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매장에서 생긴일

장복산 2005. 11. 5. 21:03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자명종시계 보다는
우리집 T.V에 있는 자동켜짐 기능을 이용하여
세벽잠을 깨우거나 ~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약속에는
휴대폰 일정관리 기능에 알람까지 울리게하여 2중으로 준비를 헌다.

나는 세벽에 잠을 깨우는 방법도~
예전에 자명종 시계소리를 울릴 때 보다 진화 한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느지 모르겠다.

보통 새벽 라운딩이 약속된 골프약속이라면
매우중요한 항목으로 분리하여 T.V와 휴대폰을 동원허는디~
어제 새벽에는 갑자기 T.V가 켜지는 바람에
갑작이 잠에서 깨어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무슨 약속에 내가 일어났는지를 잃어 버리고
머~엉 허니 한참을 앉아서 생각을 해도 생각이 안난다.~
분명 골프 약속도 없었구~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떳다~ 하면서 한~참을 생각하고야~
거래처 직원과 함께 전주 물류세터를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이미 나는 몇일 전에 한번 갔다 온 일이 있는데다~
거래처 직원이 다시 간다는 바람에
그 직원 차에 언쳐서 한번 더 가기로 한 약속이라
내 뇌리에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찾이하지 않았던 탓일 것이다.~

서둘러 몸을 씻고 마산역에서
거래처 직원을 만나 전주로 출발했다.
함양휴계소에 들려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휴계소 특별메뉴라는 안내문과 함께 게시된
청국장백반 가격이 무려 6,000원이라니.~
고속도로 휴계소 음식값 치고는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었지만.~
별 생각 없이 주문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전에 없이 휴계소 직원이 카트에 숭늉을 싯고 다니면서
식사허는 고객들에게 일일히 딸아주며 써빙을 하는것이아닌가..?
내게는 다소 생소하고 의아한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고속도로 휴계소 식당에서 애용하던
Selfe Service 에 길드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던 Selfe Service 란 문화가
우리에게 접근하면서 왜곡되어 적용하는 사례에
항상 불만과 불평을 하고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장면이 더욱 의아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Selfe Service 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라면...
아마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휴계소같은 식당의 특수성 때문에
고객들에게 일일히 Serve 하기가 어려우니까...
물은 고객들이 Selfe 로...그릇을 나르는 일도 Selfe 로...
각자 알아서 군대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Selfe Service 라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식당에서 해야할 일들을
고객들이 대신 한다면...
최소한 그래서 절감되는 인건비 만큼은
음식의 가격이 싸져야 한다는 생각이 내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대만큼 가격이 싸지 않았던
고속도로 휴계소의 음식가격에 불만이있었던 터라
어제 아침 함양휴계소에서
휴게소 직원이 딸아주는 따듯한 숭늉 한그릇을 마시며~
언뜻 20여년 전에 내가 쓴
<"서비스"와 Service"의 차이>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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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와 Service"의 차이 >

서비스란 말은 원래 영어의 Service 란 단어가 도입되어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판매업을 하다보니 서비스 업종인 사진업 보다
더 많은 서비스라는 용어가 혼돈할 정도로 자주 사용하게 되고
나 자신이 흔히쓰고 자주쓰던 말의 정확한 어휘나 뜻을 몰라
몇일 전 영어사전을 들추어 보았다.

봉사,봉공으로 시작된 Service 란 말의 설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서비스라는 뜻과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허면 얼마 전
나는 고객과 서비스라는 단어를 놓고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융통성이 없고
지독한 사람이라는 핀잔만 듣고 무안 해 하던
나 자신이 생각나서 하는 이야기이다.

몇일 전 40대의 안경을 쓰고 귀티나는 사모님 한분이
내가 운영하는 유아백화점에 오셔서
이것 저것 구경을 하다 어린아이 옷가지 등을 골라서
계산을 하니 23,500원이었다.

어디 선물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예쁘게 포장을 하여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공박스와 포장지를 대령하고 거래명세서를 작성하여
건내줄 때 까지 열이면 열 모두가 한마디씩 하시는
"얼마 해 줄래요..?" "깍읍시다." 하는 말씀도 없이
거래명세서를 훌터 보시는 젊잔은 고객에게
황송스러워 두손을 비비며 눈치만 살피고
포장하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데..~~
젊잔게 하시는 말씀이...

손/ 이집은 가격은 안 깍아주는 집이고...뭐 서비스 없어요..?

