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

고구려역사지킴이 2018. 2. 19. 23:55

 

 

 

▲ 고마 신사 전경 히타카시에 있는 1300년 고찰 고마 신사.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제공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 구리시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홍도암, 최광민) 회원 99명이 일본에서 1300여년 동안 60대(代)를 이어 살아온 고구려 후손들을 만나기 위해 4일 대한해협을 건넌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시(市)에 살고 있는 고구려 후손들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若光)의 자손들로 일본은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716년 무사시(武藏)지방에 고마군(高麗郡)을 설치하고 약광을 초대 군수로 임명해 같이 망명한 1799명을 옮겨 살도록 했다.

이들 후손들은 26대까지는 고구려 자손끼리 혼인해 혈통을 이어 오다가 그 뒤 일본인들과 혼인해 지금은 거의 다 일본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다고 전통이 단절된 것은 아니다. 약광의 60대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는 아버지 '고마 스미오'씨의 뒤를 이어 '고마(고구려의 일본식 표기) 신사(高麗神社)'의 궁사(宮司)로 대(代)를 이어 오고 있다.

 

 

 고마 스미오 59대 고마신사 궁사. 현재는 후미야스씨가 대를 이어 60대 궁사로 봉직하고 있다.

 

14세기 무로마치 바쿠후(幕府) 때 정권의 반대편에 가담했다 해서 박해를 받아온 고구려 후손들은 명치유신 뒤부터 한층 더 고난을 겪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리기로 하고 고마군을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시켜 히타카마치로 부르게 했고 약광에 대한 제사도 금지시켜 '천황신'에게 제사지내게 했다.

히타카마치는1991년 사이타마현 히타카시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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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 신사는 최근 일본 각계의 거물들이 이 신사를 참배를 하고 난 다음에 출세했다고 해, 일본인들에게는 출세 신사(出世神社)로 더 알려져 있으며 해마다 40만 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찾아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 구리시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 후미야스 궁사에게 편지를 보내 "구리시는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유물이 출토된 곳으로 작년부터 벌인 범국민모금운동으로 세울 고구려역사기념관이 들어설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오는 5월 실물 크기의  광개토태왕비도 복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후미야스 궁사는 2월말 답장을 보내 "선조들의 영광을 재현할 역사기념관 건립에 도움이 되도록 서로 교류하고 싶다"라며 "우선 4월 고마신사 마쯔리(축제)에 와서 우의를 다지자"며 구리시민들을 초대했다.

이에 구리시추진위원회는 박영순 구리시장을 비롯한 방문단을 꾸려 일본을 방문하기로 결정해 양측이 만나게 됐다.

 

 


▲ 고마신사 현판 고려(高麗)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써있다.

 

 

이들 방문단은 오는 5일 히타카시청을 방문해 히타카시장과 면담한 후 고마신사까지 '한-일우정의 걷기대회'에 참석한 뒤 고마신사에서 벌어질 마쯔리 행사에 참가해 형제의 우의를 나누고 인근 쇼텐인(聖天院: 약광이 고구려에서 수호불로 가져온 성천존이 모셔져 있어서 절 이름을 성천원이라 부름) 입구에 있는 고구려 사당(廟:약광의 묘) 등 고구려 유적도 돌아볼 예정이다.

한편 후미야스 궁사 일행은 오는 5월 구리시 광개토태왕 동상 옆에 세워질 '광개토태왕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리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고마신사 마쯔리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