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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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서양 미술로 읽는 정원의 역사 (2)

예술의 정원 루시아 임펠루소 지음 / 조동범 옮김 조각물 정원에 조각물을 두기 시작한 기원은 고대까지 올라간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의 부활로 교육을 받은 대중들이 열렬히 탐구하면서 조각물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라오콘, B,C. 2~A.D 1세기, 바티칸 미술관. 정원 산책로 정원의 내부 동선은 정원 구성의 기본 골격으로서 단순한 기능에서부터 매우 상징적인 것까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정원의 놀라운 요소들 16세기 문화적 지평은 환상에 대한 기호로 특징지어진다. 그것은 특이하고 가끔씩 먼 곳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포함한다. 미로 미로는 구불구불하고 복잡하여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미로를 뜻하는 독일어 이르가르텐은 여러 갈래의 선택을 통해 방향을 찾기 어렵거나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

26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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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서양 미술로 읽는 정원의 역사 (1)

예술의 정원 루시아 임펠루소 지음 / 조동범 옮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정원의 의미와 상징을 찾아서 헤르메스와 분수가 있는 정원(벽화 일부) A.D.25~50. 폼페이, 금팔찌의 집.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무덤은 정원을 묘사한 그림들로 장식되었다. 이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 신화보다 앞선 것이다. 특징으로는 방어를 위한 높은 담, 한 개 이상의 사각형 연못, 규칙적으로 배치된 나무 등. 네바문 무덤 벽화 파편, B.C. 1400년경, 영국 박물관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신들의 세계로, 정원은 신화나 상징이나 종교적 가치가 풍부한 성스러운 숲으로 생각했다. 무덤의 부조 석판 조각, '꽃의 고귀함', 기원전 470~460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봄' B.C. 1500년경, 미노스궁이 프레스..

20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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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초교동창 단체 칠순잔치

약수국민(초등)학교 제42회 졸업기념 6학년 1반 (1966년 2월 14일) (6학년 2반) 맨 뒷 줄 우측에서 좌측으로 세 번째가 내 모습. 교사 뒷편으로 여기저기 벌겋게 드러난 산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 어디서 찍은 것인지 기억은 없지만 중학교 시절의 내 모습(맨 좌측)이다. 맨 오른쪽은 동창회 총무를 맡아 수고해주고 있는 동혁이. 중앙은 종훈이로 이 친구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이미 저 세상을 탐험 중이라고. 종훈이를 포함, 이미 열 댓 명 정도가 불귀의 객이 되어 우릴 기다리고 있는 모양. 제42회 동창 '단체칠순잔치'의 장소로 선택된곳은 철원 한탄강 유역. 전남 장성을 출발 서울에 도착, 친구들과 합류하여 도착한 곳은 혜순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얼마나 소문 난 곳인진 몰라도 식객들이 바..

14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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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석농화원 石農畵苑

金光國의 石農畵苑 《석농화원石農畵苑》은 정조시대 뛰어난 수장가인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이 일생 동안 수집한 그림들을 모아 여러 권으로 꾸민 전설적인 화첩이다. 김광국은 대대로 의관醫官을 지낸 부유한 중인 집안 출신으로 그 역시 의관을 지내며 중국 의약품의 사무역私貿易으로 축적한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글씨와 그림을 소장 하였다. 김광국은 수장가일 뿐만 아니라 서화에 대한 높은 안목과 식견을 갖고 있어 소장한 그림에 화제畵題를 직접 쓰기도 했고, 일찍부터 당대의 명사들과 널리 교류하면서 문사들로부터 화평畵評을 받아두기도 하였다. 그가 이렇게 모은 작품들을 화첩으로 꾸민 것이 바로 《석농화원石農畵苑》이다. 그러나 이 《석농화원》 화첩은 오래전에 낙질되어 화첩이 몇 책이나 되고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도리가 ..

12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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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분단, 잊혀진 미술가들

. 배운성 1930~1935년 경, 캔버스에 유채, 140×200cm, 개인 소장, 등록문화재 제534호. 배운성(裵雲成, 1901~1978)의 는 대가족이라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소재를 대형 캔버스 위에 그린 대작이다. 그림 속에는 젊은 시절 신세를 졌던 백인기白寅基 가족과 배운성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국 최초의 유럽 미술유학생으로 알려진 배운성은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고 각종 전람회에 입선 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1940년 귀국, 광복 후에는 잠시 홍익대 미술과 초대 학장을 지냈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월북했다. 북으로 간 배운성은 평양미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78년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월북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쟁 후 남한 미술계에서 그..

08 2022년 06월

08

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7

기타 현판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도성을 축조하고 돈의문敦義門과 혜화문惠化門 등의 출입문을 내어 도성 안팎을 오갔다. 문 밖에는 영은문迎恩門을 세우고 중국 사신을 맞이하였는데, 당시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朱之蕃이 현 판의 글씨를 써 주기도 했다. 한양의 명승과 관련하여, 영조는 한강의 두무포에 있던 유하정流霞亭을 보수하고 효종이 잠저에 있던 시절 머물렀던 내력 등을 글로 짓기도 했으며 종종 인왕산 아래 세심대洗心臺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신하들과 시를 읊기도 했다. 그 밖에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영희전永禧殿,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 을 보관했던 지방의 사고史庫에도 현판을 걸어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었다. 또한 충신의 절개를 기리기 위한 사당 에도 현판을 걸고 추모의 정성을 보였는데, 부여의 의열사義烈祠..

