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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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21. 7. 29.

심사정, 「호취박토도」, 종이에 담채, 115.1×53.6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의 심사정은 몰락한 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그는 산수도 잘 그렸지만, 다양한 화훼와 새 곤충을 담은 화조화花鳥畵를 유난히 잘 그렸다.

강세황이 심사정의 화조화 기량을 특별히 칭송하였다.

여기 소개하는 그림 「호취박토도」는 그의 화조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이 그림 속 까치의 울음, 꿩의 소곤거림 그리고 소리를 삼킨 매의 위력과 그 의미들을 감상해보자. 

 

 

숲속에 사는 교활한 토끼 깊은 굴만 믿더니,

가을 풀 무성해도 몸은 훨씬 뚱뚱해졌건만.

한가롭게 엎드려 머리통 깨질 방책을 생각 않더니.

피 쏟고 털 날리며 삽시간에 화를 당했네.

 

- 성현, 「하사받은 세화에 가을 매가 토끼 잡는 것이 그려져 있네」

 

 

 

15세기의 문인 성현이 「추응박토도(가을 매가 토끼 잡네)」를 세화歲畵로 받았다.

'세화' 란 새해 아침 임금이 선물로 내리는 그림이다. 세화를 받은 선비들은 서로의 그림을 번갈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성현은 미인도를 세화로 받고 벗들의 놀림을 받은 일도 있는데, 이와 같이

토끼 살육 장면의 그림도 받게 된 것이다. 성현은 유학자답게 「미인도」는 미인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추응박토도」는 용맹스러워지라는 뜻으로 받들고 성은에 감사하며 늙도록 감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위에 인용한 시는 성현이 지은 것이다,

 

매가 토끼를 잡는 그림은 중국의 당송시대에 이미 그려졌고, 명나라 황실에서 유난히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헌을 살피면, 조선시대 내내 널리 그려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초기 문인화가 강희맹은 자신의 매 그림에 시를 부치며, 교활한 토끼의 피는 한 국자도 안 된다고 하였다.

옛 선비들이 보기에, 눈을 흘금거리며 땅굴을 드나드는 토끼라는 녀석은 여우와 함께 간사한 무리에 속했다.

이들을 내리치는 위력의 소유자는 매였다. 옛 글에서 간사한 사람들을 소탕한다는 뜻으로

'박토搏兎' 라는 말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던 이유이다.

 

 

 

 

심사정, 「호취박토도」의 세부도

 

 

 

가을토끼 풀숲에서 깡총 뛰니

배고픈 수리가 즉시 내리 덮쳤네.

피 아롱진 것은 보이지만

발톱이 눈알 뚫은 것ㄹ 누가 알리.

산새들 깜짝 놀라 날아올라,

찍찍 깍깍 공중에서 곡哭을 하네.

 

- 나식, 「두성공자의 매 그림에 부치다」

 

 

 

16세기 나식이 종실화가 두성령 이암의 그림에 부친 제화시이다. 토끼가 잡혀 죽는 장면뿐 아니라

주변 새들의 행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읊고 있는 내용도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와 부합한다.

토끼가 매 발톱으로 당할 일이 그깟 눈알뿐이겠는가. 매에게 잡힌 심사정 그림 속 토끼도 겨울잠을 준비한

살찐 토끼이다. 그림 속 가을 배경은 살찐 토끼를 알려주는 코드이다. 새들은 찍찍대며 날개를 퍼덕인다.

그 소리는 "에구에구, 토끼 죽네" 라는 곡소리란다. 심사정의 그림에서도 날개를 펼치고 상황을 보며 울어

대는 새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리를 힘껏 벌리고 소리치는 까치들이다. 이 까치들은 토끼를

위하여 곡을 해주고, 토끼의 부고를 숲 속에 알린다 -훗날 민화에서 호랑이에게 말을 전하는

까치들도 이와 같은 모습의 까치들이다.

 

 

 

 

 

심사정, 「호취박토도」의 세부도

 

 

 

 

옛 그림 속에서 가장 잔인하게 표현된 짐승을 꼽으라면, 정답은 '매' 이다.

