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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루터기(stump)' 예수님의 제자의 삶~

☆수요예배 (2020. 5. 27일) “위대한 신앙, 다윗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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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훈련-사역훈련 -주일예배-독후감

2020. 5. 27.

 

수요예배 (2020. 527)

제목: “위대한 신앙, 다윗처럼

말씀: 역대상 19:1-9

설교자: 정은석 목사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역대상 19:1~절까지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바라볼 때 흔히 그들이 나타냈던 결과에 주목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모세 -홍해를 갈라선 사건, 여호수아 -여리고 성 무너진 사건들이 있다. 승리했던 그런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결과를 내기까지 기도의 문제 이런 것들이 강조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주목하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믿음이나 기도가 부족했나? 신앙의 회의를 느끼면서 놀라운 그런 기적들을 바라볼 때 마음속에 열등감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에 어떤 인물과 나타나는 사건과 기적들을 바라볼 땐 그 결과도 존경하지만 그 사람이 그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그 능력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그 사람만의 가치, 생각의 방향, 마음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이런 결과를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왜냐면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 바른 가치가 결국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으면 기도하면 그 이전에 그 사람자체가 기도하는 그 사람자체가 뭔가 행동하는 데 사람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중심된 가치, 그 마음의 방향, 그 방향과 가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낼 때에, ‘무언가 내가 해내어야지’, ‘뭔가 내가 보여줘야지라고 하는 노력과 열심히 없이도 하나님께서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통해 성경에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변화와 하나님의 나라를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하신다. 성경 속에 나타났던 기적과 능력을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경험하게 해 주신 줄 믿는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성경에 어떤 인물의 가치와 마음의 태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가? 많은 인물들이 떠오르겠지만 다윗이라고 생각한다. 왜인가? 가장 평범한 목동에서 가장 높은 왕의 자리에 올랐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의 진면목과 실패함을 둘다 보여 준 사람이 다윗이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다윗을 기억할 때 골리앗을 이긴 믿음, 악기를 내어준 찬송, 절말과 낙심 속에서 기도했던 그 다윗을 생각하기 전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루어 냈던 다윗의 승리를 우리가 마음속에 담기 전에 그런 믿음과 찬송과 기도와 승리가 가능할 수 있었던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태도 삶의 가치와 삶의 방향을 주목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힘 았게 걸어간다면 지금 평범한 삶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위대한 사람으로 서가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삶, 그리고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태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도대체 그게 어떤 것이었기에 하나님도 사람도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신앙이 될 수 있었는가? 두 가지가 있다.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은혜가 될 수 있다.

 

먼저는 본문의 배경은 이러하다.

다윗이 직위에 올라서 계속 정복 전쟁이 진행되었다. 그런 가운데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그 당시에 다윗 왕국은 영토의 확장이 최고로 이루어져 있었고 당시에 최고의 강대국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암몬와이 죽었다. 그의 아들인 하눈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복잡한 상황이 된다. 다윗은 정복전쟁 계속해 가고 있는 가운데 암몬도 정복할 나라 중에 한 나라였다. 그런데 혼란스럽고 어순한한 상황이지만 그러면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던 다윗은 그가 틈을 놓치면 안되었던 것이다. 암몬을 공격하기에 최고의 적기다. 그럼에도 다윗은 암몬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하스의 위로하는 조문단을 꾸며 보낸다. 그런데 조문단을 보내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본문 2절에 그이 아버지가 의를 베풀었으니 그리 아들에게 보낸다. 문상의 이유가 암몬의 왕이었던 나하스가 이전에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뜻이다. 호의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헤쎄드이다.=호의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나하스가 다윗이 필요할 때, 은혜로 사랑으로 친절로 베푼 적이 있었고, 그 다윗이 그것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기억하고 지금 나하스의 죽음 앞에 사절단을 조문으로 암몬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사실 그게 문상 보내는 것이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지금 다윗은 영토를 정복해야 할 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땅을 차지하는 것,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적이 약점을 보이거나 뭔가 승리할 수 있는 허점이 보이게 되어지면 집요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함이 상식적이고 지혜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조문단을 보내는데, 이유가 이전에 나하스에게 받았던 성경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는 사소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혜로 기억하고 그 은혜를 내가 받았기에 모든 것을 멈추고 조문단을 보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다윗의 위대한 신앙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다윗의 위대한 신앙의 태도

