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5. 11. 3. 14:04

헌신적이면 헌신짝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꼭 한 가지 빠지지 않은 성격의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이성에 대해 헌식적인 사람. 흔히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이름 지어지는 異性에겐 맹목적으로 헌신을 다하는 그런 인물이 등장하여 나중에는 그 지고지순의 순애보를 받쳤던 이성에게서 버림 받는 역할. 이성에게는 대단히 헌식적이었지만 이성에게 헌신짝 취급을 받고마는 그러나 자신의 사랑했음에 끝없이 사랑했음에 자기 만족을 하는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시청자로 하여금 약간의 분노와 약간의 감동과 아릿함을 안겨주는 배역은 꼭 등장한다.(본인의 연애경험은 절대로 죽어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면서....)


이 디국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특정 정치집단 혹은 정치인에 대한 지고지순한 감정들. 정치 이념이나 신념에 의한 지지라기보다는 막연한 異性에 이끌림 같은 그런 스토커적 애정의 편린들.

하긴 본인부터 지난 대선까지 한나라당으로 지칭되는 우익 정치집단과 우익 정치인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여 선거 때마다 목숨을 걸고 투표를 해왔었다.(목숨을 걸고는 휠체어를 타고 투표를 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수구꼴통 지지세력'이란 참담한 조롱과 비아냥과 그들의 여전히 나르시즘 같은 유아독존적인 정치신념을 바라볼 뿐이다. 짤라버려진 내 손가락들뿐.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이 자신들(국민들)의 신념과 이상을 실천해줄 대리인에 불과할 뿐인데도,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주인마님인 나를 대신해서 논밭에 거름도 내고 곡식도 뿌리고 거두어드릴 하인일 뿐인 그들에게 왜 이토록 헌신적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글 쓰고 있는 본인 역시 너무 늦게 깨달아 때론 손가락을 짤라버리고도 싶고 나 스스로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매국노'라 자책을 해보기도 하지만 왜 그토록 그들에게 목맨 지지를 보내었던가. 이 세상에 일할 하인들이 그들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토록 그들을 하인으로 대하지 않고 상전으로 떠받들어야 했던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 한 대 더 때리는 심정으로 일찌감히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면 그들이 이토록 망가지지는 않았을텐데. 나라를 이 지경까지는 만들지 않았을텐데. 밥만 많이 주고 고기만 많이 챙겨주면 저절로 체력이 길러져서 일 잘 할 줄 알았는데, 매도 들고 야단도 치고 보듬어 안아 줄 땐 안아주고 농사 짓는 법도 매섭게 가르치고 했어야 훌륭한 하인이 되었을 것인데, 주인마님이 하늘처럼 떠받들어주니까 지가 주인마님인듯 착각하고 온갖 패악질을 다 치르고 게으르고 심지어 이제는 대청마루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꼴이랍서니.

이제 다시 주인마님의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지 정치집단들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애정은 좋지만 칭찬할 때는 칭찬해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들의 잘못까지 맹목적으로 '오메 내 새끼!'하며 두둔하며 과자 주지 말고 매를 들자. 그들이 하인임을 깨닫게 매를 들자.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대청마루가 아니라, 논밭임을 매를 들어 가르치자. 거드름을 피우는 주인마님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위치를 깨닫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뛸 수 있도록 말이다.

 

 

2005년 2월7일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