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성명기 / 경기도 *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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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19. 6. 29.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상택지(相宅志) 권제2





 八成名基


전국총론 全國總論 / 경기도 · 충청도



1)경기도


죽산(竹山)의 칠장산(七長山)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줄기는 서북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수유고개에서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되고, 다시 솟아나서 용인(龍仁)의 부아산(負兒山)이 되고,

석성산(石城山)이 되고, 광교산(光敎山)이 된다.



경기도 남부(대동여지도)


광교산으로부터 산줄기가 서북족으로 뻗어 관악산(冠岳山)이 되고, 서쪽으로 바로 뻗어서는 수리산(脩理山)이 된다.  

수리산의 가장 긴 맥은 인천(仁川) · 부평(富平) · 김포(金浦) · 통진(通津)을 거쳐서 붕홍석맥(崩洪石脈)이 되어 강을 건넌 뒤,

 일어나서 강화부(江華府)의 마니산(摩尼山)이 되어 한양(漢陽) 수구(水口)의 나성(羅星)이 된다.





모석붕흥(模石崩洪). 천자붕홍(川字崩洪), 지자붕홍(之字崩洪)





경기도 김포와 강화도 사이에 봉홍석맥이 있고,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에 붕홍석맥이 있다.

개성에 대해서 교동도는 해상에 있는 외주작 또는 외안산이 된다.



강화부의 치소는 마니산 아래에 있고, 강화도는 동쪽과 북쪽으로 강(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을 두르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바다를 두르고 있다. 또 강화부 서쪽으로 산줄기 하나가 나와 붕홍석맥이 되어 자그마한 포구 하나를 지난 뒤

교동도(喬桐島)가 되는데, 이것이 개성(開成)의 외안산(外安山)이다. 이 두 섬은 모두 땅에 소금기가 많고

자주 가뭄이 들기 때문에 백성들은 물고기와 소금으로 생계를 꾸려 간다.


수리산의 가장 짧은 맥은 안산(安山) 바닷가에서 그친다. 안산에는 고관대작의 초지(稍地)가 많고, 서울과 가까우며

물고기와 소금이풍부하기 때문에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도 많다.


수리산의 남쪽으로 뻗은 줄기의 경우,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는 광주(光州)의 성곶리에서 그친다.

이 지역은 물고기와 소금이 많기 때문에 근해의 상선이 상당히 많이 모여들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 판매를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그중에 때때로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경기도 중부(대동여지도)



수리산의 동남쪽으로 뻗은 주기는 수원부(水原府)의 여러 산이 되었다가 바다에 이르러 그친다.

이곳은 충청도의 아산현(牙山縣)과 포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금수산에서 나온 줄기가 서쪽에 위치한 문판현(門板峴,글판이고개)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어 바다에 이르러 그친다. 충청도의 당진(唐津)과 작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지세가 바다 속으로 쑥 뻗어 들어가는

형상이다. 소금 굽는 수 백 가구가 남쪽과 북쪽 해안에 별처럼 늘어서 있다. 육지가 끝나는 바닷가가 화량진(花梁鎭)이 되고,

화량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10리를 가면 대부도(大阜島)가 되는데, 모두 어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러므로 남양부의 서쪽 촌락들이 한강 이남에서 물고기와 소금을 판매하는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


수원(水原)의 동쪽은 양성(陽城) · 안성(安城)이다. 안성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바닷가와 산골 사이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화물이 수송되고 장인과 상인이 모여들어서 한강 이남의 도회지가 되었다. 그러나 안성의 치소 바깥은 비록 평탄하여 좋은 땅 같으나

살기(殺氣)가 있으므로 살기에 좋지 않다. 과천(果川)은 수원의 북쪽에 있고 금천(衿川)은 안산(安山)의 북쪽에 있는데,

두 곳 모두 한강을 등지고 있어 한강 이남의 근교가 된다. 대체로 한강 이남의 여러 고을은 촌락이 퇴락하고 피폐하였으며,

풍수(風水)로 보면 슬프고 근심스러운 형상이기 때문에 살만한 곳이 없다.


