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16. 11. 6. 21:50

상식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지도자의 콤플렉스가 끼진 부정적 영향들

조선 임금 중에서 최초로 直系(직계)가 아닌 傍系(방계) 출신인 선조가 가졌던 콤플렉스가 임진왜란 당시의 君主(군주)답지 못하였던 행동들과 특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장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나타났고 그들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임금 자리에 올랐던 인조가 가졌던 정통성 부족이 병자호란의 근원의 하나로 작용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던 아들 소현세자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울러 소현세자의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유력하다. 그 외에도 지도자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그 나라의 운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허다하다.

 

필자는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을 버려라 "의 제목을 글을 쓴 기억이 있다. 해당 글에서 필자는 赤手空拳(적수공권)에서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타인의 불행과 좌절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박근혜 詐王(사왕) 정권의 끝없는 추락을 겪으면서 적수공권에서 일어선 사람의 지도자가 가져올 폐해는 어쩌면 에피소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트라우마,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아니 극복을 못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끼칠 해악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배신이라는 트라우마가 생존의 근원이었던 박근혜

"우리 영애님 불쌍해서 어쩌누"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절대적 성원의 근원이라 할 박근혜 씨가 겪었을 개인적 상처가 크다는 것 부인할 사람 아무도 없다.

배신이 난무하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써의 폐쇄성과 독단적 행동들이 원칙주의자,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비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필자 개인 차원에서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에는 찬성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포기에 반대한 것에 국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안목이 아니라는 판단을 더욱 굳게 하였지만 많은 국민들에게는 그를 원칙주의자와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초 비추어지게 하였다. 결과론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그 상처가 국민들에게는 신념과 원칙주의자로 잘못 비쳐졌고 대한민국의 비극과 박근혜 개인의 비극의 씨앗이 아닌가 싶다.

 

 

공적 영역을 지배한 지도자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결국 국정 운영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났다. “배신자” “자기정치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유숭민 당시 원내 대표를 찍어낼 때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이란 것에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이고 여전히 박근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대통령직 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고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은 이번의 대국민 사과문에도 잘 나타난다.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에게 도움을 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대표하고 좁게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 공무원(係線)을 믿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변명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일을 하라고 대통령 비서실에 부속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란 직위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공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보좌하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부속실이란 조직이 있다. 더구나 미혼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이전 정권까지 영부인을 담당하였던 제2부속실까지 있다.

그런데도 왜 공조직을 믿지 못하고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 사사로운 일을 맡길 수 있는가? 더구나 공적 영역이 맡아야 할 부분까지 역할을 하게 하였는가?

분명히 지적하지만 秘線(비선)이 아예 필요 없다는 주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係線(계선)을 압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선은 권한을 휘두르지만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결국 계선은 복지부동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번 경우처럼 공조직이 비선조직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공조직이 무너진 공동체가 어찌 온전하게 굴러갈 수 있으며 온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가.

 

설사 부득이하게 비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 논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무지는 비난 받아야 하고 책임추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똥무더기에 똥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사적인 영역이라 해도 대통령의 내밀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대단히 청렴결백한 사람이라고 해도 사리사욕을 얻기 위한 패거리들이 꼬여 공적 영역을 통제하는 부작용을 낳는 것은 모든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대통령이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다고 뒤늦게 자탄하였던 것처럼 백보를 양보해서 대통령은 최순실 씨에게 사사로운 일만 맡겼다고 해도 係線(계선)들이 이를 감시하고 또 감시하도록 하였어야 하였다. 그런 판단력이 없었고 결국 일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어떤 것인지와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개인 박근혜를 지배한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사적 영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공적 영역에서의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오늘의 순실정권으로 나타난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이제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혜성같이 나타난 정치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도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超人걸음이 필요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凡人, 愚衆, 群衆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필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이 타인의 불행과 좌절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이해도 못하고 공감도 못하는 법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은 국민통합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국민통합이 없이는 나라의 발전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이제는 하야도 너무 관대하다. 탄핵과 처벌만이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