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차밭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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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2007. 12. 10.

 

 

 

 

 

 

 
 
 
 
 
 

 때는 60년대 초반,

사범을 갓 졸업, 초임으로 나의 담임을 맡으셨던,

지금은 빚의 작가로 유명해지신 우제길 화백을 따라

 이젤, 물감, 크레파스 등을 챙겨 들고, 늘 백양사를 찾곤 했었지요.

 

자연스레 스님네들 생활을 보게 되었는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떫고 별로인 차를 늘 마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난초를 방안에서 기르는 모습은 보기 좋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혁명공약 이라는 걸 외우라지 않나, 화폐개혁으로 환이 원이 되고,

깡패들을 동원해서

절을 습격, 싸우질 않나,....

 

아무튼 사하촌에서의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지나고,
세기도 바뀐 2004년  어느날의 백암산.  

 

죽마고우와 함께 청류암으로 해서 상왕봉 쪽으로 정담을 나누면서 능선을 타고 있는데

저만치 앞서 두 분의 스님이  걷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부지런히 따라 붙어보니

운문암의 유나를 맡고 계시는 “지선”스님과 모르는 얼굴의 또 다른 스님, 

 

수십년이 흘러 대면하고 보니 몰라 볼 수 밖에!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고 나니 즉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속 연세를 여쭈니 60 이라신다.  

행자 생활을 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그 시절 모르긴해도 아마 앞서 애기한 큰 스님네들의 차 심부름으로 호된

고생을 했을터!!

 

그 시절 행자로 출발했던 출가자 거게가

오늘 날  큰 스님이 되셔서, 역시 차를 즐기시리라!
  

또 다른 차에 대한 기억하나! 69년인가? 70년이던가?

지금은 없어진 금성여객 대합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 방향을 보니 동쪽이라,

봄비에 젖은 조계산을 넘자고 친구와 둘이서 선암사로 갔는데,

벌써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

 

그 시절만 해도 여관은 커녕 선암사 골짜기를 통틀어 가게 하나 없던

시절인지라 절로 들어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여 오늘날의 저 유명한

선암사 해우소 옆 건물 반쯤 무너진 지붕의 객실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 절을 둘러 보는데

맨 위 쪽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온전한 모습의 차 밭이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의 모습을 연출하는 절과,

번쩍이는 진녹색의 차 이파리,

 

아.....!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작당해낸 감동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도대체, 도대체, 차가 무엇이길래???

 

객실 마루에 배낭을 꾸려놓고 기대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절과 수행자 그리고 차!

 

소싯적의 차에 대한 나의 소고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후론, 남도 땅 어디를 가든지 차나무가 보이면 눈길을 보내곤 했지요.

 

봄을 시샘 하는 듯 그야말로 춘설이 난분분한 일요일,

또 다른 폐사지를 찾아 산자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춘설과 함께 날리는 어느 골짜기에 들어서는 순간,

일순 숨이 멎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인간의 손길이 간섭치 않은 야생 차 밭을 발견한 것이지요.

 

결코 작지 않은 상당한 면적의 차밭으로 소나무 기타 여러 잡목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상당한 양의 차를 수확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바

왜 이곳의 옛 지명이 불다산(佛茶山)으로 불리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선조 관리들의 폭압으로 거의 차문화가 끊어지고 말았는데 다행이

불가쪽의 전통은 가늘게나마 이어왔다고 합니다.

 

우전이니 작설이니 중작, 대작, 춘설, 죽로 등등  

오늘날은 가히 차의 전성시대 인지라 이곳도 외부에 다 알려지는 날에는

 

얼마 안 가서 황폐해지고 말 터.

하여 공개된 장소에서 정확한 위치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기왕 차에 관한 애기가 나온 김에 감동적인 풍경 하나….

수년 전 어느 산자락을 넘는데,

 

아담한 집 한 채를 발견하고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무런 기척도 없고 비어 있는지라,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조그만 글귀 하나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궁금해서 방문을 여니,

차와 차탁 다구, 다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갖추어놓고서

언제라도 나그네가 차를 우려마시고 쉬어갈 수 있도록

그야말로 아무런 조건도 없는 개방형 다실이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차를 덕는 무쇠솥에서부터, 주변을 살피니 새로 조성중인 차 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서 차를 사랑하는 주인장의 심성을 느낄 수 있었는 바

 

아..... !

그때 그 산자락에서 다성의 반열에 오른 또 한 분의 고수를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잔의 차가 이토록 영혼까지 맑게 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기에 말입니다.
   

 

_요즘 잘 나가는 모 희극인의 말투를 빌어_  
  

 “자….. 우리도 멋진 차의 세계로 한번 빠져 봅시다.!!!!”

 

첨단산인
글 한구절 한구절 마다 시심이 우러나는것 같습니다.
글귀상으로 보면 저희 1500산 김정길형님과 마음이 잘 통하실것 같습니다. 담양 창평이 고향이신 분으로
1500님 방에 들어가 보시면 역경과 질곡의 시절을 지내면서 살아온 세월과 산을 접하며 살아온 세월등등...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야생차밭... 한겨울에도 그 싱싱함을 잃지 않고 산자락에 그윽히 피어있는 산에 오르며 잎 한장을 따서
약간은 떫은 그 맛을 음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을 타면 자연의 그윽함이 사라지는것은
시간문제라 사진에 올라온 석부작도 야생차밭도 찾아 제 욕심껏 가져가지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동물과 같이 자기 양을 채우면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거늘 무조건 양껏 채취하여 쓰다 썩으면 버리고 낭비하는
그런 인간들 때문에 전에 다니던 산에 있던 야생 춘란군락이, 산국화 밭이, 가시오가피 밭이, 산곰취 밭이,
천남성꽃밭이 사라져 버린것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에 그 장소를 온전히 보존하려면 절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을 곳에 아니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용진산 오름길에 있던 쌍봉사 뒤에 있던 엊그제 오른 문덕봉 고리봉에 있던 야생 녹차밭의 운치있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2005-03-15
09:12:10

[삭제]
첨단산인
하나 더
아무도 모르라고 김동환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있길래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2005-03-15
09:19:40

[삭제]
히어리
차에 대해서 상당한 고견을 갖고 계시네요.
차에 관해선 무지한 지라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언제 한 번 호남 산우회에서 모시고 차에 대한 강연을 한 번 듣고 싶네요.

윗글에 대한
첨단산인님의 댓글 또한 걸작입니다.
두 분이 차에 대해서 갑론을박 논하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