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키그 2011. 7. 21. 06:16

그녀가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TV에 등장한 이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유재하의 노래나 조용필의 노래를 자꾸자꾸 흥얼거렸다. 노래가 비 내리는 날 땅바닥에서 피어오르는 흙안개처럼 원초적이라는 걸, 마음을 이토록 격하게 흔든다는 걸 새삼 기쁘게 깨달았다. 우리의 요정, 디바, 귀요미, 박정현은 항상 옳다.

 

 

<싱글즈>의 카메라 앞에 많은 모델들과 함께 선 박정현은 이런 방송의 이미지를 털끝만큼도 배반하지 않는 프로이자 선한 여자였다. 큰소리로 웃고 모델들과 스태프들을 적극 배려하고 포즈는 또 어찌나 기가 막히게 잘하는지(십수 년 동안 쌓은 앨범 재킷 촬영 노하우!). 인터뷰 내내 때로는 옆집 언니와 수다 떨듯, 때로는 마치 꿈을 꾸듯 필 충만해져서 열변을 토하는 서른 중반의 요정은 같은 여자가 봐도 참 설레는, 따스하고도 겸손한 매력 만점의 여자였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쳤다. 이전의 콘서트와 달리 <나가수>의 영향력을 느꼈나.
일단 표가 정말 빨리 매진됐다. 늘 찾던 사람들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들이 오겠다 싶어서 처음엔 걱정을 좀 했다. 오랫동안 콘서트를 하다 보니 콘서트마다 연결성이 생겼는데 기존 팬들은 어떤 성격인지 잘 이해하니까 내 마음대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었거든. 그런데 이번엔 심지어 평소 콘서트를 자주 보는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책임감이 느껴지더라. 이번 공연을 통해 이 사람들이 앞으로 콘서트를 더 자주 보러 다닐 수 있도록 잘해야 한다는. 이제껏 해왔던 콘서트와 <나가수>를 통해 대중이 기대하게 된 콘서트, 두 가지를 믹스해서 보여주는 작업에 들어갔었다. 다행히 반응은 아주 좋았다.

 

<나가수>를 통해 재조명된 부분이 있다. 13년차 뮤지션인데 새삼 새롭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새롭게 봐주고 좋아해주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치 내가 작년에 데뷔했나 싶을 때가 있다. 하하. 나름 오랫동안 해왔는데 “앨범은 어떤 게 있어요?” “꿈에는 어떤 곡이죠?” 하는 질문을 들으면 내 앨범, 그것도 정규 앨범만 몇 장이나 되는데 싶기도 하고. “이번에 정말 콘서트 매진됐어요? 오 축하 축하”하는 말을 들으면 자랑 같아서 차마 대꾸는 못하지만 속으로 그런다. ‘13년간 계속 매진됐어요’ 라고. 하지만 씁쓸하거나 속상한 건 전혀 아니고 그냥 재미있다. 뒤늦게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 자체로 그냥 재미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박정현이 부르는 김재기, 유재하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직접 선곡하는지 궁금하더라.
1차 공연에선 직접 선곡한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두 번째 경연에서는 돌림판에서 걸린 노래를 부르니까 직접 한 선곡은 아니지. 주어지는 미션곡보다 직접 선곡한 노래가 쉬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지. 곡을 택할 때까지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책임감도 많이 느끼니까. 조용필 선생님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처럼. 진짜 도전이다.

 

이제까지 부른 곡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곡은 뭐였나.

음, ‘꿈에’를 제외하면 미션곡 중에서는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가 가장 좋았다. 일단 편곡부터 마음에 쏙 들었고. 원곡 자체의 다양함, 그러니까 이적 씨 특유의 목소리와 가사 전달력, 랩, 합창단 분위기 등 모든 걸 나 혼자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론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소나기’. 원곡이 워낙 멋지니까 꽤 분위기 있게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처음,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됐나.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 모두 내가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수줍음이 많아서 집에서만 노래를 했거든. 집에 손님이 오면 부모님이 시키니까 되게 싫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너무 좋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의 무대, 내 자리가 우리 집 거실에 딱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밖에서도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다. 그 뒤로 오디션장도 수시로 가고, 가라오케에서 쓰는 기계를 가지고 쇼핑몰의 그랜드 오프닝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많은 남자 가수들이 듀엣을 하고 싶어하는 가수 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보이스 컬러를 가진 남자 가수가 있나.
범수랑 한번 듀엣을 해보고 싶다. 너무 노래를 잘하니까.

 

그 놀라운 퍼포먼스도 함께?
그는 너무 잘하지. 난 하고 싶어도 못해. 그건 그런 끼가 있어야 하는 거다. 못한다, 못해.

 

만약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뭘 했을 것 같나.
영문학과 교수가 꿈이었다. 문학과 책을 너무 좋아하니까. 2009년 대학교 졸업을 위해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도 무척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나 다른 길이니까.

 

* 박정현의 진솔한 인터뷰는 <싱글즈> 7월호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출처: 나는 박정현이다 - <싱글즈> 201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