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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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21. 7. 23.

인용: 고연희 저 《그림, 문학에 취하다》

 

 

 

허필, 「두보시의도」, 종이에 수묵담채, 37.6×24.3cm

 

 

당의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며 한국과 중국에서 가장 존숭된 시인이었다.

허필이 택한 두보의 시는 「등왕정자騰王亭子」이다. 당나라의 등왕이 노닌 정자를

훗날 두보가 다시 돌아보고 지은 시로, 사색이 그야말로 곡진한 작품이다.

 

 

 

「두보시의도」의 세부도

 

 

 

허필의 이 그림에 그려진 풍경은 작은 정자 하나와 무성한 나무숲이다.

허필은 그림 위에 그가 아낀 두보의 시 한 구절을 적고 이를 택한 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두보의 "봄날 꾀꼬리 대나무 숲에서 울고, 신선집의 개가 구름 사이에서 짖는다" 라는 시구를 읽고

음미하다가, 초선(허필)이 장난삼아 화첩에 그리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려오더라.

 

讀杜家, "春日鸎啼修竹裡, 仙家吠犬白雲間" 之句, 參之, 艸禪戱帖, 不覺心期犁然

 

 

그런데 허필의 그림을 보면 꾀꼬리는 커녕 대나무 한 그루, 개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허필은 도대체 무엇을 그렸단 말인가? 무엇이 그를 떨리게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두보의 시 전편을 살펴보자.

 

 

군왕의 정자가 파산巴山을 베고 있으니 만장의 붉은 계단 우러러 오를 만하구나.

봄날에 꾀꼬리 대나무 숲에서 울었고, 신선집의 개가 구름 속에서 짖었지.

맑은 강 비단 돌은 마음 아프도록 아름답고, 어린 꽃술 짙은 꽃은 눈에 가득 아롱거리네.

사람들이 지금까지 말하지, "목자로 나왔건만, 여기 와 노느라고 돌아갈 줄 몰랐노라."

 

 

君王台榭枕巴山, 萬丈丹梯尙可攀

春日鶯啼修竹裏仙家犬吠白雲間

清江錦石傷心麗,  嫩蕊濃花滿目斑

人到于今歌出牧, 來游此地不知還

 

 

 

대숲에서 우는 꾀꼬리와 구름 속에서 짖는 개에 얽힌 고사에 대해서는 명나라의 문인 양신이

그의 시화집에서 설명하고 있다. "대나무 숲은 양효왕의 일을 다루었고, 개가 구름 속에서 짖는다는 것은

회남왕의 일을 다루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효왕과 회남왕은

한漢 대의 인물이다. 두보는 등왕정자가 봄을 맞은 화창함을 보면서 양원의 화려함을 떠올렸고, 또한

높다란 계단을 보면서 닭과 개가 함께 구름 너머 하늘에 올랐다는 회남왕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그들의 신선놀음이 남긴 이미지는 신비롭고 아름답기가 환상적이지만 두보는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등왕의 놀이는 아직도 백성들의 원성을 듣고 있고, 권력을 잃은 양효왕은 교유하던 문사들을 모두 잃었으며

그의 정원은 곧 쓸쓸해졌다. 회남왕은 자기 수하의 인물에게 모함을 받아 그가 누리던 공간을 떠나야 했다.

 

명나라 문인 양신은 두보의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대나무 숲에 꾀꼬리가 우는 것이 기괴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두보가 제대로 시를 쓴 것인가 의심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전의 다른 시인의 묘사에서도 대나무

의 꾀꼬리가 울었다고 한 것을 발견하곤 그 의심을 풀었다고 한다. 양신은 스스로를 반성하였다.

"독서가 짧은 사람이 가볍게 옛 사람을 따져서는 안 된다" 라고.

