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5. 11. 1. 17:17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

 

이번 대통령의 재신임에 대한 발언은 대통령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전례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분노한다.

 

대통령의 재신임 불사 발언은 그동안 대통령의 실언 행렬 중에서도 그 극치를 이룬 것 같다.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직 수행이 힘들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냥 하야를 해버리는 게 낫다. 깨끗하게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해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기 때문에 물러난다고 해버리는 게 재신임투표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게 그나마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다. 난감하기 그지 없다. 국민으로서 남감함을 넘어서 당혹감과 분노마저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재신임을 어떤 절차로 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국민투표''란 형식을 밟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재신임 국민투표 후에 나타날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 스스로 경솔한 판단이 아니다,란 말을 했지만 경솔하다 못해 솔직히 말하면 대통령이 옆에 있다면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다.

 

가령 ''국민투표''를 했다고 하자. 그 결과가 어찌 되었던 혼란이 어떤 것일 거라는 건 자명하지 않은가. 아마도 광복 후의 정치적 리더가 부재함으로써 벌어졌던 혼란상에 비견될 그런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혼돈을 보여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투표'' 결과가 불신임으로 나와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된다면 지지자들은 대통령 비토그룹들이 사사건건 국정에 발목을 잡아 그렇게 되었다고 소란을 일으킬 것이고, 또 신임으로 나오게 되면 또 비토그룹은 그들대로 임기 시작과 동시에 재신임을 물을 정도의 대통령이라면 설사 국민투표에서 신임이 되었다 해도 인정못하겠다며 승복하지 못하고 또 소란을 일으키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일 것이다.

그 혼란을 누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임기초의 대통령도 국정의 혼란을 이기지 못해(명목상은 집사의 비리에 대한 책임이지만) 재신임을 거론하는데 그때 누가 중심에 서서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가 말이다.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단순히 자연인 노무현의 대통령직 하야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배가 선장의 부재와 선장감의 부재로 인해 난파될 것이 눈에 훤하게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서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가. 일찍이 ''이러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불안감이 있다''란 말보다 더 충격적이다.

 

정말 대한민국 국민 노릇 해먹기 너무 힘들다.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이 오늘처럼 현명해보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재신임을 묻겠다면 지금 당장 해야지 내년 총선 전후로 묻겠다고 했는데 뭣하러 그리 긴 시간을 잡는가. 그동안 정치적 변수가 생기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는 그래서 이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계산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도 짧아도 6-7개월을 또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로 나라가 대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혼란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국무총리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국무총리가 무슨 힘이 있는가. 정치적으로는 한낱 여당 국회의원보다도 더 못한데 무슨 국정의 중심이 되겠는가.

 

하야하라. 그냥 깨끗하게 하야를 하라. 이미 정신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리고 굳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면 하루 빨리 해야한다. 그게 정말 조금이라도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길이다. 시간을 끌 이유도 여유도 없다.

 

2003년10월10일 중앙일보 디지털국회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