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19. 10. 26. 10:47

1909년과 1979년 그리고 2019년의 1026

 

 

 

오늘은 1026일입니다. 블러그에 오시는 여러분들께서 기억하거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1026일의 상념과 풍경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라 같은 사안이라도 사람이나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기억을 하거나 혹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마치 경험하였거나 일어난 것처럼 기억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입장에서 편리한대로 혹은 유리한대로 기억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 1026일은 19791026일 정확히 말하면 1027일의 아침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 막 집을 나서려는데 골목 뒷집의 아주머니께서 말 그대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머니를 찾아오신 모습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며 "이러다 전쟁 나는 것 아니냐"며 걱정과 곤혹스러움에 당황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때는 많은 분들에게 朴統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고 두려웠던 것은 전쟁이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만 하더라도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은 박정희였고,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을 땐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어요" "이북의 김일성아 듣거라 한국의 박정희를 몰라보냐" 식의 개사된 노래를 동요처럼 불렀습니다. 대한민국이 곧 박정희요, 박통이 곧 대한민국인 것처럼 알던 중학교 2학년 저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서 국립묘지 참배 중에 국장 때 사용하였던 菊花로 덮힌 영구차가 그대로 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장례식 때 국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일본 왕실의 상징이 국화이기 때문에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란 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원래 우리나라 전통 初喪 때는 生花를 쓰지 않고 造花를 사용하였습니다.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우리 역사 속 1026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날이기도 합니다.

 

19091026일 안중근 장군(義擧 당시 義兵韓國義軍 參謀中將의 신분이었고 당신께서도 심문과 재판 과정에서 군인의 신분임을 밝혔다고 합니다 따라서 義士보다는 將軍으로 호칭하는 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얼빈역에서 국권 침탈의 元兇(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합니다.

 

일본 극우쪽에서는 대한제국을 倂呑(병탄)하게 된 하나의 이유로 들기도 합니다만, 안중근 장군의 의거로 일제의 침략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國益만이 정의의 기준인 국제사회에서 의도한 만큼의 反響(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더욱 각성하는 계기, 중국인의 自省과 협력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한 번 더 감동시키는 것은 안중근 장군의 어머니의 태도입니다.

虎父犬子 없다는 말처럼 장군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저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의미를 退色시키는 것 같습니다.

 

 

1909년과 1979년의 1026일은 어떤 의미로든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날이었습니다. 안중근 장군의 이등박문 암살은 그 자체로도 의거임은 분명하나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과 나라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그리고 朴統 암살 역시 그의 통치기간에 대한 功過 평가와는 별개로 최고 지도자가 최측근에 의해 그것도 젊은 여성을 접대부로 한 술자리에서 비명횡사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굴곡임은 분명합니다.

 

 

가을 날씨가 참 좋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름을 견뎌내었기에 가을이 있는 것처럼 1909년과 1979년의 1026일이 있었기에 20191026일 오늘의 가을 하늘이 우리에게도 존재할 것입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는 어떤 의미로든 또 다른 "역사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2019년 10월 26일입니다.

일영월 일칠일은 김유신과 같아서(이하동일)
산토끼노래에 맟줘서 불렀지요
무명님
반갑습니다. 그때는 진짜 그랬지요. 그런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 싶습니다. 팬덤들에 의해 정치인들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