관아 터다

종로구 견지동에서 이전해 왔다

 

 

 

 

탑골공원(塔谷公園 · 사적 354호) 삼일문

서울에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으로 만들어진 시기를 두고 이견이 있으나 1890년대로 알려졌다

이 공원은 조선 고종 연간 총세무사로 활약한 영국인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개장 당시에는 빈 땅에 울타리를 둘러 나무를 심고 의자를 놓은 정도였으나

1910년부터 점차 시설물을 늘려갔으며, 1913년부터는 매일 개방하였다

탑골공원은 3 · 1독립운동의 점화지로 잘 알려져 있다

*

1969년  3 · 1절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가 독립선언 기념탑을 세우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높여주기 위해 삼일문 돌기둥 4개를 서울대 법대 교문 기둥으로 기증했다

1975년 서울대 법대가 관악 캠퍼스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삼일문 현판

삼일문이란 현판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이다

2001년 11월 23일에는 탑골공원 정문 현판인 삼일문이 떼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민족정기가 서린 탑골공원에 일제시대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글이 올라 있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이유다

*

삼일문 현판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 공원 정문 기둥 복원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팔각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

1902년(광무 6)에 탑골공원 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로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 · 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圓覺寺十層石塔 · 국보 제2호)

세조가 세운 원각사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興福寺)」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세조 13)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 11) 고려시대에 세운 흥복사(興福寺) 터에다 원각사(圓覺寺)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 13)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 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케 하였다

 

 

 

 

3 · 1운동 기념부조 · 3 · 1운동 찬양비

 

 

 

 

북문

탑골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송해의 집

60년 전통의 국밥집인데 천원에서 천오백원 · 이천원으로 올랐다

 

 

 

 

지석영 집터 빗돌

종두법 보급과 서양 의학을 도입하고 국문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관립교동소학교( 현 교동초등학교) 정문

1894년(고종 31) 9월 18일 개교한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다

다음해 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되어 한성사범부속소학교로 지정되었다

1910년에 교동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고, 1927년 대 화재 후 현재 건물이 개축되었다

*

빗돌이 정문 옆에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초등학교 서울교동초등학교 변천사

 

 

 

 

1918년 3월 교동공립보통학교 제8회 졸업생

 

 

 

 

운현초등학교

 

 

 

 

운현궁(雲峴宮 ·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흥선군의 왕실 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 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노안당(老安堂)

대원군이 국정을 의논하던 사랑채로 T자형 평면의 건물로 처마에는 송판으로 만든 차양(遮陽)을 달았는데

처마 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단 수법은 이곳에만 남아 있다

 

 

 

 

노락당(老樂堂)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뤄진 건물이다

운현궁의 안채로 1864년에 건립되었다

 

 

 

 

이로당(二老堂)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가 거처하던 곳으로 바깥으로 출입문을 내지 않은 지극히 폐쇄적인 口자형 건물이다

운현궁의 별당이다

 

 

 

 

유물전시관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고종 즉위 이전 · 이후 운현궁

 

 

 

 

헌법재판소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최고법원으로, 법원과 함께 대한민국 사법부를 이루는 양대 헌법기관이다

옛 창덕여자고등학교 자리다

 

 

 

 

헌법의 수호자 상(1992년 / 최의순)

얼굴은 외유내강형의 전형적인 한국인 선비상으로서 고개 모습은 빛과 이상을 추구하고

손에 든 법전과 저울은 진리와 평등을, 투박한 법복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자세를

그리고 뒷모습은 곧고 강직한 절도와 기백을 상징한다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나무 줄기는 나무 밑부분 75cm 정도의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중국의 북경 부근이 원산지로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이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으로 보인다

백송나무는 우리나라 들어온 지 오래 되었으나 번식력이 매우 약해서 그 수가 적다

단 원산지인 북경에서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란 거목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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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높이 14m · 나무 둘레 4.25m · 나무 나이 약 600년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늘푸른 큰키나무로 잎이 3개씩 뭉쳐나는 속생(束生) 삼엽송(三葉松)에 속한다

