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봉_/도봉과 우리!!

2012. 7. 8. 17:58

[낮은 목소리로]

‘신념을 지킨 사람’ 죽이는 두 가지 말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뿐이라 배웠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킨다는 건 중심을 갈무리하고 의지의 곁가지를 실천의 힘으로 키워나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념의 강자는 주변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천리를 갑니다. 신념의 강자는 신념을 키우는 강자입니다. 사색과 공부를 늦추는 법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겉귀로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하는 데 진지하고 실천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학습목표에 철저한 사람은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옳고 정당한 일을 한다는 자기긍정과 헌신과 실천으로 세상을 떠밀고 간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가족들의 고생과 생활능력이 없다는 주변의 비아냥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념의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너는 나쁜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쁜 놈은 뭘 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이익보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언제나 꼼수를 쓰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자기 편의 이해에 충실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은 이것이었습니다. 선거가 총체적 부실·부정이었고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다 사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 나쁜 놈들입니다. 대의는 없고 출세만 있는, 목표를 위해서는 부정을 가리지 않는 집단과 사람으로 낙인되었습니다.

‘내 정녕 서서 죽더라도 무릎 꿇고 구걸하지 않겠다’는 기개와 의지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짧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단칼에 허공에 사라졌습니다. 맞아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로 살았던 인생의 신념이 한순간 부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나도 이런 잘못을 했다, 선거시스템이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투표의 근본적 한계는 이런 것이다라고.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당 체제를 개선할 것을 논의했으면, 그 과정에서 책임이 나오고 그 방법이 사퇴였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부정이 없는데 사퇴한다, 너는 총체적 부정의 당사자인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 이렇게 접근한 겁니다. 흔히 당권파라는 이름으로 한 물의 한 고기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팔았습니다. 신념을 밥처럼 먹고사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습니다. 박영재 당원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두 번째 참기 힘든 비판은 너는 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며 자신의 몸으로 노동합니다.

나라가 사대를 하면 식민지가 되고 개인이 사대를 하면 머저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큰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기대고 이전에 고루한 이론과 논리를 비판 없이 따라하는 것을 사대와 교조라고 합니다. 종북이라는 말은 사대와 교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꼭두각시처럼 종처럼 산다는 겁니다.

나쁜 것도 북한이 시키면 해야 되고 좋은 것도 북한이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종북은 무뇌아의 다른 표현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종북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종북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6·15 선언을 준수하라고 말하면 종북입니다. 북한의 인권, 핵무기 개발, 권력승계에 대해 일본의 산케이신문이나 한국의 조선일보처럼 말하지 않으면 종북입니다.

종북이라는 말의 폭력성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듦과 동시에 그 반대편의 줄에 서지 않으면, 내가 당신 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 척결대상이 되는 집단 이성의 마비에 있습니다.

농협 비료창고에 가서 남들이 한 배미에 비료를 몇 포대 뿌리느냐고 직원에게 묻고 그것대로 사가서 그것대로 뿌리는 농부는 바보입니다. 모내기한 시기가 다르고 흙의 성질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밑거름이 다른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거리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들도 다 애국자입니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도 남도 끝자락 강진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도 애국자입니다.

강진 성전면 청년회에서는 월례회의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성전면 농민회에서 영농발대식을 할 때는 ‘농민들의 영원한 애국가’ 농민가를 부릅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장차관들이 국무회의때 부르는 애국가는 애국이고 공무원 노동자가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는 게 반국가적 행위라고 헌법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나라사랑하는 방법까지 내 방식과 관점이 아니면 다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입니다.

‘이 글을 보니 당신도 당권파군’, 누군가 말하면 저는 당권파임을 자처하겠습니다.

