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샘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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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19. 1. 5.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유화로 그린 <어린 투우사>

1889년, 유화, 24×19cm, 파리, 개인 소장






가난한 소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맨발의 소녀>

1895년, 유화, 74.5×49.5cn, 파리,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가 열네 살 때 그린 <화가의 어머니 초상>(왼쪽)

1896년, 파스텔화, 49.8×39cm,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아들과 무척 닮은 피카소의 어머니 마리아 로페스 피카소






아버지가 직접 모델을 서 준 <과학과 자비>

1897년, 유화, 197×249.5cm,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엄격한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를 그린<화가의 아버지 초상> (왼쪽)

1896년, 수채화, 18×11.8cm,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의 아버지 돈 호세 루이스






길게 늘인 몸과 신비스런 분위기로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칠 엘 그레코의 <라오콘>

1610~1614년, 유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피카소가 단골로 드나들던 카폐 앨스 코트레 갓스에 그려 준 차림표 표지






평생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로 남는 <하이메 샤바릍테스의 초상>

1901년, 유화, 82×66cm,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몽마르트의 화가로 알려진 툴루즈 로트렉의<아리스티드 브뤼앙>

1892년, 석판화, 64×49cm,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미술간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과 강렬한 색채 사용이 돋보이는<여인숙 앞세 서 있는 에스파냐 부부>

1900년, 파스텔화, 40×50cm, 개인 소장


파리 시기에 그린 피카소의 그림에는 강렬한 원색이 두드러진다. 때로 이 색채들은 반짝거리는 빛을 내뿜기도 한다.

 이 때 부터 피카소는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즈음의 그림에서 툴루즈 로트렉과 반 고흐,

고갱의 영향을 볼 수 있게된다. 위 그림은 파스텔화의 묘미를 잘 살린 그림으로

이처럼 부드럽게 번지는 느낌은 유화에서는 내기 힘든 효과이다.






옷차림에서도 파리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물랭 주즈 앞에 서 있는 자화상>

1901년, 캐리커처, 18×11.5cm, 개인 소장






나는 왕이라고 외치고 싶었을까><자화상, 요 피카소>

1900년, 종이에 잉크와 수채, 9.5×8.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요'는 에스파냐 어로 나를 뜻하는 'Yo'이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열게 한 <카사헤마스의 죽음>

1901년, 유화, 27×3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말라가의 가족 곁을 떠나 마드리드에서 한 잡지에 삽화를 그리며 지내고 있을 무렵, 피카소는 친구 카사헤마스가

 파리에서 자살했다는 소식들 듣게 된다. 젊은 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랑이 한 청년을 죽음으로 이끌고만 것.

 피카소는 큰 충격을 받는다.다급하게 파리로 가서 카사헤마스의 죽음을그림으로그리며 애도하게 된다.

피카소에게 청색시대는이렇게 찾아 온다.






피카소가 상상하는 죽음의 세계인 <카사헤마스의 매장>

1901년, 유하, 150.5×90.5cm, 파리, 시립현대미술관






<카사헤마스의 매장>에 큰 영향을 미친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1586년, 유화, 480×360cm,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



친구의 죽음으로 기로워하던 이 무렵, 피카소는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다. 후원자인 화상 마냐의 소개로 앙브루아즈 볼라르라는

화상을 소개 받는데, 이것은 피카소에게 대단한 행운이었다. 볼라르는 이미 제잔, 드가, 르누아르, 고갱 같은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의

가치를 알찌감치 알아보고 후원해 준 매우 탁월한 화상으로 이 눈 밝은 화상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자마자  자신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를 얻게 된다. 젊은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막스 자코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였던 <막스 자코브의 초상>

1907년, 과슈, 62×47.5cm, 퀼른, 루드비히 미술관






청색에 젊은 화가의 고뇌를 담은 <자화상>

1901년, 유화, 80×60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불행한 사람들의 삶에 애정을 보여 주는 <장님의 식사>

1903년, 유화, 95×94.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삶>

1903년, 유화, 196.5×128.5cm, 클리블랜드, 클리블랜드 미술관






슬픔에 잠긴 어부 가족의 모습을 그린 <바닷가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

1903년, 유화, 105.4×69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몽마르트 라비냥 거리에 있는 바토 라부아르






1904년에 몽마르트르 언덕에 서 있는 피카소





   


左) '르 라팽 아질'의 주인 딸을 모델로 그린 <까마귀를 안은 여인>

1904년, 종이에 목탄과 파스텔, 수채, 64.6×49.5cm, 톨레도, 톨레도 미술관






장밋빛 시대에 즐겨 그린 주제인 <곡예사 가족>

1905년, 유화, 212.8×229.6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곡예사

- 아폴리네르 -


길 떠나는 어릿광대들

밭둑을 따라

저 먼 들판으로

사라져 간다.

