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국방

무위여행 2007. 3. 4. 18:21
 

미국, 用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헤어질 때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

티븨에서 보면 연예인들이 이혼을 할 때 정말 아름답지 못한, 그들의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추악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을 보여줄 때가 많이 있다. 자기 보호 본능이 있는 사람의 본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모습의 추악함을 보면서 그들의 드러나고 보여주는 면보다 감추어진 두꺼운 화장 속의 주근깨 투성이의 속살을 미루어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도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도 않다.



“韓美동맹 심각한 위기 우호적 결별 준비해야”

요즘 미국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결코 심상치가 않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하이든 하원 외교관계위원장이 우리에게 '누가 적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하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 미국의 불편한 심기가 여과과정없이 표출되고 있다.


며칠 기사를 셔핑하지 못해서 묵은 기사들을 셔핑하다 중요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 퍼옴 : 1

최근 한국 국방부가 후원한 25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는 미국과 한국 학자의 ‘충돌’로 불릴 만했다. 미국측 패널은 최근의 사례를 들어가며 ‘한·미동맹은 위기’라고 했고, 한국 학자들은 “변화된 환경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발표자로 나선 데니스 핼핀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은 한·미동맹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발표문 제목부터가 ‘위기의 동맹―미·한 관계에 대한 현재 미국 의회의 시각’이었다. 핼핀 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LA에서 ‘북한 핵보유가 자위용이라는 데 일리가 있다’고 한 발언으로 미국 의회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며 “북한이 느끼는 위협만 정당하고 9·11테러 후 미국이 느끼는 위협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맹의 미래를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는 납북된 김동식 목사의 행방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3월 8일 해스터트 하원의장이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김 목사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핼핀 위원은 최근 ‘한국의 주적이 누구냐’라는 공개 질의로 한국 정부·여당의 반발을 낳았던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특보이기도 하다. 하이드 위원장은 한국 문제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며, 최근 주적발언도 핼핀 위원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핼핀 위원은 우리 국방백서에서 ‘북한=주적’이 삭제된 것과 관련, 지난 4일 “한·미 간에 어떤 단절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 후 하이드 위원장도 “한국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라”고 말했었다.

미국 내 보수적 연구단체인 케이토(Cato) 연구소의 더그 밴도(Doug Bandow)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의 안보공약에 무임승차한 대표적 국가”라고 했다. 밴도씨는 “한국이 누리는 무임승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국이 너무 적게 지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지출하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분명히 미국이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쏟아부을 만큼 사활적(死活的) 이익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말미에 “한·미 양국은 우호적인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토론자로 나선 경희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탓하기(blaming game)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노력 못지않게 미국측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앙대 김태현(金泰泫) 교수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한국민이 겪어 온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상흔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학술회의가 이렇게 진행되자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교수는 “학회를 많이 해 봤지만 오늘처럼 거친 표현을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영오 국민대 교수는 회의 후 인사말을 통해 “이견이 많이 노출됐지만 ‘한·미동맹이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기사 퍼옴 : 2

美하원, 韓美동맹 우호결의안 무산”

핼핀 美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 밝혀 “2003년 호응 못얻어… 日·대만은 가결”

지난 2003년 말 미국 하원이 한국·대만·일본 등 아시아 내 우방국과의 수교 등을 기념하는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한국 관련 결의안만 통과하지 못했다고 핼핀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이 25일 밝혔다.

핼핀 위원은 25일 서울 이태원동 캐피탈호텔에서 열린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에서 “한·미동맹 50주년 기념 결의안 추진을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단 한 명의 하원 실력자도 앞장서지 않는 바람에 결의안은 조용히 죽고 말았다”고 전했다. 핼핀 위원은 “당시 (미국 의원 머릿속에는) 서울 시내에서 불타던 성조기와 관련된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고 했다.

핼핀 위원에 따르면 결의안은 지한파(知韓派)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에서 추진됐다. 한·미동맹 50주년을 앞둔 2003년 1월쯤 58명의 여야 의원으로 출범한 코리아 코커스는 첫 사업으로 이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27명이 서명한 결의안은 소관 상임위인 하원 국제관계위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통과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같은 시기 ‘미·일 수교 150주년 기념 결의안’과 ‘대만관계법(대만의 안전 보장을 명문화한 법안) 가결 25주년 기념 결의안’은 압도적인 표로 가결됐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상호방위조약 50주년 기념 및 한국의 이라크 파병 관련 결의안은 2003년 11월 상원을 통과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 있어 사활적인 패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고 미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대해 그 가치가 사활적 명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에 있어 보수적이 시각을 가진 대부분의 보수분들이 가지고 계시는 생각처럼 본인 역시 이러한 점에 대해 이 디국에 몇 번에 걸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자주국방도 좋고 민족도 좋지만 국가안보보다 우선한 가치는 없으며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제환경상 여전히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섣부런 미국과의 동맹에서의 이탈에 대한 위험성을 많이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은 한반도의 안전이 사활적 명제가 아니지만 우린 곧바로 생존이 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관계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 미국의 역할이 뒤바뀐듯하다. 미국이 한반도의 안전에 사활적 명제가 달려있는 듯하고 우린 반대로 강건너 불구경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그렇게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가고 있다.