<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 경향신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207062129055&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오야, 자네는 무슨 파여?”
강광석|전농 강진
군 정책실장
2012-05-18 21:22:52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의 불똥이 이곳 남도땅 강진까지 튀었습니다. 지난 4·11 총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을 관리했던 간부들이 부정선거 책임자로 몰리고 있습니다. 강진군 통합진보당 당원은 몸을 쓰는 노동자, 농민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당 사무실이기에 같은 컴퓨터로 투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나름 복잡한 인터넷 투표를 직접 하기가 약간 ‘거시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같이 나와 투표하셨습니다. 당 실무를 하는 일꾼들은 투표를 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단독 후보인 경우에도 기어이 찬반을 물어야 하는 당 규정상 50% 투표 참여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총선 후보를 뽑는데도 형님, 동생 부르며 “막걸리 살 테니 나오라”고 소리치면서 투표했습니다.

같은 컴퓨터에서 무더기 투표 행위가 진행됐다는 것은 적어도 이곳 강진 상황에서는 실제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을 부정 불감증 환자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강진군 농민회는 간부가 어느 정당이든 당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일정한 승인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농민회 간부인 저는 후원당원이었습니다. 당비는 내지만 당원은 아닌, 당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비례대표 후보 선거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농민회 간부 일을 놓고 당에 입당하기 위해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글쎄 제가 당원이라고 뜨는 겁니다. 조금 이상했지만 비례대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합당 전 후원당원은 합당 후 어떤 신분인지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든지, 아니면 내용을 제가 몰랐든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투표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지만 투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각자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유령 당원’이 되었습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부정하게 투표했고, 실제 선거인명부상 투표권자보다 투표한 사람 수가 많은 일이 벌어졌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남한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제3당이 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보정당을 조명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쓰나미는 순식간에 왔고, 괴로운 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일이 벌어진 후 제일 서글픈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함부로 정치적 감투를 씌운다는 겁니다. 출세주의자, 패권주의자, 조직이기주의자 등 어려운 말이 판을 칩니다.

“오야, 자네는 무슨 파인가”라 묻는 상용직 노동자 당원의 질문을 받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쪽파를 심었습니다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농촌에선 조생종 양파값이 폭락하고 대파를 갈아엎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세상은 온통 ‘파’잔치뿐입니다. 인근 지역 친구는 무슨 파일까? 의심하면서 서로들 말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친한 선후배들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도 가슴이 뜨끔뜨끔하고 의견 하나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단절을 믿음과 의리로 회복하는 일이 비대위를 만들어 당을 혁신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야 할 정치가 사람이 사람을 치는 정치가 되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서울에서 한참 먼 강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진에 ‘늦봄 문익환학교’가 있습니다. 대안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갑자기 불순세력이 불순분자를 양성하는 주사파 학교로 지명되었습니다. 통일기행, 강정마을 평화기행이 색깔로 덧칠되고 연좌제를 적용할 기세로 부모의 과거를 공개하고 선생님을 친북으로 몰아갑니다.

이 나라를 뒤흔들 만큼 힘있는 일간지가 작은 대안학교까지 들여다보자고 나선 이유는 이 나라 전체가 썩었다고 경고하고 싶었거나 이 학교의 명예이사인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을 겨냥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이제 종점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마지막 결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서 조직이기주의로, 주사파에서 야권연대로, 결국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마무리되는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앞두고 시청률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시골 촌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누구는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182122525&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나는 누구의 연탄인가?
강광석 | 전농 강진군정책실장
2012-06-08 

 