 

허필은 '연객煙客' 이라는 호로 조선후기 글에서는 물론 그림 위의 화평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는 문인이자

화가였다. 그가 택한 시 구절을 살핀 후 그림 위 허필의 글을 읽고 다시 이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 속에 숨겨놓은

허필의 내면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그림을 다시 보면 화면 가득 붓질의 긴장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초가지붕 정자

뒤 나지막한 언ㄷ걱의 산 주름을 그린 필선들이 짧게 끊어지며 이어지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짧은 필선들이 화면

의 전경에 다시 베풀어져 있다. 작은 그림이지만 잔 필선으로 화면을 메우는 과정에 허필의 떨리는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지.  그림 속 정자에 분홍빛이 없었다면, 낮은 언덕에 노란 빛이 없었다면, 그리고 물가 작은 바위에

푸른빛이 없었다면, 이 그림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인문 그림 · 김홍도 글 《송하한담도》

종이에 수묵담채, 109.3×57.4cm, 국립중앙박물관

 

 

 

산 속 물가의 맘껏 굽은 소나무 아래 두 벗이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은 조선 후기 산수화에 자주 등장한다.

산수 속에 홀로 가는 고승이나 홀로 쭈그린 어부 등의 고독한 은거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정취를 일으킨다.

두 인물이 마주 앉은 장면에서 산수는 그들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사람 간의 우정이 클로즈업되기 때문이다.

그림 윗편에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 「종남별업」이 얹혀져 있다. 그런데 초서의 멋드러진 필적을 살피자니

「종남별업」 원래의 시 내용이 슬쩍 바뀌어진 게 아닌가? 원시를 한 번 살펴 보자.

 

 

 

중년부터 불도를 아주 좋아하였다가, 노년에는 남산 모퉁이에 집을 지었지.

흥이 날 적마다 홀로 나서니, 좋은 일들은 나 혼자만 알지.

가다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 이는 때를 바라보고,

우연히 산노인을 만나면 담소 나누며 돌아갈 기약 잊는다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오언시五言詩의 묘미와 당시唐詩의 정수를 살필 수 있는 명시 중의 명시이다.

1구와 2구의 '중세中歲' 와 '만가晩家' 는 '노년에' (늘그막에) 혹은 '늦게' 라는 뜻이 있다.

말하자면 디 두 구절은,  '중년에'  '노년에' 로 짝이 되면서 동시에 '중간市'에 이미 오고 싶었으나 

'늦게야晩' 왔다는 뜻도 되겠다. 조선 초기 서거정은 왕유의 이 시구를 거듭 빌려 쓸 때

'늦게야' 왔다는 '후회' 라는 뜻으로 사용하곤 했다.

 

3,4구의 '매독왕每獨往' (매양 홀로 가노라)과 '공자지空自知' (오직 혼자 아노라)가 서로 어울린다.

홀로 갔으니 혼자만 안다는 말에는 혼자서 느끼는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자족自足의 풍요가 넘친다.

'빌 공空' 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니, 오직 혼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5,6구의 '행도行到' (가다가, - 이르면)와 '좌간坐看' (앉아서, -보노라) 은 홀로 가고 홀로 앉으며 자족하는

시인의 행동을 표현한다. 특히, 이 두 구절,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는 읽는 이를

다시 놀래키고 귀신도 흠칫하게 한다는 명구이다. 어려운 글자 하나 없이 '가고行'  '앉는坐' 가운데 '수궁

水窮' (물이 다하고)  '운기雲起' (구름이 일어나는)의 깊은 산수 속으로 시상詩想이 인도되기 때문이다.

산수화에서 물을 그릴 때는 흐름의 방향과 근원을 알 수 있도록 그리라는 오래된 기본지침이 있다.

물을 보는 기본법이다. 또한 우리는 구름이 '하늘에 둥실 떠 있다' 고 하며 수평적 상태로 보지만,

시에서는 구름이(바위 틈 어디에선가) '피어오른다' 라고 하여 수직적 상승으로 보았다.

이를 알면 한시를 읽고 옛 그림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는 조선의 학자들에게도 널리 감상되었다. 

퇴계와 허균 등이 모두 이 구절을 아껴 후인이 두고두고 읽을만한 것으로 지목하였다.

 

마지막 7,8구의 '우연偶然' 과  '담소談笑' 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짝을 이룬다.

중국의 시화詩畵들을 살펴보면, 후대으 많은 문인들이 지적하는 이 시의 매력은 마지막 구절,

7,8구로 옮겨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연' 이라는 두 글자로 불쑥 내용을 바꾸는 방식이 기특하다는 것이다.

