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봉_/도봉과 우리!!

2017. 7. 20. 18:39

삭발로 결의한 복직투쟁!!

한일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오늘 흘린 눈물 반드시 거두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 일하고 싶을 때

맘껏 일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위해 다짐합니다.

가만 주먹을 쥐고 눈물을 거둡니다.

힘내세요..

끝까지 도봉구민들은 함께 하겠습니다.

 

 

 

 

 

 

 

 

 

  

  삭발한 여성 노동자의 글

 

 안녕하세요. 저는 한일병원에서 19년을 하루같이 일을 해 온 고정화라고 합니다.

 제가 93년 4월 1일에 입사할 당시에 한일병원에서는 분명 자식들의 대학등록금의 혜택이 있다고

 하여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왕복 3시간이 걸리지만 그런 조건들이 있었기에 입사를 하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상황은 변했습니다. 한일병원에서 하던 식당일을 용역업체인

 한화에게 넘기고 조건들 또한 많이 변했습니다. 물론 대학등록금이야기는 마치 있었던 일이냐는 

듯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한 달에 15일 일하고 15일 쉬는 로테이션이여서 임금은 작지만 참고 일할 만큼은 되었습니다. 또, 용역업체가 신세계로 넘어 갔을 때에도 상황이 더 좋아 지지는 않았지만 나빠지지는 않아서 참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아워홈으로 바뀌고 나서는 상황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임금은 그대로였습니다.

 최소한 연장근무시간을 인정해주었다면 저희는 이렇게 노조에 가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흔히 이야기 하지요? 아줌마들이 무얼 아냐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고...

 네!! 정말 저희는 몰랐더군요. 이렇게 저희가 최소한의 대가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민주노조에 가입하고서 최소한의 우리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위해서

 힘썼습니다.

 그것이 그리 잘못된 일입니까? 이렇게 우리가 추운 날 밖으로 내쫓기는 이유가 됩니까?

 저에게는 대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습니다. 최소한 이 두 명의 자녀를 졸업시키려면 3년은 있어야 합니다. 요새 등록금이 옆집 개이름입니까? 한두 푼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기에 저는 이 앞에 나와 있습니다. 저는 14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저희 가정의 가장으로 일해 왔습니다.

 물론 일이 힘들고 고되었지만 자식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이를 꽉 물고 일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첫차를 타러 집밖을 나왔지만 불평 한번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대가가 이것입니까?

 군대에간 막내 놈이 매일 전화해서 저에게 묻더군요.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그 무뚝뚝한 놈이 물어오더군요. 저는 걱정 말라고 잘 해결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저 스스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요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매일 잘 될 것이라고 다짐을 하지만 60일이 지난 지금은 점점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을 했기에 이러한 대접을 받게 되었는지 저에게 묻게 됩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요.

 여러분 19년 동안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성실히 일해 왔는데 한일병원의 이런 방침에는 정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네요.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 저의 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삭발을 결심하였습니다.

 저의 큰 딸아이는 다른 사람보고 깎으라고 하라고 절대 엄마는 깎지 말라고 오늘 아침까지도 신신당부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제 머리 하나 깎아서 이 상황이 변할 수 있다면 머리 하나가 대수입니까?

 다시 한일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자라겠지요. 이것으로 저의 마음이, 저의 결심이 여러분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저희를 위해서 힘을 보태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전하고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장근무 인정 요구가 잘못인가요” 한일병원 식당 해고자 ‘눈물의 삭발’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2012-02-2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292214235&code=940702

 

 

고정화씨(52)는 1993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 식당노동자로 입사했다. 병원에서 직영했기 때문에 자녀의 대학 등록금 지원 혜택이 있었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은 고됐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1999년 병원은 직영으로 운영하던 식당을 외주화했다. 임금과 근무시간 등 근로조건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대학 등록금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가 됐다.

고씨는 ‘언젠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참고 일했지만 한화에서 신세계로 용역업체는 계속 바뀌었다. 10여년을 일했는데도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아워홈으로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근무여건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여전히 90만원 남짓이었다. 매주 수십시간 잔업을 했지만 잔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물품도 제공받지 못해 고무장갑조차 각자의 집에서 갖고 와야만 했다.

