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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루터기(stump)' 예수님의 제자의 삶~

☆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15일)"다윗의 간구에 주께서 행하신 일"(권진우 부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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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훈련-사역훈련 -주일예배-독후감

2021. 9. 15.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15일)

제목: "다윗의 간구에 주께서 행하신 일"
말씀: 시편 138:1-3
설교자: 권진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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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8:1-3,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수요 저녁기도회에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을 주 안에서 환영하고 축복한다. 주님 함께 하셔서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허락해 주시길 소망한다.
 
오늘 함께 읽은 시편 138편은 다윗이 지은 시이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라고 소개 되어 있지만 어떤 배경과 상황 속에서 지은 시인지는 사실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오늘 본문부터 시편 145편까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다윗의 시의 내용과 흐름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계속되는 전쟁에서 승리하며 다윗왕가를 견고히 하며 지은 시일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예상을 한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에 고백을 하며 이어서 2절부터 감사의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먼저 다윗은 2절 중반에서 주의 인자(仁慈)하심과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인자’라는 것은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 하고, 성실은 늘 변함이 없으시고 한결 같으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애(生涯) 가운데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시고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것을 띄엄 띄엄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만 베푸신 아니라 다윗의 전 생애를 통해서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자비와 사랑을 자신의 생애 가운데 베풀어 주셨음을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절 말미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다윗의 생애에 나타내셨는가가 나오고 있다. 2절 말미를 보면,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편 138:2,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조금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다행히 아래에 이 말씀에 대한 부가적은 난해주 설명이 나와 있다. 이 2절의 말씀을 주의 말씀을 크게 하셨음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 우리가 구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부터 몇 가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등 여러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을 다 종합해보면 결국은 무엇으로 요약이 되냐면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으로 요약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만 ‘나는 능력과 자비의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그냥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실제 그분의 이름대로 행하셨다는 것이다. 다윗이 그 생애를 통해서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을 실제 경험하였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에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3절까지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편 138:3,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크고 다윗의 생애 가운데 행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들을 일방적으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간구((懇求)를 들으시고 행하셨다. 다윗은 하나님께선 나를 위해 일하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것에 더욱 감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간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交際)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구에 응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에게 마음을 쏟으셨다라는 것을 의한다. 다윗은 사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도 존중받지 못하였던 인물이었다. 사무엘이 사울 왕 이후에 왕을 될 자를 찾아 이새의 집에 찾아와서 형제를 불러 모았을 때, 다윗은 그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들에 나가 양을 돌보는 다윗에게 그의 가족들 중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이 아닌 가족들에게조차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인물이 바로 다윗인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최상의 답을 주신다는 이 사실이 다윗에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겠는가? 가족들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해서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소외 되었던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을 쏟으시고,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것처럼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셨다는 사실이 다윗에게는 최고의 감사의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 사무엘서에 나오는 다윗의 생애를 보면 다윗은 매순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매순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참으로 많은 대화가 등장한다. 다윗은 이러한 신앙경험을 통해서 간구할 때 주께서 행하신 일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I. 주께서 응답(應答)하셨다.
 
-기도를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고 기도들 하는 것은 가장 사실 중요한 이유이다. 다윗의 여정(旅程)을 봐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뢸 때, 응답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특별히 다윗을 질투하는 사울 왕 여정 속에서 피해야 할 길을 여시고 안전한 길,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응답의 손길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코로나로 어려움 속에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주님께 우리가 더욱 간구하고 더욱 응답을 사모하게 된다. 저는 작년과 올해 전도폭발을 섬기면서 공동체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놀랍게 응답해 주시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바이러스로 이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장 어려운 사역가운데 우리가 뽑으라면 아마도 전도사역을 뽑을 수가 있을 것이다. 전도는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 코로나 상황에서 대면해서 만난다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전도대상자에게 낯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리더 분들과 교사 분들이 기도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순종해서 훈련의 결정을 내리고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기에 화상과 줌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비 대면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주워진 역할에 맞추어서 화상 전도를 긴급히 우리가 도입하긴 했지만 처음해보는 이 화상 전도에 과연 이 훈련에 참여하는 훈련생들이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까를, 복음을 들어야 하는 전도대상자들이 흔쾌히 이 온라인이라는 전도의 현장에 참여를 잘 할지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우려를 좀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을 하는 일에 릴레이로 기도하면서 섬기시는 분들과 훈련생들까지 함께 간구하고 기도로 준비했다. 그런데 이 코로나 상황에 이 훈련의 전도폭발의 과정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훈련을 받으시는 분들이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지방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심지어 해외에 있는 지인까지 복음을 전하고 결신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어떤 훈련생은 부산에 동생이 살고 있는데,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복음을 전할 길을 이제나 저제나 찾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명절 같은 때에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만날 기회가 없다보니까 시간을 두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그런데 이 화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니까, 언제나 자기가 동생을 초대해서 자기 동생과 교제할 수 있는 일이 열린 것이다. 화상으로 만나자고 하고 서로 간에 더욱 형제간의 친밀감과 따뜻함을 다진 다음에 어느 순간 충분이 준비하고 화상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함께 결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훈련생은 아부다비인 중동에 살고 있는 친형과 화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결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 지방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서 결신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훈련생 가운데 퍼지면서 훈련이 어떻게 되겠는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슴이 설레이고 역동적으로 훈련이 될 수 있었고, 대면 적으로 훈련이 살아나는 은혜도 더 받게 되었다. 마스크 쓱 3-4명 나가서 카페에서 만나고 심지어는 스터디카페에서 돈 내고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르리고 올해도 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전도폭발에 참여해서 더 열심히 현장 전도에 나아가는 이런 감사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라는 가장 어려움 속에서도 전도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어떤 노하우와 전략이 좋아서도 아니다. 공동체 기도 하나 가운데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믿는다. 또한 사랑의교회 전체가 코로나 위축되지 않고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예배와 기도로 역동성을 유지해 나갔기에 이런 전도 사역도 그 영성에 맞물려서 힘 있게 전도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러한 새 힘의 응답의 열매가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 늘 함께 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이 기도의 응답과 관련해서 우리가 중요한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하나 보자.