늦은 시간, 자신은 부정하지만 약간 술기운이 있는 목소리로 안부를 전한 후배 녀석은 국어 선생님입니다. “형, 시 한번 들어보세요. 윤도현 것인데요….” 전화 건너편 한 인간의 언어가 귓속을 지나 인중을 타고 들숨 날숨과 섞이더니 이내 가슴에 무거운 돌로 박혔습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탄 한 장 되는 것인데요. 하염없이 뜨거워졌다가 으깨어져 찬 겨울, 산산이 부서져 누군가가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요. 요즘은 연탄 보기도 귀한데, 근데 형은 누구의 연탄입니까?”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가수 윤도현이 아니고 안도현 거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농촌에 사는 것이 연탄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농사 말고는 다른 일을 해 본 적 없는 것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들과, 교육·문화·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농민들과 부대끼고 아픔을 같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포복으로 운동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어느덧 켜켜이 쌓인 책 위의 먼지처럼 나이가 굵어지고부터 사람에 감동하고 작은 것을 아끼며 분노할 것에 의당 분노하는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없어지고, 같이 활동하는 동지의 작은 모범을 따라 배우자는 겸손함도 없어졌습니다. 회원들 간에 강하게 비판해야 될 일도 대충 기분 나쁘지 않게 충고하고 말지, 정말 그 잘못을 고치도록 시간을 갖고 살피지 않습니다. 한·중 FTA가 체결된대도 감각이 없고 농협이 합병을 한다 해도 불구경하고 있습니다. 여유와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감각이 무뎌지고 잘 닦여진 신작로처럼 매일 준비된 일상이 기다리고 그 일상 따라 눈을 감고 가도 넘어지지 않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누군가의 연탄이 되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내가 왜 살고 있는지를 하루라도 잊으면 장마에 습기 찬 연탄처럼 제 불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자신의 일부를 바쳐 사랑하는 것, 아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쟁에 치이고 목표 달성이 지상명령이 된 세상에선 자신의 것 이외의 가치와 보람에 눈을 돌리는 일은 어렵고 고단합니다.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것이야말로 연탄되기의 시작입니다. 한참 모내기철입니다. 산비탈 다랑치 수렁논을 도맡아 모내기 하는 아저씨가 우리 동네의 연탄입니다. 영업의 관점으로 보면 빵점이지요. 어른들의 무거운 못자리 모판을 날라다 논에 가지런히 놓아 주는 장가 못간 총각 형님이 우리 동네 연탄입니다. 소주 한잔이 품삯입니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시는 어른들을 몸 상할세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면직원이 우리 면의 연탄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보호시설 학생들에게 해마다 쌀을 기부하는 익명의 기부자가 강진의 연탄입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검은깨와 콩가루를 꿀에 타주는 어머니는 저의 연탄입니다. 그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역할 일부를 내주는 아내는 어머니의 연탄입니다. 딱 그들의 체온만큼 세상이 따뜻합니다.
누군가의 ‘연탄 한 장’ 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에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더 좋은 세상을 향해 싸우고 협력하며 헌신과 용기의 실천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을 철학보다 먼저 배워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쉬고 날마다 12시간 넘게 일하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받는 월급이 4대 보험도 없이 고작 130만원 안팎이라는 것에 분노해야 합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살던 학생이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우는 후배 녀석처럼 눈물이 흔한 것이어야 합니다. 2월부터 10월 말까지 고추 300평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약통을 팔순 노모가 100번 넘게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 앞에 잠을 뒤척여야 합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교회에서 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잡상인’을 ‘이동 상인’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는 서울시의 마음이 사람들의 밤거리에 가로등을 켭니다.
나도, 다른 사람도 다 자신의 어깨 넓이만큼의 아픔을 짊어지고 산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으로 연탄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념의 과잉시대에, 당리당략을 위한 논리놀음의 첫 자리에 사람을 넣자면 너무 낭만적입니까? 비오는 날 연탄구이집에서 최근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선배와 소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082116195&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총선 뒤에 남은 것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suam585@hanmail.net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식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마크를 1년 동안 양복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다는 아버지야말로 아이의 합격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본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마을회관에 있던 벽보가 없어지고 바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잔치가 끝났고, 세상은 전과 같이 조용합니다.


당선만 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정치인은 ‘고맙다’는 당선 인사 플래카드를 걸고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낙선한 후보는 관청마다 거리마다 인사를 다니며 권토중래를 다짐하는가 봅니다.