한강(漢江)은 충주(忠州)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 원주(原州) · 여주(驪州) · 양근(楊根) 을 돌아 광주의 북쪽에 이르러 용진(龍津)에서 모인다.

여기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한양의 면수(面水, 한양을 안쪽으로 끌어안듯이 휘감아 돌아가는 물, 별칭으로 옥대수)가 된다.

여주의 치소는 강의 남쪽에 있는데 한양과의 거리가 수로와 육로 모두 200리가 채 되지 않는다.

여주는 동남쪽이 넓게 펼쳐져 있고 기상이 맑고 상쾌해서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가 많다.


여주의 남쪽은 이천(利川) · 음죽(陰竹)으로 모두 여주에는 미치지 못한다. 북쪽은 지평(砥平) · 양근(楊根)으로 강원도의 홍천(洪川)과

경계를 접하고, 여기저기 어지러이 뻗은 산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두 살기에 좋지 않다.


여주의 서쪽은 광주(廣州)이다. 석성산(石城山)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나가 한강의 남쪽까지 내달린다.

광주의 치소는 만 길 높은 산의 정상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백제(百濟)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옛 도읍지이다.

지금은 수도의 수비를 맡은 요새지대이므로 광주 일대는 살기에 좋지 않다.


철령(鐵嶺)의 한 맥이 남쪽으로 600리 뻗어 나가다 양주(楊朱)에 이르러 나지막한 산이 된다. 이 산들은 간방(艮方)으로부터 비스듬하게

돌아서 들어오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도봉산(道峯山)의 일 만 장(丈) 높이의 바위봉우리가 된다. 여기서부터 곤방(坤方)을 향하여 뻗어 나가다가

조금 맥이 끊어지고, 다시 우뚝하게 일어나서 삼각산(三角山) 백운대(白雲臺)가 된다. 여기서부터 산맥이 남하하여 만경대(萬景臺)가 되는데,

그 중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가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가서 백악산(白岳山)이 된다. 숭수가들은 이 백악이 '하늘을 찌르는 목성(木星)'이라

했는데, 도성의 주산(主山)이다. 한양은 동쪽과 남쪽에 모두 큰 강이 있고, 서쪽으로 바다의 조수와 통하여 여러 물이 모두 모이는 곳에서

얽혀 있으니, 그리하여 온 나라 산수의 정기를 모은 곳이 되었다. 300년 문명과 문물이 발휘된 곳에 유학의 기풍이 크게 진작되어

'소중화(小中華)'라 부르기도 하니, 이 또한 지리(地理)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이다.








한양으로부터 서쪽으로 140리 떨어진 곳은 개성부(開城府)이니, 이곳이 바로 고려(高麗)의 수도이다.

송악산(松岳山)은 개성의 진산(鎭山)이고 만월대(滿月臺)는 송악산 아래에 있으니, 《송사(宋史)》에서 말한

 "큰 산에 의지해서 궁전을 세웠다." 라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만월대의 북쪽에 자하동(紫霞洞)이 있는데

샘과 바위가 호젓하고 빼어나서 살기에 좋은 곳이 많다.


그러나 우리 조선이 나라를 세워 한양에 수도를 정한 뒤 왕씨의 세신(世臣)들 중 조선의 신하로 복종하려 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남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토박이들이 그 지역을 문을 닫고 사는 동네라 하여 '두문동(杜門洞)'이라 불렀다.

 개국 초기에 앞으로 100년 동안은 개성의 선비들이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제한한다는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 아들에서 손자로 이르는 동안 마침내 평민이 되어 장사를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300년이 흐르자 마침내 관료로 이름난 선비가 없어졌다. 서울의 사대부들도 개성을

이역(異域, 딴 나라)으로 여기게 되어, 이곳에 가서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풍덕부(豊德府)는 개성부의 남쪽에 있고, 장단부(長湍府)는 풍덕부의 동쪽에 있다.

한탄강은 동쪽에서 흘러오고 징파도(澄波渡)는 북쪽에서 흘러오는데, 이 두 강이 마전(麻典)에서 합류한 뒤,

장단을 돌아 남쪽에서 임진(臨津)이 된다. 또 서쪽에서 한강물가 모여서 풍덕의 승천포(昇天浦)가 된다.


