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20. 10. 24. 22:50

대통령의 이중성과 여권의 직무유기

 

 

 

며칠 전에 필자는 禽獸정권의 수장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글을 쓴 기억이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싸움은 특정 정책이나 수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넘어 국민의 국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상황 정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필자는 우리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전제 조건은 언론과 검찰이 바로 서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오래된 믿음을 갖고 있다. 언론 없는 국가보다는 국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제퍼슨의 말처럼 언론의 바로서기는 그 성격상 자율에 의존하는 것이 타율에 의한 것보다는 더 낫다고 믿고 있기에 논외로 하고 싶다. 다만 검찰이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검찰권이 권력과 검찰의 이익에 의해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총장 직무수행 방식에 필자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1+1=2처럼 자연과학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과학에는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다만 공동체 구성원들 대다수가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동의하는 가치에 의해 정의는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는 시대를 같이 하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재화, 가치, 자원 등을 분배하는 문제로 귀결이 된다. 민주주의도 결국은 권력의 분배를 위함이고 이를 견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분배의 방식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개혁은 頓悟(돈오)가 아니다. 넘어지지 않고 목적한 곳에 이르기 위해서 자전거 페달을 계속해서 밟아야 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나태해지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충돌이 정의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두고 싸우는 것이라면 의외로 쉽게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의에 대한 즉, 가치에 대한 爭論(쟁론)이 아니라 이익의 충돌이다. 根底(근저)에 내포된 원인은 서로가 더 권력을 가지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사회·문화적 이익을 누가 더 많이 가질 것인가에 대한 개싸움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돈을 빼앗아간 놈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란 마키아벨리처럼 이익을 둔 싸움이기에 쉽게 개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여권의 직무유기를 추궁하는 것이다.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수행 방식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믿고 있다면 왜 가만히 있는가?

 

헌법 제65조에는 국회는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특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라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수행 방식이 “반정부 투쟁 선언”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태아의 성별을 바꾸거나 납을 황금으로 바꾸는 것 외에는 못할 게 없는 180을 갖고 왜 안 하는가? 아니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검찰총장이 정치를 하고 있다면 마땅히 탄핵을 해야 하는 게 국회 아니 여당의 책무다. 그렇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문재인 대통령이 총선 후에도 간접적으로 임기를 지켜라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는 증언이 국정감사의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혼외자식때처럼 사실인 것으로 여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청와대부터 먼저 부인을 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최고존엄을 개싸움에 끌여 들었다며 여권 전체가 거품을 물고 실신까지 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사실이었음을, 일국의 최고지도자임을 의심케 하는 이중인격자임을 증명하는 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존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면 여권은 헌법에서 쥐어진 권한을 사용하여 마땅히 탄핵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다. 마치 겁 많은 개 달을 보고 짓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짖어대기만 하고 있다.

 

주군은 장관과 총장 사이에서 이기는 쪽이 우리 편이라며 이중플레이 하고 있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여권은 정작 그렇게 하라고 쥐어준 권한 행사도 안 하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다. 그만큼 뒤가 구리다는 자백일 것이다. 그 주군에 그 똘마니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