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강산

사진으로 엮어가는 아름다운 풍경속의 이야기

경주 독락당 (慶州 獨樂堂)과 계정(溪亭)

댓글 2

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2015. 12. 22.

 

 

독락당(獨樂堂)의 계정(溪亭)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김안로의 임용에 반대하다가 중종에게 내쳐져 암울한 시절을 보낸 집이다. 약관의 나이에 조한보와 무극태극 논변을 펼치며 이(理) 중심의 성리학을 확립한 그로선 생애 처음 맛보는 좌절이었을 것이다. 집의 이름도 독락(獨樂)이다. 홀로 즐긴다는 뜻 예부터 홀로 즐김은 같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언적은 홀로 즐긴다고 당호를 짓는다. 그리고는 스스로 원해서 홀로 즐기는 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정계에서 물러난 그의 우울한 심사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의 쓸쓸한 마음 풍경과는 달리 계정 옆으로 흐르는 자계천은 가슴 먹먹하도록 아름답다. 계정(溪亭)은 이 경치를 담기 위해 담에서 개울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기둥을 내려 자계천의 바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바위의 이름이 관어대(觀魚臺)라고 한다. 이언적은 어쩔 수

없어서 혼자 즐긴것이 아니라 혼자서 충분히 즐겼던것 같다. 계정(溪亭) 주위의 바위에 일일이 이름을 붙였다.


관어대 건너편 바위는 시를 읊으며 돌아오고 싶구나 라는 논어의 구절을 따서 영귀대(詠歸臺), 그 위쪽의 바위는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 는 굴원의 시 구절을 따서 탁영대(濯纓臺), 탁영대 위쪽의 바위는 마음을 맑게 한다는 징심대(澄心臺)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 계정에는 계정(溪亭)이라는 현판 이외에도 인지헌(仁智軒)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둘 다 한석봉의 글씨라고 한다. 인지헌의 인(仁)과 지(智)는 회재선생의 구인(求仁)과 논어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취한 것이라고 하는데, 계정의 한쪽 작은방 위에는 양진암(養眞庵)이라고 쓴 현판이 있다. 양진암의 글씨는 퇴계선생의 글씨다. 양진암(養眞庵) 암자의 이름과도 같다. 실제 회재선생과 친하게 지낸 정혜사의 스님에게 아무 때나 스스럼없이 찾아와 머물게 하려는 배려에서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경주 독락당 (慶州 獨樂堂) / 보물  제413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 (옥산리)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에서 계곡의 상류쪽 약 0.7km지점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 독락당(獨樂堂)의 입구인 솟을대문은 보수공사중이었다. ***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솟을대문을 들어서고 보니 우측 대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진채 별채라는 표지판이 붙어있고 좌측 담장 밑에는 알림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날 여기를 들러 본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 표지판이 있는 담장 구석에 자라고 있는 천년기념물 제 115호인 조각자나무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던 것인데 천년기념물인 조각자나무는 이나무가 아닌 독락당 안채 부근에 있는것으로 알게되었다. 하지만 혼자 갈 때 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굳게 잠겨져 있어 언제 한 번

독락당 안채를 구경할 수가 있을런지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솟을대문을 들어서고 숨방채(행랑채)인 경청재 열려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대문하나가 있는데 이곳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아마 그 대문이 독락당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일것 같다. 우측으로는 계정이 자리잡은 관어대(觀魚臺)로 나가는 골목인 것이다.

 

 

흙 담사이 냇가로 통하는 길

 

냇가쪽에서 본 골목안 저 대문이 독락당 안채로 들어가는것 같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고 하나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정작 독락당 안마당에는 단 한번도 들어가 볼 수가 없었으니 그 느낌은 알 수가 없고 난 저 살창 사이로 렌즈를 밀어넣고 약쑥밭의 풍경은 담을수가 있었다.

 

 

 

약쑥밭
독락당 뒷편에는 있는 약쑥밭이라는곳은 이언적이 강계로 유배를 갔다가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이 반장을 하기 위하여 강계에 갔다가 약쑥을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다.

 

 

 

 

 

 

자옥산에서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 자리 잡고 있는 독락당(獨樂堂)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복잡하게 되어 있는 구조다.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는 선비의 의지를 보여주듯 바깥의 사람들은 집 안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고, 출입도 어렵게 한 것인 듯하다.

 

퇴계와 아계, 석봉 등의 글씨 편액이 곳곳에 걸려 있다. ‘옥산정사(玉山精舍)’와 ‘양진암(養眞庵)’은 퇴계의 글씨이고, ‘독락당’은 아계의 글씨다. 정자에 걸린 계정(溪亭)은 석봉의 글씨다.

 

 

 

 

회재선생은 독락당 주변의 산과 자계천의 바위를 사산오대(四山五臺)라고 이름지었다. 퇴계선생이 사산오대(四山五臺)를 반석에 새겨 놓기 위해서 쓴 친필이 퇴계유묵

(退溪遺墨)이다. 사산(四山)은 북쪽 산봉우리인 도덕산(道德山),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무학산(舞鶴山), 동쪽 편에 있는 봉우리인 화개산(華蓋山), 서쪽 봉우리인 자옥산(紫玉山)을 말한다.