장단부의 치소는 임진 북쪽에 있는 백학산(白鶴山) 아래에 있다.

고을의 북쪽에는 화장산(華藏山)이 있는데 화장산 남쪽으로는 모두 낮은 산언덕과 평탄한 시내가 있다.

이곳은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고관대작의 무덤이 많아서 사람들이 이곳을 낙양(洛陽)의 북망산(北邙山)에 견주었다.





승천포(대동여지도)




경기도 북부(대동여지도)



임진의 동쪽에는 연천(連川)  · 적성(積城)이 있고, 북쪽에는 마전 · 삭녕(朔寧)이 있다.

이곳은 한양 북쪽까지 곧장 가면 100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로로 이경(二京, 한양과 개성)과 통한다.

그러나 이지역은 모두 흙이 척박하고 백성들이 가난하여 살기에 좋은 곳이 적다. 오직 삭녕은 논밭이 상당히 좋고,

강에 임하여 빼어난 경관이 많아서 사대부들이 사는 집도 많다.


양주(楊州) · 포천(抱川) · 가평(加平) · 영평(永平)은 한양의 동쪽 교외이고,

고양(高揚) · 적성(積城) · 파주(坡州) · 교하(交河)는 한양의 서쪽 교외이다.

 이 두 교외 지역은 모두 땅이 척박하고 백성들이 가난하므로 살기에  좋은 곳이 적다. 사대부가 집안이 가난해지고 세력을 잃은 뒤

삼남(三南, 충청, 전라, 경상)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가문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이 두 교외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한미하게 되고

쇠퇴하게 되어 1~2대가 지난 뒤에는 평민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팔역가거지》







2) 충청도 [湖西]


충청도 남쪽의 절반은 차령(車嶺) 남쪽에 있어 전라도와 서로 접해 있고, 북쪽의 절반은 차령 북쪽에 있어 경기도와 서로 이웃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에 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경상도와 이어져 있다. 동북쪽 모퉁이에 있는 충주 등의 고을은 강원도 남쪽으로 쑥 들어가 있다.


물산의 풍부함은 비록 전라도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산천이 평탄하고 부드러우며, 서울의 가까운 남쪽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리하여

충청도는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경성(서울)의 세도있는 가문 중 충청도에 논밭과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는 집이 없다.

게다가 이 지역의 기후와 풍속이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터를 골라서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공주(公州)는 충청도관찰사의 감영이 있는 고으로 곧 백제 말엽에 당(唐)의 장수 유인원(劉仁願)이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던 곳이다.

한양과의 거리가 300리이고, 차령과 금강(錦江)의 남쪽에 있다. 공주에서 금강을 건너고 차령을 넘은 뒤 천안(天安)과 직산(稷山)을 지나

경기도에 도달한다. 직산 이북은 모두 들이 흩어져 있고 츩이 척박하며, 산적이 많아서 살기에 좋지 않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伽倻山)이 있는데, 서쪽으로는 서해에 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경기도의 바닷가 고을과 큰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곳이 ㅂ마로 서해가 육지 안쪽으로 쑥 들어온 곳으로, 가야산 동쪽에 큰 평야를 갈라 들어와서 평야 가운데에

'유궁진(由宮津)'이라는 포구가 하나 있는데, 만조(滿潮)가 되지 않으면 배를 띄울 수 없다.





호서지도(비변사인방안지도)



가야산의 앞뒤로 101개의 현(縣)이 있는데, 이 현을 통틀어 '내포(內浦)'라 부른다.

내포의 지세는 험준하고 한 구석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 전란도 모두 이곳에는 이르지 않았다.

토지가 비옥하고 물가와 평지가 평탄하고 넓으며, 물고기와 소금이 극히 흔해서 부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도 많다. 그러나 바다가 가까워 학질(瘧疾)과 부종(浮腫)이 많이 발생하고, 산천은

비록 평탄하고 넓게 펼쳐져 있지만 수려한 자태는 적다. 또 구릉은 비록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샘과 바위의 빼어난 경치가 부족하니, 이것이 바로 단점이다.


