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갑(三甲)의 완성을 위한 봉갑사(鳳甲寺)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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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범 종단과 함께

2021. 3. 30.

이른 바 호남삼갑(湖南三甲)의 완성을 위한 엄청난 불사를 진행중인 전남 보성군 천봉산 봉갑사.

바람결에 들려 오길, 조선조 어느 시기(정유재란?)에 폐사지로 전락해 버린 흔적만 남은 절터에

 도륜 노장께서 원대한 원력을 세우고 불사를 진행하다 수년 전 입적하셨다는...

 

불가에서 말 하는 '시절 인연' 의 의미가 바로 오늘의 경우를 이름인가?

 

송광사 포교국장 소임에다 봉갑사 주지를 맡아 오늘의 대불사를 지휘하고 계신 각안(覺眼)스님의

각별한 응대와 안내로 '호국불교'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방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바,

모처럼 올곧은 수행자를 친견하고, 이내 흐린 눈의 백태(白苔)를 걷어낼 수 있었던 소중하고도 귀한 시간이었다.

 

 

 

 

보성강의 물길이 북으로 흘러 주암호에 담기는 곳.

한 폐사지가 천지개벽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진즉부터 풍문으로 듣고 있었다.

보성군 문덕면에 소재한 '봉갑사' 를 그야말로 느닷없이 찾아가는 길이다.

 

 

 

 

주암호에 물이 담기면서 보성으로 가던 옛길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문덕면 소재지 조금 지난 지점에서 급 우회전하여 구불대는 천봉산 자락으로 접어들어 마을 앞에 이르러

오른편 산자락을 올려다 보니 고개가 아플만큼의 급 사면에 조성되고 있는 봉갑사가 올려다 보인다.

한 눈에 봐도 엄청난 규모의 전각들이 조성되고 있는 모습.

 

 

 

 

불가에 전해 내려오는 비범한 날의 방광(放光).

봉갑사 복원불사 현장에 내렸다는 '부처의 빛' 이 사진에 담겨 있네요.

 

 

 

 

암수키와를 이용해  만든 것인데 반야선(般若船)이라 명명되어 있군요.

이 용처가 뭘까 궁금하여 뒤편 산위로 가파르게 조성된 계단을 올라보니.

 

 

 

 

바로 이런 모습이었네요.

일반 쓰레기 소각장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성을 들였다 싶어 자료를 찾아 보니,

 암자를 짓고 오늘날의 봉갑사 불사 원력을 세워가시던 도륜 선사의 다비가 바로 이곳에서 있었다고.

 

- 도륜  백은(栢隱) 선사 -

 

1927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부친이 한약방을 운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

도교 등을 공부할 장소로 사찰을 찾았다가 불문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박한영 스님의 마지막 제자인 청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청년 도륜은

해남 대흥사에서 10여년간 은사를 모시고 사중일을 보며 강원을 마친 후. 
탁발구도에 나서 10년간 전국을 다니며 법을 구했다.

 청화 스님과는 출가 전부터 인연이 있어 진불암, 해운사 등 토굴에서 방을 같이 쓰며

가장 오랜동안 함께 정진한 스승이시기도 하다고.
호남의 3갑(불갑사, 도갑사, 봉갑사)중 하나인 봉갑사터를 찾아 토굴을 짓고 정진하며

봉갑사 중창의 대원력을 발원 중 2년 전에 입적하신 인물.

 

 

 

 

 

반야선 뒷편 계단을 올라서니 파도위에 선 동진보살상이 금강저를 높이 들어 올린 모습이다.

 

 

 

 

 

신축 중인 전각 너머 가파른 산 위로 원구형의 건물이 올려다 보이고.

 

 

 

 

다시 얼마간 계단을 올라 돌아 본다.

헌데 동행자이신 일포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웬일인가 싶어 뒤돌아 다시 계단을 내려서니.

 

 

 

 

웬 스님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다짜고짜 끼어들어 수인사를 건네고 보니 이곳 봉갑사 불사를 총 지휘하고 계시는 각안 스님이시라고.

헌데, 그로부터 오후 내내 스님의 안내로 봉갑사 전체를 돌아보고 스님의 처소에까지 진출

다담과 함께 이 원대한 불사에 대한 원력을 상세히 듣게 될 줄이야!

 

 

 

 

휙 자동차로 지나칠 때는 그저 통신 중계탑 정도로 알고 지나쳤는데.

절로 올라오는 가파른 길 초입에 선 물경 33m에 이른다는 철제 아연도금 당간의 모습이라는 스님의 설명.

 

 

 

 

각안 스님의 안내로 맨 먼저 찾은 곳은 조사당.

 

 

 

 

조사당 정면에 모셔진 세 분의 존영.

중앙에 용성스님이 모셔진 걸로 보아 불가에서 말하는 소위 '용성문중' 인걸 금방 알아 보겠다.

