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20. 9. 1. 19:20

대통령의 비겁한 침묵과 선택적 웅변

 

 

 

자칭 소통 대통령이라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대한 의문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방통행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필자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적 발언과 의도된 침묵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몇 번 쓴 기억이 있다. 정치적으로 유리하거나 그렇다고 여겨지는 사안들에 대해서 국민의 요구가 있기도 전에 대통령의 생각은 국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전해지곤 하였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곤란한 사안들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다.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물음엔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다. (페미니스트정권? 포주정권이라 해라) (대통령이 改宗을 했다는데) (청와대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BTS가 미국 빌보드챠트에 1위에 올랐다고 해서 난리다. 우리나라 가수 중에선 前代未聞이라 하니 마땅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음악챠트 1위에 올랐다고 TV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둘째 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재빠르게 관련된 축하 메시지를 전하였다고 한다.

 

 

疏通(소통)이란 서로의 의사가 전달이 된다는 의미다. , 일방에 의한 일방적인 의사 전달인 通知와는 다르다. 그런데 집권 초기와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들에 대한 메시지 전달 방법은 嚴酷(엄혹)談話文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소통이 아니라 통지가 되었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을 만나는 횟수가 불통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박근혜 전임 대통령보다 더 적게 기자(국민)를 만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무7라는 상소문 형식의 글이 인구에 이토록 膾炙(회자)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만큼 국민들이 고통에 빠져있고 그래서 대통령의 말을 듣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다는 말을 하고 싶고 국정 최고 책임자의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처럼 대중 가수마저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노래하는데 대통령은 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가?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만 하는가? 비판과 비난 받을 국정 사안에는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환호와 박수를 받을 일들엔 선택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대통령이, 소통의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는 대통령이 할 노릇이 결코 아니다.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외교, 국방 등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아니 물어야 하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 청문회라도 세우고 싶을 만큼 물어야 하고 그만큼 들어야 할 사안이 너무도 많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을 보며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솔한 이야기와 최소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하는 대통령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부동산, 박원순, 오거돈, 외교, 정의연 등 대통령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고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물어야 하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 대통령은 의무로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해야 하는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BTS 1등 축하의 말도 듣고 싶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너무도 많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때로는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의무가 있다. 그게 싫거나 두려우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된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취임사의 그 미사여구가 어록에만 남아 있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겁한 침묵과 선택적 웅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