아내에게 큰 꾸중을 듣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관계 회복이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방패삼아 교회에 나가보는 저는, 선거 전 일요일, 코가 책상에 닿도록 오랫동안 한번도 내 마음속에 임하지 않은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민중이 승리하길, 진실이 승리하길, 눈물 말고 아무것도 없는 통합진보당이 승리하길 바라며 주 예수의 전지전능한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사모님이 눈물을 훔쳤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통합진보당 기호 4번 강광석입니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성가대를 마치고 나오는 아내에게 얼굴도장을 찍지 못하고 방송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장흥·강진·영암 지역구에 출마한 우리 후보는 공무원노조 출신 해고노동자입니다. 어떤 후보는 8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선거를 그이는 선거 40일을 남기고 결의했습니다. 진보정치의 끈을 이어야 한다는, 누군가는 하나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출마했습니다. 조직도 없고, 경험도 없고, 선거본부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삽 하나로 논 전체를 쟁기질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강진의 어떤 형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국장이 되었고, 영암의 노동자 친구도 직장을 그만두고 선거상황실장을 맡았습니다. 장흥의 선배·후배들도 농사를 작파하고 가정을 뒤로하고 선거에 결합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5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3등을 했습니다.

시험을 본 학생이 매일 채점지를 보며 예상 점수를 맞추어 보듯, 우리는 선두권 3명이 혼전양상이 되면 당선될 수 있다는, 나름 계산서를 뽑아보며 자가발전·자체열광을 거듭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세뇌와 같은 것이어서 한 번 계산이 나오니 자꾸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7시에 눈이 떠지던 것이 아침 6시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가 “우리가 이기고 있습니다. 당선으로 보답하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발은 더 빨라지고 목소리는 더 커지고 급기야 일망타진 작전이 나오게 됩니다. 어느 마을 싹쓸이, 어느 마을 50%. 이런 식으로 강진은 5000표 그래프를 만들었습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선거병이라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낙관적 상황호도증’이라는 중증이랍니다. 모든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자신들의 표가 30%를 넘으면 당선을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선거병 중에 가장 모진 병이 ‘내리먹임증후군’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간부급에서 많이 발생하는 병인데, 받아들일 사람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목표만 세워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사람 각자의 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오직 숫자를 채우느냐 못 채우느냐만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고 사람의 존엄은 없고 그래프만 있습니다. 그 병을 앓다가 몇은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고, 몇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회계처리 몇 개만 끝나면 선거상황은 종료되지만 진심과 사랑, 애절함과 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 40일 동안 묵묵히 자식과 남편의 무신경을 보아 넘겨준 어머니와 아내의 넉넉한 품이 남았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당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선거운동원들이 남았고, 자신의 것을 먼저 내던지면서 운동에 복무하는 주변분들의 헌신과 열정이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선거 끝나고 방송차를 반납하러 장흥에 갔는데, 후보와 후보 배우자가 이 세상에 본 가장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거리에서 낙선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걸어본 사람은 모든 것을 털고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이긴 사람들은 미치도록 기뻐하고 진 사람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012년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202110455&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이정희와 이정희
강광석|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2012-03-23

 

다음(daum)에 ‘이정희’를 입력하면 많은 ‘이정희’가 나옵니다. 대학교수, 현대무용가, 연극인, 스포츠 선수, 기업인 등 다양합니다. 흔한 이름이죠. 제 인생에는 이정희가 두 명 있습니다.

학생시절 같은 과에 이정희 선배가 있었습니다. 1학년 때, 한 시대를 풍미한 민중가요 ‘가야 하네’를 처음 가르쳐준 선배입니다. 그는 모르는 노래가사가 없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가사를 불러주는, 말하자면 가사 도우미였습니다. 가사 도우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노래의 흐름과 분위기,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상태까지 파악해 때론 축약하고, 때론 음률을 섞어가며 추임새처럼 넣는 고난도 기술의 소유자였습니다.