주/ 죄송합니다. 저희집 서비스품으로 비취백과 손수건을 준비 했는데..
지금 다~ 나가고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들리시면 거래에 관계없이
한가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 그러면..기저귀 카바나 턱받이 하나라도 주시면 되지않아요..?

주/ 손님..그것은 판매품이지 서비스품이 아닙니다.

손/ 물건을 2만원어치 이상 사고 하나도 안깍는데 그까짓 것 하나 주면
어때서 그래요..?

주/ 사모님...서비스품과 판매품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모님 말씀은
끼워팔기이고 서비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손/ 정말..융통성없고 지독한 아저씨구먼..이렇게 서비스가 없어서
이집에 다시 오겠어요..?

주/ 사모님...
진정한 서비스란 친절하게 고객을 안내 한다던지 고객이 편리하게
또는 예쁘게 포장을 하여 드린다던지..어쩌고 저저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서비스 지론을 늘어 놓는데...
"아..!! 시끄러워요..빨리 물건이나 싸 주세요..."하는 말씀에
아무말도 못하고 물건을 포장하면서
내 자신이 너무 비굴한 것도 같고
손님 말씀데로 융통성이 없는 것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발게지면서 23,500원을 받아들고
한참동안 입을 벌리고 멍허니 서 있었다.~~

농담삼아서라도 한 말씀씩하시는
그 흔한 깍자는 말씀도 안하시는
그 젊잔은 고객이 너무 고마워서
내가 생각하는 유아백화점 운영방침에 보람을 느끼며
그 고객에게 존경심어린 마음으로 손을 비비던
감격스러운 순간이 우수수 무너지며 ~
한없는 절망과 좌절감에 머리가 띠~잉허구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방에 들어와 영어사전을 펼쳐들고
"Service" 라는 단어의 설명을 한줄한줄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역쉬~ "서비스"와 Servce"의 차이가 있음을 알고는
나는 앞으로 유아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는 하지 못하지만... "Service"는 하여야 하겠다는 다짐을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고객들에게
카메라 사진을 한판씩 무료로 촬영 해 드린다는 것은
가족과 함께 유아백화점에 쇼핑을 오신 고객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지...
결코 얼마를 팔아 얼마의 이익을 보았으니 사진을 무료로 촬영 해 드린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나 자신에게 강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비라 가족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매출금액을 확인하여 누적 해 가는 방법을 도입한 이유도
과연 특정 고객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유아백화점을 이용하는지..?
얼마나 매출에 기여하는 지..? 등의 축적된 Data 를 기준으로
그에 상응하는 사은품이나 Service 를 제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무엇을 얼마치를 팔아 주면 무엇을 주겠다는
그런 조건있는 "서비스" 보다는...

무엇을 팔아 주셨으니 감사의 마음으로
무엇을 드린다는 진정한 감사와 정이 담긴
그런 "service" 만을 할 것이라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 보았다.~~

< www.iidel.com 의 운영자일기에 있는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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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읽으니 조금은 어색한데가 많이 보인다.
당시만해도 유아용품점에서 2만여원의 매출은 무쟈~컷던 모양이다.
그리고 20여년 전에는 물건값 깍자는 소리는 당연 했는데...
카운터 뒤편에 "100원도 깍아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하여 주십시요.."
하는 문구를 내걸고 독불장군식 정찰제를 고집하던 자신이 생각난다.>

-- 이 글은 1982년 7월 9일 고객통신에 쓴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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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매장에서 생긴일

장복산 2005. 10. 26. 20:58

 


어제는 하루종일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내가 쓰는 컴퓨터에 악성코드가 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핸드폰결제 2,000원..카드결제 2,000원을 번갈라 투자하며
바이러스 악성코드를 퇴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은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만 허면서 들락거리다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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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82년 4월 27일 썼던 글이다.~>

< 160원의 시비..>

몇일 전 일이다.
저녁 때가되어 집사람과 직원들은 식사를 하러 들어가고
나 혼자 가게를 지키는데 40대 부부가 어린이 두명을 데리고왔다.
이리 저리구경을 하다 완구부 앞에서 데리고 온 어린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보라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들이 선택한 것은 2,580원짜리 완구 2개였다.

별다른 대화없이 선택한 제품을 포장하여 드리니까...
5,000원권 지패 한장을 내 밀고 돌아서 나갔다.
나는 혹시 손님이 착각을하고 계신가..? 싶어서
"손님 2,580원씩 두개면 5,160원입니다." 하니까
"그런데요..?" 하고 반문을 하길래
"손님이 지불하신 것은 5,000원입니다. 160원을 더 지불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160원은 당연히 깍아야 한다는 관념과 유아백화점은 꼭 정찰제를
실시하여야 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팽팽히 대립되었다.

