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5)

댓글 0

자연/취월당

2021. 7. 25.

겸재의 부채 그림 두 폭,

「동리채국東籬採菊(동쪽 울타리 국화를 따노라)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圖(그윽이 남산을 보노라)

 

◈ 도연명의 「음주飮酒」 20수 중 제5수

 

 

도연명의 「음주」는 전원으로 귀거래한 도연명 선생이 술에 취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시로서, 술에

취하여 지내는 것이 깨어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음주철학이자 음주예찬이다. 「음주」는 모두 20

수로 이루어진 긴 연작시인데, 그중 제5수가 가장 유명하다. 제5수 중에서도 두 구절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다가 그윽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東籬採菊 悠然見南山圖" 는 무심의 경지를 표현한

명구로 극찬 되었고, 도연명을 대표하는 표상의 이미지가 되었다.

 

여기서 감상하고자 하는 정선의 두 폭 선화扇畵(부채그림)는 이 두 구절을 그림으로써 도연명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진경산수화로 이름이 높은 겸재가 도연명의 음주상을 그리게 된 사연도 살펴보고,

이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도연명의 음주시를 읽으며 감상해볼 일이다.

 

 

 

도연명 선생은 나이 마흔한 살에 벼슬을 완전히 그만두고 고향으로 '귀거래' 하였다.

시골에 홀로 앉은 그는 술에 취하기를 즐겼다. 그는 자신이 왜 술을 마시는지 그리고 술을 마시며 사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에 대하여 노래하고, 나아가 사실은 술을 마시며 사는 것이 정작 옳은 일이라는 주장을 담아

시를 지었다. 제목이 「음주」이다. 이 시에서 도연명은 인생이란 영고성쇠 속에 있는 것이며 세상의 모든 일은

잘잘못을 다질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술을 마시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세상을 다스린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만을 좇고 있으니 그것은 잘못이라 지적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잘못을 저지른다는 이상한

논리가, 이 시에서는 적절하게 들린다. 「음주」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두가 술 취한 사람의 말이니 용서하라는

취기 어린 재치를 더하여 놓았다.  - 술로는 불가능한 지성이 펼쳐져 있다.

 

술에 취한 은자의 내명은 깨어 사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라고 주장하는 「음주」 제13수의

일부를 먼저 읽어 보겠다. 음주를 주장하는 지식인의 외로움과 자아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한 선비는 늘 혼자 취하여 살았고,

한 사내는 평생을 멀쩡히 깨어서 살았지.

깬 자와 취한 자는 서로를 비웃었고,

말을 해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

 

一士長獨醉, 一夫終年醒.

醒醉還相笑, 發言各不領.

 

 

다음은 정선의 그림 위 시구를 포함하는 「음주」 제5수이다.

 

 

초가를 지어 마을에 살고 있으나

수레 다니는 시끄러움이 없구나.

누가 묻네, "그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소?"

마음이 아득하면 머무는 곳도 절로 외지게 되오.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가

그윽히 남산을 보노라.

산 기운이 저녁이라 아름답고,

새들이 날아 짝지어 날아가네.

이 속에 참뜻이 담긴 걸

꼬치꼬치 말해주고 싶은데 이미 말을 잊어버렸네.

 

 

結廬 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 何能爾, 心遠 地自偏. 

採菊 東籬下, 悠然 見南山.

山氣 日夕佳, 飛鳥 相與還.

此中 有眞意, 欲辨 已忘言. 

 

 

 

마을에 살고 있으나 번거로움이 없다. 마음을 인간사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취하여 멍하여진 시인의 각막에 산, 저녁노을, 돌아가는 새들이 차근차근 맺히고, 이렇게 자연의 모습들을

보노라니 기분이 좋아져 참된 뜻眞意이 이것이라 깨닫는단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잊

었노라 한다. 《장자》에서 말한 망언忘言의 경지도, 세상만사 구구히 따지는 그런 말에 대한 무시로 취하여

세상을 보는 그런 순간이었을까. 도연명은 「연우독음連雨獨飮(비 계속 내리고 홀로 마시노라)」이라는 시를 남겼다.

"한 잔 들이켜니 온갖 생각 멀리 가고, 다시 한 잔 들이켜니 문득 하늘 잊힌다試酌百情遠 重觴忽忘天"

술 두 잔 마신 후 생각도 멀리 가고 이치도 떠나가니, 할 말을 잊었을 것도 같다.

 

아둔한 시인의 행동이 이 시의 매력이다. 국화를 뜯고 산을 바라보고 앉았단다. 시인은 취하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행동 속에 털끝만 한 사심이 없고 무엇을 하고자 계획하는 마음이 없다. 여기서 무위無爲의

경지와 무심의 경지가 펼쳐진다. 위의 시 중 5,6구의 두 구절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만고에 명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런

명구를 내놓고 난 후 "말을 잊었노라" 한 것일까?

 

조선후기인 17세기말의 학자요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창흡은 이 두 구절이야말로 시인이 취할 때 매우 높은

정신적 경지라고 지목하였다. 김창흡이 화가 정선의 후원자 역할을 한 주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그의 시론은 정선이 이 두 구절을 그림으로 그리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창흡은 그의 형 김창협과 함께 한 시대를 주름잡은 학자였다. 이들이 새로운 시론으로 새로운 시풍을 열었던

점은 일찍이 국문학계에서 주목되었다. 이들 시론의 핵심개념 중 하나가 '천기天機' 이다. '천기' 란 원래 《장자》

나오는 말로 '하늘의 기미' 라는 뜻이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천지운행의 기미이다. 순정한 마음이 

자연과 만났을 때, 천기는 언뜻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과 화가에게 천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이미 수백 년 동안

많은 문인들이 거듭해온 터였지만, 김창협 형제의 천기론이 우리 문학사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이것이 산수풍경의

감흥을 진솔하게 읊는 새로운 시풍을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문학 속에서 우리 풍경을 그리는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가능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김창흡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도연명의 시에서 읊은 "채국동리 유연견남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의 한 구절은 그 의취意趣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노라니 무심한 때를 만나고 남산이 눈앞에 든다는 말이다.

