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17. 1. 13. 14:21

大選 극단을 배제하는 계기가 되어야

 

 

 

중국과 일본의 勝數쌓기의 祭物이 된 대한민국

국내경기는 물론이고 국제 스포츠에 있어 실력이 월등히 뒤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팀의 勝數(승수)쌓기의 祭物(제물)이 되는 팀을 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가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중국과 일본의 힘자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우리의 외교안보 환경은, 중국과 일본이 국제사회와 주변국들에게 자신들의 힘자랑과 본보기로 대한민국을 타킷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네 바보신세가 되었다.

 

더욱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실력은 있으나 팀 구성원들 사이의 반목과 불화로 인해 세계 11-12위권의 경제력에 비추어 다른 팀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 대부분의 정치사회 사안에 그렇듯이 중국의 완력행사일본의 賊反荷杖(적반하장)에 우리 사회는 패거리 놀음과 진영논리에 빠져 제대로 된 대처는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私的 인연에 얽매여 국가를 망친 박근혜 詐王순실上王패거리들이 퍼질러놓은 폐기물과 오물 치우기에 급급한 우리에게 존망을 거론할만큼 위기는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집안싸움만 매몰되어 있는 극단주의자들

필자도 직업이 있기 때문에 24시간 언론을 모니터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터넷이란 공간에 업처럼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을 쪼개 언론사 사이트를 서핑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다.

寡聞(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사드배치 반대를 둘러싼 완력행사와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賊反荷杖(적반하장)을 대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태도는 마치 구한말에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등으로 나뉘어 집안싸움만 했던 망국적 작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읽혀지지 않는다. 패거리와 진영논리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장과 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갑질에 동의를 하는 듯한 패거리들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싼 갑질엔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결사항전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 반면에 중국의 부당한 갑질에는 上國노릇하지 말라며 분기탱천하고 있는 패거리들은 오히려 일본의 오만불손함에는 마치 우리가 잘못한 것인양 하고 있다. 마치 임진왜란 당시 왜국의 정국을 살펴보라 보낸 사신들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반대의 보고를 하였던 것처럼 이념과 정파에 따라 결과적 賣國(매국)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러니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虎口(호구)가 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사드배치에 중국이 내정간섭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옳다면 과거사 문제를 호도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이 된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두 진영은 편 가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 정치사회 현상에 있어서의 편 가름도 모자라 이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에서마저도 편 가름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안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진영과 패거리 논리만 있을 뿐이다.

 

필자의 주장이 曲解(곡해)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각 언론사 사이트를 들어가서 관련된 몇 개의 기사를 개략적으로만 읽어만 봐도 주장이 잘못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내 편네 편의 논리만 있을 뿐이다. 그냥 진영논리와 패거리싸움만 있을 뿐이다.

 

 

정책라인에서만이라도 극단을 배제해야

필자가 예전에 썼던 글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좌파를 배제하기 위해 일제를 수긍하는 극우파들, 우파를 배제하기 위해 김일성을 포용하려는 극좌파들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것처럼 극단적인 우와 좌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극우와 극좌진영이다. 극좌는 극우를 배제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을 수긍하고 극우는 극좌를 배척하기 위해 일제시대를 수긍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행위 자체에 대한 선악의 구분이 아니라 행위자가 내편이냐 네편이냐에 따라 행위 자체의 선악도 달라지고 행위자도 영웅과 죽일 놈으로 갈리는 것이다. 아무리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를 배척하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격하게 이야기 하자면 지금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하면 할수록 더욱 패거리싸움만 확대되고 심화될 뿐 통합과 화해의 길은 더 멀어지기만 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서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는 사안들에 대한 收斂(수렴)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구성원들 사이의 反目(반목)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을 뿐이다.

 

생존의 문제나 마찬가지인 미국에 대해선 아주 작은 실수나 무시에도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듯 하는 자들이 정작 우리의 안보주권을 철저하게 짓밟으려 하고 있는 중국으로 朝貢(조공)하듯이 달려가 머리를 조아린 세력들이 바로 그들이다. 중국의 완장질에 대한 반발은 물론이지만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마저 안 된다고 거품을 무는 자들이 무력사용이 전제되는 보통국가로 가고 있는 일본의 부도덕과 위험성은 애써 외면하면서 일제시대를 긍정하려는 세력들이 바로 그들이다.

 

맹자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나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훼손한 후에 남이 그 집안을 훼손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 공자 역시 남이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은 내가 우스운 꼴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스스로를 존귀하게 해야 되는 이유를 설파하였다. 오늘 중국의 완력행사에 짓눌리고, 일본의 적반하장에 오히려 대한민국의 도덕성이 운위되는 지경까지 몰리게 된 것은 결국 우리의 집안싸움에 기인하는 면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영논리와 패거리 싸움에 매몰되어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이들 극단의 세력들을 배제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 세력을 우리의 정책결정 라인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봄이 될지 여름이 될지 아니면 아예 한 겨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에서 양극단을 정책라인에서 배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두환의 정치정화법처럼 양극단을 인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정책라인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배제시키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겠는가? 모든 사안을 대결구도로만 인식하는 그것도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패거리들을 정책라인에 두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일말의 奢侈(사치)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절박함으로는 그들만 배제할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파든 좌파든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었다는 변명도 듣기 싫다. 자신들만 옳다는 패권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저들의 悖惡(패악)에 신물이 다 넘어온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우리 공동체에서 양극단을 정책라인에서만큼은 배제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빠·노빠 싸움에 죽어나는 未生) (친박과 친노들부터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역사가 아니라 신화가 돼버린 ) (박빠의 싸움에 서민들 만 터진다) (아버지의 神話(신화)歷史(역사)로 만든 박근혜) (누가 죽음으로 장사하는가?) (극우와 극좌는 사회에서 쓸어버려야 - 할 수만 있다면) (안병직, 이영훈를 배척한다) (스스로를 업신여기지 않았다면) (보수-진보 이념싸움이 아니라 패싸움일뿐이다) (채동욱 사태를 보면서 - 여전한 패거리 싸움) (인류의 외계인과 내 속의 악마성) (채동욱사태 - 배우와 관객의 역할만 바뀌었을뿐) (박근혜 당선자에게) (진영논리에 빠진 조선일보 - 대단히 실망스럽다) (이땅의 민주, 진보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