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22. 1. 7. 13:36

비교는 비참과 교만의 줄임말

 

 

 

삶은 매 순간 순간이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순간들에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찮은 물건을 골라야 할 때, 서비스를 살 때, 사람을 채용할 때, 아니 회사를 선택해야 할 때, 여행을 갈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여행지를 정할 때, 하다못해 오늘 점심 뭐 먹을까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최대의 고민임을 증명하듯 식당에서 한 끼를 고를 때도 나름 고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조금 초점이 어긋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곧잘 비교하기도 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비교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비교로 현재 자신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필자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 衣食住와 함께 사회적 동물을 만들어주는 SNS를 필요악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또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다. 아니 더 적확하게 고백을 하자면 얽매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SNS를 위해 내 삶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시골 무지렁이에 불과하지만 SNS는 인간이 가진 본성, 관음증과 노출증의 그 경계선을 아주 절묘하게 건드린 최고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화면에 비추이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참모습이 아닐진대 어쩌면 지금 최고의 순간 혹은 최고의 순간을 가장한 타인의 SNS의 화려한(?) 모습 앞에 내 삶은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타인의 나보다 못해 보이는 일상을 접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필자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SNS에 비진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게 됨으로 해서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게 된다. 그래서 비교란 단어는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의 줄임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올 한 해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그냥 나 자신의 삶 그대로만 들여다보는 날이 되기를 마음의 벼리를 세우고 또 세운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하해 비참해지지도 말고 타인의 불행(?) 앞에 교만해지지 않는 지난해보다 좀 더 진보하는 인격체가 되기를 바란다.

 

 

 

여담 같지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등에서도 후보자와 정책을 고를 때도 우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비교를 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 대부분 그나마 덜 썩은 과일을 고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골라야 한다. 투표 포기도 하나의 민심이라는 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르지 않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2달 앞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군들과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을 비교해 봐도 비교란 비참해지거나 교만의 또 다른 말임을 깨닫게 된다.

저렇게 함량 미달의 후보를 골라야 하니 국민들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고 후보들과 똘마니들은 그래도 국민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한없이 교만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민심을 하늘로 떠받든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권력은 언제나처럼 선출된 순간부터 공고한 기득권자가 되어 국민 앞에 군림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 39일 지나면 그들은 垓字(해자)가 둘러쳐진 金城湯池(금성탕지)에 들어앉아 저들끼리만의 擊壤歌(격양가)를 불러 젖히게 될 것이다. 그게 우리의 삶을 옥죄이는 빌어먹을 관습헌법이 된지를 오래되었다.

 

내가 이러려고 국민 노릇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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