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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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2021. 7. 30.

박제가, 「어락도」, 종이에 수묵담채, 27.0×33.5cm, 18세기 후반

 

 

 

 

박제가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다. 그의 시문은 실학적 인식 태도를 표현한 참신함으로 오늘날의 연구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박제가는 또한 나름의 예술론을 세우며 그림 감상과 그림 제작을 즐겼던 지식인이었으며

예술가였다. 매우 세밀한 필치로 물고기의 비늘까지 그려낸 이 그림 「어락도」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그림 위에는 《장자》 중의 한 문장이 실려 있다.

 

장주莊周는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이며, 흔히 '장자' 라 존칭된다.

그는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 학식의 방대함, 상상과 비유의 비범함,

논리구성과 문장구성의 치밀함 등이 교묘하고 흥미롭다. 《장자》로 정리되어 전하는 그의 글은

중국 도가道家철학의 대표적 저술이다. 그런데 조선후기 실학자가 저 옛날 도가사상의

《장자》를 그의 그림에 얹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박제가가 물고기 그림 위에 앉어놓은 짧은 글, "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그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물었지, 나는 그것을 물가에서 알았다네)는

《장자》가 혜자惠子와 물가에서 나눈 대화를 마감하는 장자의 마지막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짧은 토막글의 전체적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장자와 혜자의 관계와 만남의 상황,

또한 그들이 물고기를 보며 늘어놓은 논쟁의 과정을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혜자는 장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논리학자이자 정치가였다. 본명은 혜시惠施이다.

혜자는 장자를 만나기만 하면 논쟁을 걸었고 번번이 장자에게 굴복당했다.

이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장자가 혜자를 보러 양梁나라에 갔더니, 한 사람이 혜자에게 가서 장자가 혜자의 재상자리를

탐하여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혜자는 놀라 신하들을 풀어 밤낮으로 장자를 추적하게 하였다.

이 꼴을 본 장자가 혜자를 찾아가서 말했다.

"자네, '원추鵷鶵' 라는 새를 아는가? 이 새는 남쪽으로 북쪽으로 쉬지 않고 날아간다네.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지.

그런데 올빼미 한 마리가 썩은 쥐를 얻었다네.

그때 마침 원추가 그 위로 날아가자 올빼미는 '꽥!" 소리를 질러 원추를 놀라게 했지.

지금 자네는 양나라 벼슬을 움켜쥐고 나를 놀라게 했다네."

 

장자는 혜자의 재상자리에 관심이 없었으니, 이 비유담 속에서 혜자는 썩은 쥐를 움켜쥐고

원추에게 소리지른 올빼미가 되고 말았다. 다음은 이어지는 장면이다.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 위에서 한가로히 거닐고 있었다.)

장자: 피라미가 나와 조용히 놀고 있군.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야.

혜자: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장자: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혜자: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래 자네를 몰라. 자네도 본래 물고기가 아니라서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야.

장자: 부디 처음으로 돌아가보세. 자네가 나에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물은 게야. 나는 그것을 이물가에서 알았다네.

 

 

莊子與惠子,  遊於濠梁之上.

莊子曰:  "儵魚出遊從容.  是魚樂也."

惠子曰:  "子非魚,  安知魚之樂?"

莊子曰:  "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

惠子曰:  "我非子,  固不知子矣.  子固非魚,  子之不知魚之樂,  全矣."

莊子曰:  "請循其本.  子曰,  汝安知魚樂云者,  既已知吾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장자》, 「추수」 중 '호상 대화'

 

 

따지고 드는 혜자의 질문을 턱 받아치는 장자의 말,

"너는 내가 아닌데,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알지?" 라는 구절이 매우 재치 있게 들린다.

그러나 장자의 이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장자가 말하려는 사실도 아니다.

일단 상대방의 논리를 장난치듯 받아쳤다. 여기서 끝났다면, 장자는 전형적 논리오류의

하나인 논리회전을 해서 언어단절의 결론을 만들었을 뿐이다.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는 서로의 말을 절대 믿을 수 없고, 나는 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 사람이 참말을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이상한 이야기를 이끌어낸 것은, 장자가 짐짓 해본 수법으로,

혜자의 논리가 틀려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궤변이었다.

 

이에 대한 혜자의 대응이 몹시 우습다. 자신의 질문, 즉 '어떻게 알았느냐' 는 잊은 듯,

장자가 만든 이상한 결론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그래 맞아! 그러니까 나는 네 마음을 모르고,

너는 물고기 마음을 모르지." 어쩌면 혜자는 '네가 원추 같은 마음을 가졌는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어' 라는 마음이 도사린 탓에 스스로 선명한 논리를 펼 심리적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장자는 혜자를 얼떨떨하게 만들어 놓고는 논의의 관점을 직관적 인식으로 휘익 돌려버린다.

이어지는 장자의 말을 풀이하여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아니야. 너는 내 말을 이미 알아들었어. 그래서 '어떻게 알았느냐' 고 나에게 물었던 거야.

