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고봉문화제 4편 특집 살롱드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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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드 월봉

2012. 10. 23.

2012

고봉문화제

 

고봉문화제 추진위원회

 

2012. 10. 20 ~ 23  /  월봉서원 일대

 

후원 : 문화재청, 광주광역시, 광산구, 행주기씨문헌공종중, (재)고봉학술원, 광산문화원, 광산구문화관광해설사회

광주생명의숲, 도시축제창의학교, 전라도닷컴, 광주드림광주국제교류센터, 무등산풍경소리

문화공동체 아우름, 비전사운드, 문화행동 샾, 테코디자인그룹, 바우하우스, 아트주

 

 

 

 

          -제14회-

         특집 고품격 문화살롱  salon de wolbong   

 

               주제 :  몸과 마음이 하나로 가는 길

               ●   강사 :  문 대 식   광복회 의병정신 선양회 광주지부장

 

 

월봉서원교육관

 

 

강사 문 대 식 선생

 

 

 

 

 

폴란드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은 전 독일 수상 부란트

 

 

1907년 10월 영국 신문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가장 어리게 보이는 이가 당시 13세 였다.

"남의 나라 노예로 살다기 보다 나는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겠다."

 

 

1910년 모조리 교수형에 처해진 의병 호남 의병장 들의 모습이다.

사진상엔 父子 의병도 있는데 그 무덤은 광주시 매월동에 있다.

일본의 헌책방에서 경북대 교수가 찾아낸 사진으로 동아일보 1면 전면에 실렸던 사진이다.

사후 76년 만에 발견된 사진인 것이다.

 

압송되는 녹두장군 전봉준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후 장성 입암산성으로 피신하여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었다.

 

의암은 기호학파였다.

송사는 노사 기정진의 손자이다.

선비정신이 곧바로 의병정신으로 바뀐 것이다.

 

 

 

 

 

 

 

 

 

이봉창 의사 순국 사진

 

김구 선생이 조성한 묘소

백정기 의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묘이다.

맨 왼편은 안중군 의사 가묘이다

 

사진상의 파란선 국도2호는 폭도로 붙잡힌 의병들이 만든길이다.

 

 

 

 

 

 

 

 

 

 

 

 

 

전라남도와 타도와의 의병 수와 교전 회수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라.

엄청난 차이를 알게 될 것인 바, 이름 없이 숨져간 호남 의병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그 많은 의병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호남에는 여적 제데로 된 상징물 하나 없는 실정이다.

 

 송화 장은정 선생의 진혼무

 

마지막 총독 아베가 한 말이다.

 

조선에 식민통치 교육을 시킨 것이  앞으로 백년은 갈 것이다.

나는 다시 조선에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