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무위여행 2017. 8. 4. 13:34

우리 공동체는 진보하였는가?

 

 

 

남의 집 머슴이 뭘 알아그 후 20

1997년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IMF라는 국제경제기구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랬던 것만큼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것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IMF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쓴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다가 홍두깨를 맞았고 그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은 일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함에 있어 아주 많은 遠因根因들이 있겠지만 IMF사태를 초래한 몫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보그룹의 부도사태였다. 나중에 국회에서 관련한 청문회에서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의 회장이 했던 말이, 한보그룹 직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 아니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인들의 가슴에 낙인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남의 집 머슴이 뭘 알아!우리 시대의 갑질의 상징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렇지만 우리 지도층들의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인식은 그때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민중들은 개돼지라는 고위 공무원의 발언이 극명하게 드러낸 것처럼 마치 시리즈물처럼 터져 나오는 권력자들과 대기업 회장들의 가맹점과 직원들에 대한 갑질들이다. “남의 집 머슴이 뭘 알아에서 한 뼘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였다. 어쩌면 심리적으로는 더 퇴보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지도층들의 잘못이 더 도드라져 보일 뿐 평균적인 우리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혹은 낮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완장질과 자영업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이른바 진상손님들까지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우리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철학적 이해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性惡說이 맞을까?

누구나 권력(?)을 갖게 되면, 작은 아주 작은 완장이라도 차게 되면 완장질을 기어코 하게 마는 부끄러운 自畵像(자화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냥 인간 본연의 모습일까? 필자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 주민인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경비원에게 완장질을 하는 것을 보면 아니라 부인하기도 어렵다.

인간을 유인원은 물론이고 다른 동물과 다르게 한 근본적인 이유로 보통 直立步行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왜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을까에 대해선 여러 학설만 있을 뿐 뚜렷한 정설은 없다. 그 중의 한 학설이 이기주의설이다. 침팬지나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좋아하지만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귀한 먹거리를 주자 무리 모두가 양손에 먹을거리를 쥐고 두 다리로 도망을 쳐서 숨어서 먹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기주의가 인간을 직립보행을 하게 한 요인이 아닐까 하는 학설이었다. 처음 이 학설을 접했을 때 단편적인 관찰과 단편적인 주장일 수도 있지만 무시만 할 수 없는 본디 인간은 착한 면보다 악한 면이 더 많다고 느끼고 있는 필자에게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며 自慰(자위)하기에는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신분제도가 낳은 악습?

혹자는 너무 오랜 세월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양분되었던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기인하는 관습법적 모습이라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대우를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작은 권력(갑의 위치)이라도 서게 되면 완장질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에도 찝찝하고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아랫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문화는 있었다. 명백한 신분사회였지만 제도와 달리 노비에게 출산휴가까지 부여한 세종대왕은 물론이고 한국적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경주 최富者의 경우도 있다.

 

 

信賞必罰이 되지 않는 사회?

필자가 인터넷에 글을 쓰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신상필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문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도 기가 막힌 기사를 접하였다. 고등학생이 핸드폰에 저장된 가짜 신분증을 제시하고 음식점에서 술을 먹다 단속에 걸렸지만 학생에게는 형사적 처벌은 물론이고 민사적 책임도 없다는 판결로 신상필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생이 그 정도의 사리분별력이 없을 리가 없다. 또 충분히 犯意가 있는 학생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처벌의 수위는 지극히 낮아 처벌이 警戒(경계)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有權無罪 無權有罪는 우리 공동체의 사법현실을 잘 나타내는 어휘가 된지는 오래다.

 

 

나만 아는 문화?

易地思之(역지사지)할 줄 모르는 문화 탓?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이유 때문일까.

나는 정당한 권리의 행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갑질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듯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우리의 사악함 탓일까? 왕조시대에도 왕이 크게 잘못하면 反正으로 쫓겨나거나 때로는 역성혁명이 일어나 왕조 자체가 바뀌기도 하는데 "손님은 왕이다"라는 어쭙잖은 명제 하나로 군림하는 것들이 바로 이 모습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유행성결막염, 전염성이 강한 독감 등을 아이가 앓고 있어도 학교에 기어이 보내고 마는 학부모의 모습에서도 우린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상과 보복 심리?

고된 시집살이 한 며느리 나중에 더 엄한 시어머니 된다는 속담처럼 혹시 자신이 아랫사람이었을 때 겪어야 했던 至難(지난)했던 시간들에 대한 비뚤어진 보상심리와 보복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최근의 육군 대장 일가를 둘러싼 갑질 논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모르긴 몰라도 "내 마누라는 여단장급이다"라고 한 대장과 갑질의 당사자인 부인은 초급장교시절 진급을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윗사람들의 갑질을 고스란히 견뎌내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시절 지났어"하며 알량한 권력 휘두르는 것에는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와 보복하려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이 없는 사회?

혹시 어른의 不在 때문은 아닐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의 잘못에 대해 야단을 치는 어른은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동네마다 예절과 규율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야단을 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야단을 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고 마땅히 어른 노릇을 하여야 할 세대들도 시대를 탓하며 숨어버렸다. 부끄럽지만 필자 역시 제노비스 사건처럼 匿名(익명)의 그늘에 숨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어른의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어른의 부재가 갑질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골의 무지렁이에 불과한 필자가 생각하는 갑질을 가져오는 근원적인 원인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과 함께 신상필벌이 되지 않는 관습헌법이 아닌가 싶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하게 나쁜 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만 숨어 있는 악마성을 드러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갖추었거나 갑질할 기회가 닿았기 때문에 갑질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갑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올바른 심성을 가졌기 때문에 갑질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하지 못한 즉, 사회적 지위가 갑질을 용인하지 못하였거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하지 못한 측면이 더 많지 않나 싶다.

 

 

과연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는 문화, 사회적인 측면에서 과거보다 진보하였을까? 아니 진보할 가능성이 있기는 있을까? 그래서 전쟁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 과연 이 공동체에 충성을 할 가치가 있기는 있을까? 머리가 무거운 것은 더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소중한 글을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더우시죠?
뜨겁지만 여름도 길지는 않을 듯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게 눈꺼플 이라고 하였습니다.
커피 한잔으로 졸음을 밀어 내고서 오후의 출타를 준비합니다.
행복한 주말이 됫길 기원합니다.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재충전을 위한 휴가라고 하는데,
복귀 첫날 일을 더 하기 싫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