즉, 너는 내가 아니라서 내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나를 보고 또 내 말을 듣고 이미 내 마음을 알았던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물고기를 보고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물고기를 알지)."  혜자는 이에 답하지 않았다.

 

논리로 진리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은 논리학의 기본 전제이다. 논리적 궤변이 가능한 이유이다.

이때 힘을 발하는 것 중 하나가 관찰의 경험과 순수한 직관으로 얻어내는 인식의 힘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누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과 느낌으로 안다.

그러나 속이 좁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구구하게 따져 말하느라 이러한 인식력을 상실하곤 한다.

혹은 이득을 취하려는 모략으로 진실을 외면하다가 진실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구구한 따지는

말에 귀 기울이느라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활용할 기회를 잃기도 한다.

장자는 지적하고 있다.

네 마음을 돌아보렴! 내 마음을 진짜 몰랐니? 그리고 다시 세상을 봐!

 

 

장자는 지략으로 만들어지는 문명이 싫었다. 장자는 세상 문명의 근본적 문제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극단적 입장을 취하였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 본래의 이치를 뒤틀고 있다고.

이것은 일종의 '문명거부론' 이었다. 문명에 대한 그의 거부는 학문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졌다.

장자의 말 중, 학문을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점점 좁아지고 자연의 도와 점점 멀어질 수 있으니

아예 책을 읽지 말라고 한 부분은 무척 재미있게 들린다.

정작 장자가 우려한 것은 학문이나 문명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인습과 욕망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  물고기를 지긋이 보며 즐길 수 있는

내면의 맑은 눈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눈을 흐리게 하는 방해물을 걷어내고 세상 속에

흐르는 커다란 이치를 직시할 수 있는 개안을 장자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조선의 모든 학자들이 읽은 책이었다. 장자가 주장하는 문명 거부의 입장은

문명사회가 지속되는 한 결코 주된 이론으로 선택될 수 없지만, 문명사회가 지속되는 동안

끝없이 반추되어야 하는 성찰을 제공한다. 또한 잦아가 사용한 기상천외한 비유법과

뒤집어 펼치는 문장 구성의 힘은 옛 시대 문장가들의 예봉銳鋒을 날카롭게 연마시켜주었다.

노장사상이 이단으로 내몰리는 유교 중심적 학문 풍토 속에서 조선의 학자들은 장자를

넉넉히 칭송할 수 없었고, 심지어 《장자》를 맹렬히 비난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조선시대 학자들은 《장자》를 거듭 읽으며 사고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 물고기 그림 위에 얹힌 장자 구절을 보면서 박제가의 노장 취향을 말한다면 잘못이다.

장자와 혜자의 이 이야기는 많은 학자들이 나름의 관점으로 짚어본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찍이 고려의 포은 정몽주는 "물고기는 응당 내가 아니고 나는 물고기가 아니니, 사물의 이치가

서로 달라 똑같지 않다네. 장자의 호숫가 이야기가 지금껏 천년이 지나도록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군"

이라 하였다. 앞에서 살핀 성리학자 율곡선생 이이는

"대상과 나 사이에 간격이 없으면, 물고기가 아니라도 물고기를 알지" 物我兩無閒,  非魚亦知魚라

읊어 성리학적 입장을 내세워 장자에게 동의하였고, 이퇴계와 김인후 등  주자성리학자들도

모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다고 동의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조선의 학자들이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아내는 장자의 직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글로 쓰고 빗대어 시를 지었다.

박제가 또한 그의 다른 시에 물고기 마음을 모른다는 혜자의 말을 인용하여 위트로 삼은 바 있다.

 

박제가의 학문은 이른바 성리학을 넘어서려는 실학 중의 실학이었다. 그는 관념보다 실상을 중시하였고

모든 일의 실질 기능을 살핌으로써 현실에 적용되는 지식을 추구하였다. 박제가는, 이러한 학문을 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지전의 선입견을 지우고 세상을 직시하여 인식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주장하였다.

그가 옛날의 시문들이란 모두 지나간 문서일 뿐이니 참된 것을 배울 수 없고, 오히려 자연의 산천초목

이야말로 살아 있는 시문들이니 이들을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묘하게도 이러한 박제가의 주장은 곧 장자의 주장과 정학하게 맞물린다.

 

박제가가 당시의 세상에 대하여 나름대로 펼쳐낸 이론들은 간혹 현대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극단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산천과 그림은 동일하다고 하는 그의 예술관이다.

이유는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기능에서

동일한 실용성의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완상玩賞을 실용성으로 가치화시킨 그의 입장은, 그림을 완상지물이라 낮추어 보던

전통적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이다. 또 다른 극단의 이론으로 중국어 공용론을 들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한반도의 학자들이 우리말로 '말' 하면서 중국어인 한문으로

'글' 을 써온 상황을 문제로 보았고, 차라리 중국어 공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북경을 통해 들어오는 국제문물 수용의 오류와 시차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의 모색으로 '말' 과 '글' 의 통일을 주장한 것이다.

