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딸

무위여행 2007. 10. 4. 17:50
 

아빠의 철학이 있는 排泄學(?)



올해 7살이 되는 아들과 딸이 동화구연을 한지도 햇수로는 2년이 되어간다.

2년동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요일마다 아내는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 내에 있는 문화센터에 다녀오는 수고를 기꺼이 아끼지 않았다.


작년 가을에는 나이가 어리다고 같은 대형마트의 특설매장에서 단체로 동화구연발표회를 했었는데 올 해는 7살이 되었다고 개별적으로 그것도 울산시 전체 동화구연 유치부를 대상으로 하는 이런 경험이 전무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법 큰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강사로부터 받은 아내는 기꺼이 응하겠다고 했다.

2년을 공들인 보람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도 기꺼이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구연을 할 동화를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들과 딸이 익숙한 그래서 좋아하는 “강아지똥”을 하기로 했다.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외우기도 쉬울 것이란 아내와 나의 부모의 영악한 계산도 깔려 있었다.


“강아지똥”으로 정하고 3일 정도를 열심히 반복해서 제법 외운다 싶어 아이들이 대견스럽게 여겨질쯤 강사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전화, “쌍둥이가 같은 동화는 안 되고 그리고 길이도 너무 짧으니까 좀 더 긴 것으로...”


아 욕 나올 뻔 했다. 진작 그렇게 말을 해주지.

아내의 말로는 처음 구연을 할 동화를 정하고 연습을 하기 전에 둘 다 “강아지똥”으로 할 것이라고 통화를 했다고 했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니.


그래서 한 성격 하는 나와 아내는 대회를 보이콧(?) 해버릴까 싶어 은근슬쩍 아이들에게 다시 의견을 구했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핏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과 딸은 한사코 하겠단다. 동화구연대회에 나가겠다고 한다. 아마도 대회가 끝나고 나면 고기 구워 먹는 집에 가겠다는 아내의 꼬임이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있는가 보다. 어찌되었던 외우기는 싫어도 대회에는 나가겠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



각설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 인터넷을 헤엄쳐 적당한 길이의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은 동화를 프린트로 찍어내어 열심히 연습을 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태어나서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외우고 복습하고 엄마 아빠의 닦달을 받게 된 아이들은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특히 아들의 하기 싫어하는 모습은 너무 튀어서 도리어 귀여울 정도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싶어 일장훈시를 하기 시작했다.


“동화구연대회 나가고 싶어 나가기 싫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엄마 아빠는 억지로 시키지 않는 거 잘 알잖아. 하고 싶어 하기 싫어?”


아들의 씩씩한 대답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꼬리를 물고 따라 나왔다.


“할 거에요”


“그럼 열심히 연습을 해.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고 못타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가 중요한 거야.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해야지. 그렇게 게으름을 피울 거면 지금이라도 하지 마. 안 해도 돼.”

 

 

“아니 할 거에요.”


“이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너희들 처음에 글자 하나도 몰랐지만 지금은 많이 아는 거 그만큼 배우고 노력했기 때문이야.
하다못해 똥을 눌 때도 용을 써야 되잖아. 용을 써야 똥이 나오는 것처럼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엔 아무 것도 없어”


아버지로써는 아들에게 좀 더 쉽게 모든 일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어서 쉽게 비유를 한다고 했는데 조끔 찜찜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매서운 추궁이 잇따른다.


“설사는 안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 아차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순발력이 7살 아이에게 뒤떨어질 나이는 아닌 이 아빠의 결정타.


“그렇지 그러니까 설사를 하면 배가 아파잖아. 용쓰지 않아도 나오는 설사는 몸에 해롭잖아! 용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설사는 건강에 해롭듯이 이 세상엔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쐐기를 박듯이 또 다시 철학이 있는 排泄學를 설파하였다.


“예”


7살짜리 아이가 “이 세상에 노력 없이 얻을 것은 없다”는 이 아빠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를 했을 리는 없겠지만 어찌 되었던 아들은 그전보다는 동화 외우기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짜식.



그나저나 아들에게 아빠의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排泄學을 설파하고 나니 여간 찜찜하지가 않다. 마치 똥 누고 닦지 않고 나온 것처럼.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바담風하지만 너희들은 바담(바람)風해”라는 혀 짧은 훈장처럼 아이들에게 비쳐지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