*마태복음 7:7-11,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주신 산상수훈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르리라 하신다. 그러면 받고 찾고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9절 이하로 한 가지 이유가 나오고 있다.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이다. 자녀가 달라고 하는데, 지금 이 말씀을 보면 무엇과 무엇이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나오는지 잘 보라. 떡과 생선, 돌과 뱀, 이것이 상반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떡과 생선은 주시고, 돌과 뱀은 안 주시는 것으로 나온다. 구하는 자녀에게 떡과 생선을 주시지 돌과 뱀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비유적인 이 단어인 떡과 생선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들을 먹이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떡과 생선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식이었다. 즉 떡과 생선은 그것을 섭취하면 우리 몸을 건가하게 하고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이와 상반된 돌과 뱀은 어떠한가? 이것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돌과 뱀은 먹으면 몸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생명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우리 영혼과 삶을 건강하게 하고 복되게 하고 생명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병들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돌과 뱀 같은 것이라면 절대 응답을 안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12절 중반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냐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 주신다는 적이 없다. 떡과 생선과 같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복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방향으로만 응답하시지 아무리 구해도 돌과 뱀 같은 것은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것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 받을 수 있도록 영혼의 떡과 생선에 해당하는 것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함께 병행하여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참으로 우리 영혼의 삶에 떡과 생선과 같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구하는 것이 나에게 떡과 생선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
 
흔히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칼이 어른에 손에 들어가면 다시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되지만, 어린아이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과 타인을 헤치게 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한다. 같은 물건, 같은 칼이라도, 같은 기도의 내용이라도 내가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에 따라서 영적인 떡과 생선이 될 수 있고, 돌과 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던지 우리 영혼이 떡과 생선이 되기 위해서 온전함을 향한 신앙의 경주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응답받는 좋은 비결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피는 인물인 다윗도 어떠한가? 사무엘에게서 기름 받은 후에 사울로 받는 고난, 그 왕이 되게까지 그 중간에 어떤 일이 있냐면, 사울로부터 고난이 있는데, 이 고난이 없이 곧바로 왕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다윗은 이 사울과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납작 엎드려서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 묻고 답으로도 움직이는 더욱 온전하게 하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러한 믿음의 성숙의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다윗의 왕의 자리는 사울과 같이 자신과 이스라엘을 망치게 하는 돌과 뱀 같은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것으로 응답 받기 위해서는 떡과 생선에 해당하는 것을 분별해서 구해야 하고 무엇을 주시던지 내 영혼에 떡과 생선과 같은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좋은 것을 누가복음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다.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예수님이 성령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은 그 자체로 성령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응답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런 분이시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가 참으로 구해야 하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이것을 꼭 손에 쥐어야 하고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기도하고 말씀을 읽다보면, 성령님께서 그것을 반대로 ‘그것을 내려놓아라.’하실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A라는 것을 구하여야 할 때, 성령님께서 B라는 것을 구하게 하신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돌과 뱀이 아니라 떡과 생선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성숙시켜 나가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신을 온전케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를 계속해서 성화시켜 나가신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 영혼과 삶에 떡과 생선과 같이 양식이 되는 것을 구하여서 우리는 풍성한 응답의 열매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다윗이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다윗의 영혼에 힘을 주어서 그를 강하게 하셨다. 기도를 통해 누리는 큰 유익이다.

