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성명기 / 전라도 * 경상도 *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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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19. 6. 30.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상택지(相宅志) 권제2





 八成名基


전국총론 (全國總論) / 전라도 * 경상도 * 강원도



3)전라도 [湖南]


전라도는 동쪽으로 경상도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충청도와 이웃하고 있으며, 본래 백제의 땅이었다.  훗날 견훤(甄萱)이 이 땅을

근거지로 삼아 고려 태조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여서 태조가 여러 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태조는 견훤을 평정하자 백제 사람들을

 미워하여 '차령(車嶺) 이남 지역은 물이 모두 등을 지고 달아난다.' 라 하고, 차령 이남에 거주하는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유명

(遺命)을 내렸다. 고려 중엽에 이르러서는 간혹 재상의 반열에 오른 자도 있었지만, 고려 왕조에서 등용된 자는 역시 매우 드물었다.

우리 조선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금령이 점차 완화되었다.




전라도 북부 일대(해동지도)



전라도 남부 일대(해동지도)


전라도의 토지는 비옥하고 서남쪽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생선 · 소금 · 메벼 · 명주실 · 솜 · 모시 · 닥나무 · 귤 · 유자 · 대나무를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전라도의 풍속은 노래와 여색 ·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숭상하고, 약삭빠르고 경박하면서 아첨을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글을 쓰고 학문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 이름난 사람이 경상도보다 적다. 그러나 인걸은

지령(地靈)이르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자연히 적지 않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은 광주(光州) 사람이고, 일재(一齋) 이항(李恒)은

부안(扶安) 사람인데, 모두 도학(道學, 유학)으로 알려졌다.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은 모두 광주사람

인데, 절의(節義)로 알려졌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해남(海南) 사람이고, 묵재(默齋) 이상형(李尙馨)은 남원(南原) 사람인데,

모두 문학(文學)으로 알려졌다. 장군(將軍) 정지(鄭地)와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은 모두 광주 사람인데, 장수(將帥)로 알려졌다.

찬성(贊成) 오윤겸(吳允謙)과 의정(議政) 이상진(李尙眞)은 이름난 관료로 알려졌다.


사한(詞翰, 시(詩)를 비롯한 문장)으로는 고부(古阜)의 옥봉(玉奉) 백광훈(白光勳)과 영암(靈巖)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있다.

우거(寓居)한 인물로는 부윤(府尹) 신말주(申末舟)가 순창(淳昌)에, 이상(貳相) 이계맹(李繼孟)이 김제(金堤)에, 판서(判書) 이후백(李後白)

이 해남에, 판서 임담(林墰)이 무안(務安)에 기거했다. 단학(丹學)으로는 도사(道士) 남궁두(南宮斗)가 함열(咸悅) 사람이고,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仲)이 고부 사람인데, 모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다.




마이산 일대(대동여지도)



노령산맥 일대(대동여지도)


덕유산(德裕山)은 충청도 · 전라도 · 경상도가 만나는 곳에 있다. 서쪽으로 한 줄기가 나와 전주(全州) 동쪽에 이르러

마이산(馬耳山)이 되었다. 또 마이산의 산백 하나로부터 서남쪽으로 임실(任實)과 전주가 만나는 곳을 따라 뻗어 금구(金溝)의

모악산(母岳山)이 되었다가,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두 강의 안쪽에서 그친다.


또 다른 산맥 하나는 서남쪽으로 뻗어 순창의 복흥산(復興山)이 되고, 정읍(井邑)의 노령(蘆嶺)이 된다.

노령에서 여러 줄기가 갈라져 서쪽으로는 영광(靈光)에서 그치고, 서남쪽으로는 무안에서 그치고 북쪽으로는 부안의 변산(卞山)에서

그친다. 또 동남쪽으로는 담양(潭陽)과 광주 아래에 위치한 산이 된다.


마이산의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주줄산(珠崒山)이 되는데, 이 산은 진안(鎭安)과 전주 사이에 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산맥 하나가

나와 전주부(全州府)가 되는데, 이곳이 전라도관찰사의 치소이다.


전주부의 동쪽은 위봉산성(威鳳山城)이고, 약간 북쪽에는 기린봉(麒麟峰)이 있는데, 이곳에서 산맥 하나가 나와 전주부에

이르렀다가 서북쪽으로 뻗어 건지산(乾止山)이 된다. 또 산맥 하나가 나와 서쪽으로 가서 덕지(德池)가 되는데, 이 호수는 매우 깊고 넓다.

덕지를 지나면 또 다시 큰 들판을 빙 두르고 있는 평평한 언덕이 형성되는데, 이곳은 만마동(萬馬洞)의 물을 거슬러 받기 때문에

지리가 매우 아름다워 참으로 살 만한 곳이다.


주줄산의 여러 계곡물은 고산현(高山縣)을 거쳐서 전주 경계에 들어가서 율담(栗潭) · 양전포(良田浦) · 오백주(伍百州)가 된다.

이 지역은 큰 계곡의 물을 댈 수 있어서 흙이 가장 비옥하며, 벼, 생선 · 새강 · 토란 · 대나무 · 감을 판매하는 이익이 있고, 수 많은

촌락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구가 모두 갖추어졌고, 서쪽으로 사탄(斜灘)에서는 선박으로 생선과 소금을 유통하며, 사람과 물산이 조밀하고

풍부하기 때문에 재화가 쌓여 그 규모가 한양과 다를 바가 없으니, 참으로 하나의 큰 도회지이다. 노령 이북의 10여 개 고을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지만 오직 전주만 기후가 청량하니, 살기에 가장 좋다.




주줄산과 전주 일대(대동여지도)



전주 북부 일대(대동여지도)


주줄산 북쪽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가 탄현(炭峴) · 용화산이 되고, 옥구(沃溝)에서 그친다.

탄현의 서북쪽에는 여산(礪山) 등 5개의 고을이 있는데, 그 중 여산은 흙이 차져서 산람장기가 있기 때문에 살기가 좋지 않다.


용화산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나가 여산 서북쪽에서 채운산(采雲山)이 된다.

 그 서쪽은 곧 용안(龍安) · 함열(咸悅) · 임피(臨陂)로, 모두 진강(鎭江)의 남쪽에 있다.




주줄사 서쪽 일대와 진강 남쪽 일대(대동여지도)



임피의 서쪽은 옥구이고, 탄현의 동쪽은 고산이고, 용화산의 남쪽은 익산(益山)이다.

고산과 익산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는데, 그 중 고산의 산수가 익산에 비해 더욱 험악하니, 흙이 아무리 비옥하더라도 살기에 좋지 않다.


모악산의 서쪽은 금구와 만경(萬頃) 두 고을인데, 그 곳의 샘물은 상당히 맑고, 산도 탈살(脫殺)이면서 들판 가운데를 감돌고 있고,

두 물줄기가 감싸듯 아여 기맥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살기에 좋은 곳이 상당히 많다.




모악산 서쪽 일대(대동여지도)




태인 · 고부 · 변산 · 무장 일대(대동여지도)


그 나머지인 태인(泰仁) · 고부 · 부안 · 무장(茂長) 등의 여러 고을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다.

오직 부안의 변산 부근과 흥덕(興德)의 장지(長地) 아래에는 토지가 비옥한 데다 호수와 산의 경치가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