07 2022년 06월

07

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6 -2

기로소에 대한 서문과 관리들의 명단을 새긴 현판으로 기로소의 연청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에는 기로소가 세 임금이 입소하였던 중요한 곳이므로, 청사를 수위하고 항상 경계해야 하며, 관원들끼리 서로 아끼고 태만하지 말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기사연청 좌목에는 수석 선생 등 소속 관리들의 관직과 이름, 생년 등이 새겨져 있으나, 현판의 훼손이 심하여 전체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연청은 기로소 관리들의 집무 공간이며 기영관의 북쪽에 있었다. 기로소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의 명단을 새긴 현판이다. 현재 세 점의 현판이 남아 있는데, 각각 1891년 8월과 1892년 6월 1893년 10월에 만든 것이다. 봉상시奉常寺 봉상시는 국가의 제사를 거행하고 시호를 정하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태상시라고..

06 2022년 06월

06

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6 -1

궐외각사 현판 闕外各司 懸板 부분, 18세기 종친을 우대하기 위한 관청인 종친부宗親府에 걸었던 현판이다.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1865년(고종 20 2월 20일 기사를 보면, 황폐해진 종친부 건물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수리되어 예전보다 더욱 웅장해졌으며, 고종이 자손과 나라의 번창을 기원하며 종친부 편액을 친히 써서 내렸 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종친부 현판은 두 점 전하는데, 모두 어필이라는 표기는 없으며 간기나 인장도 새겨져 있지 않아 언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한필교(1807~1878)가 근무했던 관아의 모습을 그린 화첩 《숙천제아 도宿踐諸衙圖》 중, ,종친부. 그림을 보면, 정문인 외삼문에 종친부 현판이 걸려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종친부의 하급 관리인 서리書吏가 근무하는 서리청書..

05 2022년 06월

05

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5

행궁行宮 현판懸板 도성 안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과 이궁離宮인 창덕궁을 비롯하여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 정사를 펼치기 위한 궁궐이 있었다. 왕은 때때로 궁궐을 벗어나 지방에 행차하였는데, 이때 임시로 거처하던 곳을 행궁이라 한다. 조선시대 국왕의 도성 밖 행차는 주로 한양 근방에 분포되어 있는 왕릉 참배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능행陵幸과 관련한 행궁으로는 과천, 시흥, 수원의 화성행궁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왕은 정사에서 벗어나 휴양과 심신의 치료 를 위해 온천을 찾기도 했는데, 온천 일대의 행궁에는 대표적으로 온양행궁이 있다. 또한 전쟁과 같은 국난에 대비 하고자 전국의 요충지역에 행궁을 건립하였는데, 강화행궁, 남한산성 행궁, 북한산성 행궁 등이 그 예이다. 조선시대 행궁은 평상시에는 해당 지역의 ..

04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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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4

별궁 현판 조선 시대에는 정궁에 해당하는 궁궐 뿐 아니라 도성 곳곳에 왕실 가족들의 생활이나 의례와 관련한 별궁이 있었다. 별궁은 궁궐 밖에 독립된 건물로 존재했는데 왕자나 공주가 궁궐을 나와 살던 집인 궁을 포함하여, 왕이 돌아가신 후 후궁들이 기거하던 궁이나 방이 있다. 별궁은 재산을 관리하고 물품을 조달하는 내탕內帑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이곳에 살던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용도 가 전환되기도 했다. 왕세자가 아닌 왕자는 혼례를 치르고 궁궐 밖의 별궁에서 생활하였는데, 본래 왕위 계승 자는 아니었으나 특별한 연유로 왕이 된 왕자의 옛 집을 잠저潛邸라고 칭했다. 그 밖에도 왕실 혼레와 관련 한 의식을 안국동별궁과 같은 궁궐 밖의 공간에서 치르기도 했다. 비록 지..

03 2022년 06월

03

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3-2

영회원 永懷園 영회원은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의 빈嬪인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무덤이다. 민회빈 강씨는 1627년(인조 50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서 볼모 생활을 하다가 1645년(인조 23)에 한양에 돌아왔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두 달 만에 급서急逝하였고, 1646년(인조 24) 에 민회빈 강씨는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폐출되어 사사되었다. 폐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나 소현세자 묘에 합장되지 못하고, 친정인 강씨 집안의 산에 일반 사묘로 장사를 지냈다. 이후 1718년(숙종 44) 세자빈에 복위되면서 묘가 새롭게 조성되어 민회묘로 추승되었고, 1870년(고종 7)에는 세자빈의 묘를 원으로 격상하면서 영회원이 되었다. 현재 서오릉 능역 안에..

02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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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조선 왕실의 현판 3 -1

능원묘 현판 陵園墓 懸板 조선 왕릉은 조선 시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존재였던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왕릉은 왕과 왕비가 사후에 묻히게 되는 영혼의 안식처로 생전에 기거했던 궁궐에 버금가는 명당에 조성하였다. 왕릉의 위치 선정 뿐만 아니라 건설과 의례의 전반적인 과정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등에 규정된 예법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이전에 만들어진 왕릉을 선례로 삼아 능침과 재실 및 정자각 등의 부속 시설, 설물의 규모를 정하였다. 국왕은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왕릉에 참배하여 유교적 의례를 거행하고 선왕에 대한 효심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왕의 능행陵行은 왕권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는 공식적인 행사이자 궁궐 밖에 있는 백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이기도 했다. 1753년(영조 29)에 영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