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10. 1. 7. 16:18


무위여행의 斷想들



여전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MB "4대강, 앞으론 답변 않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더 이상 (구차하게)답변하지 않겠다라고 한다.

참으로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다. 대통령이 국민이 묻는다면 대답을 해야 하고, 또 묻는다면 또 대답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래도 묻는다면 그래도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골백번 묻는다 해도 골백번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국민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대통령의 덕목인가? 그렇게 국민들이 믿지 못한다면 자신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의 소통방식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인이 아닌지,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와 행적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집무방식이 국민들에게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정말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지도자의 덕목이 아닌가 말이다. 공자가 말을 하기를 ‘상대방이 자신을 업수이 여기는 것은 자신의 그릇이 그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듯이 국민과 대통령(정부) 사이에 불신의 강이 자리하고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의 방식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증명이고 그 결과에 대한 귀책사유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자책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 현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대통령의 덕목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묻는다면 언제든 답변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전화통화 - 문제될 것 없다

이 문제가 왜 야당과 언론의 왈가왈부처럼 시비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통령이 나라의 예산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진 국회의장에게 새해 예산안처리를 부탁하는 전화통화라면 장려되어야할 사안이지 비판이나 비난의 사안은 아니다. 단지, 그래도 찝찝한 부분은 대통령의 전화가 옛날처럼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의 수준이었고, 국회의장은 그에 복종하였냐는 문제는 남는데, 이 문제는 양쪽의 告解가 없는한 판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전화를 했다는 것만으로 문제 삼을 사안도 아니고 터부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런 문제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더 연애하는 것처럼 더 자주 하라는 것이다. 앞 글의 ‘여전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라는 글의 주장과 같다. 대통령이 국정을 위해서라도 누구라도 만나야 하고 경청을 하고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설혹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여의도의 어깨들에 불과한 일개 국회의원나부랑이라도 말이다.



세종시 원안+알파 주장 박근혜 - 관심없다

박근혜 전대표는 어차피 원안고수를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입장에 놓여있다. 자신이 한나라당의 대표로 있을 때 합의해준 법안이기 때문이다. 지금 원안수정을 운운하면 결국 자기부정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원안고수는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이번 사안에(행정부처 이전을 전제로 하는 세종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더 많이 가진 필자에게는 더욱 그에 대한 비토의 확신만을 가져다줄뿐이다. 국민과의 신뢰에 대한 원칙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애당초 그런 법안을 합의해준 것 자체가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이건희 씨 사면과 용산참사 합의 그리고 세종시

정권차원에서 정교하게 설계한 각본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느끼기에는 그런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번과 같은 내용과 수준의 합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세입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는 별개는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거의 무조건적인 항복이며 따라서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개개인으로 따지면 억울하고 안타까운 면이 묺곘지만 그래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세입자들의 지나침에 있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번 용산참사에 대한 ‘합의’가 정부의 구성원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차원에서(비자발적 貧者들에게는 사회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이해를 해야하는지 정부 스스로 법질서에 대한 파괴로(경찰청장의 사퇴 - 피해자는 국민이다) 받아들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자로 잰듯이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필자는 ‘법질서 파괴’에 무게중심을 주고 싶다. 이른바 ‘떼법’에 대한 굴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건희 前삼성그룹회장에 대한 특별사면복권 역시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들에게 법에 대한 조롱을 낳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옅게 하는 결과적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란 판단을 하고 있다. 왜 이건희 씨에 대한 특별한 사면복권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부가 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들과 소통을 못하고 있다는 증명이고 이명박 정부의 법치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고 주장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나 법리적으로는 문제될 사안은 아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헌법상 부여된 권한이며 그 권한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전례 없는 특별사면복권이 궁극적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감사해야

짜증나는 세상에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코메디의 핵심포인트는 관중이 예상치 못한 반전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반전은 충분히 예상되는 반전이기에 반전이라고도 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는 준다. 엔드로핀 을 분비시켜주는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비웃음, 코웃음, 헛웃음이 되는 것이다.



한겨레 - 왜 한걸레라 하는지 아는가?

