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새만금갯벌 2010. 5. 2. 07:01

새만금 환상곡

허 정 균


1991년 33km 방조제를 착공할 무렵 새만금은 임해공업단지였다. 갯벌을 메워 공업단지를 만들어 잘 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새만금은 ‘세계최대의 골프장’, ‘동아시아의 두바이’ 등으로 ‘자체진화’를 하다가 최근에는 ‘대한민국 녹색성장의 전진기지’로 홍보되고 있다.
새만금간척지의 용도를 두고 이같은 장밋빛 청사진이 펼쳐지는 가운데 전북 도민들의 머리 속에 새만금은 하나의 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이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꺼냈다가는 ‘전북 발전 음해 세력’으로 몰린다. 이 글은 새만금 사업을 두고 정치권에서 도민들에게 틀어댄 ‘새만금 찬가’를 총정리하였다.

‘세계 최대·최장’이 목적

정부와 새만금간척사업 추진세력이 새만금간척사업과 새만금방조제 앞에 접두사처럼 즐겨 쓰는 말이 ‘세계 최대’와 ‘세계 최장’이라는 수식어다.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는 스스로 ‘보통사람’이라 강변했지만 호남 인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보통’ 개발공약으로는 안되었다. 경천동지할 개발공약이 필요했다.
‘세계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품고 노태우 후보는 전북지역 유세에 나섰다. 1987년 12월 10일로 선거일을 불과 엿새 앞둔 시점이었다. 군산 유세를 마치고 무개차에 올라 유세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돌멩이와 벽돌조각이 날아들고 사제폭탄이 터졌다. 도망치듯 군산을 빠져나온 노태우 후보는 전주로 향했다. 그러나 유세장인 전주역앞 광장은 이미 돌멩이와 화염병이 난무하고 있었다.
노 후보는 연단에 서보지도 못하고 전주 시내 모호텔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어 ‘새만금간척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빅카드를 발표하였다. 이 사업은 이로부터 1개월 전인 87년 11월 11일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후보가 전북도민의 숙원을 수렴한다며 발표했었으나 경제기획원 등 관계부처에서 ‘경제성이 적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군산․장항광역산업단지’ 건설사업이 끝나는 2000년 이후에나 재론키로 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뒤집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전주유세 무산’ 기사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언론에 대서특필 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노후보의 전주 발표 이튿날 당시 김주호 농림부 장관은 노 후보의 전주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해안 시대의 개막에 발맞추어 동진강 만경강 하구에 4만 2,000ha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대중국 무역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내용의 새만금지구간척사업을 시행한다고 확정 발표한 것이다.
이 때 발표한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산업기지에서 출발하여 오식도-비응도-야미도-신시도-비안도-가력도-변산의 대항리를 연결하는 길이 34km로 세계최장인 네덜란드의 주다찌 방조제 32.5km보다 더 길었으며, 현재의 방조제에서 바깥쪽으로 4km 떨어진 비안도를 경유하고 있다. 당시 내초도와 오식도, 비응도를 포함한 지역은 토지개발공사에서 군장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지로 계획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만금방조제의 출발은 비응도에서 출발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비안도를 경유해야 세계최장이 도출된다.
그러나 91년 방조제공사가 시작될 무렵의 조감도에는 방조제가 비안도를 거치지 않고 신시도에서 가력도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최장을 위해 방조제가 지나치게 외해로 멀리 나가있어 사실상 공사가 불가능함을 알고 이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장’은 완전히 물건너 간 꼴이다.
1구간:변산면 대항리-북가력도(4,694m)
2구간:북가력도-신시도(9,936m)
3구간:신시도-야미도(2,693)
4구간:야미도-비응도(11.436m)
전부 합해도 28.759km이다. 세계최장 주다찌 방조제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서 토지개발공사가 매립한 군장국가산업단지 내초도-비응도 구간 5.1km 구간을 포함하기로 하여 현재 새만금방조제의 길이는 공식적으로 33.8km이다. 이처럼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억지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방조제란 바닷물을 차단해 둑을 쌓는 것인데 비응도-내초도 구간은 육지와 담수호를 구분하는 것으로 방조제로 볼 수 없다. ‘군장국가공단개발사업 실시설계 보고서’(한국토지공사, 1991.10)에는 “공단의 외곽시설인 서측호안공(연장-2,548m), 남측호안공(연장-5,205m) 및 부대공에 대한 설계계획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어 시행주체인 토지공사는 방조제 공사가 아니라 호안공사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전북 인터넷신문 <참소리> 7월 26일 보도). 농촌공사의 주장대로라면 방조제는 비응도에서 군장산업단지 서측 호안공과 북측 호안공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계산하면 새만금방조제는 33.8km보다 훨씬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새만금간척사업은 ‘세계 최대’, ‘세계 최장’을 목적으로 태어난 사업이며 어떤 제동장치도 듣지 않고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와도 같다. 그 동력은 정치인들이 전북 도민에게는 심어준 ‘새만금=전북발전’이란 환상이다. 지난 15년간 무수한 정치인들이 ‘새만금환상곡’을 부르며 자신의 정치 목적 달성에 이용해 왔다. ‘국내최대의 국가산업단지’, ‘세계최대의 골프장’, ‘세계최대의 타워’ 등이 여과없이 언론에 굵직한 활자로 박혀 전북 도민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다우코닝사와 마이클 잭슨과 스미스 박사