고향이 부산이었고 재수를 했던 것 같고 살집이 풍부하고 얼굴에 여드름이 많았습니다. 담배를 피우다 끊었던 것 같고 술을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에는 저를 낳아준 어머니가 있고 서울에는 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그의 포근함에 취해 이게 사랑이 아닐까 혼자 뒤척인 적도 있습니다.


저보다 두 살 많았지만 살기는 한 20년 더 산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MT를 가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밥을 했고 누가 다치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먼저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왔습니다. 행사 때는 전대처럼 만든 가방을 허리에 항상 차고 다녔습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을 도왔고 뒤풀이 때는 마지막까지 남아 기어이 먹은 것을 확인하고야 마는 초보 술꾼들의 뒤를 봐주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후배의 운동 고민, 진로 고민을 나누는 상담원이었습니다. 학교 앞, 지금은 없어진 것이 분명한 불새라는 카페에서 세상을 다 가질 만큼 당찬 결의로 맹세를 했습니다. ‘서서 죽더라도 무릎 꿇고 타협하지 말자’는, 조국해방 투쟁 48년(해방 이후 자주화·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학생운동식 연호) 언저리쯤 되는 어느 해에 우리는 이 땅의 청년학도로서 의당 밟아야 하는 통과의례를 치렀습니다. 따뜻하고 신념있는 그는 그만큼 따듯하고 덜 신념있는 제 동기와 결혼했습니다.

요 며칠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화제의 중심입니다. 저는 그와 담소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화순에서 군수 후보로 출마한 선배 선출대회에 참가해 악수를 나누었지만 그가 그것을 기억할 리 없습니다.

그는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실과 진심이 그가 하는 말무게의 전부입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당원입니다’, 이 말보다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인사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늘 마른자리에 있지 않고 진자리에 있었습니다. 용산참사 현장, 쌍용차 투쟁 현장, 한진중공업, 제주 구럼비에 항상 있었습니다. 난장판 국회에서는 온몸을 던져 서민의 삶을 대변했고 야권 단일화 협상에서는 자신의 지역구를 경선지역으로 포함해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진보당 통합문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될 때까지 설득하는 뚝심으로 어려움을 헤쳐 왔습니다. 그는 당 대표로서 당직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지위나 나이, 출신, 이력을 묻지 않고 존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팬들이 참 많습니다.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기를 기원하는 ‘이정희를 지켜주세요’ 동영상을 보며 가슴 부여잡고, 관악에 아는 사람이 없어 절망했습니다. 그가 승리했다는 말에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고, 그의 얼굴 밑에 여론조작이라는 무시무시한 방송자막이 걸려 있을 때 우리는 비가 오는데도 아무 말 없이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강진 끝자락 마량으로 지인을 만나러 가면서 그가 출연한 <이슈 털어주는 남자>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습니다. “사건이 터지자 사퇴를 생각했고… 그것은 개인적으로 아주 쉬운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 대표로서 야권연대의 성공을 위해 한 몸을 바칠 것이고 그것이 국민의 명령이라 믿습니다.” 잠시 같이 듣던 당 사무국장이 눈물을 훔쳤던 것 같고 우리는 마량에 도착해 호남 정치권력이 바뀌어야 한다고, 비료 반값을 실현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민주당의 전대협 출신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그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을 보고 잠시 청년 시절, 신념있고 따뜻했던 선배 이정희를 생각했습니다.

진보정당은 기존 정당과는 다른 차원의 도덕적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이 너무나 가혹하게 정치적 이해와 당리당략적 계산과 덧칠되어 해일처럼 몰려오는 것을 볼 때, ‘무릎 꿇고 타협하느니 서서 죽겠다’는 20년도 훨씬 지난 각오를 생각했습니다.

선배 이정희가 가르쳐준 ‘가야 하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야 하네 /우리 모두 어깨 걸고 /억압과 착취 모두 깨부수고 /투쟁으로 우리 하나 되어 /사랑 가득한 평등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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