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기야(hyacool) ◈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루터기(stump)' 예수님의 제자의 삶~

※ 소천 부고... 아름답게 가신 길...^^

댓글 9

♡ 나의 이야기

2012. 4. 13.

 

 

 

 
 
저희 시어머님 소천하셨습니다.  
2012년
4월12일 오후4시 부산  금정구 남산동 침례병원  
장례식장 5일장
 
해외 친척들, 장지문제로 5일장이 되었으며
 
월요일 발인입니다.
 
박응석여사님(82세)
 
삼우제 화요일(17일) 
 

향기야올림.
 
 
☆ 시부모님 묘...☆ 어머님, 아들...제 남편 귀하게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평안하소서!!!
 
 -시어머님 장례식장- 어머님 감사했습니다.^^
-조문객들이 보내주신 위로의 화한-... 
-가장 슬퍼하시는 막내누님 내외분-
- 집안분들 -... 
- 외삼촌 조문 -
-어머님의 손자들-... (김지연,성원,한솔,성욱이가 보임)
 
 
 
 
☆(선영)근처 자녀들이 삼우제(三虞祭)를 드리러 어머님 산소로 가는 길☆----- 경남 산청군 생초면...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이 고르지 못합니다.^^
--어머님,,,6남매 잘 길러주시고 한 번도 의 상한 일 없이 키워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명의 누님들 모두 은행출신), 큰시숙님(KT 상무), 신랑(롯데케미칼 이사), 서방님(롯데삼강-공장장 (이사))
 
 
 
※미국 애틀란타에서 돌아가신 할머님께 보내온 외손녀의 글...
 