29일 서울 한일병원 앞에서 고정화씨가 해고에 항의하며 삭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최소한 연장근무 시간만이라도 인정해 달라며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노조를 결성했다. 병원은 또다시 용역업체를 바꾸기로 했다. 이전과 달리 식당노동자들의 고용승계도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노조원들은 지난해 12월31일에도 환자들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여느 때처럼 연장근무를 했다. 그러나 CJ프레시웨이로 용역업체가 바뀐 2012년 1월1일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15명은 해고 처리됐다.

해고 60일을 맞은 29일 오후 한일병원 앞에서 고씨는 삭발을 했다. 바리캉이 고씨의 머리칼을 한 움큼씩 잘라냈다. 푸르스름한 머리갗을 드러낸 고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울었다. 고씨를 에워싼 8명의 동료들도 울음을 터뜨렸다. 고씨의 동료들은 “우리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고씨를 부둥켜안았다.

한일병원 해고 노동자들의 울음 뒤로 고씨가 미리 준비해 온 편지가 낭독됐다. 고씨는 편지에서 “제 큰딸은 다른 사람 보고 머리 깎으라고 하라고, 절대 엄마는 깎지 말라고 오늘 아침까지도 신신당부했다”며 “제 머리 하나 깎아서 이 상황이 변할 수 있다면 머리카락이 대수입니까”라는 결심을 밝혔다.

한일병원 해고 노동자 15명은 한일병원에서 10~32년간 근무했다. 모두 40~60대의 여성들로 상당수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14년 전 남편을 여읜 고씨도 대학을 다니는 두 자녀를 부양하고 있다.

이화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위원장은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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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 종합병원'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한일병원 비정규직 식당노동자 두 달째 복직투쟁

제정남 | jjn@labortoday.co.kr

 

의사와 간호사가 용역위탁업체를 통해 병원에 취업한다. 매년 위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승계 여부를 걱정해야 한다. 그럼 의료서비스의 질은 어떻게 될까. 입원 환자들에게 식사는 치료의 수단이다. 따라서 병원 급식노동자들의 고용문제도 의사와 간호사에 버금가지 않을까.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한일병원 구내식당에서 일하다 급식 공급업체가 교체되면서 해고된 비정규직 식당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이 29일로 60일을 맞는다. 한일병원 급식 공급업체로부터 해고된 식당노동자 13명은 올해 1월1일부터 병원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식당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31일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동안 업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같은해 7월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정도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최종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도봉지부장은 28일 “한일병원이 위탁을 시작한 2000년부터 급식 공급업체가 몇 번 바뀌었지만 고용승계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해고 사태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식당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엄마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노동자”라고 외치며 노조를 설립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결성 이후 병원 식당 관계자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고용승계가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한일병원 급식은 1차 용역업체인 CJ프레시웨이로부터 재용역을 받은 M&M시스템(주)을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원활치 않은 상태다. 급하게 위탁받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M&M시스템은 최근 ‘쌍문동 종합병원구내식당’에서 일할 ‘밥담당조리사’를 구하는 채용공고를 내며 인력을 구하고 있다.

농성 시작 60일을 맞는 해고노동자들은 29일 삭발식을 진행한다. 최 지부장은 “평생을 길러 온 머리까지 깎아 가며 식당노동자들이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선언”이라며 “한일병원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문제를 즉각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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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706

 

 

 

환갑을 눈 앞에 둔, 중년 여성의 마르지 않는 눈물

잔업을 마친 엄마는 하루 동안 혼자 있었을 딸을 생각해서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합니다.

하루 종일 물을 만진 엄마의 손은 퉁퉁 부어있습니다. 갈라진 손끝에는 반창고를 칭칭 감아놓아 감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병원 지하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한 계단만 올라가면 치료를 받을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채찍을 들고, 무섭게 쏘아보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감히 치료받고 오겠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문을 굳게 잠그고 혼자 있었던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왜 이렇게 늦게 왔나며, 엄마에게 와락 안깁니다. 하지만 엄마는 따뜻하게 안아줄 새도 없이 굶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며 저녁을 준비합니다. 아이는 그림을 보아달라며 엄마에게 매달립니다. 엄마는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화를 냅니다.