이는 가슴속의 사사로운 뜻을 씻어낸듯 깨끗하여, 걸리고 막히는 것이 조금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 있는 바깥  경물들을 있는 그대로 두면서 마침 서로 만나,

경물들과 나 사이에 천기天機가 흘러 움직이게 된다.

 

 

 

 

정선, 「채국동리하」

 

 

 

정선의 부채그림들은 "채국동리 유연견남산" 에서 떠오르는 도연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선은 이 두 구절을 하나씩 나누어서, 국화를 딴 울타리 아래 도연명과 남산을 바라보는 도연명을 따로 그렸다.

「채국동리하」에는 화사한 색이 베풀어져 있다. 술에 취한 도연명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털썩 주저앉은 도연명 선생 앞으로 술동이며 술사발이 나둥그러져 있고, 국화꽃마저도 그 옆에 나자빠져 있다.

선생은 여전히 두건을 쓰고 있다. 술 취한 선생의 이 두건은 '술 거르면 용수요, 머리에 쓰면 두건" 이 되어

이미 술찌끼라도 몇 번 묻힌 두건일지 모른다. 울타리 아래 아직 만발한 국화들이 노랗게 피어 화면 가득

운치를 더해주지만, 이 그림을 매번 볼 적마다 느끼는 것은 화면에 진동하는 술 냄새이다.

 

 

 

 

 

 

 

 

「유연견남산」은 수묵으로 그려져 있다. 수묵화는  채색화보다 덜 시작적이어서, 정신적 분위기를 유도한다.

먼 산을 바라보는 시인의 자세는 자못 무게가 있어 보인다. 두건을 벗어낸 폼이 머리라도 식힌 뒤인가.

손에는 국화 한 송이를 다시 쥐었고, 시인의 허리도 꼿꼿하게 바로 앉았다. 먼 산을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은 시원스런 정기를 호흡하는 듯하다. 시인의 눈동자에 이미 산이 가득 찾기 때문일까.

 

 

한 서양학자(W. Bauer)가 지적하기를, 옛 중국학자들이 자유自由로 들어가는 출구는 두 가지라고 하였다.

하나는 '자연自然' 이고 하나는 '미침狂' 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떠난 외부공간으로서의 외떨어진 산수자연,

혹은 현실을 떠난 내부공간으로서의 비정상적 자기몰두라고 그는 해석하였다. 산수에 몸을 의탁하거나,

취한 척, 미친 척, 혹은 자는 척하는 것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근대기 이래의 서양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자유의 선택은 압박이 심한 관료사회에서 지식인들이 택한 가장 마땅치 못한 방식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며 대항하지 못하고, 산수에 숨어 미친 듯 취하자고 하니 말이다.

시 「음주」은 바로 이러한 '자연'과 '미침' 의 통로를 취한 전형적 예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도연명 선생은 동양적 자유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도연명은 공명의 굴레를 의지적으로 벗어나 자신의 본성과 지성을 지켜낸 표표한 은일자로, 자유로운 지식인의

표상으로 중국과 한반도에서 오래도록 존경받았다. 중국의 시성 두보가 도연명을 칭송하였고, 유학자 주렴계가

도연명의 국화를 높이 기리어, 국화는 '은일자의 꽃' 이라 지목하였다. 이후로 국화의 이 명예를 빼앗은 사람이

나지 않았다. 옛 그림 속 머리에 두건을 질끈 두른 선비 한 분이 미친 양 국화꽃을 흔들고 있거나 머리에 국화꽃

을 꽂고 있거나 혹은 술동이를 들이켜고 있다면 이는 모두가 도연명 선생이다. 술에 취한 시인으로 당나라 시인

이백, 하지장 등이 회화에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매미의 날개 같은 것이 양옆으로 쭉 뻗은 멋진 관을

쓰고 있으니 초라하게 두건을 둘러 쓴 도연명과 쉽게 구별된다. 도연명을 시중드는 동자 녀석은 노상 국화꽃이나

술동이를 옮기거나 술을 거르고 있다. 국화로 장식하고 취하여 해벌쭉해진 도연명의 미소는 도도한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즐겨 그려졌다.

 

정선의 그림 속에서 도연명은 취하여 있으며 또한 꽃과 산과 한마음을 이루고 있다.

혹여, 낮술에 취하여 얼굴까지 달아오른 취객의 모습에서 본받을 만한 은일자의 모범, 나아가 시인의 초상을

찾았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면, 혹은 그를 본받자고 정작 취하기라도 한다면, 이 그림에 담긴 옛

선비들의 감상 핵심, 즉 취함의 메타포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취醉함은 술에 취한다는 일상의 범주를

넘어선다. '취醉' 의 정신적 일탈은 욕심 없는 마음을 지키는 굳센 기상이며, 이로써 보장되는 완전하고 안전한

자유였다. 이것이, 도연명 선생 '음주' 의 가치가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그렇게 오래도록 존중된 이유이며,

또한 취하신 그 모습이 거듭 그림으로 감상되었던 이유이다.

 

 

 

 

인용: 고연희 著 <그림, 문학에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