맨 왼편은 혜암 스님의 은사이신 인곡 스님, 맨 오른편은 오늘 안내를 맡아 주신 각안 스님의 스승이신 혜암 스님 존영.

 

 

 

 

도륜(道輪) 대종사

  봉갑사 회주이시자 각안 스님의 속가 부친이시기도 하다.

 

 

 

 

각안 스님의 안내로 호국원을 찾아 큰 감명을...

 

 

 

 

내부에 들어가 일단 예부터 올리고 살펴 보니,

고대 동이족의 무대인 지도를 바탕으로 단군 왕검의 초상이 모셔진 가운데

역대 단군의 위패를 비롯, 우리 역사 속 위인들의 신위가 빼곡히 모셔져 있었습니다.

 

 

 

 

천정에는 우리의 태극기가 정성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단군왕검 위패 앞으로 천부경이 돌에 새겨진 모습인데,

참고로, 입적하신 도륜 회주께서는 '천부경' 연구에 일가를 이룬 수행자이셨다는 각안 스님의 설명.

 

 

 

 

 

 

 

 

우리 역사 속의 위인들을 호국원에 모시게 된 당위성과

호국불교를 지향하게 된 내력을 정성껏 설명해 가시는 각안 스님의 열정.

 

 

 

 

 

일방통행식 종교 형태만 고집하는 좁아터진 사고방식을 절대 사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천도를 위한 정성도 크게 와 닿습니다.

 

 

 

 

남북통일, 세계일화 등을 위해 오랫동안 전국의 수승한 지점을 찾아  자시(子時)를 택해 

지극정성으로 천도제를 올려왔다는 말씀에는 더 할 수 없는 감동과 지지의 박수를...

 

 

 

 

위패 제단 모서리를 떠받치는 사자상의 해학.

 

 

 

 

호국불교를 지향하는 각안 스님의 의견에 동참한 신도들이

한 땀 한 땀 모두 수 작업으로 제작하여 천정에 내 걸었답니다.

 

 

 

 

위패제단 코너를 장식한 금두꺼비.

 

 

 

 

 

어린이들까지 호국불교의 정성에 동참.

 

 

 

 

 

 

 

 

 

상법당

 

 

 

 

 

 

 

 

 

 

 

 

참선 공간의 밝은 분위기와 함께 천정 감실에 모셔진 백팔나한.

 

 

 

 

꿈틀대는 용의 형상이 적용된 담장.

 

 

 

 

 

 

 

 

 

 

 

 

 

 

 

 

 

 

 

 

 

거북바위에 우뚝 선 해수관음상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건물 주심목에 석가의 사리를 안치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 몸통의 돋보기를 통해 친견할 수 있게 해놓았다.

 

 

 

 

 

 

 

 

 

 

 

 

 

 

 

 

 

 

 

 

 

 

 

 

 

 

 

 

 

 

 

보주를 움켜 쥔 금강저가 건물 내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모습이다.

 

 

 

 

 

공포 형태의 닫집이라고 해야할지...?

 

 

 

 

12각 지붕하며 건물 내부에 이르기까지 이런 형태의 전각은 처음 접하는 것 같은데,

각안 스님에 의하면 사찰 전체 건물 등 모두가 관의 지원이나 간섭 없이 전적으로 당신의 의지를 적용시켜

봉갑사 거대 플랜을 완성시켜 가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젊은 시절을 모조리 가야산에 바치고 혜암 스님 회상에서 원당암 등을 도맡아 신축하면서

이런 독특한 안목을 키워왔으리라는 짐작인데,  무슨 건축학이나 설계 전공 실무자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닐텐데

불교미술의 현장에서 갈고 닦은 솜씨와 혜안이 그저 놀랍기만...!

 

 

 

 

적멸보궁의 각종 창호 형태.

 

 

 

 

 

어두운 조건에다 볼록거울 너머 석가의 진신사리를

광각 렌즈로는 도저히... 

 

 

 

 

 

적멸보궁 외부로 이어지는 각안 스님의 해설.

 

 

 

 

산신각을 오르면서 바라본 12각 지붕의 적멸보궁.

 

 

 

 

이 땅 산신각을 통틀어 가장 개성만점의 건물이 아닐런지...!

 

 

 

 

 

 

 

 

 

 

 

 

 

 

수미단과 대비되는 산신단에 그려진 민화의 수수함과 편안함!

 

 

 

 

 

사모관대의 남산신과 백의를 걸친 여산신도를 배경으로 범의 호위 가운데 좌정한 남녀산신 제위.

참으로 멋들어진 구성이요 화려극치의 색감이다.

 

 

 

 

산삼 한 뿌리를 움켜쥔 여산신.

산신도와 산신상의 화려방창에 넋이 나가 어떤이의 작품인지 묻는 걸 그만 깜빡.

 

 

 

 

 

 

엄밀히 말해 불교는 해외에서 들어온 시쳇말로 외래신앙.