 
II. 주께서 그를 강하게 하셨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할 때. 영혼의 힘을 얻는다. 다윗은 그의 영혼에 약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사방의 원인이 많았다. 사울이 그랬었고, 블레셋이 어려움을 주었고, 심지어는 그의 자녀들이 다윗의 영혼을 무너지게 할 때가 있었다. 멀리서 우리가 찾지 않아도 오늘 보는 이 시편 내에 나오는 다윗의 그 수많은 시편들을 보면, 그 다윗이 대적들로 인해서 영혼이 떨리고 연약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우리는 시편을 통해서 목격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말씀대로 겨자씨와 같이 초라했던 다윗은 기도해서 영혼에 힘을 얻고 다시 강한 용사인 큰 나무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어떠한 영혼이 일어나서 우리가 힘을 얻고 우리가 강하게 되는가?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바울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권능 안에서,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멀리 계시는 하나님께 그냥 입술로 아뢰는 것으로 그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그 통로, 그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연약해진 우리 영혼은 강하여지게 되고, 죄를 이길 내적인 힘을 얻게 되면 다른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까지 우리가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를 해 나아가야 한다. 만일 기도하는 목적이 응답뿐이라면, 기도를 그냥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응답만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목적이라면,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이후에 잠시 쉴 수도 있다. 쉬었다가 이런 응답받은 일이 생겼다고 또다시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악화시키고 약화시키는 이 죄의 유혹과 위협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미혹들이 주위에 너무도 많고 넘어뜨리려고 한다. 당장 가깝게는 이 휴대폰이 그러한 유혹의 통로가 될 때가 있지 않는가? 또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직장과 세상 가운데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다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 한마디도 감정을 거스르게 말하고 일부러 마음에 파고드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그 말이 화살같이 박혀서 하루 종일 마음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 영혼을 악화시킨다. 이처럼 다양한 죄의 유혹들과 어려움들이 쉬지 않고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쉼 없는 기도와 함께 입술로만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쏟는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하셔서 성령님이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어떤 문제이든 자녀문제 어떤 삶의 문제도 응답받을 뿐 아니라 이 기도하는 시간에 열렬히 사모하는 시간에 성령 하나님이 내 영혼에 임재 하셔서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세상을 초월하는 성령의 힘과 나를 담대하게 하시고 충만케 하시고 강하게 하시길 기도해야 한다. 이 은혜를 그 자리에서 응답받고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다윗이 경험한 기도의 놀라운 유익이었다. 그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영혼에 유익을 위한 기도를 위해서는 마음을 쏟는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평생 이어지는 지속적인 기도는 어떤 의도의 의무감의 지속적인 기도를 이어갈 수 없다. 뭔가를 우리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일에 대한 기쁨이 있어야 하고 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은혜가 있어야 하듯이 그런데 의무감으로 한다면 하다가 중단되기가 쉽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의무감으로 하면 중단되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무감을 넘어 친밀함으로 가야한다.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친밀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기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로마서 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주 연약할 때, 경건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된 사건이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가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나타난 일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는가?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그 사랑을 언제 나타내셨다고 하는가? 우리가 아직 경건하지 않을 때라고 하고,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라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만한 어떠한 이유가 없고 어떤 건더기가 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호감을 갖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왜 그런가? 그렇게 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하고 호감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뭐라고 말 하냐면, ‘매력에 끌린다.’ 라고 이야기 한다. 매력이 있기에 사랑하고 호감을 갖는 것이다. 그 매력이 다양할 것이다. 성격이 좋아서도 그렇고, 성실함에, 외모에 대해서, 목소리가 좋아서도 그렇다. 이처럼 누군가의 사랑을 갖고 호감이 갈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우리는 어떤 상태였다고 말하는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상태를 본다면 매력은커녕 한 번 만나면 거부감이 들어서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사랑할만한 이유가 없고 끌릴만한 매력이라곤 전혀 없는데, 그러한 우리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냐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셔서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아들의 생명까지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놀랍기도 해서 상대방이 의롭고 선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목숨을 줄 정도로 사랑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만 갖추고 있는 우리를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실 수가 있는가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를 위한 사랑,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우리는 찾을 길이 없다. 어떤 이유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자신감 있게 우리가 근거를 댈 것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존재 자체로 사랑하셨다는 것 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재자체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이 이상 우리를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 편에 서서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는 그저 죄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먼저 어떤 변화가 일어나냐면,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결같은 우리가 좀 더 편안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만날 때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 어떤 내용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들으실까? 해여 하나님이 어긋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노하시고 불쾌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심지어 기도에 대한 부담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자체를 기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가 서투르고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해서 기도의 내용이 성숙하지 못하더라도 그로인해서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절대 부담스럽게 가질 필요는 없다. 일단 하나님께 우리가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서투르고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나아가겠는 자체만으로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신다. 기꺼이 우리를 품에 안아주심을 기억하라. 기도의 내용이 성숙하고 좋은 기도라는 것은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점차 다듬어 시간을 두고 교정해 나가신다. 중요한 것은 그게 좀 미성숙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감을 두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기에 이미 내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갖고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셨고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그러니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어린 아이가 오는 것을 막지 말라신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것이다. 추석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품에 안기면서 안아주신다. 사랑스럽게 손주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어린이 집에서 어떻고 누가 유치원에서 있던 이야기를 한다. 어려서 말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철이 없다. 품에 안고 있다가 그렇다고 손주를 품에서 밀어내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없다. 말이 서투르고 내용이 앞뒤가 안 맞아도 할머니 할아버지 귀에 대고 열심히 소곤대는 자체로 마음이 살살 녹아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그 존재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떠한 말로 준비하여서 잘 꾸며서 이야기 한들 그 수준과 격에 맞는 기도로 우리가 올려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예전에 그 기도가 맞는 것 같았는데 참으로 철없고 부족했던 기도였다는 것을 느낄 때도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러나 중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을 때, 우리는 친밀감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나아가게 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속적인 기도는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을 힘있고 강하게 하실 통로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그가 간구할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셨다. 그의 영혼에 떡과 생선과 같은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에 힘을 주셨다. 온갖 유혹과 위협을 초월하고 비상하는 영혼의 강함을 허락해 주셨다. 부디 우리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쏟는 기도를 통해서 응답의 은혜, 성령 안에서 영혼이 강하고 담대하여 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라며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경험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요약
우리의 간구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혼의 새 힘을 공급하시고 높이 비상하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자녀 된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며, 헛된 것을 구하지 않고 영혼의 참된 것인 떡과 생선을 구하며 응답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또한 겨자씨와 같이 연약한 것이 우리인 것을 깨달아서 간구하며 기도하여 영혼에 힘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경험하고 세상에 주님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가야 한다.
 