이승만·김일성 모두 ‘침공’ 추진…북, 중·소 설득해 선공

남한은 군사독재체제이고 북한은 전시동원체제다? 전형적인 친북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시동원체제라면 어느 정도의 인권의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관점을 내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내재적 접근법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같은 주장과 논리라면 똑 같은 정전체제에 놓여있는 남한은 반공을 기치나 이념이 아닌 단지 대국민 협박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군사독재체제에 불과하고 북한은 (억압체제를 이해할 여지가 있는)전시동원체제라. 참 어찌 이리도 편향될 수가 있는지. 그러니 한걸레라는 말을 듣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북한은 정녕  무너지고 있는가?

북한이 화폐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에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화폐개혁으로 인해 사실상 재산을 몰수당한 북한주민들에 의한 체제에 대한 저항이 없다고 하더라도(충분히 있지만) 북한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판단이다. 아울러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관련된 지침들이 여러 번 변했다는 것이 북한주민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음이다. 북한에도 봄은 오고 있음이다. 북한주민들이 부당함에 대해 느끼기 시작하고 분노하기 시작하였다면 북한의 계곡에도 어딘가에는 얼음이 녹아 개울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북한 자체동력에 의한 폭발가능성을 본다)



누군들 어깨가 무겁지 않으랴 - 自殺

똑 같은 상황에 놓인다 하더라도 사람의 성품에 따라 받는 스트레스강도는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자살할 정도냐 아니냐를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잇따른 자살행렬을 보는 마음은 死者에 대한 측은지심 이전에 삿대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어떤 사람은 단 하루를 더 살지 못해 절망에 빠지는데, 단 하루를 더 살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절대 다수의 구성원들보다 더 많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사회적, 법률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그렇게밖에 판단되지 않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도 없고 ‘죽음’자체에 대한 일말의 동정과 연민의 마음조차 가질 수가 없다.



사형수들의 최선의 인권보장은 사형을 빨리 집행하는 것이다

사형수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예의 인권단체들에서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 인권보호를 위해 사형제를 하루빨리 폐지하라는 주장이다. 필자도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주장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형이 확정된 사형수들을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하루 빨리 보내는 것이 인권보호에 최선의 길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들을 하루 빨리 집행을 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권보호라는 것이 정남규의 자살에서도 증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의 근로정신대 99엔 보상 - 개새끼들

한 마디로 이런 개새끼들도 없지 싶다.(이런 개들에게 너무 미안하네. 쓰벌)

거지동냥도 이렇게 모멸스럽게 하지는 않는 법이다. 하물며 잘못에 대한 배상의 성격을 가진 보상에 치욕스러움을 안겨주는 보상액을 책정하는 쪽바리 새끼들, 괜스레 믿지도 않는 神을 원망하게 된다.

최소한의 가해자의 양심이 있다면 아니 백보를 양보를 해서라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라도 있다면 이런 식의 대응은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일본에게 善隣을 기대한다는 것은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싶다.



우즈가 불륜의 황제가 된 이유

골프나 情事나 남자에게는 모두 구멍에 넣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바라지 않는 이유

지난 일요일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를 식구들이 함께 하면서 아이들과 토론을 하게 되었다. 이제 새해가 되어 10살이 되는 아이와 무슨 토론이 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토론하는 재미가 있다. 토론의 주제는 타임머신이 과연 가능할까, 였다. 필자는 물리적으로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두 개의 현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의 실현가능성과는 달리 필자는 개인적으로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또 타임머신이 가능하게 된다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부터 먼저 과거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역사에 사회에 굴곡이 얼마나 많은가, 정말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은 너무도 많다. 그런 것들에 모두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면 그로 인해 초래될 혼란은 未曾有의 혼돈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것이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필자는 타임머신의 가능성여부와는 관계없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발 딛고 호흡하고 있는 현재가 가장 소중하고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미래이다. 그리고 과거는 말 그래도 가끔은 꺼내보고 싶은 사진첩의 사진 같은 존재이다. 필자의 오늘이 너무도 힘에 부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타임머신이 없게 되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대가 되돌아가고 싶은 시각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