95년 지방선거에서 새만금지구 개발에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유종근 전 도지사는 96년 초에 다우코닝사의 투자유치에 나서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미국 미시간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실리콘 제조업체인 다우코닝사는 당시 미국, 영국에 이어 아시아에 제3공장 후보지를 물색 중이었다.
다우코닝은 2003년까지 60만평의 공장 부지가 조성되어야 하고 연간 100만달러의 임대료로 99년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4만톤급의 전용부두 및 5만평의 항만 배후부지 사용, 메탄올 등 수입원자재에 대한 관세 면제, 보세공장 지정, 전기료 등에 대한 혜택, 항만에서 공장까지 파이프라인 건설 허용 등도 함께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공사 진행 상황은 방조제가 겨우 10여km 뻗어나간 상태였다. 예정대로 2004년까지 공사를 마치려면 당시 기준으로 매년 3,300억원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였다.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던 정부는 마침내 1998년까지 끝내기로 한 방조제 축조를 2004년으로 늦추고 내부개발은 2011년까지 완공하기로 하였다.
IMF 관리체제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외환위기를 맞아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는데 다우코닝사의 최고위경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총액 28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현지공장을 한국에 건설할 경우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98년 2월 다우코닝사는 부적격 판정을 유종근 도지사에게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투자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이유였다. 투자후보지였던 새만금 지역 토지비용이 말레이시아의 300배, 중국의 5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도 망망한 대해를 보고 여기에 공장을 짓겠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1998년 2월 25일,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여의도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있었다. 세계 도처에서 취임을 축하하러 온 사절들로 호텔들은 ‘취임특수’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 취임 축하차 서울에 온 인사들 가운데에는 미국의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도 들어있었다. 영화배우 엘리자베드 테일러도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파서 못 왔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했다.
이 때 인천매립지를 관광, 물류단지로 만들어 땅장사를 하기 위해 용도변경에 절치부심하던 동아건설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세계적 재벌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이미 소문이 난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에 노심초사하는 새 정부는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 할 것이고 거부인 마이클 잭슨이 인천매립지에 투자를 하겠다면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동아건설의 계산이었다.
인천매립지는 동아건설이 1980년 농림부로부터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갯벌을 메워 만든 인천시 서구 경서동과 연희동 일대 총 1천1백만평의 땅으로 이 가운데 6백만평은 쓰레기매립장으로 용도 변경됐고 나머지 5백만평 중 3백80만평이 동아건설 소유로 돼 있었는데 용도변경을 해달라는 동아건설과 애초 매립목적인 농지로만 써야 한다는 농림부의 주장이 맞서 8년동안 끌어오다가 농지로 사용하기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이같은 결론이 나는 데에는 시민단체의 영향이 컸다.
마이클 잭슨은 취임식 전날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집에서 만찬을 가졌으며 취임식 직후에는 인천매립지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은 이 같은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마이클 잭슨이 투자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최회장과 마이클 잭슨이 투자 범위, 시기, 방법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 협의를 계속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동아건설의 주식값이 뛰어오른 것이다.
그러나 농림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간척농지의 용도변경 땐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농림부장관이 승인하도록 되어있는데 동아건설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같은 시기에 간척사업을 벌인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도 용도변경을 요구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정부의 김성훈 농림부 장관은 용도변경을 허락하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문제라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천하의 이재가들인 이들이 타산이 맞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 거금을 들여 간척사업을 벌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관과 유착하여 용도변경한 후 