성당도 없는 작은 마을

빛 바랜 여인숙 문 앞을 지나


아이들은 앞서 가고

생각에 잠긴 어른들

그 뒤를 따르는데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군

과일나무들 멀리서

이들에게 손짓을 한다.


울룩불룩한 짐 보퉁이엔

북과 반짝이는 금빛 굴렁쇠

곰과 원숭이처럼 순한 짐승들

길에서 한 푼씩 돈을 모은다.





곡예사 가족의 고달픈 생활이 드러나는 <공 위에 올라선 곡예사>

1905년, 유화, 147×95cm,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장밋빛 그림처럼 피카소의 인생에도 또 다른 장밋빛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피카소의 유랑 극단과 곡예사 그림들이 다시 화상의 눈길을 끌게된 것이다. 미국인 화상으로 이름이 난 거트루드 스타인과

레오 스타인 형제가 피카소의 집을 방문해 그림을 사게된 것. 그리고 볼라르도 다시 피카소를 찾아온다.

이제 피카소의 배고픔은 사라진 것이다.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놀림으로 소란을 불러일으킨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1905년, 유화, 81×65cm, 샌프란시스코, 개인 소장


이즈음 피카소는 앞으로 자신과 함께 현대미술의 두 거장으로 불릴 중요한 인물 앙리 마티스를 만나게 된다.

피카소 보다 열두 살이 더 많은 마티스는 모든 면에서 피카소와 매우 달랐다. 그러나 이들 둘은 평생 서로를 존중하며 교류한다.





    


左) 사람의 옆 얼굴에 앞을 바라보는 눈을 그린 이집트 벽화. 이러한 특징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에 계속 나타나며, 벽화 속의 왼쪽 여자는 <부채를 든 여인>과 자세가 많이 닮았다.

右) 팔과 동작과 옆모습이 이집트의 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채를 든 여인>

1905년, 유화, 99×81.3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균형이 잘 잡힌 소년의 몸이 아름답게 묘사된 <말을 끌고 가는 소년>

1906년, 유화, 220.3×130.6cm, 뉴욕 현대미술관






고심 끝에 새로운 형태를 발견해 완성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1906년, 유화, 99.6×81.3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프리카 가면처럼 단순한 형태로 그린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화상>

1906년, 유화, 92×73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회화에서 지켜 온 모든 전통을 깬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유화, 243.9×233.7cm, 뉴욕 현대미술관


이제부터 피카소는 문학적 의미나 상징이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던 청색시대나 장밋빛 시대의그림과는 완전히 결별한다.

자기만의 새로운 형태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형식의 문제에 몰두하는데 이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던 것이다.

낮선 세계의 모험은 마침내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낳게 된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위한 준비 작품

1907년, 수채화, 17×22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릴 때 참고했던 폴 세잔의 <목욕하는 세 여인>

1879~1882년, 유화, 58×54.5cm,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아비뇽의 아가씨들> 중 아프리카 가면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얼굴(왼쪽)과 자이레의 가면






피카소가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가면


피카소는 살아 있는 동안 누구보다도 큰 성공을 거둔 작가이지만, 이 혁신적인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는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07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1937년에에 비로소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피카소와 폴 세잔

피카소는 평생 세잔을 미술의 스승으로 여겼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세잔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피카소는 죽어서도 세잔이 한때 살았던 생트 빅투아르의 산자락에 묻히게 된다. 둘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지만,

이 둘 사이엔 뗄 수 없는 인연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대미술의 길을 열어 준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1904년, 유화, 60×172cm, 바젤, 바젤 미술관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불리우는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집>