그 중에서 보령(保寧)은 산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영보정(永保亭)이 있어 명승지라 부른다.

보령 · 결성(結成) · 해미(海美) 3개의 고을은 가야산의 서쪽에 있고, 이 고을들의 북쪽은 태안(泰安)과 서산(瑞山)으로

강화(江華)와 남북으로 마주보며 작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서산의 동쪽에 있는 면천(沔川) · 당진은 북쪽으로 비껴서

남양(南陽)의 화량(花梁)과 작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4개의 고을은 모두 가야산의 북쪽에 있다.





보령 · 결성 · 홍주 · 해미 일대(대동여지도)



가야산의 동쪽은 홍주(洪州) · 덕산(德山)이다. 이곳은 모두 유궁진의 서쪽에 있어

유궁진 포구의 동쪽에 있는 예산(禮山) · 신창(新昌)과 더불어 뱃길로 한양과 통하는 매우 빠른 길이다.

홍주의 동남쪽은 대흥(大興) · 청양(靑陽)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이다.


이 11개의 고을은 모두 오서산(烏捿山)의 북쪽에 있다.

【오서산은 가야산으로부터 내려와 내포의 남쪽에 있다.】


오서산 앞의 한 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성주산(聖住山)이 되었다. 성주산의 서쪽은 곧 비인(庇仁) · 남포(藍浦)로,

흙이 매우 기름지고 서쪽으로는 서해에 닿아 있어 물고기 · 소금 · 메벼를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성주산의 남쪽은 곧 서천(舒川) · 한산(韓山 · 임천(林川)으로, 앞쪽으로는 진강(鎭江)에 닿아 있고,

강과 바다 사이를 차지하고 있어 뱃길의 편리함이 한양에 뒤지지 않는다.





비인 · 남포 · 서천 · 한산 · 홍산 · 정산 · 강경 일대(대동여지도)



성주산의 동북쪽에는 홍산(鴻山) · 정산(定山)이 있다.

홍산은 임천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강경(江景)과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정산은 청양의 동쪽에 있으며,

공주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이 7개 고을은 대체적으로 풍속이 같고, 또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들이 많다.

다만 청양과 정산은 산수에 산람장기가 있어서 살기에 좋지 않다.


공주의 경계는 매우 넓고, 금강에 걸쳐 있다. 공주의 동남쪽 40리 떨어진 곳이 계룡산(鷄龍山)이니

바로 전라도 마이산(馬耳山)의 산줄기가 끝나는 곳으로, 금강의 남쪽에 있다.

계룡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가다 크게 끊어져 판치(板峙)가 되고, 다시 일어나서 월성산(月城山)이 되니, 

이 산이 공주의 진산이다.


금강은 동쪽에서 공주의 북쪽으로 흘러오다 남쪽으로 꺾어져 웅진(熊津)이 되고, 백마강(白馬江)이 되었다가

강경강(江景江)이 된다. 그리고 서쪽으로 꺾어져 진강(鎭江)이 되었다가 바다로 들어간다.





공주 · 은진 · 부여 · 연기 일대(대동여지도)



은진(恩津)의 남쪽에는 사제천(沙梯川)이 있고, 동남쪽은 부여현(扶輿縣)인데 백마강과 닿아 있으니, 바로 백제의 고도(故都)이다.

강가에는 바위와 골짜기가 기이하고 빼어나며, 경치가 몹시 뛰어나고, 흙이 매우 비옥하여 부유한 집이 많다.


속리산(俗離山)이 남쪽으로 뻗어가다 추풍령(秋風嶺)에서 크게 끊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황간(黃澗)의 황악산(黃岳山)이 되며,

전라도 경계로 들으가서 무주(茂朱)의 덕유산이 된다. 또 덕유산으로부터 내려가다 장수(長水)와 남원(南原) 사이에서 크게

끊어졌다가 서쪽으로 가서 임실(任實)의 마이산이 된다. 여기에서 돌산의 한 줄기가 거꾸로 북쪽으로 뻗어나가

주류산(珠琉山)이 되었다가, 다시 충청도 경계로 들어와 금강을 등지고 돌아서 계룡산이 된다.