땅장사를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결국 동아건설이 띄운 마지막 승부수는 수포로 돌아갔고 동아건설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뇌물을 받아먹은 백아무개의원은 이로 인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취임식이 끝난 후 국민들은 마이클 잭슨의 행보에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쌍방울그룹이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 공동으로 전북 무주리조트에 테마파크인 ‘네버랜드 아시아’를 건설하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일단 무주리조트에 대해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건설비용 등 추가 투자 규모는 이르면 다음 달 중에 매듭을 짓기로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당시 실세로 알려진 유종근 당시 전북 도지사의 작품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유종근 지사를 따라 테마파크 조성 예정지인 무주리조트를 방문하였고 덤으로 새만금갯벌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마이클 잭슨의 투자는 어떻게 불발로 그쳤는지 그 뒤로 자세한 언론 보도가 없으니 국민들은 잘 모른다. 다만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유종근 지사는 ‘수완가’로 도민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으리라. 이 탓인지 마이클 잭슨을 재탕으로 울궈먹은 유종근 지사는 이해 6월에 있은 선거에서 무난히 도지사에 재선되었다.
이로부터 6년 반의 세월이 흐른 2004년 10월 13일 새만금에 대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가개발의 세계적 권위라는 데이비드 스미스 박사라는 사람이 새만금을 시찰하고 "새만금은 세계최고의 개발 적지이며 한국경제 도약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 마카오대 총장인 그는 전에 하버드대 법대 학장을 15년 동안 역임하였고, 현재 중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이집트, 사우디아라 비아 등 세계 10여개국의 개발, 금융담당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세계 30여 개국의 경제 고문을 역임한 바 있는 세계적 개발, 금융분야 전문가라고 언론은 소개하였다.
그가 어떤 연유로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 채 언론은, “스미스 박사는 특히 이날 "새만금의 광대한 사업 현장을 보면서 한국의 강한 국력과 한국민의 담대한 도전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새만금은 머지않아 한국 경제 재도약의 거점으로 각광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스미스 박사는 이날 군산에서 부안까지 이어지는 33km의 방조제 축조 현장을 둘러보면서 "방조제에 녹화를 하는 등 잘 개발하면 세계적 관광명소로 많은 재화를 창출해내는 명물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새만금은 주변 경관이 빼어나므로 이와 어우러진 친환경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스미스 박사는 "한국의 동북아 중심국가 도약은 고도의 기술 집적과 함께 중국과 호완하는 충분한 개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새만금 개발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국가 비전을 세우는 당연한 일"이며 "새만금은 국제적 개발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국가가 나서서 교통, 통신망의 구축 등 사회 간접 자본 투자를 서두르면 양질의 세계적 투자 자본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전북의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지금까지 전북의 언론은 새만금에 대해서 반대측의 주장은 축소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으며 찬성측의 주장은 크게 보도하는 방법으로 전북 도민들의 알권리를 막아왔다. 언론은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초청을 받아 스미스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새만금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고강도 '새만금환상곡'이 필요했을까. 스미스 박사가 끝물막이 공사를 2개월여 앞둔 2006년 2월 20일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언론은 왜 그가 한국에 왔는지, 누구의 초청으로 왔는지 밝히지 않았다. 언론은 그가 새만금을 중동의 오일달러를 끌어들이는 두바이에 비교하면서 “새만금 프로젝트는 중동의 두바이처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며 “새만금을 동북아의 핵심기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안목을 지닌 브레인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다. 또한 그는 “새만금의 광대한 사업 현장을 보면서 한국의 강한 국력과 한국민의 담대한 도전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새만금은 머지않아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거점으로 각광받을 것이고 중국의 만리장성과 한국의 새만금을 여행패키지로 만든다면 관광 수입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새만금을 두바이에 비유하며 '새만금 환상곡'를 작곡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이후 ‘새만금=두바이’라는 ‘환상곡’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동영 등 대선주자들에 의해 불리워지다가 2008년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며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두바이의 미래가 부정적으로 그려지자 ‘약효’가 소멸되었다.

