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월봉달빛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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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월봉 달빛사랑방

2012. 11. 2.

 

 

무연(無然) 스님과 함께하는

 

월봉 달빛 사랑방

 

- 제15회 -

 

 

주제 : 자아 동일시(自我 同一視)

 

 

 

                                                                                                                                   2012. 11. 1 

 

 

 

 

 

뉴페이스 내외의 인사 , 반갑습니다.^^*

 

 

 

 

 

 

 

 

 

 

 

 

 

 

 

 

 

 

 

 

 

 

 

 

 

 

 

 

 

 

 

 

 

 

 

  

 

 

 

 

 

 

 

 

 

 

 

 

 

 

 

 

 

 

Ken Wilberr 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의 키워드는

두 말 할것도 없이 바로 '자아 동일시'(自我  同一視)이다.

 

'자아 동일시'  Why?

 

지리산행에서 만난 사람이 내게 묻는다.

 

"스님 행복하신가요?"

 

내가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행복을 거부하는 사람도 아니요, 불행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행복과 불행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닥치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심층적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이라는 방사능과 불행이라는 방사능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행복지향주의에 허우적대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행복론이란 것은 대단히 미숙아적인 패턴이다.

 

아래는 오래 전 내가 쓴 기도문의 내용이다.

 

"기쁨에 들뜨지 않게 하시고 또한 슬픔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하지 마소서."

 

기독교적 표현에 "신은 견딜만큼의 고통만 준다."라는 말이 있다.

* 신은 사랑이다.(서양적 개념)  * 사랑은 신이다.(동양 개념의 술부(述部)적 표현)

신이 마냥 사랑만 준다면 그건 너무 재미없는 인생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얼굴만 다를 뿐이지 몸통은 하나인 것이다.

 

영성으로 들어가 보면 남성 보다 여성이 훨씬 더 진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관세음보살의 존재 여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라."

 

'뜻을 섬겨라' 이외의 대답은 없다. 내 기도의 자세를 소개하자면,

 

"평화롭게 자신을 연민한다. 그러면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자아 동일시'는 '바라보기'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책하지 말고 그 시간을 모니터링 해 보라.

부처는 말한다, "원래 나라는 실체는 없다." 실체는유한하기 때문이다.

유한성 때문에 부처는 실체를 인정치 않는다.

 

나라는 주체의  반복이 바로 윤회인 것이다. 물론 지성적 접근은 아니다.

가까운 신부님이 윤회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내게 말 해준바 있다.

'습관의 반복이 바로 윤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슈바이처에게 한 어린이가 죽음이 뭐냐고 묻는다.

 

 / 네가 가장 좋아하는게 무엇이냐?/

 

/모짜르트 음악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죽음이란 것은 네가 그리도 좋아하는 모짜르트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자아의 실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테입이 늘어질 때까지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음악 속에 희노애락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음악에 빠져서 느끼는 주체가 바로 나 임을 아는 것이다.

 

이해를 하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칠정의 스펙트럼과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주체는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원성을 벗어나 순간순간 변하는 것.

 

칠정(七情)중에 '노(怒)'의 자아가 가장 강하다. 자아 동일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과이다.

모든 자아 동일시는 무의식에서 출발한다.

자아의 실체는 이성으로 해결되기 몹시 어렵지만 아주 쉬울 수도 있다.

나라는 자아가 궁금증을 갖게되면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聖)에서는 Know Why  속(俗)에서는 Know How

자아 해체가 되면 聖스럽고 자아 동일시가 되면 俗스러움이다.

 진정한 자아는 심층적 평화라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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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세게적 지성이라 일컫는 '켄 윌버'

자연과학 전공이었던 그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접하고 동양사상에 심취,

방향을 전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권위자가 된것도 모자라,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모름지기 대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음은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그의 저서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는 어찌 보면 이단아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할 터.

사랑하는 아내를 불치병으로 떠나 보내기 까지의 처절한 통찰의 기록 "GRACE & GRIT"

서울 불교대학원대학의 김재성, 조옥경 두 교수의 번역서 "세상에서..."를 통해 무연 스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심층적 평화"일 터이다.

 

 강좌의 끝자락.

마당에 내려서니  백우산 하늘에 달과 별이 휘황한 모습.

 백우정(白牛亭) 마당에서 손을 맞잡고 동요와 가을 노래를 연달아 밤하늘에 흘어 농으니 

일순, 일행 모두의 가슴엔 온통  심층적 평화의 물결이 가득 일렁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