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읽고

2007. 11. 5. 22:14
 

[서평]

막심고리키(Maxim Gor'kii)의 ‘어머니’


막심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는 1902년 작가의 고향 부근인 소르모보 공장에서 실제 일어났던 ‘표트르 자로모프 모자 체포사건’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구체성이 작품 속 현실을 통해 올바르게 묘사되어야 하고, 온갖 시련과 난관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대중의 의식을 개조․변화시켜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요건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적 소설로 평가된다. 이 글에서는 20세기 초 당시 러시아의 시대 상황이 어떻게 묘사되고 작가가 두주인공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이었던 크림전쟁(1853∼56)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1861년에 농노해방을 단행하게 된다. 농노해방은 러시아의 근대화를 의미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발전을 자극했고, 그에 따라 프롤레타리아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 공황으로 인해 신분상으로는 농노상태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경제적으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20세기 초 당시 러시아 사회는 극심한 공황, 실업자의 증가, 임금의 저하, 지가 폭등 등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합법적 활동으로 그것을 개선할 길이 막혀 있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과격화되고 노동자의 반정부운동이 고조되고 있었다. 소설 ‘어머니’는 이러한 20세기 초 당시 시대 상황인 비위생적이며 생기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음산한 분위기의 희망 없는 노동자촌을 묘사하는데 부터 시작된다.


공장일이 끝나면 어김없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며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해대고, 집에 돌아와서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모습, 그것은 그들의 자식들을 통해 그대로 되풀이 된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 무의미한 인생, 그러나 이것에 대해 누구하나 문제제기를 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는다. 늘 술에 취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자 주인공 빠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빠벨은 술도 마시지 않고 성실하게 공장생활을 하며 독서에 몰두하고 알 수 없는 모임으로 밤늦게 귀가하곤 한다.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는 다른 성실한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오히려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빠벨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머니가 왜 그동안 그런 삶을 살았는지,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머니 나이 40세인데, 그동안의 삶이 삶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버지는 어머닐 때리셨고, 난 이제 아버지가 어머니의 옆구리에 분풀이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자신이 살아오셨던 삶의 울분의 분풀이로 말이지요, 이런 쓰라림이 오랫동안 아버질 괴롭혔건만, 정작 아버진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몰랐어요. 아버진 30년을 일했고, 공장이라고 해야 고작 건물 두 채에 불과할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건물이 일곱 개나 되지 않았느냐 말이에요!”

삶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지만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아버지나 어머니, 대다수의 노동자와는 다르게 빠벨은 지금의 비참한 현실을 야기한 원인에 대해 정확히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익숙한 삶에 맞선 싸움을 결심하게 된다.   


빠벨은 진실을 알려내고 노동자들을 교양하기 위해 몰래 불온문서를 찍어 배포하며 각성된 노동자 대중이 자기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조직하게 된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불안과 두려움, 걱정에 빠벨은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언제나 어머니를 위로한다. 결국 연못 복개 공사비 사건과 5. 1 노동절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빠벨은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인 법정 최후진술에서 빠벨은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연설한다. 빠벨은 높은 정치의식을 지니고 이론적으로 무장한, 성숙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변화된 것이다. 


고리키는 빠벨을 통해 한 평범한 노동자가 의식이 각성되고 노동자 계급의 강인한 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빠벨에게서 강인한 의지와 명확한 투쟁목표, 그리고 낙관적 신심 등 혁명적 노동자의 본질적 특징을 재현해내고 있다.


빠벨의 어머니인 닐로브나는 오랜 세월 노동과 남편의 폭력으로 늘 녹초가 된 몸으로 이에 대항하지 못하고 혹시나 남편을 자극하지는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그저 볼 수도 없는 신에게만 의지할 뿐이다.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도 아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어머니 닐로브나는 모든 폭력은 떠안은 전형적인 수동적 여성상으로 표현된다.


어느 날부터 삶에 진지하고 성실해진 아들이 닐로브나는 대견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며 불안하기도 하다. 닐로브나는 아들이 어떤 것을 공부하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들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아직까지는 아들이 몸조심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인 것이다. 처음에는 집에 찾아와 빠벨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며 경계심을 가지지만 점차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그녀는 토론을 통해 나오는 사회주의와 관련된 말들에 점차 익숙해진다.


연못 복개 비 문제로 인해서 동맹파업을 하자는 주장이 노동자들의 동조를 얻지 못하자 자신의 능력에 대해 실망하는 빠벨에게 그녀는 힘을 실어 준다. 그런 빠벨이 헌병에게 잡혀가자 그녀는 증오심으로 가득 찬 채 헌병들 앞에서 침착한 태도로 그들에게 대응한다. 그리고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공장안으로 사회주의 유인물을 배포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이 아들에게 인정받을 것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한다.

닐로브나는 점점 공장안으로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맛보는 커다란 기쁨이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이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는 감옥에서 풀려난 안드레이에게 글을 배우게 되는데 안드레이는 닐로브나가 ‘빠벨의 어머니’만이 아닌 ‘사회주의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노동절 행사 주도 혐의로 빠벨이 두 번째로 잡혀간 뒤에 그녀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신념은 더욱 확실해진다. 시내의 니콜라이 집에서 살면서 그녀는 노동운동자들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이들의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차 끓이는 일을 맡지만 그 토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리빈이 체포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이전의 체포과정을 지켜볼 때와는 다르다. 그녀는 우선 유인물을 전달하러 온 자신의 역할이 들키지 않을지 부터 걱정한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파한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진리를 이야기해 주겠다는 그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들에게 순종적인 어머니에서 남을 감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 여인으로 변화된 것이다.


닐로브나는 아들이 유형판결을 받은 뒤에도 빠벨의 연설문을 뿌리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는 경찰들에게 도둑으로 오인 받고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 정치범 빠벨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녀는 경찰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맞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계속 지키며 죽음을 맞이한다.

“피바다를 이루어도 진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 권리,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빼앗긴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서 닐로브나는 당시 차르 지배하에 있던 대다수의 러시아 민중들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닐로브나가 사회에 눈을 뜨고 노동운동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각성과정 뿐 아니라 러시아 민중의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러시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민중의 하나인 닐로브나가 열성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러시아 민중들에게 더욱 큰 자극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당시의 시대는 암울했지만 빠벨 같은 혁명가들이 그녀의 어머니로 대변되는 수많은 민중들을 각성시키고, 각성된 수많은 민중들이 떨쳐 일어났을 때 그들을 둘러싼 암울한 현실을 능히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다면 100%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어느 멋진 날
글쓴이 : 한林 원글보기
메모 :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