호랑이는 산에서 튀어나와 가축을 물어가고 사람을 해치곤 하였으니 매보다 더욱 무서운 동물이었다.

옛 그림에 그려진 호랑이들은 사납게 그려진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우수꽝스런 표정으로

까치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다. 혹은 꼬리를 치켜 올리고 폼을 잡고 있다. 옛 그림 속에서 다른 짐승들을

위협하고 죽이고 있는 가장 잔인한 짐승은 매이다. 매가 나뭇가지에 앉으면 온갖 동물과 새들은 혼비백산

하여 달아난다. 옛 그림 속 매는 토끼를 움켜쥐고, 크고 흰 백로를 물어뜯고, 꿩을 낚아챈다.

이러한 매 그림의 전통은, 두보가 당나라 매 그림을 보고 지은 제화시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두보가 매의 위력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몸 솟구쳐 교활한 토끼를 노리고,

눈 흘기니 북녘 땅 그리는 듯.

······

언제 뭇새 쳐 잡아

털과 피를 들풀에 뿌릴꼬.

 

竦身思狡免,  側目似愁胡.

······

何當擊凡鳥,  毛血灑平蕪.

 

-두보, 「화응」 중에서

 

 

 

당나라 때 두보가 이렇듯 살기 등등한 매 그림을 읊었고, 송나라 화보에 '매는 용맹스럽게 그리라' 는

공식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문사들이 제화시를 남기며 가장 많이 감상한

새 그림이 매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사나운 매의 박력은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천지 중에 기특한 재주 영웅의 기운을 품고,

구름 뚫고 번개 당겨 푸른 하늘 놀라게 하네.

결국 때를 만나 쓰이게 되리니

토끼 잡고 여우 잡아 그 공을 보여주리.

 

-서거정, 「매 그림」 중에서

 

 

 

조선초기의 서거정은 매 그림의 뜻을 읊었다. 서거정이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예전의 매는 주로 사냥에 쓰였기에 그는 토끼와 여우를 놓치지 않고 잡아오는 수렵용 매의 능력을 들어

매의 공력으로 예시한 것이다. 이렇듯 사냥을 잘하는 매는 그 물리적 힘을 넘어서 정신의 기세 또한 인정

되어온 터였다. 중국 송나라의 소식은, 대나무를 제대로 그리는 기세와 속도는 마치 토끼를 잡는

매의 날쌘 속력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대나무 그림은 반드시 가슴속에 먼저 대나무를 이룬 후 붓을 들고 가만히(가슴에 대나무를)

들여다 보다가 이내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이거든 즉시 붓을 들어 쫓듯이 한다.

붓을 휘두르라마자 그림을 완성시키면서그 본 바를 쫓는 것이,

마치 토끼가 튀는 순간 매가 덮치는데 조금만 멈칫해도

곧 토끼가 사라지고 마는 것같이 한다.

 

 

 

정신을 하나로 모아 먹이를 쳐서 잡는 매의 솜씨.

발견과 동시에 내리꽂는 강한 기세는 과연 감탄할 만한 것이었고, 정신과 기운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능력의 모범이었다. 소식이 토끼 잡는 매의 기세를 비유로 든 이유는

대나무 그림에서 기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매가 토끼를 잡으려다 멈칫거리면 토끼를 놓치고 말듯, 화가가 붓을 들고

주춤거리면 맥 빠진 죽대만 그림에 남을 것이다.

 

토끼는 매의 용맹을 증명해주는 희생물이었고, 주제의 핵심은 언제나

날렵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매의 위력이다. 훗날 민화 옥은 문양에 매와 토끼를 그려놓고

'응토찰정鷹兎察精'(매가 토끼 보는 것이 정밀하다)으로 읽은 것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는 말이다.

매의 눈길이 토끼에 꽂히는 순간 토끼는 죽은 목숨이다. 매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상을 노려보며 힘을 응집시킨다.

 

우리 선조들이 바라던 것, 정녕 가지고 싶었던 것은 땅굴에 숨어 사는 토끼의 무력함이 아니라

매의 응집된 힘이었다. 국력이 부족하여 당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매의 위력은 절실했다.

