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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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벽골제~장화리 쌀뒤주

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을 보고 아리랑문학마을과 장화리 쌀뒤주를 거쳐 오기로 했다 벽골제 정문 농경사주제관 · 체험관 벽골제 관광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벽골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활을 담당한다 관리공간과 학습공간은 1층, 어린이박물관은 2층 벽골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층 전망대로 구성되어 있다 명금산 벽골제 쌍룡 벽골제 제방을 훼손코자 하는 청룡과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백룡이 살았다는 설화가 있어 본 소재로 쌍룡을 형상화하였다 * 조연벽의 꿈에 벽골제 용이 나타나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흑룡을 퇴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다음날 조연벽은 활로 흑룡을 물리쳤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벽골제 용은 자손이 흥할 것을 약속하였다 벽골제 장생거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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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장화리 쌀뒤주

장화리 쌀뒤주(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1호)는 조선 고종(1963~1907) 때 만든 것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정종수가 보존하고 있다 옛날 정씨 집안은 조상 대대에 걸쳐 만석군으로 불리우던 큰 부호였다 부자인만큼 인색하지 않아 매일 수백 명의 손님이 찾아와 머물렀다 많은 사람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집 안마당에 거대한 쌀 뒤주를 만들었는데 가득 채우면 70가마의 쌀이 들어갈 정도였으나 이것도 한 달 식량이 채 못되었다고 한다 나무로 남든 사각형 뒤주는 높이 1.8m, 너비 2.1m, 판재 두께 3.3cm이며 일반 건물처럼 위에는 초가지붕을 얹고 아래에는 주춧돌을 놓았다 후장(后長) 마을 장화리 쌀뒤주가 있는 곳이다 정종수 고택 대문 김제시 맛조이 지정농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장화리 쌀뒤주 대문을 들어서면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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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기관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 일제수탈기관 일제강점기 민중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미명하에 민초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던 주재소, 면사무소 등 근대 기관들이다 일제수탈기관 총독부 권력의 말단으로 작동했던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를 재현해 놓았다 죽산면사무소 죽산면사무소 내부 면사무소 조선시대 지방통치 중심은 군이었고 공동체성과 자치성이 강한 동리는 백성의 실질적인 공간이었다 일본은 군의 기능 약화와 동리의 자치질서 해체를 목적으로 지방행정단위로써 면을 주목하고 1917년에 면제를 실시하였다 면장실 등사실 조선인 육군 지원병 모집 광고 사진주보 주재소 1면 1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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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관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 일제수탈관 지평선을 이루는 징게맹갱 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 생명의 쌀이 있는 김제를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리랑문학마을 부모 잃은 아이 일제 총칼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모습의 거지가 되어야 했다 1층 전시실 국권 강탈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황실을 왕족으로 격하시켜 '이왕가'라 불렀다 이와 함께 한국인의 품성을 미개함과 야만성, 불결함과 나태함으로 조직하여 널리 전파하여 고착화시켰다 또한 전통적인 행정단위를 해체하고, 식민지 수탈에 필요한 명령조직체계를 구축하였다 수탈의 홈통 일제강점기 철도부설과 도로사업의 일차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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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리랑문학마을 하얼빈역사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 하얼빈역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끝없는 항쟁으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사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사살한 곳이다 하얼빈역사 1910년경 하얼빈역사를 60% 비율로 축소 복원했다 이민자 가옥(너와집 · 갈대집) 토지조사 사업을 비롯하여 산미증산계획, 농촌진흥운동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수탈정책에 못이겨 대대로 살아온 토지를 떠나 화전민이 되거나 만주 · 시베리아 등 이역 땅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땅에서 독립의 열망을 잃지 않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하얼빈역사 내부 안중근 의사 조형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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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아리랑문학관

아리랑은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던 작가 조정래의 작품으로 문학성이나 대중성으로나 사회 각계 각층으로부터 확고한 검증을 받아낸 바 있으며 작가는 5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이 작품을 위해 바쳤던 점에서 육필로 써낸 우리의 민족사인 것이다 조정례 아리랑문학관 조정례 작가 아리랑문학관 1층 · 글감옥에서의 가출옥 아리랑 원고 아리랑 1~4부 줄거리 1부 줄거리 1부 · 1904~1911 정미소 풍경 2부 줄거리 2부 · 1912~1920 청산리전투 대종교 우리 한 몸, 한 몸이 다 조선인입니다. 몸 보존 잘하십시오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단군성조의 자손으로 한 핏줄 한 겨레임을 깨우쳐 나간다면 조선의 독립도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5권 P.148〉 3부 줄거리 3부 ·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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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김제 벽골제

김제 벽골제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흘해이사금 21년(330년)에 처음 벽골지를 열었다. 제방의 거리는 일천팔백보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제방의 길이는 3.24k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김제 지역이 백제의 영토로 추정되므로 통일신라 이후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고려되어 축조시기를 백제 비류왕 27년(330)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으나 세종 2년(1420)에 심한 폭우로 결궤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 의해 제방이 농업용 간선수로로 개조되어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으며 용수로의 기능을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골제 정문 벽골지문(碧骨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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