물과 구름 끝 저 멀리를 궁구하던 시상이 '우연' 이란 두 글자로 쏘옥 빠져나와 산속 노인과 마주하는 근경

으로 화면이 바뀐다. 즉 산속 나 홀로 자연 속 깊숙이 갔다가 문득 사람과 어울리는 인간적 만남의 장으로

바뀌며 마감하는 것이 신선하여 좋다고 한다. 또한 산속에서 자족하는 모습과 사람과의 초연한 만남의

경지가 모두 망아忘我이며 자득自得을 표현한 점에서 칭송되었던 것이다.

 

 

 

 

마린, 「좌간운기도」, 부채그림, 25.1×25.3cm, 클리블랜드 미술관

이 그림 속 왕유의 시는 남송의 황제 리종理宗의 필치이다.

 

 

 

당시의 특징 중 하나는 경물을 그림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왕유의 시는 그림의 모사법을

취한 시로 특별한 인정을 받았다. 이를 가리켜, 시 속에 '화의畵意' 가 표현되었다고 이른다. 북송의 문인

소식이 왕유 시의 화의를 높이 칭송하였고, 북송의 산수화론서 <임천고치>에서 '화의' 가 있는 시의 예로

「종남별업」이 그림의 화제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송나라 때 유행한 둥근 부채 한 면에 멀리 구름이 이는 

곳을 바라보는 시인이 그려져 있고, 그 뒷면에는 해당 시구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가 적혀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산속 구름을 보는 장면과 사람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하나로 합쳐진 도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는 명나라의 회화에서 구체화되었고, 그림교과서 역할을 했던 <개자원화전>의

인물 표현법 중 하나로 정착되어 유포되었다.

 

 

 

 

《개자원화전》의 「인물옥우편」 중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조선후기에 그려진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를 화제로 한 그림들은, 위의 중국 그림들과 사뭇 다르다.

두 벗이 오로지 담소를 나누는 장면들이 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림 속 두 벗은 자연감상에 별 뜻이

없어 보이고, 즐거운 대화에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들은 마린이 그렸던 고전적 「좌간운기도」가

아니고, 명대에 널리 그려진 합치 도상도 아니다. 오히려, 왕유의 시 마지막 두 구절, 산에서 만난 두

사람의 즐거운 대화를 중심으로 포착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살피고 있는

이인문의 <송하한담도>가 그러하며, 김홍도가 그린 또 다른 <한담도>가 그러하다.

 

소나무 그늘이 늘어지고 계류 흐르느 시원한 배경에 두 사람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림 위에는 「종남별업」 전편이 적혀 있는데 마지막 구절만을 그림에 옮겼으니, 이 그림은 이 시

전체의 주제를 마지막 두 구절로 이해하였다는 뜻이리라. 즉, 이 그림은 전체 시 중 마지막 두 구

'우연' 한 '담소' 를 주제로 그렸다는 뜻이다. 더욱 흥미로운 현상은, 귀신도 놀란 명구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를 적어 놓고 화면은 우연한 담소 장면만을 그린 우리나라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오래도록 애송된 이 시의 대표 구절을 화제로 얹고, 이 시의 주제로 판단되는 만남의 장면을 그린

셈이 되어, 시화의 애매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흥미로운 것은 시인들은 귀신도 놀란다는

이 두 구절을 무척 애호하였고, 그림의 이미지로는 담소의 장면이 애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인문의 「송하한담도」 상단 오른편에

"때에 방취오가 연주하고, 이원담이 노래했노라時方震午彈 李元談歌" 라고 하여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화락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상단 중앙으론 왕유의 「종남별업」 전편을 멋진 초서로 적어 넣음으로써 이 그림의

주제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상단 왼편에는 "을축년(1804) 음력 정월에 도인(이인문)과 단구(김홍도)가 서묵재

에서 글을 쓰고 그림 그려 육일당 주인에게 드리노라" 라고 하였다. 서묵재는 화원 박유성의 호다. 이인문과

김홍도와 박유성은 모두 1745년생 동갑 화원으로 특별한 교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헌데 이 그림 위에 적힌 「종남별업」은 앞에서 인용한 원래의 시와 조금 다르다.

취중에 갈겨 쓰느라 말이 안 되게 글자가 바뀌었다고 해설된 경우를 보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원래의 시에서 두 구의 자리가 바뀌어 있고,  중간에 빠뜨린 한 글자는 뒤에 다시 적어 넣었다.