 
할머니,
저 지혜입니다. 할머니.. 저 한국가기전 50일 남짓남았는데..
이리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못 뵈서..이 먼 이국 땅에서 돌아가면
할머니를 다시는 못 뵌다는 사실에 저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께서 열심히 운전하셔서 생초에 있는 할머니댁가면
언제나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반겨 주시던 할머니를
영영 이제 못 본다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저나 사촌들이 아직 어릴때 우리가족들은 할머니 중심으로 매년 가족 모임을 갖게 되었고
지리산 산장에 가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지요. 무더운 여름에 지리산 계곡에서 맛있는거 많이 먹고
물놀이를 즐기고 즐거운 담소도 나누고 하였지요.
그 자리에 할머니가 계셨기에 이 모든 즐거웠던 가족 모임이 가능했다고 매년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유학을 결정하였을때 물론 부모님께서도 많이 걱정을 하셨겠지만..
할머니께서 제 걱정을 제일 많이 해주셨지요..
제가 캐나다에 처음 갔다가 잠시 문제가 생겨 한국에 돌아왔을때..
외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요..
그때 저는 어려서.. 증조할머니를 다시 못뵌다는 사실에 그저 울었지요.
그리고.. 날이 지나갈 수 록 제가 나이를 먹을 수 록
증조할머니와의 추억은 저에게서 잊혀져가 이제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은 아직 많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은 제가 많이 잃어버린터라 많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신후로부터의 할머니와의 추억과 기억은 아직 제게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할머니댁을 새로 짓기전 할머니댁이 기억나네요.
방 두개에 큰 주방이 있고 마루가 있는 기와집.
안방에는 한쪽벽에 많은 사진과 빨랫줄이 항상 있었고.. 안방의 옆방에는 이불과 배개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던 장롱들이 있었고.. 아..! 그 방벽에 이상한 도깨비처럼 생긴 무늬가 있었는데
제 어린시절에 항상 그거에 무서움을 느끼곤 하였지요.
날이 밝을땐 사촌들과 그 방에서 자주 놀고는 하였는데.. 밤에는 그 방에선 어찌나 자고싶지가 않던지...
그 도깨비가 꿈에 나올까봐 무서웠답니다.
할머니께서 제가 잠을 못 이뤘을때 해준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뒷산에 살쾡이 한마리가 있는데 말을 안들으면 잡아간다.' 하시면서 저를 재우셨죠..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할머니 댁에 생기가 넘쳐났지요.
비록 좁았지만.. 밤이 되면 할머니댁 바닥은 온통 이부자리와 배개들이 깔려있었지요.
주방이며 안방이며 그 옆방이며 온 가족들이 그곳에서 잘 잤지요..
새집을 짓고나서도 우리 가족들 인원 수가 많다 보니까 역시나 넓은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놓고
다들 잘 잤지요.. 하지만.. 지금생각을 해보면...
할머니께서는 항상 구석에.. 불편한 곳에서 주무셨던거 같아요.
옛날 집에서도 밖으로 통하는 주방 문 앞에서 주무시고..
새집에서도 매번 거실에 있는 빨간색 소파옆에서 주무셨지요..
항상 우리 가족들을 위해 좋은 자리 다 주시고.. 왜 그리 불편한 곳에서 주무셨나요...?
기억을 되새겨 볼 수 록 할머니 챙겨드릴걸 하고 후회가 남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할머니 덕에 복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매년 맛있는 김치와 야채들을
차 트렁크에 꽉 차도록 나눠 주셨고.. 매번 우리 가족들이 가고 올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나눠 주셨습니다. 할머니 께서는 항상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여 주시고
아껴주셨고 그리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릴 많이 아껴주시던 할머니를 두번다시 못 뵌다는 것이 너무나 슬픕니다...
사촌들의 학년이 올라가고 저도 외국에 나가서 학업에 열중하다 보니..
가족모임은 점점 줄어들었고 할머니를 많이 못 뵈었지만 할머니께서는 항상 우리 걱정을 해주시고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해주셨지요.
할머니의 말씀이 사촌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할머니께서는 매년 제가 한국에 오는 날을 기대하시며 날짜를 세셨고 제가 한국에 무사히 잘 도착하면
할머니께 전화 드리는것이 기뻤고 매일 아침마다 전화를 주셔서 항상 감사했습니다.
저는 오늘 2012년 4월 13일(2012년 4월 12일 8시 39분)
엄마에게서 소식을 듣기 전까지 이번여름에 할머니와의 있을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저를 그리 보고싶다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여름에 제가 한국에 가면
할머니댁에 몇일이 아니라 몇주동안 있다갔으면 하여 그리하려고 하였는데...
할머니께서 제게 얼마나 많은 힘을 실어 주셨는데...
항상 '지혜는 잘 할거다..' '잘될거다.., '꼭 성공할거다..' 하셨는데.. 인터넷전화를 사용하여
할머니께 전화드리면 할머니께서 너무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
'건강 챙기거라..' 꼭 안부 물어봐주시고.. 항상 통화비 많이 나올까봐 걱정하셔서 아쉽지만..
일찍 끈으시려고 하셨지요. 그리고 다음날 엄마께 전화가와서 할머니 너무 좋아하셨다고..
자주 전화 드리라고... 라는 말을.. 아니면 할머니의 안부를 저에게 전해주시면
저도 기분이 좋아서 그날은 일이 잘 풀렸지요. 대학교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항상 저를 걱정하셨지요.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닐 수는 없느냐?' '한국에서 살면 안되나?' 하고 매번 물어보셨죠..?
저도 한국에 살며 부모님과의 추억을 더 만들고 할머니댁에 자주 가서 할머니와의 추억을 더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할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것이 있어요. 제가 성공하여 좋은 직업을 갖고
좋은 신랑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하지만.. 할머니.. 제가 아직 못 보여드렸는데..
이리 갑작스럽게 가셔서.. 너무...슬퍼요.. 할머니랑 마지막 통화를 했을때가 2012년 3월 30일
미국 현지시간 오후 9시 39분 이였어요. 그때 할머니께서 아프셔서
가족들이 모였었지요... 아빠가 보내주신 사진에는 한 가운데 가족들에게 둘려 쌓여 있는
할머니께서 눈에 띄었어요. 사진이 그닥 깨끗하지 않아 잘은 안보였지만..
할머니 행복하신거 같았어요.. 저 너무 후회가 되요.. 이럴줄 알았다면.. 할머니께 전화를 더 자주
드릴걸.. 할머니께 무언가 특별한걸 해드릴걸.. 소식을 전해 들었을때..
난 왜 이 곳 할머니께서 계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거지.. 라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었어요..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길 못뵈어서 너무 죄송해요...
할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믿어요.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저 꼭 지켜 봐주세요.
제가 꼭 해낼께요.. 무슨일이 있어도...
꼭 해낼께요...!
2012.04.13 오전1:07 미국 조지아에서
- 한지혜 드림 -
 
 
※ - (어머님이 특별히 공들여 낳은 외손녀...
먼 이국땅에서 공부하는 외손녀를 많이 보고싶어 하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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