나무의 색깔은 어릴 때는 회청색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나무 껍질이 벗겨져서 점점 회백색으로 변해 백송 또는 백골송 · 백피송이라 불린다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수나 풍치수로 이용될 뿐이지만 중국에서는 건축재로도 이용되고

종자는 직접 먹거나 기름을 짜는 데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 경기도의 고양과 이천 · 경남의 밀양 · 충북의 보은 · 충남의 예산 등지와

기타 지역에서 몇 그루가 자라는데 이 가운데 크기가 큰 몇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빗돌

 

 

 

제중원 터(濟衆院址) 빗돌

1885년(고종 22) 알렌(Allen)의 제의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산하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이다

처음에는 광혜원(廣惠院)으로 이름 붙였다가 취소하고 제중원으로 하였다

2년 뒤에 구리개(銅峴)로 옮겼다. 제중원 건물은 홍영식의 집이었다

 

 

 

 

갤러리 담

 

 

 

 

조선어학회 터(朝鮮語學會址) 빗돌

주시경(周時經 · 1876~1914)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1908년 국어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국어연구학회의 맥을 이은 조선어학회가 있던 곳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뒤 한글학회로 이어졌다

 

 

 

 

윤보선가(尹潽善家)

 

 

 

 

윤보선가(尹潽善家)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록문화유산이다

 

 

 

 

삼청동 호떡

 

 

 

 

김옥균1851~1894) 집 터

공주에서 태여나 1866년부터 북촌에서 살았다

이곳 화동 일대에는 조선 말기 개화파 관료들의 거주지가 자리잡고 있었으나

처음의 학교 터는 김옥균의 주택지였고 이후 서재필과 박제순의 집이 합쳐지면서 넓은 부지에 자리 잡게 되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기념비

비온 뒤 갠 날 이곳에서 보는 인왕의 모습은 예나 이제나 새롭고 아름답다

이 기념비 옆이 인왕제색도와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일치하는 곳이나

지금은 도서관 건물로 아쉽게도 인왕산의 정수리만 빼꼼 보일 뿐이다

 

 

 

 

중등교육발상지 · 경기고등학교 이전기념비

1900년 고종황제께서 최초의 관립중등학교로 세우신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곳을 알리는 비다

 

 

 

 

회화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1m · 나무 둘레 360cm · 나무 나이 300년 · 지정일자 2000. 6. 5

 

 

 

 

정독독서실(예전 경기고등학교)

예전 경기고등학교 건물이자 현 정독독서실 건물이다

 

 

 

 

서울교육박물관

1925년 준공 당시 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현재는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울교육박물관이다

정독도서관과 함께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호다

 

 

 

 

각 학교 뺏지

 

 

 

 

서울재동초등학교 연표

서울재동초등학교 담에 붙어 있다

 

 

 

 

청록재(淸綠齋)

 

 

 

 

진단학회 창립 터 빗돌

한국역사 및 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1934년 5월 7일 창립한 진단학회 사무소가

1936년 초 성북동으로 옮겨갈 때까지 있던 자리다

 

 

 

 

낙고재(樂古齋)

 

 

 

 

서울시장 관사

고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이었을 때 살았던 관사다

 

 

 

 

노란벽 작업실

 

 

 

 

비온 뒤 갠 하늘처럼

다시 돌아올

깨끗한 세상을 기다리며

 

 

 

 

밀양손만두

 

 

 

 

밀양손만두

예전 사진이다

 

 

 

 

북촌문화센터 가야금 산조와 정가

정가 신윤솔 · 가야금 최훈 · 장단 임선진

 

 

 

 

북촌

북촌 홍보전시관 작품 중 하나다

 

 

 

 

제생원 터(濟生院址) 빗돌

조선초의 서민 의료기관 터

극빈자의 치료와 미아의 보호를 맡았으나 세조 때 혜민서에 병합되었다

조선조 말엽 이 터에 계동궁(桂洞宮)이 들어섰다

 

 

 

 

진순자김밥

 

 

 

 

봉천제일종합시장

 

 

 

 

도림천

 

 

 

 

신원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