결국은 거래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그 어린이들은 자기가 가지고싶은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기뿜이 살아지자 울면서 억지로 가게문을 나설 때
내가 너무 고집스럽고 우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내주관이나 신념을 위해서냐..? 아니면 고집과 자만심이 가득찬
오만한 내 자신의 문제이냐를 놓고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있으며 인정받는 사람이되기 위하여
어떤 때는 긍지와 자부심이라는 표현으로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고
때에 따라서는 허욕과 허세라는 과잉표현수단을 동원할 때도있다.

내 자신은 자신만만하게 소비자의 입장이되어 소비자를 위하여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있지만 그것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밖에 될 수없으며
누가 그것을 인정해주고 사회가 그것을 용납해줄 것인가..?
도저히 통용될 수없는 아프리카 토인의 말을 지껄이고있는 것같은
좌절감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을 돌려본다.
내가 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이렇게 목마르게 호소하고있을까..?
나는 판매업을 하기전에 런닝셔츠 한개가 필요해도
메리야스 가게를 지나면서도 내가 사본적이 없다.
꼭 집사람에게 부탁해서 사 오도록 했으며
집사람이 남편에게서 선물하나 받아보지 못했다고 불평을 할 때는
스타킹 하나라도 사서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물건사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해서 뭘해..!!"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내가 물건을 사면 물건값을 깍지 못하는 병패때문에 항상 바가지쓰고
손해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해서 아예 물건을 사지않는 이상한 버릇이생겼다.

특히 의류는 질감,색상, 디자인의 다양성에 비례하여 내가 아는 상식이나
물건값을 깍는 실력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에 포기상태로 (그렇다고 우리 집사람도
물건값을 야무지게 깍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함) 우리 부부나 아이들에게는
변변한 옷이 없는 실정이었다.

어린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에
유아백화점을 시작하고 판매업에 손을 대면서 내 자신이 과거에 격었던 일이
생각나서 유아백화점은 정찰제를 실시하겠다고 마음을 결정하고
이제까지 미련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 160원의 시비 >를 벌려야 하는
나 자신을 나는 지금 다시 한번 점검하고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안 깍는 장사가 어디있느냐..?고 따지는 고객이나
물건은 깍는 맛에 산다는 애교있는 제스쳐를 써보이는 고객에게도
충분한 명분과 이유가 있겠지만 고객과 업주가 다 같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서로 믿고 사고 팔수있는 신용사회 환경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나
누가 하나 먼저 양보하지 못하고 팽팽히 끌고 당기는 가운데 상호 불신풍조만
태산같이 커 가고 오랜 시간이 경과하자 물건값은 깍아야 한다는 것이
관습처럼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라본다.
그래서 나는 한사람씩이라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통해 태산같은
불신풍조의 장벽을 허물어 보자고 베비라 가족회의를 생각했고,
내 분수에 지나치리만큼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 행사를 강행하고있다.
오늘 베비라 가족회의를 통해 좀더 폭넓은 대화를 나누어 태산같은 불신의 봇물이
제방을 무너트리고 힘차게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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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이 글을 옮기면서~~
어떤 때는 부끄러움이..
또 어떤 구절에서는 미소를 지며, 빠르게 교차하는 감정의 흐름을 타면서 타이핑을 했다.

태산이니...어쩌고 하는 표현은 정말 80년대 표현이고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능한 한 원본을 그대로 옮기려는 노력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반 제래시장은 물건값 깍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장면이지만...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여행을 올 때는
시장에서 물건값 깍는 교육을 받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여행 함 하고 오면~
"야~ 외국에는 길 건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신호등이 빨간불이라고 차가 멈춰서서 가지를 않더라~
햐~~ 선진국은 선진국이더라~.." 하는 말들을 하며
선진화 교육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나도 우리집 카운터 뒤편에
"100원도 깍아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하여 주십시요.." 하는
팻말을 걸어두고는 어깨에 힘주던 시절이 아니던가..?

이제는 우리도 신호등에 따라 길을 건너고
표시된 가격을 보고 지불하는 선진국 국민이 되어 버린 시점에서
요즘은 내가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한다고 하면서 그렜쥐~ 헉..~ 하는
이상한 문자를 쓰며 80년대 글을 인터넷 매체에 그데로 옮기려고 하니~
이 글을 다시 한번 타이핑 하는 새로운 감칠맛이 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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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함께 올린 <진해문학> 책의 그림은 당시 이 글이 진해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진해문학동인지에 실렸었기에 함께 찍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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