덕유산과 마이산 사이에 있는 동서 여러 고을의 시내와 계곡물이 합류하여 적등강(赤登江)이 되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다 옥천(沃川)의 동쪽에 이르러 또 속리산의 물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꺾어져 금강이 된다.

영동(永同) · 황간 · 청산(靑山) · 보은(報恩)은 적등강의 동쪽에 있고, 옥천은 서쪽에 있으며,

영동은 속리산과 덕유산 사이를 차지하고 있다.


공주에서 동쪽으로 금강의 남쪽 강둑을 따라가다가 계룡산의 배후에서 거듭된 고개를 넘으면 유성(儒城)의 큰 평야가 되고,

그 들에 잇는 시내는 들 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진산(珍山)의 오계(玉溪)와 합류하여 북쪽에서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니, 이를 '갑천(甲川)'이라 한다. 갑천의 동쪽은 곧 회덕현(懷德縣)이고 서쪽은 곧 진잠현(鎭岑縣)이다.

동서의 양쪽 산이 남쪽에서 평야를 끌어안고 있으며, 평야는 북쪽에 이르러 합류하여 교차한다.

높이 가로막혀 있는 사방의 산은 평야 가운데를 둘러싸고 있으며, 평탄한 산등성이는 구불구불 뻗어있으면서도 부드럽다.

구봉산(九峯山)과 보문산(寶文山)은 평야의 남쪽에 높이 속아 있는데 그 청명한 기상은 거의 한양의 동쪽 교외보다 뛰어나고,

논밭도 매우 좋고 또한 넓다. 다만 바닷가가 조금 멀기 때문에 서쪽으로 강경과의 수송과 교역에 의지하고 있다.






유성 · 진산 · 진잠 · 회덕 · 노성 · 연산 일대(대동여지도)


계룡산 사련봉(四連峯)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와 경천촌(敬天村)이 된다.

경천촌의 서쪽은 노성(魯城) · 석성(石城)이고 그 남쪽은 연산(連山) · 은진이다. 노성과 연산은 산에 가까우면서도

흙이 비옥하고, 은진과 석성은 들에 있으면서도 흙이 척박해서 홍수나 가뭄의 해를 자주 당한다.

이 4개의 고을은 경천촌과 통해 하나의 들로 되어 있고, 바다 밀물이 강경강으로부터

들 가운데로 흐르는 여러 하천에 출입하므로 모두 뱃길로 통행할 수 있다.





추풍령 · 청산 · 보은 · 회인 · 옥천 · 속리산 일대(대동여지도)



영동의 동쪽은 추풍령이다. 추풍령은 덕유산이 산맥을 지나가다가 기운이 쉬는 곳이므로 이름은 비록 고개[嶺]지만

실제로는 평지이다. 그러므로 산세가 아주 거칠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낮거나 평탄하지도 않으며

암석과 산봉우리가 모두 윤택하면서도 온화한 정취를 띠고 있다.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서 사랑스럽고,

 토지는 비옥하여 물도 많아서 관개하기 쉬우므로 가뭄의 해가 적다.


청산 역시 그러하다. 청산은 북쪽으로 보은과 접하고 있다. 보은과 청산 2개의 고을은 모두 대추 농사에 앚맞아서

백성들은 대추 판매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보은의 북쪽은 회인현(懷仁縣)으로 첩첩산중의 골짜기에 있다.


옥천은 북쪽으로 금강을 경계로 하고, 회덕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마치 한강의 동쪽 교외처럼 산천이 정결하고 흙빛은 밝고 수려하다. 그러므로 들이 매우 척박하여

논에서는 수확이 적지만, 토지는 면화 농사에 가장 알맞기 때문에 백성들은 면화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글을 쓰고 학문하는 선비가 많이 나왔다.