옛 그림이며 문집에서 줄이 바뀌거나 한 글자가 빠졌을 때 교정을 표시하고 빠진 글자를 후에 얹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것은 물론 실수로 인한 소치이지만, 종이도 귀하고 달리 수정 테크닉도 없던 시절에 요구되었던

필기문화의 일면이다. 이 화면 위에 휘갈긴 듯한 문자들은 김홍도가 취중에 갈겨썼다기보다는 김홍도의 초서

실력이 발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파호도中歲頗好道' 라는 시의 첫 다섯 글자가 초서로 어떻게

옮겨 적혔으며 그 멋이 어떠한가 보는 기회를, 이 그림 감상차 누려보아도 좋을 것 같다. 유난히 크게 시작한

'중中'  자 아래 길게 늘어진 '歲' 가 있고 '頗' 가 조그맣게 이어졌다. 줄을 바꾸어 작은 '好' 자 아래 '道' 는 좀 더

큰 사이즈로 멋을 부렸다. 이렇게 그림 위 상단 중앙을 가득 채우며 초서로 옮겨놓은

「종남별업」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중년에 불도를 아주 좋아하여, 노년에 종남산에 머무노라.

가다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의 때를 바라보노라.

흥이 날 때마다 홀로 나가니, 좋은 일들은 나 혼자 알지.

우연히 산 노인을 만나면, 담소 나누며 돌아갈 기약 잊는다네. '일어나다'

 

 

이인문, 「송하한담도」 세부

 

 

 中歲頗好道  晚家南山陲   

行到水窮處  坐看雲時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偶然值林叟  談笑無還期 

 

 

   

원시와 비교하여 볼 때 두 구절이 바뀌었다. 중간에 빠진 起자는 마지막에 다시 적어 넣었다.

한 글자를 빠뜨리고 다시 적은 것은 분명한 실수의 인정이다. 그러나 두 행의 자리를 옮겨놓은 것은

단순한 실수라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왕유의 「종남별업」은 당시 글 읽는 선비라면 누구나 암송하던 유명한

시였고, 왕유의 시를 그렸다고 하면 의당 「종남별업」을 그렸거니 하고 생각될 만큼 널리 사용되어온 화제畵題였다.

한 두 행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이 시의 내용이 잘못 전달될 리가 없던 시절이다. 오히려 감상의 다른 묘미를 유도한

의도적 희작戱作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잘 알려진 시였으니 식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구절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면 뜻밖의 신선함이 느껴질 것이고, 무엇보다 왕유의 이 시는 간견하고 청아한 시상들이 연결된 것이라, 그 시상

들을 이리저리 바꾸어 보아도 다시금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지는 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가 바꾸어 놓은

왕유의 시는, 시인이 머무는 산수의 깊속한 배경을 먼저 말하고 이어서 혼자도 즐겼지만 산 노인을 만나 또 좋았노라는

내용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으니, 기실 논리적으로는 이렇게 바꾼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다면, 김홍도의

다른 그림 「남산한담」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그림은 이인문의  「송하한담도」 보다 먼저 그려진 것이다.

이 화면 위에도 「종남별업」 전편이 적혀 있는데 시구들의 위치가 매우 심하게 섞여 있다. 첫 두 구절만 겨우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구의 위치를 이렇게 섞어 놓은 것은 의도적 작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바꾸어 놓은 이 그림 위의 시를 읽어보면 내용이 이러하다. 시인은 산수를 홀로 즐기곤 하였는데 우연히

산 노인을 만나 담소를 나누노라니 그곳이 이미 산수 깊숙한 곳이란다.

결국에 더욱 어울리는 시가 되었다. 다음과 같다.

 

 

중년에 불도를 아주 좋아하여,

노년에 종남산에 '자노라'.

흥이 날 때마다 홀로 나가니

좋은 일들은 나 혼자 알았지.

우연히 산 노인을 만나

담소 나누며 돌아갈 길을 잊는다네.

가다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르렀으니

앉아서 구름의 오르는 때를 바라보노라.  '부근'

 

 

 

 

김홍도, 「남산한담」, 《산수일품첩》 중, 종이에 옅은 채색,

29.4×42cm, 1798,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