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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갯벌 2006. 7. 19. 00:32
<구당서> 위작 사실로 받아들여 중국중심 천하관 인정
 

 

인터넷으로 연속극 <연개소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이세민이 안시성 싸움에서 지고 도망가면서 양만춘 장군에게 비단 100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중국은 잦은 왕조 교체로 많은 역사서를 낳았다. 사마천의 <사기>로 시작하는 이른바 정사(正史)라고 부르는 것만도 25개나 된다. 대체로 한 왕조가 끝난 다음에 씌어진 이십오사에는 주변국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싣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상식처럼 통한다.

첫째, 중국을 위해 중국의 수치를 가리고(爲中國諱恥 위중국휘치),
둘째, 중국의 긍지는 높이되 동이의 긍지는 낮추며(矜華而陋夷狄 긍화이누이적)
셋째, 중국의 역사는 상세히 하고 이민족의 역사는 약술한다.(內詳而略外 내상이략외)

그리하여 사신을 보낸 것은 조공을 바친 것으로 기록되고 침략을 당하여 땅을 빼앗긴 것은 봉작(封爵)을 준 것으로 왜곡된다. 이를 춘추필법이라 하는데 이러한 역사 왜곡은 <구당서>에도 나타난다. 고구려-당의 전쟁에서 역사왜곡은 역사에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이세민이 당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고구려군은 산에 의지하여 허를 틈타 기습작전을 펴 당군을 궁지에 몰아넣어 이세민은 고구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당은 마지막으로 안시성 공격에 나서보았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고구려군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당군을 마음껏 추격하여 북경 근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의 사서인 <한단고기>에서는 장안성까지 함락하여 당태종의 항복을 받아냈다고까지 쓰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중국은 사실을 허위 기록하였다. <구당서>를 보면 당군이 안시성에 이를 때까지 승전을 거듭했으며 고연수와 고혜진이 항복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직 안시성주의 분투 때문에 추위가 닥쳐 할 수없이 퇴군을 하였으며 안시성주를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하사하였다고 위작하였다. 도망가기에 급급한 이세민이 비단 백필을 하사할 수 있는가. 상식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다. <구당서>를 그대로 베낀 <삼국사기>의 역사왜곡을 에스비에스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오늘의 미국 못지 않은 오만한 중국중심의 천하관을 인정한 꼴이 돼버렸다. 신채호 선생이 말한 '중독(中毒)'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인가.

좋은 자료 퍼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