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13. 1. 28. 11:18

박근혜 시대의 장관급 경호실장에 대한 두려움

 

 

박근혜 시대를 이끌 정부와 행정부의 시스템이 차츰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조직의 개편방향제시에 이어 국무총리 지명과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이 될 청와대에 대한 개편이 국민들에게 제시되었다. 참신하다 싶은 부분도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면도 있는 반면에 의문이 생기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 그래서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절망의 눈빛으로 바라봐야 하는 점들도 눈에 띈다. 아니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 중에 하나가 대통령 경호실장의 장관급으로의 격상부분이다. 경호실장이 장관급으로 격상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도 안 되고 일말의 두려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언론의 관측처럼 부모님의 불행한 일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트라우마가 작용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대통령 경호실의 확대가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필자가 아둔하여 그런 것인지 필자 역시 지난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하여 그런지 이해도 안 되고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책임총리제를 기반으로 하는 청와대 기능의 축소를 공약해온 박근혜 당선인의 그동안의 언행에 보면 생뚱맞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생뚱맞은 정도가 아니라 못 뚫을 것이 없는 창과 못 막는 것이 없는 방패를 함께 파는 장사치의 모순처럼 박근혜 당선인의 자기부정을 보는 것 같은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박종규, 차지철로 상징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경호실의 폐해는 아직 국민들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날아가는 새조차 떨어져라고 명령을 하면 날아가던 새가 떨어져야할 만큼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그들이 정작 경호실의 존재의 이유인 대통령 신변에 관련된 불행한 사태를 막지도 못하였고 또 그 불행한 사태를 불러온 遠因 중의 하나임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있거나 그 시대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그 불행했던 일들을 막아내지 못하였던 것은 청와대 경호실이 장관급이 아닌 그래서 결코 약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경호실의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과 참모들, 장관들 그리고 국민들 아시에 건널 수 없는 垓字를 만들어 대통령과 국민들을 유리시켜 불행한 결과를 만듦에 있어 결코 그 책임이 가볍다 할 수는 없는 것이 事實이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박근혜 시대의 청와대 경호실을 확대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혹시 대통령의 신변에 대한 경호만이 아니라 어두웠던 시절의 경호실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의 정치적 심기까지 경호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후보시절이나 당대표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다음에는 密旨로 상징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과 垓字로 인해 공식적인 참모들과도 철저하게 단절된 듯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장관급으로 격상된 경호실이 행여 국민과의 소통이 그 무엇보다 더 앞서는 시대의 화두가 되어 있는 시대에 지난 시대처럼 대통령을 구중궁궐 深處로 만들어 불통과 오만과 독선의 소굴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지극히 우려된다.

 

 

행여 경호실의 확대가 박근혜 대통령 시대 동안 金城湯池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이미 실패의 길을 들어섰는가? 친수공간은 적극 환영하지만 垓字는 정말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