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아버지

꿈과 사랑 2002. 2. 8. 10:45
광 혜 원은!

"은혜를 널리 펼친다"는 뜻을 가진 광혜원은 1985년 4월 10일 고종이 하사한 홍영식의 집에서 한국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으로 알렌(외교관, 의료 선교사)에 개원하였다가 보름 후에 "대중을 널리 구한다"는 의미로 제중원으로 개명을 하고 알렌, 스크랜튼, 헤론, 여의사 엘러즈 네 명의 의사들이

자신들이 근무조건이 좋은 미국 땅을 등지고 한국에 입국하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혼란 스러우며, 전염병 등으로 고통을 받는 우리의 선조 들에게 무보수로 진료하며, 선교와 함께 질병을 고쳐주고 어둠에 민족들에게 빛에 민족으로 전환 되도록 터전을 마련하고 선교사들이 몸소 실천한 현대의학으로 첫 번째 개원한 병원이다.

1884년 12월 4일 개혁파인 김옥균이 중심이 된 갑신정변 때에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 이가 개혁파들에 의하여 가슴과 팔 다리 등에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하였으나 고종의 주치의 이였던 알렌에게 시술을 받아 3개월간 치료를 받고 완쾌되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고종과 민비가 광혜원이 서게 하고 한국에 신교육과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에게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하므로 이 광혜원은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에 근거지가 되었다.

1986년 선교사 알렌은 제중원내 의학 학교를 설립하여 최초의 서양 의학 교육이 시작 되여 첫 번째로 신입생 16명을 전국에서 선발하였으나 4명이 탈락하고 12명(최종악외)수업을 받은후 국내, 외에서 의술을 펼쳤고 최종악은 알렌에 이어 고종의 주치의가 되었고 알렌이 미국으로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자,

제중원을 헤론이 운영하며 한국인의 질병과 치료법 통계 등을 만들어 놓으므로 의학 발달에 큰공을 세우고는 본인도 풍토병인 급성 이질에 걸려 순교하게되자 마포 양화진(절두산 옆 외국인 묘지)에 묻히므로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목사에 이어 순교자 헤론은 양화진에 최초로 묻히는 순교자가 되었다.

헤론에 이어 빈튼 선교사가 제중원을 운영하다 후에는 에비슨 선교사가 세브란스의 후원을 받아 서울역 앞에 그 당시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으며 세브란스 병원은 현재 연대 의대 부속세브란스병원으로 성장하게 되었고,세브란스 병원도 지금은 서울역 앞, 신촌, 강남, 인천, 여주, 몽골 등으로 분산 확장 개원하는 큰 성과를 올렸으며,

제중원에서 분가하여 순수 민간 의료 소였던 선교의사 스크랜튼에 의해 설립된 시 병원은 정동에서 1894년 남대문지역의 빈민촌인 상동으로 옮겨와 상동 병원으로 개명하여 빈민들에게 의료사업과 선교 사업을 계속 하면서 1899년에 전주 예수병원을 설립 시켰고, 1900년에 대구 동산 병원을 설립하도록 하였으며 그후에도 원주, 인천,등 대도시에 기독병원이 세워지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상동병원 자리는 지금에 새로나 백화점으로 바꿔지면서 백화점에 수익금을 가지고 교육사업과 선교사업에 계속 투자하고 있어서 초기 의료 선교사들의 한국 땅에서 자기 생명을 다한 의료 선교는 한국 근대 의학 기초와 현대의학에 까지도 놀라운 공헌을 하였으며 임상 중심에 의학은 우리 선조 들에게 수명을 연장케 하는 업적을 남겼다.

광혜원에서 시작하여 세브란스 의전 출신 의료진들은 국민들에게 의술만 펼친 것이 아니고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독립운동과 3.1운동에 직접 참여하여 나라 살리는데 앞장을 섰으며,

이용섭은 정형외과, 오긍선은 피부과, 비뇨기과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였고 이태준은 몽골에 몽골 왕 주치의가 되었고, 이영춘은 군산 개정 병원을 설립토록 하여 전북 지역 농촌에 의료 봉사와 학교 보건 교육에 앞장선 의료인이며 농촌 문명 퇴치 운동에 선구자 이였다.

광헤원은 이토록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현재 우리 나라에 의료진(의사. 간호사, 병리사, 사무원,등)이 약 60만명과 3만 3천 개의 병, 의원 등을 설치하도록 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므로 현재에 사는 우리들에 가족들이 어느곳이나 어느 시간에도 환자가 발생되면 진료를 받을수 있도록 하였고,

한국에 의학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광혜원의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 뒷 편에 보존되여 있어서 병원에 중요 행사나 내빈들을 위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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