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5. 11. 1. 17:24

대통령님께-다시 쓰는 글

 

대통령님께 먼저 이 글을 씀에 있어서 다소 거칠고 귀에 거슬린 표현이 있더라도 기꺼이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노무현대통령 개인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표현이 되겠지만 대통령이 원체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하니까(대통령님과 측근然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탈권위주의라고 하던데) 본인도 이렇게 밖에 말을 못하는 점 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이해 못하셔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아 그리고 형식은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개적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존대를 하지 않아도 그 또한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껏 대통령직을 8개월 가까이 수행해오면서 느낀 어려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테니 말입니다.

 

 

그냥 조용히 하야하는 것이 그것도 하루 빨리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재신임문제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했는데 이미 충분히 혼란해졌고 앞으로 더 혼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작년의 대통령선거를 보는 듯하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지지자들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다시 똘똘 뭉치자고. 잠시 대통령을 버렸던 혹은 무관심했던 그래서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던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다시 그날의 ''성전''을 치루자고 독려를 하고 있다. 그래서 ''홍위병의 깃발아래'' 세상을 깨끗하게 하자고 하고 있다.

 

반대로 대통령의 반대자들(좁게 보면 이회창씨 지지자들)은 그들대로 작년에 도둑맞았던(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통령직을 다시 찾아올 절호의 기회라며 칼을 갈고 있다. 두 번의 실수는 반복하지 말자며 패거리를 모으고 있다.

 

 

마치 중원의 대결투를 앞두고 있는 듯하다. 이 재신임 정국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고 난 후의 혼란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가는 요샛말로 ''안 봐도 비디오고 안 들어도 오디오다''

 

더구나 이번 ''대통령재신임문제''로 인한 혼란의 원인을 대통령 스스로 제공했으면서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국정의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정책의 일관성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강도가 침입을 해서 집주인에게(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이 주인이라 하니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놓고는 ''비록 강도짓을 하지만 나는 바탕이 좋은 사람이고 당신들이 나에게 하는 것을 봐서 지금 당장 집을 나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느니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인데 어찌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 이것 한가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당위성이 존재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가 국민들을 편안하게 먹고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을 불안하게 아니 자다가 홍두깨로 맞은 듯한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고는 어떻게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단 말인가. 열심히 하겠다는 말 어떻게 믿는가. 안심하란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마음에 들어와 신념이 되고 믿음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상황논리를 동원한다고 해도 대통령이란 분이 어느날 날벼락치듯 덜렁 ''재신임''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어느 나라든 레임덕이라는 게 있다. 이미 대통령은 스스로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그 순간 레임덕에 들어선 것이다. 정권말기에 이른 대통령이나 정권담당자들의 영이 먹혀들지 않는 현상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지역구도가 확실한 이 땅에서, 보혁구도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이 나라에서, 그리고 이혼한 부부보다 더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 정치·사회적인 풍토의 대한민국에서 지금처럼 대통령이 언제 물러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정책의 일관성이 생기고 또 그것을 믿어주겠는가. 어느 국민이 그것을 믿고 따르겠는가. 역대 정권 이래로 ''정부가 하자는 반대 방향으로 하면 성공한다''는 굳은 신념과 경험칙이 있는 국민들에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운명을 지닌 정권의 말을 믿고 그에 따르란 말인가.

 

바로 여론조사를 보면 극명하게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가. 지지도는 바닥권을 치고 있어도 재신임에 대한 지지도는 월등히 높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있는 혼란과 대통령이 없는 혼란 중에서 택하라''는 협박이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지난 독재시절에 독재정권이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국민을 협박했던 ''혼란이냐 안정이냐''란 슬로건을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안심하라고 한다.

집에 강도가 침입을 했을 때 집주인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강도가 잡혔을 때이다. 아니면 최소한 집에서 나갔을 때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황이 아니다. 처음엔 직접적인 원인이 ''최도술''이란 개인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야당이나 언론 때문으로 또 정치개혁에 한계를 느껴서 대통령에 힘을 실어달라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대통령 자신의 말처럼 도대체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재신임 불사'' 발언으로 진짜 신뢰를 깡끄리 잃어버린 대통령이 무슨 권위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지자층들이 주로 하는 말이, 박정희·전두환 시절엔 입도 못떼다가 이제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우니까 다들 나서서 비판만 한다고 하는데 그럼 그때 당시에 저항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도 소위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이 시절에도 조용히 있으란 말인가.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사람은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에게는 공부 잘하란 말, 착하게 살아란 말 하지도 못하겠네. 도대체 그게 개 같은 논리인가.

 

우린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란 성경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어느 경찰이 범인을 잡을 것이며 어느 검사가 범인에게 구형을 할 것이고 어느 판사가 떳떳하게 죄인에게 벌을 줄 것인가. 어느 교사가 학생에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우리나라 政體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에 있어서는 모든 궁극적인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누가 발목잡기를 했던, 대통령과는 정말로 상관없는 그냥 비서의 잘못이든 모든 나라 살림에 최고의 책임자는 대통령에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게 대통령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하지만 깨끗이 닦을 수는 있다.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이 쏟아버린 물을 얼마나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는지 능력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나마 국민들을 집단 히스테리로 몰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대통령은 나름대로 정국의 혼란을 줄이고, 국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며 상세한 일정을 제시했지만 그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한 번 선거를 더 한다고 해서 뭐 그리 큰 국력(경제적인 면)낭비가 될까. 1,000억 정도 소용된다고 하는데, 물론 큰돈이다. 하지만 일을 미룸으로 해서 초래될 혼란에 대한 충격에 비하면 비용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대통령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결국 정치개혁도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국민에게 맡겨라. 이번 재신임정국에 임해 기존 정치권이(여당·야당·신당 모두)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죄다 국리민복엔 눈꼽만큼의 관심이나 의지도 없고 오직 자신의 명리만 쫓고 있음을 국민들은 죄다 알고 있다. 내년 총선 때 기존의 정치권에 한 번이라도 발을 붙인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도 뽑아주지 않으면 된다. 그게 바로 정치개혁이다. 다른 것 없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처럼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통령도 비서관의 뇌물수수로 물러났는데 감히 어느 국회의원 나부랭이가 죄를 짓고도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이며 또 표를 줄 국민도 없다. 그냥 깨끗이 물러나라. 그게 국민 모두가 사는 길이다. 그게 진짜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길이다. 지금으로서는 대한민국을 위해 할 유일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글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고 너무 짜증이 난다. 정말 짜증이 난다.

 

2003년10월15일 중앙일보 디지털국회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