1908년, 유화, 73×59.5cm, 베른, 베른 미술관






'자연에는 원기둥, 원뿔, 구형밖에 없다'는 세잔의 가르침을 따른 <토르토사의 벽돌공장>

1909년, 유화, 50.7×60.2cm, 페테르스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인물의 특징이 남아 있는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과 사진

1910년, 유화, 92×65cm, 푸슈킨 미술관







      



형태가 파괴된 입체주의의 대표격인 인물화인 <다니엘 앙리 칸바일러의 초상>과 사진


1910년, 유화, 100.6×72.8cm, 시카고, 시카고 미술연구소






     


이 시기에 거의 같은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

左) 피카소의 <기타를 든 남자>

1911년, 유화, 154×77.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右) 브라크의 <포르투갈 사람>

1911년, 유화, 117×81.5cm, 바젤, 바젤 미술관






피카소의 사랑의 고백이 담겨 있는 <나체의 여인, 사랑하는 에바>

1912년, 유화, 모래와 목탄, 98.5×63.5cm, 콜럼버스 미술관






현실의 일부를 그림 안에 넣은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1912년, 유화, 방수포와 끈, 29×37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자른 신문지와 실제로 그린 형태들이 조화롭게 어울린 <바이얼린과 과일>

1913년, 콜라주, 64×49.5cm,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미술관






색깔과 형태가 자유로워진 <아가씨의 초상>

1914년, 유화, 130×96.5cm,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





    


左)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으로 만든 <기타>

1912년, 마분지, 끈, 철사, 66.3×33.7×19.3cm, 뉴욕 현대미술관

右) 입체주의 기법으로 제작된 <바이얼린>

1915년, 자른 철판에 채색, 철사, 100.1×63.7×18cm, 파리, 피카소 박물관






러시아 발레단의 <퍼레이드>를 위한 무대 커튼

1917년, 천 위에 데트랑프, 106×172.5cm, 파리, 퐁피두 센터 현대비술관






피카소가 고안한 매우 독특한 무대 의상

'미국 매니저(왼쪽)'와 '프랑스 매니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찍은 올가의 사진







고전주의로 돌아섰음을 보여 주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올가>

1917년, 유화, 130×88.8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즐거운 여름 한때를 붉은 색으로 표현한 <해수욕하는 여인들>

1918년, 유화, 27×22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쟁의 상처를 보여 주는 <부상당한 기욤 아폴리네르>

1916년, 데생, 29.7×22.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左) 피카소가 그린 러시아 발레단의 <세 무용수>(왼쪽이 올가)

1919년, 데생, 62.7×47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右)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왼쪽)와 알프레드 셀리스버그의 초상

1919년, 63.5×49.3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左) 첫 아들인 파올로를 사실적 기법으로 그린 <나귀 위에 앉아 있는 파울로>

1923년, 유화, 100×81cm, 개인 소장

右) 처음엔 서 있는 자세로 구상했다가 앉은 모습으로 그린 <어릿광대 차림의 파올로>

1924년, 유화, 130×97.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잠에 골아떨어진 남녀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낮잠>

1919년, 데트랑프, 수채, 연필, 31.1×49.9cm,, 뉴욕, 현대미술관






대지의 여신처럼 풍만하고 건강한 <바닷가를 달리는 두 여인>

1922년, 과슈, 32.5×42.1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입체주의의 마지막 걸작으로 꼽히는 <세 음악가>

1921년, 유화, 203.2×188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화가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느껴지는 <춤>

1925년, 유화, 215×142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비밀의 문을 여는 것일까? <탈의실 문을 여는 해수욕하는 여인>

1929년, 유화, 32.8×22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인물의 고통이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된 <붉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

1929년, 유화, 195×129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이젠하임 제단화로 널리 알려진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예수의 십자가형>

1516년경, 콜마르, 엥테르랭댕 미술관






뒤엉킨 인물들에서 죽음과 고통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예수의 십자가>

1930년, 유화, 51.5×66.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左) 여성에 대한 피카소의 공격성이 가장 심하게 드러난 <바삿가에 앉아 있는 여인>

1930년, 유화, 163.2×129.5cm, 뉴욕, 현대미술관

右) 아내 올가와의 파탄난 결혼 생활을 보여 주는 <여인의 상반신과 자화상>

1929년, 유화, 73×63cm, 개인 소장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에 피카소의 사랑이 담긴 <꿈>