동족이라면서 우리를 침략해서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북한에 대해선 그 죄를 묻기는커녕 동족이란 이유만으로 기꺼이 동맹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미국이 속이 쓰리겠지만 한반도를 그리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 동족의 침략에 맞서 피를 흘렸던 동맹에겐 '할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곘다'며 도리어 동맹의 잘못에만 촛점을 맞추는 태도는 과연 국익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천리마의 등에 얹힌 새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천리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그런 상대적 무임승차로 인해 주머니에 조금의 돈이 들어왔다고 해서 이제까지 타고온 차를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태워버리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당시 우린 중국이란 커다란 시장에 눈을 빼앗겨 그때까지의 애인이었던 중화민국(대만)에 대해 외교단절보다 더 잔인한 저질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그래도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취함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너무도 컷기 때문에 치사하지만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 선택에 대한 당위성이라도 부여할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미국을 버리는 것이(버림을 받는 것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속하는 것보다 과연 국익에 도움이 더 많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지각변동처럼 일어나고 있는데 우린 이제는 버려야할 가치인 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혼자서는 동북아시아에 있어 어느 한나라도 만만하게 대응할 능력도 없으면서 섣부른 '자주'를 외치고 있다. 힘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주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 많은 외침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우린 어쩌면 외부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기의식을 경보해주는 신호체계를 상실했기 때문에 또 다른 파국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할 때가 되었다.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우린 너무 많은 걸음을 걸었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너무도 많은 꾸지람을 했다.

지금은 헤어지지만 함께 하는 날들 중에 힘들었던 날들보다 그래도 좋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고 그렇게 서로에게 감사하며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적게 남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서곡이 될 수도 있을지니. 우린 이제 또 다른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더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할 때가 되었다.



 

위의 글은 필자가 지난 2005년 3월29일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에 올렸던 글(헤어질 때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의 전문이다.


 

외교란 뭔가,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 없이 내정이 확대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국익의 추구와 국익의 방어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얻을 국익보다 잃어버릴 국익이 더 많다면 그 관계를 지속할 바보같은 국가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잃어버릴 국익보다 얻을 국익이 더 많으면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미관계 역시 미국을 用美의 관점으로 보면 된다. 미국과의 모든 관계가 우리 대한민국의 국익의 추구와 방어에 플러스가 된다면 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지는 것이 옳고 그렇지 않다면 관계를 절연하는 것이 옳다. 지금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가지는 국력이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국제역학상의 위치 등을 고려한다면 미국과 우호적 관계, 혈맹적 관계를 맺는 것이 국익의 추구와 방어에 도움이 된다는 것쯤을 인식하지 못할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우리 선조들은 뿌리 깊은 모화사상에다 임진왜란 당시에 도움을 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면 성리학적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외견상으로 지키면서도 출분히 청나라와 우호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었다. 그런 선택을 한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청나라의 국왕에게 굴욕적인 예를 치한 것은 물론이고 온 국토와 백성들이 지옥의 경험했어야 했다.

 

미국과의 관계 나라의 국력이 달라지고, 국제역학상의 위치가 달라지면 얼마든지 재설정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을 나무랄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말 노무현 정권의 외교력에 실망을 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은 '국력에 걸맞는 대등한 한미관계 재설정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외교적 미숙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한 '외교적 미숙함'이 가져오는 국익손실을 우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 정부 들어 군사문제에 관한 대외정책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린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국기지 이전문제, 주한미국 역할의 재조정 등 미군의 요구를 100% 수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우리는 미국의 조력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고 파트너로서의 최소한의 정보공유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비쳐지고 있다.

 

이번 아파키스탄에서 테러로 숨진 윤하사의 경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미국의 진정한 우방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파키스탄을 극비리에 방문중인 체니 부통령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테러였고 미국은 사전에 테러에 대한 정보를 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파견한 우리는 더구나 미군과 같은 기지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은 사전에 체니의 방문을 통보받지도 못하였고 그에 따른 테러가능성에 대해서도 통보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게 제대로 된 정부의 외교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도 부족해서 미국의 조야로부터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믿을 바가 못 된다는 비아냥과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 조야의 그런 의심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외교력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국은 은혜를 모른다는 미국 조야의 시각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시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단지 미국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추구와 방어에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마이너스를 끼치게 될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 더 환한 일이다. 미국과 미군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면서도 정작 미국으로부터는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보다는 '배신자'라는 삿대질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제대로 된 외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정권 초기에 있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현정권의 정책라인에서 미국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는 들어주지만 미국이 안절부절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들 사이에서야 이런 논리가 있었다고 해도 나무랄 일은 못된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외부로 흘러나왔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냥 미국의 논리에 끌려다니는 것만이 아니란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그러한 논리를 외부로 흘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미국 엿 먹이기'논리를 접한 미국이 받을 외교적 배신감이 어떠할까를 생각하면 이 정권의 외교적 미숙함을 통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었지만 미국으로부터 '혈맹의 의무를 다한 고마움'보다는 '은혜를 모르는 나라와 국민들'이라는 비아냥이나 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는 북한핵문제에 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어도 대한민국과는 공유할 수 없고, 일본에는 파는 최신무기를 대한민국에는 팔 수 없고, 미군과 같은 기지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테러에 관한 정부는 공유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미국, 用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그런 가치아래 미국과의 관계설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 역시 대한민국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관계설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