속리산은 청주(淸州) 동쪽 10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속리산의 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면 경상도의 낙동강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흘러가면 금강으로 들어가고,

북쪽으로 흘러감변 충주의 달천(達川)이 되어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속리산 산맥의 한 줄기는 북쪽으로 뻗어나가 거대령(巨大嶺)이 되고,

달천을 끼고 서북쪽으로 경기도의 죽산 경계에 이르러  칠장산이 된다.

 칠장산에서 한강물을 따라가다 서북쪽으로 뻗은 줄기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한강 이남의 여러 산이 된다.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는 하나의 산줄기가 되어 진천(鎭川)에서는 대문령(大門嶺)이 되고,

목천(木川)에서는 마일령(磨日嶺)이 되었다가 전의읍(全義邑)에서 크게 끊어져 서쪽에서는 평지가 되고,

금강의 북쪽에 이르러 다시 일어나서 차령(車嶺)이 된다.


이 차령 줄기가 또 서쪽으로는 무성산(武城山)과 오서산(烏捿山)이 되었다가

남쪽으로 뻗어 임천 · 한산에서 그치고 북쪽으로 뻗어 태안 · 서산에서 그친다.


마일령 동쪽과 거대령 서쪽 사이에는 중간에 큰 평야가 펼쳐져 있고, 동서에 있는 두 산의 물이 합류하여 작천(鵲川)이 된다.

작천은 진천 7정(七亭)의 동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에서 금강 상류인 부용진(芙蓉津)으로 들어간다. 작천의 서쪽은

목천 · 전의 · 연기(燕歧)이고, 작천의 동쪽은 청안(淸安) · 청주 · 문의(文義)이다.





진천 · 전의 · 연기 · 청안 · 청주· 일대(대동여지도)



그 중에서 청주가 가장 크다. 청주는 공주 동북쪽으로 1001리  떨어져 있고, 고을은 거대령 아래에 있으며,

면적이 매우 넓어 작천의 서쪽을 가로질러 목천과 연기의 사이로 끼어 들어갔다가 서쪽에 만나는 산에서 그친다.


청주 서쪽에 만나는 산 일대에서 구불구불 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는 모두 토산(土山)으로 바위가 없으며,

작천 서쪽에서 감돌아 북쪽으로 목천과 전의로부터 남쪽으로 연기에 이른다.

 산의 경치가 구불구불하며 날아 오르듯 솟아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들의 형세는 여러 겹으로 회호(回互)하여

풍수가들이 말하는 '탈살(脫殺)'이 되었다. 이곳은 옥천에 비해 더욱 평탄하고,

 흙이 매우 비옥하기 때문에 오곡과 목화 농사에 알맞다.


작천의 동쪽은 큰 평야인데, 동남쪽으로 40여 리가 트여 있다. 평야 가운데에 작은 산의 8개 봉우리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를 '팔봉산(八峯山)'이라 한다. 이 산은 남쪽에서 서북쪽을 향해 평야 가운데에 버티고 앉아

동쪽으로 거대령과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곳의 흰 모래와 얕은 냇물, 평탄한 언덕과 부드러운 산자락은

경기도 장단 지역과 흡사하다. 다만 청주의 고을 치소가 남쪽은 높고 서쪽은 낮아서 물이 낮아서

물이 남쪽에서 들어오므로 해마다 물난리로 흙이 허물어지는 것을 걱정하게 된다.


거대령을 동쪽으로 넘으면 상당산성(上黨山城)이고, 더 동쪽으로 가면 청천(靑川)이다.

상당(上黨)과 청천을 통틀어 '산동(山東)'이라 한다. 그러나 이 산동은 지대가 산 위에 있기 때문에

 풍기가 싸늘하고 차가워 청주 들판에 미치지 못한다.


산동은 남쪽에 속리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선유산(仙遊山)에 막혀 있으며,

북쪽으로는 북쪽으로 뻗은 속리산의 줄기가 굽어서 고리처럼 감싸고 있다.

북쪽은 막혀있는 반면 남쪽은 통해 있어서 그 안에는 이름난 마을이 많다.  땅에서는 철이 생산되고,

또한 관곽(棺槨)과 건축에 쓸 재목이 풍부해서 평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물건을 거래한다.