한 때 불교정화 차원에서 각 절의 산신각을 폐쇄하자는 논의와 함께 이를 실행으로 옮긴 시절도 있었다.

상고 이래 산신신앙은 우리네 정서와 너무도 오래 함께 해왔다.

이를 수용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불가의 세계에서 결정할 사안이만

웬일인지 전국 사찰의 산신각 수는 늘어만 가는 형편인 듯.

 

 

 

 

 

 

 

 

 

 

 

 

 

 

 

 

 

 

 

봉갑사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산신각 머리위에 자리한 이른바 '봉황의 알'

 

 

 

 

 

산신각 불사 과정에서 나온 알 형태의 바위로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의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산능선의 형태를 손상시키지 않고 이런 수승한 결과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세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표창감 아닐까?

 

 

 

 

 

 

 

 

 

 

 

 

 

 

 

 

 

 

 

 

봉황이 깃드는 나무가 벽오동이다.

봉황의 알 뒷편에 심어놓은 나무 한 그루가 바로 벽오동나무다.

나무의 끝 부분이 마치 불가의 상징중의 하나인 금강저를 떠올리게 하는 가운데,

벽오동 가지 끝에 걸린 봉우리를 보아하니 그곳은 다름 아닌 천봉산(天鳳山) 정수리 아닌가!

가히 수승하고도 절묘한 조합이로고...

 

 

 

 

 

 

 

 

 

 

 

적멸보궁 12각 지붕의 정수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장엄될 것인가?

각안 스님의 번쩍이는 묘수를 기대 해본다.

 

 

 

신축중인 극락보전 내부

 

 

 

 

태극기 형상의 천장등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전체를 한꺼번에 오르내릴 수 있게 해놓았다.

 

 

 

 

 

거북받침의 이 장엄물은 아마도 각안 스님의 솜씨인 듯.

 

 

 

 

 

봉갑사의 상징이런가? 날개를 활짝 편 봉황새의 위용.

 

 

 

 

 

 

 

 

 

 

 

 

 

 

 

 

 

 

 

 

 

 

 

호국불교를 주창하시는 각안스님 답게 괘불 맨 아래쪽 작은 원 안에

좌측은 만해 스님인 듯 싶고, 우측은 짐작으로 용성 스님인 듯 싶은 인물을 그려 넣었다.

두 분 스님은 3·1 혁명 당시 '독립선언' 에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신 바 있다.

 

 

 

 

 

 

 

 

 

 

 

 

 

 

 

 

 

사진으론 식별키 어렵지만 업경대 속 사리 접시 뒤쪽 글의 내용인 즉,

"대한불교조계종 10대 종정 혜암대종사"

각안 스님의 은사 혜암 스님의 사리라는 말씀.

 

 

 

 

부처의 진신사리를 친견.

 

 

 

 

대적광전 신축 현장 내부까지 직접 보여주시는 각안 스님의 배려가 그저 놀랍기만.

스님네들께서 직접 포크레인 면허를 득하고, 산비탈을 정리하고, 직접 건축과정에 참여하여

봉갑사 복원불사를 해내고 있노라는 말씀에 그저 유구무언 외엔 달리 할 말이...

 

 

 

 

 

 

'아시바' 로 속칭되는 비계 사이에 건물 위로 올려지게될 공포가 합치되어 있는 모습.

커다란 건물 기둥 하나 하나 모두다 밑부분의 부식방지를 위해 오일스텐에 담궜던 흔적이 역력.

 

 

 

 

 

각안 스님 처소에서의 삼갑(三甲)에 대한 이해.

 

 

 

 

 

 

 

지도 속 빨간 원은 설악에서 오대산과 속리산을 지나 덕유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다.

강화 마니산과 태백산 그리고 지리산을 잇는 쓰리축이 큰 삼각을 이루고,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를 잇는

또 하나의 삼각축을 볼 수 있다. 각안 스님의 주장으로는 남해안은 발바닥에 해당하고 호남의 삼갑(三甲)

발 뒤꿈치를 들고 있는 발등에 해당하는 바,  이 축의 맥은 진도로 이어진 다음 바다 건너 일본을 향하는

것이 순리라고. 그런데 그동안은 봉갑사의 축이 무너져 맥이 일본으로 곧장 빠져나갈 수 밖에 없었고,

이 삼갑의 복원이야말로 우리나라 국운 상승의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굳건한 신념과 서원을 

봉갑사 복원 불사와 호국불교 창달에 쏟고 있노라는 요지의 말씀.

 

 

사족으로, 

각안 스님의 말씀을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러 부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가지, 각안 스님은 일반 학자가 아니라 불도(佛道)의 서원을 세운 도인(道人)이시라는 사실.

모쪼록 도력(道力)의 세계를 일반 상식의 잦대로 간단히 재단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한낱 범부(凡夫)의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