1932년, 유화, 130×98cm, 개인 소장






형태를 단순하게 축약시킨 <여인의 머리>

1931년, 석고와 나무, 125.5×54.5×62.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거울을 매개로 다양한 각도에서 본 인물을 표현한 <거울 앞에선 아가씨>

1932년, 유화, 162.5×130.2cm, 뉴욕, 현대미술관





    


데생을 곁들이고 색도 칠한 피카소의 시







삐뚤빼뚤한 얼굴이 재미있는 <인형을 안고 있는 마야>

1938년, 유화, 73×60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게르니카의 학살 소식이 실린 신문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게르니카>

1937년, 유화, 349.3×776.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쓰러져 있는 인물, 겁에 질려 ㅂ마라보는 인물, 그림 속의 모든 인물들은 전쟁의 회오리에 휩쓸려 있다.

보는 사람마저 격렬한 전쟁의 아수라장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주의 기법이 아닌

많은 상징을 동원한 그림에서 이만큼 세찬 힘을 얻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무자비한 군인 앞에서 <애원하는 여자>

1937년, 나무 판자 위에 과슈, 먹, 24×18.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참혹한 전쟁을 슬퍼하는 <우는 여인>

1937년, 유화, 55×46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의 <우는 여인>

1937년, 유화, 60×49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똑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피카소의 두 연인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년, 유화, 100×81cm, 파리 피카소 미술관(왼쪽)

<도라 마르의 초상> 1937년, 유화, 92×6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쟁을 동물의 야수성에 빗댄 <새를 잡아먹는 고양이>

1939년, 유화, 96.5×128.9cm, 뉴욕, 개인 소장






못 쓰게 된 자전거 안장과 핸들로 만든 <황소의 머리>

1942년, 자전거 안장과 핸들(가죽과 금속), 33.5×43.5×18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쟁의 희생자를 양으로 표현한 듯한 <양을 들고 있는 남자>

1943년, 청동, 222.5×78×78cm, 파리, 피카소 박물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납골당>

1945년, 캔버스에 유화 물감과 목탄, 199.8×250cm, 뉴욕, 현대미술관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저지른 학살 장면을 보여 주는 <한국에서 일어난 학살>

1951년, 합판 위에 유화 물감, 109.5×209.5cm, 파리, 피카소 박물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동포들에게 바치는 고야의 <1908년 5월 3일의 총살>

1814년, 유화, 345×26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연인의 예쁜 얼굴을 한 송이 꽃으로 변형시킨 <여인 - 꽃>

1946년, 유화, 146×89cm, 개인 소장






해맑은 어린이의 꿈의 세계를 보는 듯한 <삶의 기쁨>

유화, 120×250cm,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접시 위에 그림을 그린 <올빼미가 있는 접시>

1949년, 32×38cm,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따스한 가정의 분위기가 넘치는 <팔로마와 클로드와 함께 있는 프랑수아즈 질로>

1951년, 합판 위에 리폴린, 114×146cm, 개인 소장







발로리스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피카소와 프랑수아즈, 팔로마, 클로드






자동차 놀이에 푹 빠진 아들 클로드를 모델로 한 <트럭을 가지고 노는 아이>

1953, 유화, 130×96.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사람의 몸이 바닥에 닿지 않은 신선한 조각 <줄넘기를 하는 소녀>

1950년, 청동, 152×65×66cm, 파리,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







전쟁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여러 가지로 보여 주는 <전쟁>

1952년, 나무판 위에 유화 물감, 400.5×105cm, 발로리스 평화의 사원














공산당과 피카소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 <스탈린의 초상>

1953년, 데생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듯한 <자클린의 초상>

1954년, 유화, 116×88.5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들라쿠루아의 그림을 변형한 <알제리의 여인들>

1955년, 유화, 114×146cm, 개인 소장





    





左) 피카소가 참고한 렘브란트의 동판화<오줌 누는 여자>

右) 오줌을 누는 여자의 표정이 즐겁기 그지없는 <오줌 누는 여자>

1965년, 유화, 195×97cm, 파리,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










다가온 죽음을 의식한 듯한 해골 모양의 <자화상>

1972년, 종이 위에 색연필, 65.7×50.5cm, 도쿄 후지 텔레비전 갤러리




인용도서 : 염명순 著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Love Is A Mystery - Ludovico Einau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