청천의 남쪽에는 용화동(龍華洞)이 있다. 용화동의 물은 속리산의 물과 청천의 북쪽에서 합류하여

괴강(槐江)과 송계(松鷄)로 흘러간다. 남북 위아래로 강물과 닿아 있어 명승지가 된 곳이 많다.


그 북쪽은 진천이다. 진천은 청주에 비해 들판이 적고 산이 많다.

그러나 흙이 상당히 비옥하고, 또 큰 냇물이 많기 때문에 가뭄에도 재해를 입지 않는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대문령을 넘으면 직산이다. 이 지역은 바다 어귀까지 겨우 100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물고기와 소금을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문의는 남쪽으로 형강(荊江)에 닿아 있어 강물과 닿아 있는 곳에

 명승지가 많다. 오직 청안만 산수가 보잘 것 없고 거칠어 살기에 좋지 않다.


목천의 마일령 서쪽에서 시작하여 내포 동쪽과 차령 북쪽에는

천안 · 직산 · 평택(平澤) · 아산 · 신창 · 온양(溫陽) · 예산 등 7개 고을이 있고, 그 풍속은 대체로 같다.

그러나 이들 중 남쪽 고을은 산골짜기에 가깝고, 북쪽 고을은 포구와 갯벌에 가깝다. 산골짜기에 가까우면

흙이 비옥하여 곡식과 면화 농사에 알맞고, 포구와 갯벌에 가까우면 소금기 있는 땅과 비옥한  땅이 절반씩 섞여 있어

물고기와 소금을 생산하는 이익과 뱃길의 편리함을 차지할 수 있다. 이것이 그 고을들의 대강이다.


유궁포(由宮浦)는 북쪽에 이르러 소사하(素砂河)와 합류하고, 이 두 물이 서로 만나는 곳에 영인산(靈仁山)이 있으니,

이 산이 바로 아산현의 진산이다. 영인산은 동남쪽으로부터 서북쪽을 향하여 뻗어가고

소사하 하류는 이곳에 이르러 산 앞에서 감돌아 머문다. 산 뒤에 있는 곡교대천(曲橋大川)은 동남쪽에서 흘러와

서북쪽 술방(戌方)에서 소사하와 만나 합류하여 큰 호수가 된다. 호수 남쪽의 산 하나는 신창에서 뻗어오고

호수 북쪽의 산 하나는 수원에서 뻗어온다. 이 산들이 마치 문처럼 수구(水口)에서 서로 만났다가

 물이 문을 빠져나와 바로 유궁포의 하류와 합류하면 동산(公山)이 마치 큰 배개 돚을 달고 있는 모양과 같이 있는데.

산 전체가 모두 돌로 이루어져 마치 발해(渤海)의 갈석산(碣石山)과 같이 흐르는 물 속에 서 있다.


조정에서는 영인산 북쪽에 창고를 설치해서 충청도 바닷가 주변 고을의 부세(賦稅)를 거두어

서울까지 배로 실어 나르므로 이곳을 "공세호(貢稅湖)라 한다. 이 지역은 물고기와 소금이 풍부해서 상인들이 모여들고

부유한 집이 많다. 영인산은 두 물 사이에서 그쳤으나 산의 기맥(氣脈은 다 풀어지지 않아서 전후좌우가 모두 이름난 마을이고

사대부의 집이 많다. 유궁포 동서쪽의 여러 고을은 모두 장삿배가 통하는데, 그중에서 예산이 상인이 모이는 도회지가 되었다.


차령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가면 광덕산(廣德山)이 되고, 또 한 줄기가 떨어져 나가 설라산(雪羅山)이 되었는데,

모두 온양의 동쪽에 있다. 이 산은 민중(閩中)의 포전(葡田)에 있는 호공산(壺公山)처럼 수려하게 하늘 위로 솟아있어

우뚝 선 홀과 같은 형상이다. 또한 풍수가들이 길방(吉方)으로 여기는 동남쪽에 있으니, 아산과 온양에서 관료로 이름나거나

글을 쓰거나 학문하는 선비가 많이 배출된 이유는 이 산 때문이라고 한다.