새만금골프장과 새만금타워

2002년 유종근 전북도지사를 이은 강현욱 도지사는 처음에는 새만금에 기업도시론, 물류기지론을 내세우더니 방향을 급선회하였다. 강 도지사는 2004년 7월 30일 군산시 옥도면 새만금 야미도에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만나 "2006년말 방조제가 완공되면 동진강 수역 2천만평에 복합 레저 관광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이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 달라" 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1개월 후 전북도는 2006년 변산반도와 접한 동진강 수역 갯벌지역 800만평에 연차적으로 공사를 벌여 최대 540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골프장 경기부양론’을 내세우며 골프장 건설에 따르는 규제를 풀던 때였다.
전북도는 골프장 건설비를 대부분 민자로 조달하고 새만금 내부에 추진하고 있는 복합관광레저단지 조성사업중의 한 프로그램으로 골프단지에는 골프아카데미와 숙박시설 등도 함께 짓는다는 방침이었다. 또한 도는 새만금지역이 서해안 중심에 위치해 주 5일 근무제 확산으로 크게 늘고 있는 국내 골프인구를 대거 유치할 수 있고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는 중국과 인접해 급증 추세인 중국 골프 인구는 물론 다른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2015년쯤 새만금지역 관광객 수요가 연간 2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대로라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면서 “최근 정부에 추진계획서를 보내 조율중인데 사업이 추진되면 수천여명의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등 지역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11월 21일 전북 부안읍내에 만여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돼 날 세운 방패로 핵폐기장 결사 반대를 외치던 부안주민들을

유린하던 무렵 강현욱 도지사와 도청 관료들은 새만금에서 산동반도까지 다리를 놓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음은 2003년 11월 21일자 <전북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전북도가 새만금간척지와 중국 산동반도를 잇는 다리를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 그 실현 가능성을 두고 논란. 신세우 전북도청 새만금사업소장은 21일 도청 기자실을 찾아 “이달 초순 한중 경제포럼차 도내를 찾은 중국 국책연구원 관계자가 새만금땅 1천만평 활용 의지와 함께 새만금과 중국을 교량으로 연결시키자는 제안을 했다”며, 실제 구체화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설명.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신소장은 “이형규부지사가 경제성 측면에서 터널 건설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개진했고, 강현욱 도지사는 관광효과 측면에서 교량 건설이 좋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고 정색.“

