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기야(hyacool) ◈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루터기(stump)' 예수님의 제자의 삶~

☆ 주일예배(주후 2022년 1월 2일)''소원, 부흥, 회개는 같이 간다''(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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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훈련-사역훈련 -주일예배-독후감

2022. 1. 2.



주일예배(주후 2022년 1월 2일)-새 판짜기의 말씀 아홉 번째.

제목: ''소원, 부흥, 회개는 같이 간다''
말씀: 누가복음 11:29~30, 요나 3:4~10
기도: 홍진기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찬양인도: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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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29~30, 요나 3:4~10)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요나 3:4~10,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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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2022년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심을 찬양한다. 그래서 선물로 주신 것을 예배한다는 것이 목이메일 정도로 감사하다. 새초부터 새 일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이 함께하셔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응답해주실 줄 믿는다.
 
다윗이 고백한 대로 시편 20:4절에 보면
 
시편 20:4,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댜로 되었으면 좋겠고 새해 목회자로서의 소원이 있다면 물이 바다 덮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가정 민족, 우리 공동체에게 충만하기를 바란다.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정말 확인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가치 있는 일도 그냥 되는 일이 없었고 누군가가 기도하고 마음에 소원하고 마음에 기대하고 정말 집중할 때, 누군가가 그런 기도하고 매어 달리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다. 바울은 빌립보서 20:23절에 말씀한다.
 
*빌립보서 2:13,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히 새해가 되면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신다. 어떤 소원을 주실지 오늘 이 예배와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참 귀한 일이며 영적으로 수지맞는 일이다.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 희한하게도 내 개인의 욕심이나 야망이나 내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 되면 우리는 평생을 흐트려 트림 없이 전심으로 전력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곁길로 나갔다가도 돌아오게 되고 평생을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이 동일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집중할 수 있다. 저는 첫 예배인데 저의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소원하는 것이고 이 부흥을 위한 필요하면 하나님이 회개도 주시길 원한다. 우리의 마음이 순전해지고 하나님의 마음의 부흥을 체험하는 이것이야말로 같이 가는 것인데 그리스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이 잡아주시는 부흥과 그다음에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회개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누가복음 11:29~30,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요나에 대한 조커가 많다. 요나의 아들이 바요나 시몬아, 했듯이 이것은 아재 개그인데 요나의 아들은 베드로이다. ㅎㅎ 알 사람은 안다. 요나의 표적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면, 결론은 요나서는 4장 11절까지 있다. 갑자기 마친다. 그러면 4장 12절을 써야 한다. 어떻게 우리가 쓰게 될지, 사도행전도 28장 29장을 써야 한다. 사도행전 29장을 써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소원과 부흥과 회개를 통하여 요나서 4장 12절을 쓰기를 바란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 밖에 말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왜 그러신가?
 
표적과 기적은 다르다. 기적은 미라클이다. 기적은 그 사건이나 결과가 나오는데 표적은 기적보다 더 깊이가 있다. 표적은 사인이다. 표적이 의미하는 배경이 되는 것, 중요히 포함하고 있는 내용들, 또 표적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요나서 전체를 통해서 특별히 요나에 대해서 해석을 하시고 말씀을 하시는데, 니느웨가 주님 앞에 들어온 그것이 오늘 21세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려운 펜데믹 속에서 또 이 4차 산업인 메타버스, 인공지능 이러한 시대에도 오늘도 동일하게 요나의 표적은 역사한다고 하신다.
 
니느웨 성이란 곳이 있었는데 이 성에서 요나가 회개를 외친다. 회개를 외친 다음에 보니 요나서에 보면 하루아침에 니느웨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온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요나서 11장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를 보자.
 
