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

오자키 2009. 6. 11. 23:42

외국어를 잘 하려면 글쓰기를 잘 해야 한다. 읽기만 필요한 사람이라도 쓰기를 하지 않으면 읽기 능력을 전문가 수준으로 올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지식도 자신의 것으로 정착시키기 어렵다.

 

이에 대해 지금부터 2백 여년 전에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학자가 <우이야마부미(うひ山ぶみ)> (本居宣長<もとをり・のりなが> 지음, 1798)라는 책에서 지적한바 있다. 이 책은 학문을 시작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쓴 것인데,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과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것과는 깊이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남의 일은 아무리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아도 자신의 일처럼 잘 와 닿지는 않는다. (すべて万<よろづ>の事、他<ひと>のうへにて思ふとみづからの事にて思ふとは、淺深の異なるものにて、他のうへの事は、いかほど深く思ふやうにても、みづからの事ほどふかくはしまぬ物なり)

 

그래서 옛 와카(和歌)를 배우려는 사람은 자신도 그 시대의 문체로 와카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런 생각은 정말 중요하다. 여러분에게 ‘남의 일(他のうへ)’이란 외국어가 되는데, 그것을 ‘자신의 일(みづからの事)’처럼 잘 와 닿도록 만들려면 그 외국어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쓰기를 등한시하면 읽기조차도 잘 못할 거라는 뜻이다.

 

내가 서투른 한국어로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도, 물론 글쓰기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어의 이해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어 책들을 읽고, 그 중 자신의 취향과 맞는 문체와 비슷한 문체로 글을 씀으로써 점점 한국어의 여러 가지 문체들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쓰기에는, 읽기의 이해력을 향상시키는 효과 외에, 지식을 정착시키는 효과도 있다. 읽기만 하면 그때는 이해를 해도 그 지식은 휘발성이라서 빠른 속도로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글을 읽고 터득한 단어나 표현들을 자신의 글에서 써 봄으로써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읽기만으로 외국어를 정확하게 습득하려면 까마득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쓰기도 병행하면 외국어를 습득하고 향상시키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 외국어의 문장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지식 없이 그럴듯한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려면 읽기도 해야 한다. 읽기 없이 쓰기를 하면 이상한 글만 나오게 된다.

 

내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몇 년 됐을 때의 일인데, 방 청소를 하다가 한글이 쓰인 쪽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參考까지에 이갓은 韓國語와 日本語의 表記法가 밉니다.

 

내가 쓴 글이었다. 한국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썼던 것인데, 고치면 ‘참고로 이것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표기법입니다.’가 될 것 같다. ‘參’과 ‘國’은 일본식 한자로 쓰여 있었다. 아마 심심해서 쓴 모양인데, 이 엉터리 한국어에 나 자신이 아연실색했다. 이 문장을 썼을 때 나는 ‘참고’나 ‘표기법’이라는 단어도 몰랐을 것이다. 모르니까 한자로 썼겠지.

 

이 쪽지를 발견해서 놀랐을 때가 아직 한국에 오기 전의 일이었다. 그 짧은 몇 년 사이에 나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도 한국에 있는 펜팔 친구와 편지 왕래를 열성적으로 한 덕인 것 같다. 나는 펜팔 친구가 쓴 편지를 읽고 또 읽었고, 이에 대해 맞는지 틀렸는지 몰라도 답장을 많이 써댔다. 글씨체도 그때 많이 모방했다. 덕분에 나의 글씨가 여자 같다고 지적받았을 정도다.

 

이와 같이 쓰기와 읽기는 상호 보완적이다. 쓰기는 읽기의 질을 높이며, 읽기는 쓰기의 질을 높인다. 잘 쓰게 되면 잘 읽을 수 있게 되고, 잘 읽을 수 있게 되면 글도 잘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외국어를 잘 하려면 많이 읽을 뿐만 아니라 많이 쓰는 것이 좋다.