2005년 12월 21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고등법원이 “새만금사업을 계속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리던 날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에 올라왔던 부안 계화도 주민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좌절을 안고 부안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저녁 전북도청에서는 불꽃놀이 행사가 열렸다. '고등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농악이 울려 퍼졌으며 새만금간척사업 만세삼창이 터져나왔다
이날 강현욱 도지사는 "새만금 신도시에 세계 최고 높이의 타워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타워는 관광과 업무 등 다목적 용도로 지을 계획이며 타워가 건립되면 중국 상하이의 동방명주보다 나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지사는 "새만금 인근에는 고군산열도와 같은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져 있고 시계가 좋을 경우 첨단 망원경을 이용하면 중국 상하이까지도 볼 수 있는 만큼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며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타워 높이는 정확하게 정해진 바는 없지만 510m 이상의 높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망원경으로 상하이 구경하자고 서민들의 삶의 터를 없앤 것인가. 상하이는 제주도보다 위도가 낮은 곳이다. 우주선이나 타고 올라가야 보이는 곳이다.
동진강, 만경강 하구역갯벌(estuary)을 막아 세계 최대의 생태계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과 강현욱 전 도지사는 일찌감치 인연을 맺었다. 새만금사업이 민정당의 선거공약으로 입안 되던 1987년 당시 그는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으로 있으면서 새만금사업을 처음 접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농림수산부로부터 사업동의를 요청받고, 고향으로 가는 대단위 사업이라 기쁜 마음으로 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1991년 경제기획원 차관 시절에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가경정예산으로 책정한 새만금간척사업비 200억원을 집행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또한 그 이듬해인 92년 3월부터는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새만금사업을 총지휘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2006년 6월 30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도지사 이임식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도지사에서 물러나더라도 전북을 떠나지 않고 환경보존과 지역사회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접한 전북의 환경단체 회원들은 한결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퇴임 후 생태계복원을 위해 일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은 생각이다.”라며 볼멘 목소리로 강 전도지사를 성토하기도 했다.

선거 앞두고 만발하는 ‘새만금 환상곡’