*요나 4:11,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에 좌우를 분변하지 못한다는 하는 것은 아동들이다. 7세 이하가 십이 만 명이 있다는 것이며 대체로 ⅕이 되는데 전체가 60만 명 정도가 되는데 크게 백만 명이 되고 그 큰 성음이 하루아침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놀라운 일이다. 소위 집단 회심, 집단 부흥, 회개가 일어나고 집단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이 니느웨에 집단으로 전체가 회개하는 것은 빌리그레엄 목사님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고, 베드로는 설교할 때 3-5천 명이 회개했다는 것으로 알지만, 이것은 60만 명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서울이 돌아온다. 대구가 돌아온다. 광주가 돌아온다. 런던, 도쿄, 싱가폴, 등이 돌아온다는 이런 뜻이다. 도쿄시민들이 다 깨어지고 하나님이 다 깨어지고 믿었다는 것이고,서울 시민이 다 깨어지고 믿었다는 것이며, 인천 시민이 다 깨어지고 것이다. 대단한 역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I. 한 도시가 기적처럼 다 돌아오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각성하고 이것이 21세기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 4차산업혁명, 메타버스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요나서 3:2,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서 3:4,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온다. 집단 회심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예언자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왜 하나님이 왜 심판하려고 하시는지, 그것을 지적하고 나름대로 회개하라고 촉구하는데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별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세게 40일이 되면 성이 무너진다고 성의 없이 짧게 외친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과거의 소돔성과는 비교가 안 된다. 천사가 와서 소돔성이 무너진다고 했을 때는 롯의 예비 사위들조차도 농담으로 여기고 별로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에 요나서 1장을 보니까
 
*요나 1:2,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다고 하신다. 니느웨 성이 대단해서 소돔 성처럼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그냥 요나가 간단하게 다섯 단어를 가지고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그것 하나를 듣고 모든 니느웨 사람들이 전체 도시에 사람들이 회심을 하게 된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경청한다. 오늘 읽은 요나서 4장 9절까지 그 고대 근동시대에 가장 강력하고 무자비한 니느웨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럴 때에,
 
*요나 13:10.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뜻을 돌이키다는 단어는 어떤 번역본은 하나님이 회개하셨다고 씌였다.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을 바꾸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11:32,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집단회심이다. 온 도시가 전무후무한 그러한 요나의 메시지를 통하여 성의도 없이 선포했는데, 그런일이 발생했다. 도시가 돌아온 것이다.
 
II. 우리는 진실로 부흥과 회개를 원하고 있는가?

-요나를 통하여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니느웨 성읍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 회개를 받으시고 전체에게 재앙를 거두시니 요나의 반응인 요나 4장을 보면,
 
*요나4:1,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는 성깔을 하나님께 부린 것이다.
 
*요나4:2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하나님 앞에 성질부리고 하나님 앞에 티징하고 하나님 앞에 비아냥거린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겁 없이 화를 낸 것이다. 이게 이해가 가지만 이스라엘과 니느웨는 거의 원수사이이다. 우리와 누구하고 원수일때와 비교가 안 된다. 얼마나 니느웨 사람들이 이 앗수르(니느웨) 제국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하고 못되게 굴었는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몸을 뚫어서 끌고 가기도 했다. 너무나 잔인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원수인 것이다. 요나가 원수 같은 니느웨 성이 무너진다고 하니까 속으로 할렐루야~!!! 외친 것이다. 속이 너무 기뻤다. 그러나 하나님이 니느웨를 건지신다고 하니 분노한 것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를 다 했지만 앗수르에 대한 생각이 안 바뀌었다. 요나가 뒤끝 장렬이었다.
 
요나가 집단회심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열 받아 있으니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영적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다. 어떤 조치냐면 사흘 길을 가야하는 큰 도시인데 하루 만에 슬쩍 그냥 성의 없이 40일이 지나면 무너지리라. 이야기 하면서 40일을 기다린다고 언덕위에 올라가서 니느웨 성이 무너지는지 안 무너지는지를 구경하려고 언덕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그늘이 생기게 해서 요나를 뜨거운 태양빛을 피하게 하신다.
 
*요나 4:6,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요나가 박 넝쿨이 가려주니 기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음날에 박 넝쿨을 벌레에게 갉아먹게 하신다. 박 넝쿨이 시들어서 죽었다. 그래서 요나가 낙담해가지고 요나 4장 8절에 말한다.
 
*요나 4:8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요나가 자기를 죽게 해달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땡깡 부리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부부싸움 할 때도 그런 말을 조심해야 한다.
 
*요나 4:9,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말 본세 하고는 진짜, 선지자가 되어가지고 화가 나서 죽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저항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야 이녀석아 하신다.
 