 

그리고 계정에서 볼 수 있는 계곡의 바위 다섯을 골라 오대(五臺)라고 이름 붙였다.  물고기 노는 것을 보면서 관조하는 관어대(觀魚臺), 돌아감을 노래하는 영귀대(詠歸臺), 갓끈을 씻는다는 의미의 탁영대(濯纓臺), 마음을 맑게 하는 징심대(澄心臺), 마음을 깨끗이 하는 세심대(洗心臺)가 그것이다.

 

 

물고기 노는 것을 보면서 관조한다는 의미에서 관어대(觀魚臺)라고 한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마르지않고 흐르는 물줄기는 거침없이 흘러내리다가 바위라도 만나면 작은폭포를 이루며 소리내고 있었다. 저런 바위에도 전해내려오는 전설이라도 있을런지 지금의 세상사람들은 아무도 모를일이다. 수 백년 전의 모습도 지금 이모습 그대로 였을지 달 밝은 여름날 초저녁 저 작은 폭포수 소리 들으며 발 담그고 있었을지도 모를

선비의 모습을 상상해 봄직도 하다. 세상 모든 이치가 변해도 저런 모습은 그리쉽게는 변하지 않을것이다.

 

 

 

 

 

정자아래 평평한 바위는 관어대(觀魚臺)이고, 건너편 그림자가 비춰진 바위가 돌아감을 노래하는 영귀대(詠歸臺)이다.

 

 

 

정자앞 계곡 상류쪽에서 바라본  관어대(觀魚臺)와 영귀대(詠歸臺)

 

 

 

관어대(觀魚臺)와 영귀대(詠歸臺)가 있는 계곡 상류쪽의 작은 폭포를 이루는 바위 이곳이 바로 갓끈을 씻는다는 의미의 탁영대(濯纓臺)였다.

 

 

 

 

 

 

 

중국주엽나무로 알고 있었던 이 나무가 조각자나무로 명칭 변경이 되었는데,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는 다른종인것인데 궁금해진다. 천년기념물 제115호는 독락당 울 안에있다. 이 사진의 나무는 독락당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 담장 구석에 자리잡고있는 나무이다. 

 

독락당의중국주엽나무 / 천연기념물 제115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주엽나무. 천연기념물 제115호. 옥산서원의 독락당 울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 6.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4.6m에 이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7.9m 남북이 5.1m에 달하는 거목이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변에는 느티나무·은행나무·이팝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서원의 미관을 위해서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옥산서원은 이언적(李彦迪)을 모신 서원으로, 이언적은 만년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중국주엽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데, 이언적이 중국에 간 적이 없으므로,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엽나무 /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낙엽교목.

학명: Gleditsia japonica var. koraiensis

쥐엽나무라고도 한다. 산골짜기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 20m에 달하고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작은가지는 녹색이고 갈라진 가시가 있다. 나무껍질은 흑갈색 또는 암회색으로 매끈하다. 잎은 어긋나고 1∼2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달걀모양의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양 끝이 둥글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녹색으로 6월에 피며 잡성 1가화(雜性一家花)이고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9∼10개이다.


열매는 협과로 비틀리며 길이 23cm, 나비 3cm로서 10월에 익는다. 가시는 소종·배농 등에, 열매는 거풍·거담 등에 사용한다.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만주·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가시가 없는 것을 민주엽나무(for. inarmata), 열매가 꼬이지 않고 약간 굽는 것을 아자비과즐(var. stenocarpa), 가시가 굵으며 그 단면이 둥글고 열매가 꼬이지 않는 것을 중국주엽나무라고 한다.  출처: (두산백과)

 

조각자나무 /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낙엽교목.
학명: Gleditsia sinensis

중국 원산이다. 가시는 큰 것은 길이 10cm 이상으로 방추형 비슷하다. 잎은 어긋나고 3∼6쌍의 작은잎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긴 타원형 또는 바소꼴로 양끝이 좁고 길이 1∼9cm, 나비 5∼35cm이다.

꼬투리는 편평하고 길이 20cm, 나비 3cm이며 비틀리지 않고 쪼개면 매운 냄새가 난다. 꽃은 6월에 담황백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열매는 협과로 10월에 익는다. 가시를 조각자라고 하며 소종·배농 등의 효능이 있어 각종 종기에 쓴다. 한국의 중부지방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출처: (두산백과)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慶州 獨樂堂 조각자나무) / 천연기념물  제115호

독락당의 조각자나무는 나이가 약 47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90m(62cm높이)이다. 이 나무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주변은 감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2개의 가지만 살아있어 나무의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는 조선 중종 27년(1532) 회재 이언적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115호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주변 현상변경 허용기준  훈령/예규  | 등록일 : 2010-09-01
천연기념물 제115호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주변 현상변경 허용기준 ###※천연기념물 제115호 독락당의 중국주엽나무(이)가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으)로

명칭변경(2008년)@@@   출처: (문화재청)


 

 

 

 

 

 

 

                                                                                                                                            촬영일: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