“새로 조성될 새만금 평원의 임해공단은 군장산업기지와 맞물려 이 지역을 21세기 한국산업을 이끄는 중심지역으로 만들 것입니다. 고군산군도에는 연간 5,000만 톤 하역능력의 새만금국제항이 들어서서 서해안의 새 관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1991년 11월 2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새만금사업 기공식에 참석하여 행한 연설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러나 98년 감사원의 새만금 감사에서 새만금사업은 처음부터 논 만드는 사업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은 시작부터 정치권의 대국민사기극이었던 것이다.
2006년 2월 2일 새만금방조제 끝막이공사 현지공정점검차 군산 신시도를 방문한 당시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땅의 기본은 농지로, 간척지 전체를 농지로 활용한다는 기본계획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나야말로 새만금사업을 앞당겨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그해 지방 선거에서 온갖 청사진을 내놓았다. 대부분 언론은 이를 여과없이 전달하였다. 이로 인해 새만금 간척지가 농지로 쓰일 것으로 믿는 전북 도민들은 거의 없게 되었다.
도지사 후보로 나선 김완주 전주시장은 "새만금을 연계한 도내 각 지역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며 “자기부상열차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이에 “국내외 관광객 유치는 물론 지역경제에 1조원대의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김세웅 무주군수는 ‘새만금의 기적을 위한 말굽자석 플랜’과 ‘만경운하 뱃길 복원 계획’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여 눈길을 끌었다. ‘새만금 말굽자석 플랜’이란 말편자와 말발굽이 이로운 것은 서로 끌어당기고 해로운 것은 서로 밀어내 행운을 상징하는 것처럼, “13억 중국시장의 부(富)를 말굽자석(새만금과 전북)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으로 이를 위해 그는 새만금을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가장 쉽게 즐겨찾는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한류 관광산업의 중심지역이자 황해도시 공동체의 허브마켓시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군수는 또한 새만금 효과를 내륙중심으로 직접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만경운하 뱃길 복원사업’을 제안했다. 새만금에서 전주시내 복판까지 호화 유람선을 오가게 하고 43㎞의 운하구간(김제·군산·익산·전주) 양안을 테마도시화해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세계적 관광도시로 만들자는 것이 그 내용이다. 구체적 방안으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나는 만경강 일대 10여개 나루터 주변에 △35사단 에코타운 배후 카페도시 △삼례·왕궁 백제역사도시 △춘포 배후습지공원 △익산 목천포 벚꽃타운 △만경지구 농경문화 테마도시 △군산지구 해양생태 테마도시 △워터파크 테마도시 △추억의 시대 테마도시 △영상촬영 도시 등 테마도시 등을 건설하자며 기염을 토했다.
중앙 정치인들도 전북에만 내려오면 새만금 환상곡을 부르고 올라갔다. 2005년 8월 1일 정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새만금을 방문했다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새만금 현장을 직접 보고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전북도민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발됐으면 한다”고 말했으며, 이듬해 1월 다시 전북을 찾은 박 대표는 “새만금 사업을 통해 전북이 더욱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특별법 제정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새만금특별법에 처음 불을 지폈다.
2006년 1월 14일 전북을 방문하여 부안에 있는 새만금 전시관을 찾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고문은 “앞으로 새만금으로 전국민이 먹고 살 날이 올 것”이라면서 “새만금은 전북도민의 희망이자 전국민의 희망으로 국제물류 거점기지와 국제 허브항으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우리당의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2006년 2월 15일 8명의 당권 후보는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마지막 합동연설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후보들은 한결같이 새만금사업이 우리 나라 발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정동영 후보는 “200만 도민들은 새만금에 대해 메시아적 희망을 갖고 있다”며 “1억2천만평의 광활한 땅은 21세기 우리 나라의 터전이 될 것인 만큼 참여정부가 방조제를 완공하고 차기정권에서 설계도를 그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근태 후보는 “새만금사업을 통해 환황해권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대권주자로 나선 정동영 후보는 새만금에 우주항공산업기지를 구축한다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정동영 후보측 전북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장영달 의원은 정동영 후보의 전북 8대 공약을 발표하며 "새만금 단지에 우주 항공산업 기지가 구축될 수 있도록 활주로 신설 등 구체적 논의를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말 새만금산업단지 착공에 들어갈 무렵 김완주 전북지사는 ‘새만금 아마존 플랜’을 내놓으며 새만금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이며 한강의 기적에 이은 새로운 기적을 만들 녹색성장의 핵심기지로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놓았다.
언론은 “100만㎡(100㏊) 이상 세계적 규모의 국립수목원을 조성해 국가 생물유전자원 보전기반을 마련하고 올 하반기 착공 예정인 125km 내부 방수제 도로에 폭 50m의 숲길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새만금을 물과 나무와 자연습지가 어우러지고 친환경교통수단이 운행되는 탄소 제로의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갯벌은 지구온난화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아산화질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갯벌을 파괴하고 그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추진되는 새만금간척사업을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숲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과 새만금 간척지

