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내 사람아

2012. 7. 2. 08:49

구직자와 노동취약계층의 보금자리를 만들겁니다 -

한정일 형이 나온 만인보 기사글을 오늘 새벽에서야 접하고 내 사람으로 자랑하고 싶어서..ㅋㅋ

http://www.vop.co.kr/A00000372118.html

없음



철공소에서 쇠를 만지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아버지를 손가락질하는 주위사람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쇠를 만지는 것이 천한 일인가? 왜 사람들은 아버지를 손가락질하는 걸까?' 열심히 일하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아버지를 가엾게 여긴 아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릴 적부터 꽤 성숙한 생각을 했다. '모든 노동자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험한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현실이 싫었어요. 펜대를 굴리든 몸을 쓰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북유럽에는 신체노동자들도 월급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도 인정받고,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가 철공 노동자로 살면서 설움을 많이 당했어요. 당연히 아들로서 변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아이는 어느덧 커서 처자식을 둔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세상은 20~30년 전에 비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적어도 미조직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엔 여전히 대한민국 땅에선 어렵고 힘든 일이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그의 삶도 아버지의 그것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수했던 그는 공부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소외되고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대기업에도 입사했지만, 안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어느덧 그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과 취업.노동 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직업상담사 한정일(37) 씨의 이야기다.

한정일

직업상담사 한정일(37) 씨.

 

 

보통 '운동권' 출신들이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의 꿈을 안고 찾는 곳은 공장이다. 조직된 현장이든 미조직 현장이든 공장으로 가 현장이 어떤지를 체험하고, 그 현장에 맞는 노동운동의 소임을 맡게 된다. 하지만 정일 씨는 달랐다. 그는 노무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없는 노동자의 편에서 노사 분쟁을 해결해주는 것도 노동운동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정일 씨는 군 전역 이후 본격적으로 노무사 준비를 하다가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 낙방했다. 그러던 중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뜻하지 않게 현대아산 인사팀에 취업을 하게 됐다. 노무사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경제활동과 거리를 두기엔 사정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일 씨에게 기업 인사팀 일은 실무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이었다.

"기업 인사팀 업무는 사용자를 위한 일이에요.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에게 돈을 안 줄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일을 해나가야 하거든요. 제가 평소 해왔던 생각과는 다른 일이었던 거죠. 그래도 최소한의 밥벌이는 해야 하니깐 회사에 적을 두고는 있었지만, 오래 가진 못했지요."

업무량도 지나치게 많아 정신적.신체적 고통도 함께 왔다. 과다 업무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정일 씨는 구안와사(입이 돌아가는 안면 신경 마비 현상)라는 병에 걸려 몇일을 앓아눕기도 했었다.

"새벽 한두시까지 일하는 건 다반사고, 야근이 항상 많았어요. 한 날은 토요일에도 일이 많아서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입이 돌아가버려서 몇일 쉬었죠. 이 일을 계속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회사에다가 권고사직을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현대아산, SK브로드밴드, 카페베네 등 굵직한 회사들을 전전하며 인사팀 업무를 해왔지만, 정일 씨는 이제 기업과의 연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을 더이상 잡고 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작년부터 시작한 것이 노동조합과의 연대사업이었다. 정일 씨는 지난해 결성된 '청년유니온'에서 취업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청년유니온에 직업상담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갔어요. 위원장님을 만나서 해보고 싶다고 뜻을 전했고, 제 뜻을 선뜻 받아주셔서 함께 활동하게 됐지요."

청년유니온은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조로, 지난해 3월 창립됐다. 구성원은 만 15세부터 39세까지의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자, 일시적 실업자 등 청년 노동자다. 시작할 때 60명이었던 조합원은 1년 사이 200명 이상으로 늘었다. 특이한 점은 구직자와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업상담사'인 정일 씨가 청년유니온과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점 때문이다.

"제가 현장에서 직접 발벗고 뛰는 노동운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조직이 청년유니온이라 생각했어요."

청년유니온과 연대사업을 하면서, 그를 필요로 하는 조직도 많이 생겨났다. 청년유니온에서 취업코칭 프로그램 '둥지'를 진행하면서 몇번 강연을 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이 때문인지 입소문을 타고 다른 노조나 시민사회, 지역 청년회 등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강연회를 하면 돈벌이가 되긴 하죠. 하지만 돈 받으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고, 제가 하고싶어하는 것, 할 수 있는 게 그런 일이에요.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취업 전략,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 전략, 구직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들을 알려주는 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렇게 제가 짠 프로그램을 거쳐서 취업이 되면, 같이 청년유니온에서 활동을 하자는 약속도 나누지요."

한정일

직업상담사 한정일(37) 씨.



대중들에게 노동과 취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정일 씨에게 무척 보람있는 일이다. 공부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가장 자신있는 일 중 하나다. 또 자신을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사람들의 눈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는 가슴이 떨릴 때도 많아요. 그리고 항상 어떤 현장이든 가리지 않고 부르는 대로 가서 해달라는 걸 해줘요. 무료 강연을 요청하더라도 언제든지 '오케이'에요. 심지어 책도 만들어서 나눠주고, 일이만원 상당의 선물도 준비해 가요. 어떤 식으로든 실직하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고 싶은게 제 마음이에요."

남편이 번듯한 직장을 내팽개쳐두고,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다니고 있으니 아내의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남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에 싫은소리를 하다가도 이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게 여자다. 정일 씨도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내는 제가 밖에서 무료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가끔씩 '집에서나 잘 하라'고 싫은소리를 할 때도 있어요. 물론 그런 아내 마음은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요. 저도 가정에서는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 밖에서는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정받는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젊잖아요. 하고자 하는 일에서 우선 입지를 다져놓고, 가정에도 충실할 거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청년유니온에서 취업 코칭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해오면서 정일 씨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자신감들을 많이 얻었다. 그렇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이제 또다른 도전을 구상하고 있다. 바로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구직 청년들은 물론 취업하고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인 매니지먼트를 해줄 수 있는 조직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바로 '노동직업연구소'(가칭) 설립이 그의 차기 목표다.

"일하고 싶은데 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취업은 했지만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등에 노출돼 있는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새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요. 노동상담과 직업상담이 결합된 노동직업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유니온에서 했던 취업코칭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의 구상이 꽤 규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구상을 현실화시킴으로써 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명성을 날리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취업과 노동 에 취약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것 뿐이다. 그는 큰 꿈을 꾸되, 꿈을 이룬다 한들 손에 달콤한 사탕을 쥐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하려는 욕심은 가져본 적이 없어요. 권력과 명예를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살아간다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