아산 · 신창 · 덕산 · 온양 · 천안 일대(대동여지도)




유치령(비변사인방안지도)



청주에서 청안의 유령을 넘고 괴산(槐山)을 지나서 달천을 건너면 충주이다.

충주의 치소는 한양에서 동남쪽으로 300리 떨어져 있다. 속리산에 있는 구요팔곡(九遙八曲)의 물이 북쪽으로 흘러 가다가

청주 산동(山東)에 이르러 청천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충주읍은 남한강 상류를 차지하고 있어 물길로 왕래하기 편리하므로 서울의 사대부 중에 이곳에 지리 잡은 이들이 많다.

달천에서 남쪽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괴강에 이르고,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청풍강에 이른다. 여기에는 사대부들의

정자와 누각이 많아 의관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배와 수레가 운집한다. 게다가 이곳은 서울에서 손방(巽方)에 위치하기 때문에

 한 고을에서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 수가 많기로  팔도 여러 고을 중에 으뜸이니, 이름난 도회지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상좌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죽령(竹嶺)을 거쳐서 통해 있고,  경상우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조령(鳥嶺)을 거쳐

통해 있으며, 이 두 고개로 통하는 길은 모두 충주 치소로 모인다. 따라서 충주가 경기도와 경상도를 왕래하는 요충지에 해당하므로

유사시에는 반드시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다. 게다가 지세가 서북쪽으로 빠져나가서 온축괴는 기운이 없으므로 부유한 사람도

많지 않다. 또 사람들이 조밀하게 많아서 늘 구설로 다툼이 많고 풍속이 경박해서 살기에 좋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고을의 치소에 대해서만 논했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청주의 치소 서쪽에서 달천을 건너면 속리산이고, 여기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한 줄기가 음성현(陰城縣) 서쪽에서 우뚝 일어나서

가섭산(迦葉山)이 되고, 부용산(芙蓉山)이 되고, 금천 · 가흥(嘉興)의 여러 마을이 된다. 이곳은 모두 흙이 비옥해서 살기에 좋다.


청풍(淸風)의 동쪽은 단양(丹陽)이고, 단양의 북쪽은 영춘(永春)이다. 이 3개의 고을은 모두 계곡이 깊고 험하여 활짝 트인 들판이 적다.

충주의 동북쪽은 제천(堤川)이다. 제천의 지형은 산 위에 맺어진 형국이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는 들이 펼쳐져 있으며,

산이 나지막하여 밝고 환한 모습이 있기에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가 많다. 그러나 지대가 높고 바람이 차며 흙이 척박하여

 면화가 나지 않으므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부자는 적고 가난한 사람은 많다.


연풍(延豊)은 충주의 남쪽, 괴강의 동쪽에 있다. 흙이 비옥하고 물을 대기 쉬워 목화 농사에 아주 좋은 밭이다.

그러나 조령의 한 줄기가 동남쪽을 높이 막고 있기 때문에, 비록 산수의 빼어난 경치가 있지만

 옛날부터 관료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없다.


연풍(延豊)은 충주의 남쪽, 괴강의 동쪽에 있다. 흙이 비옥하고 물을 대기 쉬워 목화 농사에 아주 좋은 밭이다.

그러나 조령의 한 줄기가 동남쪽을 높이 막고 있기 때문에, 비록 산수의 빼어난 경치가 있지만

옛날부터 관료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없다.


연풍의 서쪽은 괴산이다. 괴산은 조령과 유령의 두 골짜기 사이에 있기 때문에 지세가 좁으면서 종기가 난 듯이

울퉁불퉁하지만 역시 탈살(脫殺)이 잘 된 지형이다. 동쪽으로 괴강에 닿아 있으며 명승지와 이름난 마을이 많고

관료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많다. 흙은 오곡과 목화 농사에 알맞다. 북쪽으로 금천에 가까워 또한 살기에 좋은 곳이다. 《팔역가거지》


인용도서: 『임원경제지』「상택지」







For Her - Antonio Pat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