 

 

이 새처럼 용맹스런 병사들을 어찌 구하여,

우리나라 위하여 일본국을 한 번에 쓸어낼까.

 

-임억령  「매 그림」 중에서

 

 

 

바위 아래 꿩이란 놈, 사람들이 모두 웃네.

머리를 나무 아래 쑤셔 넣었는데 제대로 숨지 못했다고.

 

-이기지, 「여기 한 쌍의 매 그림」 중에서

 

 

 

중국 명나라의 궁중화가로 새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렸던 여기呂紀의 그림들이 한반도에도 전하여졌다.

위 시는 조선의 학자들이 모여 여기의 매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 중 일부이다. 심사정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그림들을

충실히 학습하여 소화해낸 화가였다.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에도 토끼가 웅크린 바위 아래 꿩 한 마리가 머리를

들이밀고 숨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 딴엔 숨었다는 것이 이러한 모습인 것을 알고 그림을 본다면,

누구라도 꿩의 아둔함에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꿩의 꽁지는 뽐낼 만큼 멋진 것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주책없이  뻗쳤을 뿐이다.

 

심사정은 이 그림 위에 적기를, "무자년(1768년) 여름에 임량을 항하여 그렸노라" 고 하였다.

임량도 명나라의 이름난 화조화가이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와 임량은 모두 명나라 궁정에서 활동한 출중한 화조화가들이며, 이들이 모두 무서운 매의 주제 속에

우스운 꿩이 삽입된 화면을 그렸다. 이러한 화면이 조선으로 들어와 감상되었으며 심사정이 이를 참조하여

「호취박토도」를 그린 것이다. 매의 살기가 삼엄한데 우스꽝스러움을 표현하는 회화적 유머와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풍자가 당시 동아시아의 매 그림에 숨은 코드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매 그림을 읊은 제화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시절 매 그림의 제작 코드와 감상 코드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코드에 맞추어 화가는 필묵의 기량을 발휘하였고 감상자는 감상의 방향을

제시 받았다. 옛 그림의 세계에서는 한 폭의 그림이 그 화면 하나로 존재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사정, 「호취박토도」의 세부도

 

 

 

심사정의 그림 속 이 꿩들을 볼 때마다 작가 미상의 고전소설 《장끼전》의 '장끼'와 '까투리' 가 떠오른다.

심사정의 이 그림에서 바위 아래 꿩은 암수 한 쌍이다. 조심스레 머리를 빼어 주위를 살피는 영리한 녀석은

암꿩이고, 꽁지는 뻗친 채 머리만 처박은 미련한 녀석은 수꿩이다. 암꿩은 "서방님 어서 숨으세요!" 하고 

재빠르게 속삭였을 것이고 수꿩은 매 무서운 줄 알고 허겁지겁 숨은 꼴이다. 이 그림은 두 꿩의 대조적

성격을 잘 표현하였다. 《장끼전》의 꿩 커플이 꼭 이랬다. 흰 눈 위에 놓인 콩알을 보고 수꿩 장끼가 덥석

먹으려 했을 때, 암꿩 까투리는 주변에서 간취되는 사람의 발자취를 살피고 콩의 정체가 수상쩍으니 먹지

말라고 장끼를 말렸다. "서방님 조심하세요."

 

그러나 장끼는 "열두 장목 펼쳐 들고 구벅구벅 머리 조아"  가서는 콩을 냉큼 삼켰다.

그러고는 당장 나동그라졌다. 덫에 걸린 것이다. 이 묘사 속 장끼는 거들먹거리며 양반대감처럼 걸었다.

장끼는 이렇게 미련하게 죽으면서도 양반 같은 유언을 남겼다. "까투리야, 내가 죽더라도 재혼하지마!"

그러나 영리하고 신중한 까투리는 장끼의 장례식에 문상 온 홀아비 꿩의 청혼을 즉시 받아들였다.

 

 

 

 

인용: 고연희 著 <그림, 문학에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