간척지의 용도를 변경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남발해대는 정치권의 표심 잡기 위한 개발공약은 야바위를 연상케 한다. 야바위는 아주 작은 성공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부풀려, 그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을 현혹시켜 돈을 뜯어낸다.
필자는 본지 2006년 여름호에 “새만금사업은 동진강·만경강 수역에 300mm 이상의 폭우에 새만금호 자체가 범람할 수밖에 없는 대재앙을 불러오는 사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새만금호로 흘러드는 만경강과 동진강 수역의 면적은 33만 1,900ha로 전라북도 전체 면적의 약 40%이다. 여기에 간척지와 담수호의 면적 4만100ha를 합하면 37만 2000ha이다.
여기에 300mm의 비가 일시에 오면 11,800ha의 새만금호는 6m 이상의 수면 상승을 가져오게 되어 평균해수면보다 1.5m 낮게 설계된 새만금호는 필연적으로 범람할 수밖에 없으며 동진강, 만경강 수역은 장기 침수가 예상된다. 그 넓은 유역의 물을 썰물 때에만 배수갑문을 통해 외해로 내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만금방조제 인근 해역의 만조시 평균 수위는 3m이며 간조시 평균 수위는 -2.97m이다. 이로 인해 약 6m의 조차가 발생한다. 방조제 안쪽 새만금호의 관리수위는 -1.5m이므로 썰물 때 방조제 바깥 해역의 수위가 1.5m 이상 내려가야 배수갑문을 열어 새만금호의 물을 외해로 방출할 수 있다. 그런데 간조시 평균 수위가 -2.97m이므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1.5m 상승한다면 간조시 평균 수위가 -1.5m가 되어 새만금호의 관리수위인 -1.5m와 같아진다. 배수갑문을 열어도 물을 외해로 방출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수면이 상승할수록 배수갑문을 열어 외해로 물을 방출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서안해양성기후인 네덜란드는 연평균 강수량이 고르다. 30mm 이상 한꺼번에 비가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풍차를 이용해 물을 퍼낼 수 있었다. 그러나 태풍을 동반하여 한꺼번에 수백mm씩 비가 내리는 한국의 기후에서 새만금방조제는 커다란 재앙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영국과 핀란드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난 2000년간 안정적이었던 해수면이 18세기에 들어 2cm, 19세기에는 6cm 상승하였고 20세기에 갑자기 19cm 상승하였다 한다. 그리고 금세기말에는 평균 0.8~1.5미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대부분 해빙되고 있는 빙하가 그 원인이라 한다.
새만금간척사업의 모델이 된 일본 규슈의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에서는 2.7km 방조제를 축조하면서 뻘층에 25m 파일을 박고 그 위에 토석을 부어 방조제를 쌓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보 하나만 막으려 해도 기반을 다진 위에 둑을 쌓았다. 그러나 새만금방조제는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토석을 부어 만든 것이다. 두터운 뻘층 위에서 방조제가 버텨나갈지도 의문이다.

맺는 말

전북 부안 변산의 최고봉은 해발 509미터의 의상봉이다. 의상봉 동쪽으로 암벽이 병풍처럼 둘렀는데 부사의방장은 절벽 중간쯤에 있다. 부사의방장은 신라 때 고승 진표율사의 수도처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 신라 경덕왕(765~780) 때의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 ~ ?)는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한 후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겼다. 진표율사는 전주 벽골군 도나산촌 대정리(현재의 김제시 만경면 대정리)사람이다. 그의 출가 동기는 매우 독특하다. 11세 되던 해에 동네 아이들과 산에 놀러가다가 개구리를 잡아 꿰미에 꿰어 물 속에 담가두고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지난 해 잡아두었던 개구리들이 죽지 않고 울고 있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진표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깊이 느껴 마침내 12세 되던 해 부모의 허락을 얻고 출가하였다. 율사의 나이 27세가 되니 돌아다니기를 중단하고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려 양식을 만들어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不思議房丈)에 들어가 하루의 식량을 다섯 홉으로 정하고 그 중의 한 홉은 다람쥐를 먹였다. 그는 망신참법(亡身懺法 : 온 몸을 돌로 찧으며 참회하는 수행 방법)의 수행으로 마침내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간자를 얻어 세상에 나와 이 땅에 미륵불교를 폈다고 한다.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의 삼보일배와 오체투지가 진표율사의 수행과도 같은 것인가.
진표율사의 수도처 부사의방장이 있는 의상봉은 방조제 축조에 통째로 날아간 해창석산의 험한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새만금 내부개발을 앞두고 부안의 산들은 떨고 있다. 언제 채석허가가 나 방수제 공사로 잘려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마을 뒷산이 헐려나갈까 민심이 흉흉하다.
이명박 정부는 새만금 내부개발을 2030년에서 2020년으로 10년 앞당겨 완공할 것임을 약속했다. 새만금간척지의 72%는 종합개발로 나머지는 농지로 쓰이게 되는데 농지를 제외한 나머지 면적과 방수제를 쌓는 데에 7억㎥의 매립토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월에 착공한 새만금산업단지 1870ha 매립에만 8천800만㎥가 소요된다. 그러나 이러한 매립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내부개발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2009 <환경과 생명>여름호

 


 

출처 : 박영근 시인 추모카페
글쓴이 : 허정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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