1.하나님의 싸움과 나의 싸움을 구별하여 내 싸움에 집중하기.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전쟁으로부터 내가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전쟁의 주인이다. 다윗은 그것을 철저하게 몸으로 지켰던 사람이다. 곰과 양떼를 지켰던 그 시절부터 시작해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모든 과정까지 다윗은 의자할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전쟁에 하나님이 주인되셔야 한다는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가셔야지만이 된다는 것, 힘과 능력과 승리의 원동력은 오직 내 하나인 한 분 밖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은 언제나 대단한 무기와 뛰어난 병기를 찾지도 않았고, 그것을 구하거나 입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 때문이서 그렇다. 내가 개입해서 이렇게 하면 이기고 저렇게 하면 승리할 것이다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본인이 개입하면 내 힘으로 되어지면 패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싸움은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나는 내가 싸워야 할 그 일, 내 해야할 일에 집중하겠다는 생각한 사림이 바로 다윗이었다.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서 쓰임을 위해서 거룩한 도구로써 자기를 만들기 위한 싸움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좋은 도구로 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집중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그래서 다윗은 어떤 싸움에서도 자기 자신에만 집중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적국이 공격을 해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그 절호의 기회를 내려놓고 어쩌면 왕으로서 멋지게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욕심을 내려놓고 사절단을 만들어서 그들은 보낸다.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던 그 은혜를 기억하여 집중하며 승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윗은 자기 욕심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때 언제나 패베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늘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거창하게 이야기 하며 계획하는 다윗은 그럴 때마다 졌다. 인구조사나, 우리아 아내를 범했을 때, 다윗은 번번이 패배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문의 자기에게 허락된 은혜에 기억하는 것,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승리함을 알았다.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자기싸움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힘이 생기면 그래서 이전에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잘 모른다. 내가 잘 되면 내가 잘해서 그러는 줄 안다. 그래서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그 은혜를 잊는다. 우리의 죄 된 인간의 본성이다. 다윗의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성경조차 기억하지 않는 그 작은 호의, 자기가 힘들었을 때에 자기에게 베풀어 주었던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조문단을 보내는 그 다윗에 모습을 통해서 자기의 싸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통해서 베풀었던 은혜이든, 사람을 통해 받았던 그 은혜이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거기에 집중했던 이 다윗의 모습이 위대한 신앙의 사람으로 서 갔던 다윗의 핵심 가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신앙이란 대단한 결과와 업적이 나타나고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정말 위대한 신앙으로 가는 것이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바로 위대한 사람이며 보답의 길이다. 그 은혜의 통로가 되었던 사람을 잊어버리고 사람들을 하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싸움에 어떤 사람을 사용하는가? 자기 싸움에 승리한 사람을 사용한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만이 드러난 준비된 사람으로 된 것만이 거룩한 실천이다. 자기 싸움에 승리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사람을 사용하는 줄 믿는다. 하나님의 사람은 호의와 친절과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을 중심 가치를 놓고 한 걸음 씩 옮겨가는 자이다. 그이 신앙의 모습은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소중함 예의로 대하는 모습이다. 다윗이 조문단을 보내고 나니 그 암몬의 새로운 신하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핵심은 다윗이 조문단을 보낸 것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호의를 생각해서 아니고 저들이 자기 나라를 염탐하고 정탐하러 왔다고 말해주며 믿지 말하고 한다. 그래서 하눈이 사절단을 잡아다가 이렇게 하고 있다. 본문 4절에 보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서 수염을 자르고 의복을 자르고 엉덩이를 들쳐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를 보면 사절단은 다윗에게 한 짓이나 다름없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수치와 모욕을 했다. 다윗이 이 내용을 듣고 어떠했겠는가? 보복하고 싶을 것이다. 험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복수를 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몬을 정리하고 나라의 자존심을 찾겠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가지고 전쟁의 명분을 삼을 수도 있었는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5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부끄럽게 하도록 하지 않고,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고 한다. 오히려 상처를 입었던 자기의 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만져주는 것을 최고로 먼저 해준다. 엉덩이를 드러나는 수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사절단의 상처를 알고서, 참고 상처받은 자들을 여리고에 모든 것을 제공해 주고, 휴식을 취하게 한다. 수염이 자라고 치유되기까지 있다가 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함부러 여기지 않고 무례히 하지 않는다. 큰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우선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내가 받은 호의와 친절을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


다윗의 위대한 신앙의 태도

2.세상 방법이 아닌 하나님과 연합하기.