 

박제가의 사고방식이 보여주는 이러한 극단성에는

오래도록 간과되고 있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순수한 눈이 깃들어 있다.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눈으로 직시하여 인식하는 방법이 돋보인다

 

 

 

박제가가 그렸다고 전해오는 이 그림에는 살진 물고기들이 기름진 비늘을 드리우며 있다.

작은 물고기들과 새우들이 푸른 물풀과 어우러져 있다.

이 그림 위에는 다음의 구절이 적혀 있다.

 

그것을 알면서 나에게 물었지. 나는 그것을 물가에서 알았네.

 

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박제가의 이 구절은, 앞에서 살펴본 《장자》의 원문과 약간의 차이를 빚고 있다.

즉, 원문의  "知我知之, 問我"(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물었지)가 박제가의 그림 위에서는

"知之而問我"(그것을 알면서 나에게 물었지)로 잘려 있다. '知我知之'(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알고)를

'知之而'(그것을 알고 그러나)로 줄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박제가가 물고기를 보며 생각한 것은 물고기의 즐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박제가의 글 중에는 물고기의 근심을 생각한 것이 있다. 그가 동해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끌어올리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보면서 지은 「고기잡이」라는 글이다.

 

(물고기들이 물에서) 나와 아가미를 드러내고 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가끔씩 내가 세수하고 목욕하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러니 물의 입장에서 물고기를 보면

어떻게 자신이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어? 또한 물고기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의지할 데가 없어 곧 죽을 것이라고 걱정이 될 거야.

 

- 박제가, 「해렵부(海獵賦, 고기잡이 노래)」

 

 

 

물속에서 노리는 모습을 보고 그 즐거움을 말한 장자의 태도와

잡혀 올라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그 물고기들이 뭍에 사는 사람을 보고 놀라고

걱정할 일까지생각하고 있는 박제가의 태도는,

물고기를 보는 자가 물고기의 마음이 되어본다는 측면에서 서로 통한다.

대상의 마음속까지 생각하려면, 대충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집념하고 면밀히 살펴야 한다.

박제가가 시인들에게 꽃 한 송이 읊을 때도 그저 '붉다'는 한 글자로 얼버무리지 말고

꽃술의 수까지 세심하게 헤아리라 요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박제가는 어떻게 세상만물을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말과 심회를 담아내었다.

그림의 모든 공간은 푸른빛 물속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위에서 내려 오며 벗을 찾는 듯한 모습, 짝지어 다니며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다.

오른편에 측면에서 나란히 가는 두 마리를 보면, 한 마리는 말하는 듯하고 한 마리는 듣는 듯하다.

작은 물고기들이 주변을 다니고 있다. 물속의 세상이요 물고기의 마음이지만

관찰자의 이해가 담긴 화면이다.

 

박제가가 세상을 관찰하여 내 마음을 미루어 인식하려는 그 태도가 《장자》의 구절과 만나고 있다.

세상 만물을 스스로 보고 느끼려는 순수한 의지, 스스로 보아 터득하겠노라는 포부와 인식이다.

 

동양회화사의 전통에서 보면, 이 그림은 이른바 평범한 '어락도' 이다.

물고기 그림에 《장자》의 추수편을 화제로 삼는 일은 이미 중국에서 오랜 전통 중 하나였다.

물고기 그림은 대개 '어락魚樂' 이라 불리며, '어락' 은 고대로부터 전래되는 물고기의 길상 의미와 결부되어

풍요로움을 표현하였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물고기는 자연의 자유로움을 뜻하는 하나의 비유가 되고

상징이 되어 그림의 화제로 환영받은 것이다. 특히 두 마리가 나란히 그려진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 그림이 우리 문학사와 지성사에 뛰어난 문인이요 학자였던 박제가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고 본다면, 그저  「어락도」의 하나로 보고 말 일이 아니다.

물고기의 '즐거움樂' 자체가 주제라는 것과 그 즐거움을 '안다知' 는 것이

주제라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박제가가 그린 이 그림의 주제는 후자 쪽에 가깝다.

장자가 그것이 문명에 얽매이지 않은 자신의 인식법이라고 주장하였다면,

박제가는 문명을 올바로 문명화시키기 위한 인식의 요체로 제시하고 있다.

 

 

".......... 나는 그것을 물가에서 알았다네."

 

박제가가 공감한 장자의 이 한마디는,

우리 땅의 문명을 더욱 더 발달시키고자 노력했던 실학자 박제가의 마음이요,

만사의 현장에서 만물을 직시하고 감수하노라는 세상 인식의 첫 단계에서 만난 장자와의 접점이다.

박제가와 장자가 결과적으로 취하게 된 정반대의 문명론, 즉 문명거부론과 문명발전론은

그들이 이 접점을 교차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의 수직선을 그어나간 결과이다.

 

 

 

 

인용: 고연희 著 <그림, 문학에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