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20. 10. 25. 21:34

점령군의 위세도 다 해가고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에 취한 군인들이 국회의원들을 폭행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엄혹하던 시절을 증명하듯 처음에는 流言蜚語(유언비어)처럼 세간에 알려졌었다. 언론에 재갈을 물렸던 정권 하에서 그리고 음주에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문화에서 술자리에서 있었던 그럴 수도 있는 일쯤으로 치부되었지만 사안이 사안이었던만큼 끝내 보도가 되었고 관련한 군인들이 옷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만큼 그 당시에 군인들의 권력은 점령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정도로 어마무시하였다.

 

 

소설 쓰시네” “어이” “깜냥도 안 되는

국정감사나 대정부질의 그리고 기타 국정 현안 등에서 여권이 야당 국회의원이나 언론 그리고 그만큼의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완장질을 넘어 점령군의 만행쯤으로 받아들여질만큼 오만불손 그 자체다. 眼下無人에 의한 目不忍見이요 賊反荷杖(적반하장)이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점을 부인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활동이 모두 정치적으로 법률적으로 면책을 받아야 된다는 주장도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너나 잘 하세요라며 가장 반사율이 좋은 전반사거울을 선물로 안겨주고 싶을 때가 茶飯事.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관, 청와대 참모진, 국영·공공기관의 임원들이 국회의원에게 소설 쓰시네” “어이” “깜냥도 안 되는등으로 비아냥거리고 눈 부라릴 근거는 될 수 없다.

 

경상도 속담에 떼깔은(, 억지) 자갈 논 서 마지기와 바꾸지 않는다는 게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논리나 근거가 아니라 마구잡이로 어거지 쓰는 경우 허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대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수명이 다할 때가 있다. 쓰임이 다할 때도 다가온다. 십팔사략에는 人生如白駒過隙이라 하여 인생을 일컬어 문틈으로 백마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짧다고 했다. 인생이 그 만큼 짧음에야 권력은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유한하다.

 

牛耳讀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집권층의 오만과 독선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의 몫으로 귀결이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를 베는 칼이 된다.

 

왕조 시절에는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관군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역적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이치였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적폐청산을 내세워 망나니 칼춤을 추고 있는 너희 패거리들이지만 언제까지 관군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가? 프랑스혁명 때처럼 로베스피에르 신세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너희들도 잘 알고 있기에 그토록 검찰권을 무력화시키고 있겠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점령군의 위세도 다 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