*요나 4:10~11,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런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새해에 어떤 도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속이 좁다. 아닌 것 같지만 다 있다. 우리의 마음의 인격의 한 부분에는 간장 종지 같은 것이 있다. 거룩한 탕평이 없다. 그러니까 요나의 마음속에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올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리 속 좁음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킬 때, 하나님이 부흥코자 하실 때, 하나님이 소원을 주실 때, 인간의 어떤 망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주실 때는 반드시 이 속 좁음 해결해 주신다. 이 속 좁음을 넓혀주시길 원하시다. 마음을 먼저 넓히신다. 부부싸움을 왜 하는가? 속이 좁아서이다. 살다가 몇 십 년 지나서 싸우는 과정에서 할 말 안 할 말 다하면서 싸운다. 온갖 이야기를 다한다. 속이 좁아진 것이다. 속 좁음이 죄의 근본 뿌리이다. 속 좁음은 자기 중심선과 결탁할 때에 그게 결합되면 흉기가 된다. 그 흉기로 나도 찌르고 공동체도 찌르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 저항하고 그러니까 오죽하면 바울이 고린도후서 6장에 “너희도 제발 좀 마음을 넓히라.” 한다. 우리도 속 좁음이 넓어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는 줄 아는가? 시편 기자가 시편 119:32절에 나온다.
 
*시편 119:32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내 마음이 넓어지면 오늘 약속하신 부흥과 주님이 약속하신 사명의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의 다짐을 이렇게 정리를 한다. 어떤 다짐인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넓히시면서 하나님은 한 번 비전과 사명을 맡긴 자에게는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추적하신다. 오늘 요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엉터리 고집쟁이 요나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니까 앗수르에 복음 전하는 것이 싫어서 다시스로 간 것이다. 지금 스페인쪽으로 가벼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폭풍을 보내가지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가 있게 되는데 그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를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했지만 앗수에 대해선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끝까지 찾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신다. 여러분 요나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 아이돌들처럼 잘 생겼는가? 유대 민족인데 요나보다 더 잘나고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지 않았겠는가? 왜 하나님은 요나를 선택하셨는가? 여기에 우리의 소원과 부흥과 회개가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처럼 일단 사명을 맡기신 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사명을 맡긴 자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지신다. 끝까지 사랑하신다. 우리가 이 예배에 나와서 신년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절대로 ,,, 요나의 아들이 베드로이다.(아재개그)
 
여러분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베드로가 얼마나 실수를 많이했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년이나 따라 다니면서 은혜를 받았지만 결국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죄 없는 스승을 모른다고 그러고 자기 목숨과 생명을 건지겠다고 줄행랑을 친 비겁한 사람인데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계속 추적하시고 계속 끝까지 사랑하신다. 중요한 방향을 잡는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회개라고 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조반을 마련하시고 사랑을 물으시고 베드로의 마음속에 다시 사랑이 회복되도록 하신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마음속에 사랑의 힘, 사랑의 능력, 사랑의 마음이 커지게 되어서 베드로의 마음속에 사랑이 부흥된 것이다. 사랑의 부흥이 되니까 회개할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오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 회개하라고 하시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신다. 이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만 주님은 무조건 회개라고 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시고 끝까지 추적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것을 그것을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하시고 그 마음을 부흥시키시고 난 다음에 우리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주님 앞에 회개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저는 한국에 와서 수십 년 사역을 하면서 계속 듣는 소리가 한국교회가 회개하라, 뭐 누구누구 회개하라, 여러분 회개하라고 말한다고 회개가 되는가? 회개할 밑천이 없는데 회개가 되는가? 소위 잘나가고 똑똑한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부르짖는데 회개가 되는가? 그 회개를 할 만한 사랑의 부흥, 사명의 은혜, 마음이 넓어져야 회개를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회개를 할 만한 부흥, 사명의 부흥, 마음의 넓음의 부흥을 하나님이 주시길 소망한다. 마음이 부흥을 허락하시길 소망한다. 왜 그리 이것이 중요한가?


