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5. 11. 30. 12:54

죄수들의 딜레마에 빠져 모두가 모두를 불신하는 나라

 

죄수들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국사회

어릴 때 즐겨보았던 아마 요즈음으로 치면 19禁이나 15禁쯤으로 노랑딱지를 붙였을 '수사반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그 프로그램에서 보면 범죄자들이 함께 저지른 범죄를 수사관들이 해결해가는 과정은 공식처럼 항상 일정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 여럿을 연행해서 각각 다른 방에서 취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백에 백 모든 범죄자는 실토를 하게 되어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다들 자신들의 죄를 실토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경우를 범죄심리학에서 죄수들의 딜레마라고 한다고 한다.

그들이 같이 범죄를 저지를 때만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완벽한 신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자수를 하거나 수사기관에 잡히더라도 범죄를 실토하지는 않을 것이란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범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고 그런만큼 상대방에(동료) 대해 전적인 신뢰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또는 상대방이 나에게 죄를 다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에 범죄를 실토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지금 우리 사회가 죄수들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신뢰하지 못함으로 해서 극심한 사회와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고 결국 범죄자들이 죄를 실토하여 교도소로(?) 가는 것처럼 우리 사회와 국가가 전진보다는 정체와 후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사회적 논란을 빗고 있는 사안 몇 가지로 예를 들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신뢰의 부재로 초래되었거나 혹은 신뢰의 부재가 사안을 더욱 부풀리게 만든 요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석교수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전세계적 혼돈(?)을 초래하고 있는 황우석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있어 난자취득과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제보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황우석교수의 연구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연구원이 아니라 황우석교수가 주례까지 서준 연구원이었다고 하니 아연실색이란 말이 적당할 정도로 기가 막힌다.

아직 그 연구원이 무엇 때문에 그런 제보를 언론에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사명감에 불타 그럤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처음부터 그런 완벽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연구에 참여할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언론에 제보를 하게 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연구팀장인 황우석교수에 대한 제3자의 입장에선 알지못할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가 아닐까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황우석교수는 키우던 개에게 물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진짜 황우석교수가 낙담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세튼교수의 느닷없는 결별도, MBC PD수첩의 윤리의혹보도가 아니라 황우석교수팀에 대한 사회 일각의 비난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자신의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황우석교수도 그러하겠지만 필자의 두려움은 이것이다.

 

앞으로 황우석사단이 이제까지와 같은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같은 목적하에 같은 연구실에서 같은 연구하는 동료들끼리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이상 앞으로의 연구과제를 수행해감에 있어서도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팀웍에 의한 문제해결을 할 수 있을까?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데 전인미답의 연구과정을 수행하는 연구팀원들간에 이렇게 불신의 골이 쌓여서 무슨 연구가 제대로 되겠는가?


 

곪을대로 곪아 있는 학원폭력 - 학생들의 어른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키운다
그리고 지금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학원폭력문제의 심각성도 따지고 보면 신뢰부존재의 문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사이의 신뢰의 부재도 문제이지만 필자는 피해학생들이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는 현상이 그들이 학교와 사회 그리고 부모에게조차 신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불신들이 학원폭력사태를 더욱 방조하고 키우는 주요인이라 주장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원폭력에 있어 피해 학생 그 누구도 자신이 당하고 있는 피해를 부모는 물론이고 사회의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의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피해학생의 입장에서보면 의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의논을 해봐야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이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피해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해봤자 근원적 해결이 안되고 도리어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피해 학생들이 목숨을 끊을 지경까지 막다른 골목에 몰렸어도 학교와 사회에 그리고 부모에게조차 도움을 청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학교와 사회 그리고 부모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존재들에게,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을 갖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굳이 또 다른 피해를 감내하고서라도 이야기할 까닭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을 듣는 노무현대통령 - 국민적 불신이 그 근원이다
필자가 노무현대통령을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는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사회의 갈등의 최종 해결점이 아니라 시발점이 되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로 줄곤 이어온 현상이면서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것이 갈등유발형의 가벼운 언행이다. 일국의 대통령의 언행이 사회와 국가의 갈등의 종착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오고 있다는 것이 필자가 노무현대통령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번 MBC PD수첩이 황우석교수의 난자채취과정에 있어 윤리적문제를 들쑤신(국민들의 관점은 들쑤신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보도와 그에 따라 후폭풍의 모습들에 대해 노무현대통령의 언행에서 그의 갈등유발근원적 행태를 잘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국민들에게서 "너나 잘하세요"란 비아냥을 듣고 있지 않는가?


이 부분 역시 근본적인 신뢰의 부존재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의 MBC PD수첩 사태에 대한 지적이 옳은 부분이 많이 있지만 당장 정치적 반대자들에게서 돌아오는 메아리는 '그럼 당신은 뭐냐? 조선일보에게 가하고 있는 당신들 패거리들의 행태는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다. 청와대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고 시말서니 경위서를 받고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하면서 무슨 언론의 자유니 비판의 자유니 진실을 보도할 자유니 하는 대통령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즉,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노무현대통령의 그동안의 행적이 공정한 최고통치권자로써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노무현대통령의 하는 행동이 옳다고 해도 옳은 것만으로 인정하기가 어렵고 그 기저에 무슨 복선이 깔려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모두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 - 해결책은 없나
필자는 최근의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고 있는 사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간의 극심한 불신이라고 지적하였다.

 

만일 필자의 지적이 맞다면 해결책은 나올 것이다. 사회혼란의 원인이 구성원 상호간의 불신에서 초래된 것이라면 서로가 먼저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즉,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임을 자인하고 스스로부터 먼저 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에서부터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자신부터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나의 잘못에는 秋霜과도 같은 엄격함을 보이는 대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이해를 먼저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공자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깔보고 함부로 대한다고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그릇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라고 한 것처럼 사회구성원들끼리 가지고 있는 불신에 대해 상대방을 원망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인지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 탓을 하기 이전에 내 탓부터 해보는 버릇을 들여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