아이는 엄마가 밉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엄마는 아이를 와락 껴안으며 엄마가 잘 못했다고, 아이의 눈물을 닦으며 아이를 안은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대학을 졸업합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 반듯하게 성장한 아이가 엄마는 대견스럽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세월이 스치듯 떠오릅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과거의 고통보다 딸아이의 졸업식에 함께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졸업식 전날 아이와 엄마는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았던 엄마의 손은 여전히 부어있고, 갈라져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곱게 감싸고 머리를 숙여 뜨거운 눈물을 한 없이 쏟아 냅니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아이가 먹을 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걸어서 5시까지 병원으로 출근합니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한 요즘 아이를 두고 나오는 엄마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직원들의 식사를 걱정하며 30년 동안 이른 출근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청춘의 열정을 병원에서 다 보낸 엄마는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대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아도 부족하거나 넘침 없이 인생의 노년을 살아 갈수 있을 꺼라 믿었습니다.

1990년 후반 대한민국 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세상이 떠들썩 합니다. 지하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그게 무엇인지 자신과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뒤 병원에도 위기의 바람은 불어 왔습니다. 병원은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에 빠져 있는 만큼 병원 운영 정상화에 모든 직원이 일떠 나서야 한다. 그리고 고통분담을 같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직접 운영하던 식당과 관리하던 직원들을 1999년 12월 1일 외주 용역업체에 맡겨 버렸습니다. 병원 책임자는 용역업체에 소속되더라도 종전 대로 일을 한다. 어머님들은 예전 처럼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용역업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바뀐 사람도 없고, 같은 일을 하고, 작업 지시를 받으니 별일 아니 구나 생각하였습니다.

2007년 (주)아워홈이라는 국내 1위 푸드업체가 들어오기 전까지 두 차례 업체가 바꼈습니다.

엄마는 업체가 바뀔때마다 계약서를 써야 했습니다. 급여도 예전과 달리 최저 인건비에 달하는 쥐꼬리만한 돈을 받아야 했습니다. 위기 난리 통에 아무런 고민 없이 덜썩 병원말만 믿고 용역업체로 변경한 자신을 탓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엄마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보이는 자신을 누가 일을 시키겠냐며, 조금 이라도 병원식당에서 일을 더하자며 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업체가 들어 온 뒤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하루 기본 근무에 매주 수십시간의 잔업이 사람을 질리게 했습니다. 새로운 업체는 잔업수당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제공하지 않고 직접 구입해서 쓰게 하였습니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서 먹는 점심풍경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천근 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집니다.

밤에 잠을 자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느낌입니다. 얼마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아퍼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신경성 소화 장애 및 두통이니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는 고민이나 문제를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엄마는 병을 치료하려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더 아퍼옵니다.

엄마는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번호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는딸에게 방해가 될까봐 전화기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던 어머님들이 같은 고민으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만 실컷 부려먹고 어머님들의 피와 땀으로 살찌운 용역업체가 병원에서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들은 병원측과 용역업체에 밀린 잔업수당 지급과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하였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피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속에서 어머님들끼리 모임을 진행하고 대책을 연구해봤지만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뉴스에서 파업하는 또 다른 여성노동자들을 보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거리에 쫓겨난 여성 가장들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뉴스였습니다.

어머님들은 망설였습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왜 있는지? 몰랐습니다.

어머님들은 무서웠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님들은 새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당하느니, 당당하게 요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2011년 7월 한일병원 분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딸에게 전화하였습니다.

무슨일 있냐며 묻는 딸에게 엄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엄마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노동자다.

엄마는 이제부터 밟아도 꿈틀대지 않는 무지렁이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권리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딸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어제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엄마가 오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말입니다.

식당어머님들을 무시하고 얕잡아 봤던 병원과 용역업체는 어머님들의 이런 변화에 굉장히 당황해하였습니다. 어머님들은 노동조합 결성에 멈추지 않고, 노동청과 노무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푼도 받지 못한 밀린 잔업수당도 받아냈습니다. 어머님들은 처음으로 서로를 부등켜 안고 만세의 함성을 소리 높혀 외쳤습니다. 그날 밤 어머님들은 기쁨에 겨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용역업체가 나가고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던 날 식당노동자 어머님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2012년 1월 1일 모두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해고 소식을 전혀 모른채 마지막날까지 잔업을 했던 어머님들은 다음날 굳게 닫혀 있는 지하 식당 앞에서 망연자실해졌습니다.

