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5. 11. 8. 09:17

이삭줍기만으로는 곳간을 채울 수 없다

 

 

축구를 보다보면 이삭줍기라는 것이 있다. 상대 수비진의 잘못으로 인해 흘러나온 공을 잡아서 골을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가 한 경기에 있어 때로는 절대적으로 승패를 가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하지만 매번 모든 경기에 이삭줍기를 할 수도 없고, 또 그런 상황이 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실력이 없다면 상대 수비진의 실책을 골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즉, 근본적으로 기본 실력이 되어 있어야만 경기에 승리할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의 이삭줍기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도 반추해보면 이삭줍기 때문에 출세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본인의 판단으로는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박정희씨의 독재 때문에 인권, 민주라는 구호만 외쳐도 밥벌이가 되었던 사람들, 자신들의 정치적 능력은 검증되지도 않았고 검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단지 박정희씨의 통치에 반대하는 행동만으로도 일정한 정도의 지지와 능력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고 그들은 야당투사시절 받았던 환호만큼의 능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체감적으로는 독재정권보다 더한 측근들의 부패와 독재정권 못지 않는 아집과 독선에 휩싸인 나라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하다가 결국 자신들은 물론이고 일가친척 그리고 정권과 국가, 국민을 나락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노무현대통령 역시 이삭줍기의 대명사가 아니겠는가. 교통사고인 효선미순사고에서 빗어진 반미와 민족감정이라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같은 정서적 맷돼지 등에 올라탔고, 야당의 부패성과 야당 후보 아들의 군면제라는 고삐를 잡아 단숨에 대권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이제는 달리기만 하는 (정서적)맷돼지 등에서 당연히 내려와야 하지만 여전히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이삭줍기에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공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중정권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노무현정권까지 대선을 제외한 각종 선거에 있어 한나라당은 대부분 승리를 해왔다. 이런 현상 때문에 본인이 한나라당정권의 패착을 자양분으로 해서 떡고물을 받아먹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울러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집권세력을 대체하는 대체정치집단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그 지지율이 부끄러울 정도였음을 분석해보면 그들은 숱한 전투에서의 승리가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무능력과 독선에 기안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모두가 부끄러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삭줍기만으로는 결코 곳간을 채울 수는 없다
가을 추수철에 실제로 이삭줍기를 해 본 어릴 적 기억이 있는 본인의 판단으로는 이삭줍기를 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의 이삭을 줍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곳간을 채울 정도는 고사하고 몇 끼의 배를 채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삭줍기도 이와 같을 것이다. 상대의 실패는 일시적으로 자양분이 되어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게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신들의 실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에 임하는 것은 병가지상사인 전투에서의 패배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의 패배를 가져오며 결국 존재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삭줍기 현상은 오늘의 정치에서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여당은 내전의 와중에 한나라당 대변인의 의도되지 않은 실언을 건수잡아 차떼기로 몰아부치고 있고, 야당은 여당의 내분을 빌미삼아 무능력을 공격하고 있을뿐이다. 모두 당장의 이삭줍기에만 신경쓰고 있지 내년의 모내기철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모두 상대 진영의 패착을 자양분으로 해서 무노동으로 자신들의 키를 키우려하지 말고 스스로 운동도 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함으로 해서 신체적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그것이 곧 자신들을 위한 길이며 궁극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다.

 

 

2005년 6월6일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