6절에 하눈이 상황파악이 된다. 하눈이 해결책을 내놓는데, 은 천 달란트와 병거와 마병과 영병을 가지고 해결하려 한다.

첫째 -잘못된 것은 다윗에게 찾아가서 직접 이야기와 사과를 해야 했다. 사과가 전혀 없었다.

둘째 -잘못된 것은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전혀 상관없는 아람을 끌어 들여서 그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방식이 잘못 되었다. 지금 세상에서 발생하는 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방식을 알지 못한 문제 해결 방식은 딱 두 가지이다. 책임해피와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니까 문제 해결 방법은 세상은 사람으로 해결하려 한다. 세상의 가치를 힘과 돈만 있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하눈과 세상이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러면 힘과 돈에 이런 것과 맞서는 다윗의 방법은 역대상 19:12-13절이다. 지금 암몬은 아람과 다윗에게 맞서는 상황이다. 그런데 암몬과 아람군과 맞서고 있는 자는 요압과 아비새얐다. 요압과 아비새가 전장을 지키는 자였다. 실질적으로는 다윗이 행하는 일이기에 생각과 방향대로 모든 것을 수행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비새와 요압의 고백은 무엇인가? 서로 돕자고 한다. 암몬과 아람의 사이에 낀 요압과 아비새는 하나님만 계시면 된다고 한다. 다윗을 대표하는 요압과 아비새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을 유지하는 자들이기에 하나님과 연합된 자이기에, 어떻게든 하나님과만 연합되고,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 승리함을 믿는다. 그렇게 살면 내가 다 세상의 방법 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하나가 되면 반드시 이기게 하실 것이다. 코로나 바리러스로 인생에 지나가고 있는 이때에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정말 마음먹으시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멈추시게 하셨다. 모든 것을 스톱하게 하실 수도 있다. 우리에게 모두에게 요청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과 연합하는 것을 보시고 멈추어 나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세상과 연합함을 버리고 나하고만 연합하여 믿어서 우리를 바라보기를 바라신다. 지금 이 시간을 의미 없이 지나가면 안 되며 하나님의 방법만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생각하는 시간이 되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무언가 대단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면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절며하게 포장하지 말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 과정이 지나가길 바란다. 다윗의 이 놀라운 핵심 가치와 태도가 우리의 뼈에 새겨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뭔가 내 삶이 힘들어도 결과가 없어도 거리가 없어도 안 될 때 어떤가? 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내 싸움에 집중하고, 나를 선대해 주었던 사람에게 갚아주기를 바란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위로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눈에 보이는 믿음의 결과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나는 내 싸움만 집중하자.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기억하여 그들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허물을 덮어주고 약점을 안아주고 눈물 닦아주는 자가 되길 바란다. 이것이 쌓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실 것을 믿는다. 또한 주님과 더욱 가깝게 지내며 내 생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분별력으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위대한 결과는 나타내지 않아도, 위대한 신앙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길 바란다.

 

요약

다윗의 순수한 의도를 오해한 하눈이 조문 사절단을 모욕하고 돌려보낸다. 하눈과 암몬 자손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나하스의 호의에 대해 하눈이 이를 수치와 모욕으로 갚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되면 억울함을 느낄 수 있고, 낙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이 조문 사절단을 여리고로 보내 시간을 갖게 하며 끝까지 주님의 때를 기다렸듯이, 요압과 아비새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끝까지 암몬과 아람 연합군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했듯이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행해야 할 선을 행하는 것, 베풀어야 할 호의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정성껏 갚아서 주님의 뜻을 바라보라. 의도치 않은 수치와 모욕이 있다 해도, 호의와 은혜에 대해 생각하는 결과가 다르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더욱 더 힘내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코로나 바리러스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이때에 더욱 주님과 가까이 하여 그리고 당연히 그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온전히 그 분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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