수십년을 병원의 발전과 환자들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느라 청춘을 모두 바쳤는데, 병원은 입을 틀어 막고 답변하나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여 어머님들의 개인 사물함까지 모두 뒤지고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머님들은 병원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 아닌 버림받은 물건으로 취급되어 버렸습니다.

찬바람이 불던 새해 첫날부터 60여일이 다 되도록 어머님들의 활동은 멈춤 없이 진행 되고 있습니다.

환자들도 직원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도봉 강북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한일병원의 만행에 수많은 주민들이 서명과 지지 방문으로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다음주 수요일(2월 29일)은 어머님들이 해고 된지 60일이 됩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흔들림 없이 싸워나가고 있는 어머님들이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고 더욱 결심을 높이고자 목숨만큼 소중한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하십니다.

어머님들의 절절하고 당찬 결의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밤새 고민을 해봅니다.

어머님들의 삭발이 맞냐? 아니냐?의 고민이 아니라 왜? 어머님들이 삭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입니다.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개인등 어머님들의 눈물 어린 투쟁에 연대의 눈물을 흘릴수 있는 분들이라면 사상과 정견을 떠나 소중히 모시겠습니다.

환갑을 눈 앞에 둔 어머님들의 눈물겨운 투쟁에 함께 해주십시오.

한일병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드림.

 

 

 

여러분 한일병원 투쟁에 함께 해주세요!!

서울 일반노조 도봉구지회 사무국장 류감석 입니다.

지역은 도봉입니다.

한일병원에서 길게는 30년 짧게는 10년간

환자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일한 노동자 19명이

노동조합을 가입 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1일 해고 되었습니다.(계약해지)

울일반노조 한일병원 분회는

한일병원 정문에 천막을 치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복직투쟁한지가 50일이 넘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원직복직에 대한 의지를

한일병원에 알리고 투쟁을 선포하는 대회를 하려고 합니다.

일시 : 2월 29일 17시 한일병원 정문(쌍문역 3번출구 도보 또는 마을버스이용)

통합진보당 (도봉구) 당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펌] http://www.goupp.org/4030124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부당해고 철회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투쟁 선포대회

2012. 2. 29 오후 5시.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 정문

주최 : 민주노총 서울 일반노동조합

http://cafe.daum.net/smallbigwar

 

 

 

1. 일시 및 장소

① 2월 29일(수) 오후 5시, 한일병원 정문 앞

2. 식순

① 결의 묵상

② 어머님 편지글 낭독

③ 연대사

④ 규탄발언

⑤ 어머님 삭발 투쟁

⑥ 결의문 낭독

⑦ 실천투쟁

 

 

 

 투쟁광고                                        작지만 큰 싸움 http://cafe.daum.net/smallbigwar/gOa/35

 

       한일병원 노동자 고용승계 투쟁 다짐을 위한

                 [전 간부 구속 결의대회]

                           - 2012.3.7 17시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

                           -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한일병원 노동자 고용승계를 위한

                 [총력투쟁대회]

                                  - 2012.3.16 17시 한일병원 앞

                           -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펌] 작지만 큰 싸움 |  삭발한 여성 노동자의 글 - Daum 카페

        http://cafe.daum.net/smallbigwar/gOa/35

 

 

 

 

 

 

 

 

 

 

 

 

 

 

 

 

 

 

 

 

 

 

 

 

 

 

 

 

 

 

 

 

 

 

 

 

 

 

 

 

 

 

 

 

 

 

 

 

 

 

 

 

 

 

 

 

 

 

 

 

 

 

 

 

 

 

 

 

 

 

 

 

 

 

 

 

 

 

 

 

 

 

 

 

 

 

 

 

 

 

 

 

 

 

 

 

 

 

 

 

 

 

 

 

 

 

 

 

 

 

 

 

 

 

 

 

 

 

 

 

 

 

 

 

 

 

 

 

 

 

 

 

 

 

 

 

 

 

 

 

 

 

 

 

 

 

 

 

 

 

 

 

 

 

 


 

 

 

 

출처 : 통합진보당 도봉구위원회
글쓴이 : 도봉통합진보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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