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무위여행 2007. 4. 3. 14:32
 

이념도 사람을 위한 것, 그러기에 이념투쟁은 필요하다

 

개인적 激情은 사랑하지만 집단화된 激情은 경계의 대상이다

계속 반복되는 논리이고 주장이기는 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불꽃놀이 같은 이 激情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을 할 때는 분명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집단화 되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을 할 때는 두려워하고 경계해야할 성품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우리 민족만이 가지는 월드컵응원문화 같은 폭발적인 激情을 분명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요즈음의 숨길 수 없는 심경이다.

어제 아내가 유치원생 쌍둥이 마중을 갔다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난다고 문구점을 들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월드컵을 겨냥해 출시한 것이 분명한 태극기나 태극문양이 새겨진 일회용 문신스티커를 2,000원어치를 구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 유치원 보내면서부터 간이 작아질대로 작아진 아내는 문구점에 모인 아파트 이웃분들과 인사 삼아‘월드컵이 빨리 끝나야지 얘들 등살에 못 살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문구점에 삼삼오오 모여 오후의 나른함을 즐기던 아파트 아줌마들이 하나같이 벌떼처럼 아내에게 힐난조로 쏘아부치는 말이 '자기는 대한민국 국민 아니가?'였다고 한다.

물론 가벼운 에피소드로 지나칠 수도 있지만 지방선거와 월드컵과 응원 등에 올인하는 모습 등에서 집단적 쏠림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필자로서는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또 하나의 '집단화된 激情'이 아닐까 싶다.

 

계곡에 캠핑을 하면 위험한 이유

여름 철에 계곡에 캠핑을 하게 되면 곧잘 치명적인 위험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계곡의 특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에 대처하거나 피할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약간 과장을 한다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인식하는가 싶자 곧바로 격류가 캠핑장소를 들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 철에는 계곡에는 텐트를 치지 않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한다.

물론 낭만만을 따지자면 시원한 계곡에 텐트를 치고 졸졸 거리는 물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면 천하의 박색과 같이 있더라도 사랑이 샘솟을 듯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담보로 해서 즐길 낭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여름철 계곡(캠핑)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민족'이란 일차원적 감정은 계곡의 격류와 같다

필자는 '민족'과 통일문제도 마치 여름철의 계곡물과도 같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성적으로 대처할 여유를 주지 않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두려움의 정체다.

가령 북한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감격할 사안을 만들어(이산가족의 대한민국으로의 전격적인 이주허용이나 국군포로 석방 등) '민족'이란 淚腺을 극도로 자극하는 한편 남북 당국자들이 만나 ‘통일’을 선언해버리는 사태가 생긴다면 마치 계곡에 격류가 휩쓸고 지나가듯이 차분하게 대처할 시간과 의 여유도 없이 휩쓸려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어떤 체제를 선택해야 하는지, 과거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 激情을 배제하고 차분하게 민족의 장래를 계산하지 못하고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라는 격문에 질풍노도처럼 휩쓸려 버린다면 '통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쩌면 더 참혹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필자의 두려움의 실체다. 가해자와 피해자, 서로 원수진 사람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한다고 해서 그것이 '화해'나 '통일'은 아닐 것이다. 더 큰 파국을 예비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름철에는 가급적 계곡에는 텐트를 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듯이 정말 민족을 생각하고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한다면 '민족' '통일'이란 일차원적 淚腺을 배제하고 오로지 현실만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가슴이 아니라 오로지 머리로만 '통일'을 대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념도 사람을 위한 것, 그러기에 이념투쟁은 필요하다

이념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주체인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짓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 수단을 택함에 있어서 논쟁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수단을 택하느냐에 따라 목적 달성의 승패는 물론이고 質에서 있어서도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왜 수단에 대한 투쟁과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행을 가자는 목적에는 동의를 해도 승용차를 이용하는지, 버스를 이용할지 자전거를 이용할지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는데 왜 '수단'에 대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고 투쟁을 하는 것이 죄악시 되어야 하는가?

'레드'에 과민반응하지 말라는 주장처럼 이미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이념투쟁에 있어서는 어떤 이념이 인간의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느냐는 큰 틀에서는 승패가 확연하게 갈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우리 한반도에서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이 현재하는 위험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도되어야할 이념을 부여잡고 그들만의 이념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들이 엄연히 실체하는 위험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이념으로 잘못된 길로 끌고 가려는 자들이 실체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사회에선 이념투쟁의 필요성이 존재하며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오늘과 내일의 삶의 질과 모습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이념투쟁은 냉정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짐짓 점잖은 빼고 있는 것은 자칫하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위의 글은 필자가 2006년 6월20일 폴리젠에  올린 “이념도 사람을 위한 것, 그러기에 이념투쟁은 필요하다 제목의 글의 원문이다.

이곳 CNB게시판에서도 대권후보자에 대한 이념검증 논란이 거세다. 주로 박근혜 전대표의 지지자가 이명박 전시장 측에 제기하는 공세이다.

이명박 전시장의 이념에 대해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측에서는 필자의 ‘공세’라는 말 자체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필자가 느끼기에는 말 그대로 ‘정치적 공세’일뿐이다.

 

타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조심을 하느라고 해도 부순물이 섞이게 마련이다. 콩타작을 하고 나면 콩깍지가 섞이는 것은 당연하고 콩알 크기만한 돌멩이도 어쩔 수 없이 섞이게 된다. 나락타작도 마찬가지다. 겨가 섞이는 것은 물론이고 뉘도 섞이게 된다. 돌멩이와 뉘가 섞여 있다고 해서 돌멩이 가마니, 뉘 가마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콩 가마니, 나락 가마니라고 한다.

 

이명박 전시장을 향한 이념공세는 마치 돌멩이가 섞여 있다고 해서 콩 가마니를 '돌멩이 가마니'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무지 혹은 과장의 소치일 뿐이다.

 

이명박 전시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1964-5년의 한일회담반대데모에 좌익이나 혹은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참여한 전문 시위꾼이 섞여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데모의 성격을 좌익들이 주동이 되고 김일성의 지시에 순응한 체제변혁적 성격으로 규정짓는 것은 마치 돌멩이가 섞여 있다고 해서 콩 가마니가 아니라 돌멩이 가마니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시장경제 제도 하에 순응을 해서 삶을 영위해왔고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순도100%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순수 자본주의와 순수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와 사회는 없다) 큰 틀에서 보면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더 치우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이념 공세의 대상이 될 정도의 위험한 인물은 아니다. 더구나 같은 당의 지지자들로부터 발가벗어보라는 추궁은 지나친 정치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