담임 목사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찬양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수요일은 가만히 있는데 오늘 조용기 목사님의 빈소에 다녀왔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할 목사님이 많이 계시지만, 우리 옥한흠 목사님께서 제자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글로벌화 되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셨지만, 조용기 목사님도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조용기 목사님을 다른 나라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잘 안다. 마음속에 조용기 목사님은 K페이스이다. K 팝 등이 있는데, 그 김장한 목사님 등, 다 K페이스이다. 우리 성도님들도 전 세계 앞에 K성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회가 세계 어디와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헌신 자본이기에 K성도들이다. 저녁에 나와서 기도하고 마음을 모은 우리 성도는 K성도들이다. 그리고 내년 3월 9일 대선이 5개월 남았는데 우리가 새벽예배와 수요기도회를 통해서 주일은 당연하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서 세계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는 기회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가슴에 간절한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는 겨자씨인데 하나님께서 겨자씨 찬스를 갖게 해달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살려주셨으니 이제 우리는 나라를 살려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중직 자들과 토비새와 새벽예배와 교회를 살려 주신 것처럼 나라를 살려주시길 기도를 힘 있게 엎드려 하여야 한다. ‘나라를 살리게 하시고 이 조국을 살려달라’고 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 조용기 목사님도 오셔서 말씀을 전했다. 성령운동과 함께 갈 때에 K미션이 되어서 조용기 목사님의 강점을 이어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지금 시무하시는 이용훈 목사님의 기도가 간절하게 나왔다. 마음을 같이하여 한국교회가 다 잘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인자하고 성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진실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전심으로'라는 어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은 온 마음을 다 바쳐 심령에 감동받은 것을 그대로 입술로 옮겨 찬양하는 일에 힘썼다.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여기서 '신들 앞'이라 함은 모든 방백들과 재판관, 권세 자 앞이라는 뜻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이것은 제사장 한하여 성전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을 뿐 백성들은 가까운 곳에서 전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나타내 준다. 물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호와의 전을 향하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전이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앞에 찬양을 돌려야 한다. 또한 하늘도 여호와의 거룩한 전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늘을 향해 우러러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간구해야 한다. 다윗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여호와의 위로하심을 인하여 찬양을 돌렸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여기서 말씀이란 진실하신 여호와의 언약을 뜻한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존재를 분명히 제시해 주는 것은 말씀이다. 뛰어난 주석가 몇몇 사람은 말씀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에 과한 복음이야말로 예전에 조상들을 깨우쳐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고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기사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다윗은 자기가 한 대 고난 중에 있었던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주께서...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만약에 하나님의 장려하심을 받아 자기의 영혼이 무거운 짐을 지고도 넉넉히 견디며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어려울 때에도 옳은 길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여호와께0서 자신이 기도한 것을 들으사 응답하셨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힘을 주사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며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인내로 열매를 기다리게 하셨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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