기독교 교리를 하나 말씀하겠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강력한 논쟁이 있었다. ‘텔라지오스’라고 하며 어거스틴과 동시대에 똑같이 태어났다. AD450년에 태어났다. 그런데
텔라지오스는 어릴 때부터 경건하게 하고 경건한 신앙을 지켰다. 반대로 어거스틴은 어릴 적 방탕을 했다.
-텔라지오스의 특징은 인간이 자유의지이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하여 더 경건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어거스틴의 특징은 자유의지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폭포수로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능력이 전혀 없다 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입장은 우리는 텔라지오스보다 어거스틴의 입장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우리의 속 좁음이 해결되려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부흥될 줄 믿는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귀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를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회복해야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흥될 때 회개가 될 줄 확신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부흥, 사명부흥, 그럴 때 우리의 회개가 부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적용을 두 가지로 하겠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분들, 우리 모두를 하나님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첫째는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도록 하신다.
-그 흔적은 요나를 위하여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요나를 위해 박 넝쿨을 예비하시고 요나를 위해 뜨거운 동풍도 예비하시고 작은 벌레도 예비하시고 우리 하나님은 유머러스하시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도 예비하시는 하나님, 일마다 때마다 예비하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는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영적인 센스가 필요하다. 영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요나가 잘못하고 문제가 있었어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를 영적인 센스가 요나는 있었다. 니느웨를 가라고 하시는데 다시스로 도망할 때에 그 배에 폭풍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자연의 한 현상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깨닫게 하시고 나 때문에 생긴 폭풍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생각하는 센스가 있었다. 2022년을 살아가면서 우리 주위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영적인 높낮이도 일어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께서 신적개입이 있음을 영적인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마다 부부 사에도 자녀들 간 관계에서도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날 때에 요나처럼 지축이 흔들리는 폭풍이 일어날 때에 이 폭풍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이며 나를 사명자로 추적하시고 나를 무장하도록 하나님이 집중하는 시간임을 영적으로 민감한 것을 요나는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이 한 해 동안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우리의 소원과 부흥, 회개가 같이 가길 바란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 된다
요나가 니느웨에 40일 지나면 니느웨가 망한다고 말하기 전에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삼켜져 있다가 나왔으니까 요나의 몸은 비린내가 나고 머리털도 빠졌을 것이다. 그것도 성의 없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했을 때, 어떻게 집단 회심이 일어나겠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물고기를 사용하실지 모른다. 다 모르지만 이 한 해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소망을 주시길 소원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니느웨의 부흥이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는 꿈을 꾸고 마음의 기대를 하고 집중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앗수르 제국에 위기가 있었다면 우리 대한민국에도 위기가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다. 대선을 앞에 놓고 별 일들이 있을 것이다. 경제, 정치, 환경, 남북관계, 수많은 위기가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척결해야 할 다섯 가지가 있다. 공산주의, 이단, 극단적 무슬림, 안티 기독교, 차별법, 이러한 것들을 막아야 할 것인 줄 믿는다. 이런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부흥이 없으면 소망이 없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부흥을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노 부흥 노 소망이다. 우리 가정이나 자녀교육이나 여기에 하나님의 부흥을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소망이 없다. 우리가 씨앗이 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다.
대한민국은 1907년에 평양부흥을 받았다. 이제 다시 한 번 평양 부흥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서울부흥으로 기대하면 왜 안 되겠는가? 평양부흥이 서울부흥이 되길 소원해야 한다. 이것은 니느웨 부흥의 연속선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니느웨의 부흥, 평양부흥, 서울부흥으로 그래서 서울 부흥이 원년이 되게 하셔서 2024년도 로잔기념에 서울이 부흥의 역사에 현장이 될 수 있기를 도우시길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큰 물고기, 작은 벌레도 쓰실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우리가 다시스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큰 물고기의 뱃속에 있는지, 아니면 니느웨에 있는지, 아니면 언덕위에 앉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경하는 자리에 있는지, 아니면 박 넝쿨 그늘에 앉아서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요나서는 4장 11절까지만 있다. 우리는 요나서를 12절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약
하나님이 나의 죄 가운데서도 나를 씻어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심을 믿고 나의 좁은 마음을 거룩한 은혜의 탕평이 되게 하셔서 넓혀주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사랑 가운데 부흥과 사명의 길로 집중하여 회개 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심을 깨달아서 의지하고 기대하며 사도행전 29장과 요나서 4장 12절을 써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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